보수는 왜 다문화를 선택했는가 - 다문화 정책을 통해서 본 보수의 대한민국 기획
강미옥 지음 / 상상너머 / 2014년 8월
평점 :
품절


이자스민씨가 아시안게임 개막식 태극기 기수단의 일원으로 참여했다. 이자스민씨가 새누리당의 공천을 받았다는 것이 연일 보도되던 때, ‘어? 저 사람 어디서 봤지?’ 했다. 영화 「완득이」에서 완득이의 엄마로 나오는 사람이었다. 찾아보니 필리핀 이주여성이었다. 새누리당에서 공천을 받은 만큼 당연히 당선이 되었고, 의정활동을 활발히 하고 계실 것으로(?) 생각은 하고 있다. 여러 보좌관들과 의사소통은 원활하신가? 갑자기 궁금하네~

 

영화 「완득이」는 무척 재미있었다. 소설을 읽지 않고 영화만 본 나는 혹시나 영화의 재미와 감동이 반감될까 소설은 손대지 않았다. 원래 반대가 되는 게 일반적인데^^;;

영화에서도 다문화가정인 완득이네가 겪는 여러 가지 삶의 고달픔이 표현된다. ‘다문화가정’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10-20년 전 초기 이주여성들의 모습과 기억에 머물러 있다. 시골에서 농사짓는 40-50대의 노총각들이 동남아나 구 러시아연방으로 날아가 현지의 젊은 여성들과 결혼하는 풍경. 남편 하나 보고 날아온 땅에서 겪는 어려움과 아픔. 남편의 폭력. 뭐 이런 것들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여당의 국회의원이 되기도 하는 현실이다. 단순하게 놓고 보면 이제는 어엿한 대한민국 국민이 될 수 있고 국회의원이 될 수도 있는 다문화국가가 된 듯 하다.

하지만 실제로 만나는 다문화가정의 삶은 행복하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단지 국회의원이 되었다는 것으로 국가와 기득권이 다문화가정과 다문화정책에 주요한 관심을 쏟고 있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학교 안에서도 그 아이들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그 아이들을 ‘구별 지어’온 지 오래되었다. 의도는 좋았으나 그 과정이 섬세하지 못해서 결과를 망쳐버린 경우.” (p.191)

 

학교 안에서는 여전히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이 차별 받고 있다고 한다. 피부색이 다르고 자신을 제외한 다른 아이들과 외모가 다른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은 이름조차도 불리지 않는다고 한다. “야! 다문화!”가 그들의 이름으로 불린다고 한다. 학교와 교사가 분명히 주의를 주고 배려하고 도울 것을 이야기하지만 이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단순히 배려하고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 불러일으킨 결과다. 저자의 지적대로 좀 더 섬세하고 그들 입장에서 입안되고 마련되어야 할 정책과 담론이 수혜자의 입장에서 논의되다 보니 어쩔 수 없다.

 

 

“이명박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면서 대한민국 다문화 정책은 이제 정착 단계로 접어들고 있는데, 아직까지 진보-좌파 진영에서는 보수-우파들이 다문화주의를 주류 담론으로 선택한 이유조차 구체적으로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p.9)

 

이명박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면서 다문화 정책이 이미 정착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저자의 의견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국회의원도 공천했다. 야당과 진보-좌파 진영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이야기다. 야당과 진보-좌파는 다문화 정책에서도 주도권을 내주었다. 도대체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자들이다. 이자스민씨가 공천되고 당선되는 것도 지켜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저 무슨 시혜적 발상인가? 이자스민이 국회의원이 돼? 의정 활동을 제대로나 할 수 있겠어?’ 정도일 것이다. 야당은 그 공천 한 석을 가지고 각종 계파와 잘난 사람들이 들러붙어 개싸움을 할 것이니까. 하지만 대중들은 이자스민씨를 공천하고 당선시킨 여당을 기억할 뿐이다. 앞서간다는 느낌이다. 당선된 후 아무런 주목할 만한 의정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아시안게임 기수단으로 참여한 그녀를 보며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맞아~ 새누리당에는 이자스민이라는 국회의원이 있지~!” 새누리당과 보수-우파들에게는 단순히 국회의원 1명이 아니라 다문화정책을 우선하고 중요시한다는 보이지 않는 지지가 쌓인다. 언제일지 까마득한 다음 총선에서 야당이 다문화 인사를 공천한다면 새누리당 따라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짐승 몰듯 이주민 노동자는 사정없이 쫓아내면서, 이주노동자 방송에 보내주던 지원금은 끊으면서, 왜 한편으로는 계속 다문화 시대를 노래했을까?” (p.24)

