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 엄마는 청소노동자예요! -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찾은 엄마의 파업 이야기 ㅣ 희망을 만드는 법 9
다이애나 콘 글, 프란시스코 델가도 그림, 마음물꼬 옮김 / 고래이야기 / 2014년 5월
평점 :
대학 1학년, 90년 대 말 학내 운동세력이 급격하게 쇠퇴하던 시기였다. 한때는 학내 운동을 주름잡던 사회대 학생회 소속으로 학내 시위에 참여했다. 학내에서 제왕적인 권력을 휘두르며 온갖 비리와 남용을 저지르던 총장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였다. 새내기, 거칠 것도 없고 두려운 것도 없었다. 그것이 내가 학교에서 참여한 첫 시위이자 마지막 시위가 되었다. 학교 행정실에서 동원한 무시무시한 체대 학생들과 조직폭력배로 보이는 아저씨들에 둘러싸여 목표하던 총장실 무기한 점거는 일순간에 실패했다. 이후 학내 운동세력들이 사활을 걸고 준비한 대동제에 참석한 학생들의 숫자가 200명도 채 안 되는 것을 보고 나는 학생회 활동을 그만 두었다.
이후 몇 번의 시위에 더 참여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가결에 대한 반대 시위, 광우병 촛불 시위, 박근혜 정권 국정원의 대선 개입 부정에 대한 시위, 최근에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시위에까지. 시위 참여라 해봤자 행사에 참석해 자리를 채운 채 구경하다 오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우리 사회만큼 시위, 데모에 대해 병적으로 싫어하는 사회가 있을까 싶다. 독일의 대학생들은 1년 대학 등록금을 30만 원 정도 올린다는 것에 반발해 대대적으로 시위를 벌여, 결국 그 정책을 입법하려던 정치인을 낙마시키고 기존 등록금을 유지했다고 한다. 도로 점거는 물론, 우리 사회에서는 당장 집시법위반으로 경찰서에 끌려갈 행동도 크게 위협받지 않는 것 같았다. 시위나 데모가 일어나면 언론은 그 시위와 데모가 일어나게 된 근본 원인에 대한 탐사나 보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시위로 인해 교통체증’ 내지는 ‘경찰과 대치’등 자극적이고 지엽적인 소재로 본질을 호도하는 경우가 많다.
왜 이렇게 병적으로 싫어하게 된 걸까? 솔직히 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이승만 시절부터 박정희, 전두환 독재 정권을 거치며 시민들과 학생들이 주도한 것이 시위, 데모였다. 압제적인 권력에 맞서 일반 시민이 할 수 있는 최상·최후의 방법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상한 사회가 되었다. 데모만 하면 친노종북 내지는 빨갱이로 덧칠된다. 이게 논리도 없고 무식하기 그지없는 프레임인데, 매번 먹힌다. 매번 권력을 가진 이들에게는 주요한 공격 무기가 된다.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데모는 데모크라시에서 파생된 말이다. 따라서 한 사회에서 어떤 데모가 일어나고 그것이 어떤 과정을 거치며 결과는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살펴보면, 그 사회의 민주주의에 대한 성숙도를 알 수 있다.
“3주일이나 이어진 길고 긴 파업이 드디어 끝이 났습니다. 엄마와 청소노동자들은 마침내 승리했습니다. 임금을 올리고 더 좋은 노동 조건을 만드는 데 성공한 거예요.” (p.23)
이 책 「우리 엄마는 청소노동자예요」의 주인공과 청소조합원들은 결국 싸움에서 이겼다. 이들의 데모가 권력을 이긴 것이다.
나는 이제껏 살면서 우리 사회에서 시위세력, 데모세력이 결국 그 목표를 쟁취하고 권력에 대해 승리를 했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없다. 화물노조, 새만금, 코레일, 각 대학의 청소노동자들, 쌍용차, 한진중공업, 용산 철거민, 강정 해군기지, 밀양 송전탑, 각종 촛불시위, 국정원 대선개입 등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시위와 데모가 있었지만 나는 시위와 데모의 주체인 시민 혹은 조합원 혹은 활동가들이 승리한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다. 아무리 인터넷을 뒤져도 기사를 찾을 수 없다.
