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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큐 웃픈 내 인생
앨리 브로시 글.그림, 신지윤 옮김 / 21세기북스 / 2014년 6월
평점 :
품절
재미있는 책이 좋다. 쳇바퀴 돌 듯 이어지는 일상에서 낙을 찾는 일은 중요하다. 손바닥 안에서 우주가 펼쳐지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 굳이 얼리버드나 얼리어댑터가 아니더라도 간단하게 손바닥 안의 우주 안에서 모험을 펼칠 수 있다. 어떤 곳을 어떤 경로로 찾아 들어가 나에게 맞고 나에게 위로와 위안 내지는 웃음을 주는 곳을 발견하는 일은 전적으로 개인의 일이다. ‘너’의 배꼽을 빠지게 만드는 것이 ‘나’의 배꼽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맞는 것을 찾아야 한다. 나는 헛소리 하는 것을 좋아한다. 헛소리라고 해서 정말 ‘아무짝에나 쓸모없는 실없는 소리’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것은 집안 내력이다. 나와 내 동생은 아버지의 그것을 그대로 닮았다. 어머니는 이것을 싫어하셨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성격은 완전히 달랐기 때문에 매번 아버지의 실없는 소리는 농담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내 아내는 내 헛소리를 잘 받아준다. 좋아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농담으로 받아치기도 하고 한쪽 귀로 흘려 내는 등의 나름의 방법으로 잘 소화해주고 있다. 그러니 재미있다. 한 번씩 내 실없는 소리에 ‘빵’하고 터질 때가 있다. 그러면 한참 동안 바닥을 데구르르 둘이서 구르며 웃는다. 배가 아프고 허리가 땅기고 눈물이 흐를 때까지. 그러고 나면 1시간 실컷 울고 난 후의 카타르시스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 책 「큐큐 웃픈 내 인생」은 재미있는 책이다. 저자는 이미 블로그로 인기를 끌었다. 블로그도 얼마나 많나~! 주소만 치면 전 세계 어디라도 블로그를 방문할 수 있다. 그런데 방문자 수가 수백만 명을 넘어가는 블로그는 분명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얘기다. 결국 책으로까지 출간하게 된 저자 블로그의 인기 비결은 나는 ‘유머’라고 생각한다. 현대인들은 유머를 갈망한다. 오죽하면 여자들의 남자이상형 가운데 항상 상위에 랭크되는 항목이 ‘유머감각’이지 않나? 하지만 모든 남자들이 유머감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애써서 여자를 웃기기 위해서 유머책을 읽거나 개그프로그램을 보며 개인기를 독학한다 하더라도 단번에 유머감각을 장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상에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소재를 가지고 조금은 다르게, 색다르게 생각하고 그것을 저자처럼 글로 표현하거나 아니면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하게 되면 분명 상대방을 웃길 수 있을 것이다.

저자와 함께 사는 강아지는 조금 불편한 것 같다. 책에서는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사람으로 치면 발달장애 정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도우미 견까지 입양하게 되는데, 이 도우미 견과 원래 함께 살던 반려견 사이에 약간의 갈등이 표출되고 같은 사건에 대해 반려견과 도우미 견이 완전히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을 굉장히 익살맞게 표현한 부분을 보면서 ‘이 사람은 자신의 슬픔도 웃음으로 승화하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되었다. 저자는 인생에서 ‘재미’라는 가치를 상위에 두고 있는 사람이 틀림없어 보인다. 나는 개인적으로 개를 기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개만이 아니라 다른 반려동물도 기를 생각이 없다. 그래서 그녀의 글 전부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녀에게 반려견은 가족이나 다름없는 존재일 것이다. 가족이나 다름없는 존재의 아픔에 천착하지 않고 유머로 업어치기 하는 삶의 태도가 마음에 든다.