 

보수-우파와 새누리당이 이제껏 보인 다문화 정책은 다분히 차별적이었다. 한편으로는 이자스민씨를 공천하면서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그들을 탄압하고 구별해 냈다. 하지만 대중의 뇌리에 남는 것은 이자스민씨다.

진짜 그들이 노리는 것은 더 무서운 것이다.

 

 

“일제 강점이라는 정치성이 상당히 희석된 공간 만주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언어와 문화의 향연, 대한민국 우파들이 꿈꾸던 근원적인 세상의 모습이자 미래의 모습.” (p.149)

 

보수-우파라면 민족 중심주의, 애국주의 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미국과 유럽의 보수-우파다. 그런데 한국의 보수-우파는 그것과는 다르다. 이명박 정권 시절 광복 몇 주년 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사라지고 건국 몇 주년 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탄생했다. 임시정부를 이어받은 헌법적 역사성을 배제하고 이승만의 건국을 추앙하는 각종 시도가 발현했다. 뉴라이트를 중심으로 역사관이 새롭게 뒤틀리고, 아이들이 역사를 배우는 교과서조차 손을 댔다. 지금 뉴라이트는 유야무야 되었지만 그들이 심어 놓은 왜곡된 역사편향은 당연히 잘못된 것이 아니라 ‘논란거리’가 되었다는 점이 더 심각한 문제다. 이상한 사람들이 떠드는 이상한 소리가 아니라 같이 머리를 맞대고 토론을 할 대상이 되었다는 점이다. 그들이 진짜 꿈꾸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저자는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서 펼쳐진 20세기 초반 만주를 소개한다. 중국과 러시아 조선과 일본에서 몰려 든 많은 사람들이 민족과 국가, 이념과 가치를 초월해 만주드림을 꿈꾸는 분위기. 이념과 가치가 모호하니 뒤얽혀 있는 상태.

 

 

“다문화주의는 자신들을 숭미주의자, 친일주의자로 몰아붙이고 수구꼴통이라면서 손가락질하는 진보 진영의 입을 막을 수도 있는 꽤 괜찮은 도구일 수 있다는 판단.” (p.84)

 

한국의 보수-우파, 여당은 지울 수 없는 뿌리가 있다. 일재 잔재. 일본의 침탈과 미군정, 냉전을 거치며 그들이 보인 태도는 지극히 자신들의 입신뿐이었다. 제국주의와 공산주의에서 구해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민주정부 10년 동안 밝혀낸 친일행위자의 후손들이 친일인명사전 편찬에 대해 그토록 목을 매 반대하고 비판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들 선조의 매국 행위와 친일 행위가 밝혀지면 안 되니까. 그들 선조로부터 이어받은 재산이 몰수당할 수도 있으니까. 물론, 과거사가 제대로 진상규명되고 친일행위자가 밝혀졌어도 재산 몰수는 꿈도 꿀 수 없는 사회지만 말이다. 어차피 이 사회의 거의 모든 주도권을 쥐고 있는 쪽은 그쪽이니까. 단순히 대통령만 다른 사람이었을 뿐.

그런 그들에게 다문화주의는 그들의 과거를 희석할 수 있는 호재였다.

 

 

“이것 봐라. 우리는 과거에 연연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생활하는 다문화가정이 얼마나 많은 줄 아느냐. 이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 우리는 국회의원도 있다.”