이 작은 책에서는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책의 주인공과 조합원들의 투쟁이 얼마나 힘들고 지난한 싸움이었는지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지만 결국 그들은 승리했다. 책의 주인공은 더 이상 주말에 청소를 하러 직장에 나가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서 주말에 아이와 놀아줄 수 있게 되었고 아픈 어머니의 치료비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임금 인상도 쟁취했다. 부러웠다. ‘역시 미국은 선진국인가 보다.’ 싶었다. 책의 주인공과 조합원들이 마냥 부러웠다.
“그분들이 이겼나요?”
“그럼, 그분들이 이겼지! 많은 사람이 뭉치면 큰 힘을 낼 수 있단다.” (p.14)
주인공의 아들, 카를리토스가 다니는 학교 선생님과 카를리토스가 나눈 대화다. 이미 오래전에도 힘없는 사람들이 힘을 한 데 모아 큰 힘을 발휘해 승리한 역사를 알게 되었다. 이것도 부럽다. 우리에게 승리의 역사가 있나? 6월 항쟁? 탄핵 반대 시위? 광우병 촛불 시위? 결코 승리라고 할 수 없다.
나는 우리 사회가, 더 구체적으로는 기득권을 가진 권력이 왜 이토록 시위와 데모에 대해서 병적으로 싫어하는지 알게 되었다. 기득권을 가진 권력 입장에서는 결코 저 힘없는 자들이 모여 승리를 하는 역사를 만들어 주고 싶지 않은 것이다. 지금까지는 단 한 번도 승리한 역사가 없기 때문에 제대로 뭉치지 못했고 힘을 한 데 싣지도 못했다. 전국적인 관심이 쏠리는 거국적인 시위에서도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내부에서부터 분란이 생기고 분열이 생기는 꼴을 얼마나 많이 봐 왔나! 저들은 이 책에 등장하는 청소노동자들처럼 우리 사회의 다른 노동자들, 데모세력들이 결코 승리하는 꼴을 지켜볼 수 없는 것이다. 한 번 승리하면 그것은 역사로 기록된다. 기록되고 기억되며 이어진다. 지금보다 더 민주주의가 제한되고 권력에 의해 국민이 압제받는다 하더라도 이전의 승리에 대한 역사는 고스란히 뒤를 이어 전해질 것이다.
그런데 그런 승리의 역사가 없다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분통하다.
“카를리토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아주 힘들게 살아갈 만큼밖에 돈을 벌지 못하는 세상은 불공평해! 그래서 청소노동자들이 모여 투표를 해서 일을 멈추기로 했단다. 그런 걸 파업이라고 하지! 우리는 건물이 더러워져도 그냥 내버려 둘 거야. 월급을 제대로 올려 받을 때까지 청소를 하지 않을 거란다.” (p.11)
이들이 승리하게 된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파업의 배경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것을 아이들에게 전했다는 점 일 것이다.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아이에게 설명한다. 나쁜 사람은 엄마와 노동자들이 아니라 제대로 노동자들을 대우해 주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점을 정확하게 가르친다.

우리 사회는 그렇지 않다.