“좋은 사람으로 느끼고 싶다고 해서 좋은 사람으로 거듭날 필요는 없어.” (p.343)
좋은 사람이란 무엇일까? 좋은 사람... 착한 사람? 나한테 잘해주는 사람? 좋은 사람이라는 단어는 정의는 지극히 주관적이다. ‘재미’라는 것이 지극히 주관적이듯이 나에게 좋은 사람이라고 해서 그 사람에게 좋은 사람일 수는 없고 그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나에게 좋은 사람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우리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이 강박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거의 모든 현대인이 겪는 질환일 것이다. 좋은 사람, 좋은 아빠, 좋은 엄마, 좋은 아들, 좋은 딸, 좋은 직원, 좋은 친구, 좋은 동료, 좋은 선후배, 좋은 사회인, 좋은 시청자, 좋은 고객, 좋은 대중 등등. 무수한 좋은 것들을 요구받는다. 나는 결코 ‘좋은’ 사람이 될 수 없고, 심지어 그 ‘좋다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규정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좋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위 사진을 보며 굳이 ‘내가 왜 좋은 사람이어야 하지?’라고 반문하게 되었다. 솔직히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는데, 왜 나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지 반추하게 되었다. 부모의 기대, 사회의 기대, 국가의 기대, 속한 공동체의 기대, 아내와 딸의 기대 등등 찾으려면 끝도 없이 찾을 수 있을 것만 같다. 굳이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함을 문득 깨달았다. 거듭나려고 아등바등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위로를 받는다.


“모르겠어. 하지만 당신 앞에 끔찍하고 지루한 황무지가 끝없이 펼쳐져 있을 것만 같은데,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건 이상하게도 희망과 닮아 있단 말이지.” (p.166)
“내가 그런 일을 할 사람이라는 사실조차 알고 싶지 않아. 고맙게도 나는 나 자신이 얼마나 엉망인지를 깨닫지 못하게 하는 거짓말과 속임수의 완벽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어.” (p.355)
저자가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말하고 싶어 한 것은 긍정적인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림도 그렇고 그림 속 말들도 그렇다. 가만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 내 삶을 하나하나 펼쳐 놓고 마주하면 걱정 투성이다. 어떻게 대출을 갚아가야 할 것이며, 나는 언제까지 이놈의 직장에 붙어 있을 수 있을 것이며, 내 몸은 현재 건강한지에 대한 의구심이 드는 것이며, 내 딸은 도대체 언제 커서 걸을 수 있을 것이며 등등. 어떤 밤은 침대에서 이러한 생각의 굴레에 완전히 사로잡혀 몇 시간이고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아침을 맞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뒤숭숭하게 맞은 아침식사는 꿀맛이다. 일상에 빠져들다 보면 이내 지난밤의 고통과 번뇌는 잊혀진다. 그것이 신이 주신 망각의 축복이리라. 저자의 표현대로 황무지가 끝이 없을 것 같지만 별로 걱정되지는 않는다. 굳이 배우자와 마주 앉아 미래를 설계하거나 예측하는 시간에는 몰아치는 걱정과 근심으로 그로기 상태에 빠져 들지만 정확하게 그 미래를 예측하거나 설계할 수 없기 때문에 막연한 희망 속으로 자연스럽게 나아간다.
자연스럽게 장착되어 있는 ‘속임장치’의 그것은 우리의 삶은 이어가게 만드는 중요한 도움이다. ‘속임장치’가 없다면 제대로 삶을 이어갈 사람이 몇이나 될까? 매번 똑같은 그 문제로 골머리를 싸매고, 죽을 만큼의 고통을 매번 그대로 기억해야 한다면 그것은 사는 것이 아니다. ‘속임장치’가 멋지게 장착되어 있기 때문에 그 때의 잘못을 또다시 되풀이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시간이 흐른 뒤 또 처음 잘못한 것처럼 그렇게 나를 뉘우치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어차피 살아가야 할 인생. 굳이 어렵고 힘들고 나 자신을 괴롭혀 가며 사는 것은 ‘나’에게나 ‘나의 주변인’들에게나 행복한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현실을 망각한 채 도피해서 살아가는 것도 그다지 추천할 만한 일은 아니다. 책의 제목과 비슷하게 “흐흐.. 내 인생 웃프다.”라고 쓴웃음 한번 짓고 또 내일을 맞는 것이 삶에 대한 가장 긍정적인 자세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