 

“이들 탈북자들에게 진보적인 선택지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남한 사회에 대한 전반적인 경험이 없어 초기 정착 과정에서 하나원이라는 통제된 교육기관을 거치고, 정부의 정착금을 받고, 교회에 나가는 과정에서 그들이 ‘마치 수령님 교시처럼 목사님 말씀을 따르는’극우적 성향을 띠게 되는 것이 너무도 자연스럽다는 얘기다.” (p.105)

 

탈북자들에 대한 정책은 더욱 심각하다. 국정원의 간첩조작 사건만 봐도 저들의 속내는 분명하다. 북한에서 살기가 싫고 어려워서 목숨을 걸고 넘어 온 사람들은 관리해 온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보호의 명목 하에 관리하고 간첩으로 조작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북한으로 대량의 삐라를 끊임없이 뿌려 대는 탈북단체를 그냥 놔둔다. 그래서 남북 간에 물리적 충돌도 벌어졌다.

정부와 국정원의 관리에서 나오게 되면 먼저 그들을 맞는 것은 교회다. 교회에 정착해 새로운 남쪽의 이웃과 친구들을 사귀고 만난다. 저자의 아픈 지적처럼 좌파-진보 진영에서 이 사람들을 향해 먼저 팔을 내뻗은 적은 없다.

 

 

“‘다문화’란 다양한 민족이 품고 들어온 이국적이고 독특한 사물이나 도구, 행사에 대해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각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관점, 즉 인식의 방법에 대한 반성적 이해를 전제한다.” (p.46)

“다문화적 실천은, 그런 소소한 코드들에 대한 다양한 해석, 관점 등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p.47)

 

앞으로 더 많은 다문화가정이 생길 것이고 더 많은 탈북자들이 우리와 함께 살아갈 것이다. 언제까지 손 놓고 있으려는지 모르겠다. 이자스민씨 같은 국회의원 하나쯤 뭐가 문제가 돼. 삐라 뿌리는 거 그거 뭐 북한 주민들이 보기나 하겠어. 하다가 큰 코 다친다. 지금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진보-좌파, 야당 아닌가? 도대체 하는 일이 뭔가. 국민들 속 뒤집는 일?

 

 

“보수-우파들의 전략들이 성공을 거두는 이유는, 대부분 그들의 전략이 사람들의 가장 약한 고리를 제대로 건드리기 때문이다.” (p.161)

“네가 내 것을 빼앗아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것이 어차피 빼앗길 수밖에 없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현실적 인식과 공감적 이해가 필요하다.” (p.242)

 

생각보다 보수-우파는 영리하다. 자신들의 이익과 안녕을 위해서 파격을 단행하기도 한다. 요즘 각종 민생 정책을 파기하고 세금을 늘리고 하는 것은 선거가 멀기 때문이다. 아무리 삽질을 해도 더 무능하고 무책임한 야당과 진보진영이 있으니 룰루랄라 할 수 있다. 선거가 다가오면 납작 엎드리는 쑈 몇 번 하면 된다.

 

 

“몇몇 대학을 중심으로 사범대학에 다문화교육학과가 생겨나고 대학에서부터 다문화 교육 관련 프로그램이 신설되기 시작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p.269)

 

다문화교육학과가 생기고 다문화 관련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먼저 그들과 현상을 반성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시집오거나 돈 벌기 위해 들어와 있는 외국인들이 아니라 함께 어깨를 걸고 이곳에서 함께 살아가야할 사람들이다. 단순히 국회의원 한 명 뽑아주고 돈 몇 푼 지원해 준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초등학교 교실에는 점점 더 피부색과 외모가 다른 아이들이 많아질 것이다. 그 아이들을 “야! 다문화!”라고 구별하는 문화가 지속된다면 그 아이들이 함께 할 군대, 직장, 사회에서조차 “야! 다문화!”는 이어질 것이다. 구별해 내 특별하게 도와주거나 배려해주는 것은 진정한 도움이 될 수 없다. 아예 교과 과정에 <다문화 이해가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초·중·고등학교에서 계속해서 배우고 익혀야 한다. 그래서 저 아이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져야 한다. 함께 손잡고 일하고 어깨 걸고 기대는 것에는 피부색과 외모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 체화되어야 한다.

진보-좌파, 야당에서는 할 일이 참 많은데 도대체 뭘 하고 있는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거, 이제 좀 그만 할 때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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