그렇게 시위와 데모를 많이 한 현대사를 알고 있는 세대들도 자신들의 자식들은 그런 데모를 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율배반적인 태도다. 대학 때 독재타도와 노동자를 위해 열심히 운동을 한 사람들이 변절해 국회의원이 되고 자치단체장이 되는 경우를 지금도 보고 있다. 결국 변절하거나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길이 우리 사회에서는 더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사실 이것 또한 승리의 역사가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된다. 아무리 분투해도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사회를 지켜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당사자가 아닌 이상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자신의 자식들에게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이 되고 당연히 누려야 할 가치인 시위와 데모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탓에 요즘은 젊은 세대들도 병적으로 시위와 데모를 적대시하는 이들이 많다. 이것은 좀 더 구조적인 문제와 얽혀있기는 하지만 지난 코레일 파업 때 취업준비생들이 파업을 두고 “연봉 6000만원 받는 귀족 노조의 귀족 파업”이라고 코레일 파업을 규정한 보도를 보며 나는 경악했다. 사회 전체적인 발전과 진보를 위한 생각은 전혀 없는 근시안적인 삶의 방향이 안타까웠다. 그 취업준비생은 단 한 번도 그의 부모로부터 시위와 데모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시위와 데모에 대해 많이 들었고 충분히 알고 있는 젊은 사람이 그랬다면 그것은 이 사회의 괴물화가 이미 정점에 왔음을 보여주는 꼴이기 때문이다.
“저는 아이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엄마가 투쟁해 왔다는 점을 아이들에게 알려 주고 싶어요.”
“우리 가족은 제 인생에서 노동조합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고 있어요.”
책의 모델인 돌로레스 산체스의 말처럼 아이들에게 말해주어야 한다. 힘을 가진 기득권과 권력이 짜 놓은 프레임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청소노동자가 되기 싫으면 애초에 공부를 더 열심히 할 것이 말이야!”, “처음엔 취직만 시켜 달라 하더니 점점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아니다. 그들이 잘못한 것이 아니다. 이제는 ‘개천에서 절대로 용이 날 수 없는 세상이다.’ 서울대에 입학하는 신입생 중 상당수가 서울, 그것도 강남에서 배출된다는 사실은 이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다.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더 열심히 공부해서 더 좋은 대학가지 왜!”, “의사나 변호사가 되거나 하다못해 공무원이라도 되지!”라고 말하는 것은 폭력이다.
더 심각한 것은 시위와 데모의 주체 세력조차 자신들을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내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그래서 자식들에게 “너는 나처럼 살지 말아라! 공부해라!”라고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악순환의 반복으로는 승리할 수 없다. 이 책이 적확하게 보여 준다.
돌로레스 산체스는 어린 아들에게 분명하게 가르쳤다. 왜 엄마가 일을 중단하면서까지 데모를 할 수밖에 없는지. 그랬더니 아이는 학교에서 아이들과 엄마를 돕기 위해 피켓을 만들어 응원한다. 이 아이들의 행위가 폭력적인가? 이 아이들이 학교에서 직접 만든 피켓을 가지고 거리로 나오면 집시법 위반인가?
광우병 촛불 시위이후 이명박 정권은 대대적인 탄압을 가했다. 촛불 시위에 적극적이었던 유모차 부대 엄마들을 향해 수구언론과 여권에서는 입에 담지 못할 막말을 퍼부었다. 그들의 논리대로 엄마의 손에 이끌려 그 땡볕에 나온 아이들이 결국 엄마를 원망할까? 전혀 아니다. 그렇게 아이들은 유모차에서부터 사회를 배우고 민주주의를 학습하며 연대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희망 섞인 바람은 여지없이 깨진다. 외부의 압력보다는 내부의 검열이 우선되는 경우다.
“내가 보기에 이 아이들의 엄마, 노동조합을 하는 강인한 여성이야말로 아이들에게는 최고의 모범이다.”
저자인 루이스 로드리게스는 이런 여성들이야말로 아이들에게 최고의 모범이라 말한다. 엄마가 무엇 때문에 거리로 나가고 파업을 하며 데모를 하는지를 정확하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어야 한다.
지난 6.4지방선거에서 진보교육감이 대거 당선되었다. 교육감을 제외한 다른 선거에서 여당과 야당이 백중세를 유지한 것에 비하면 굉장히 특별한 당선이다. 학부모들이 이념과 당파를 떠나서 인물을 보고 투표하고 이전 진보교육감들이 거둔 교육개혁에 지지를 보낸 것이다. 그러고 나서 며칠 전 전교조 법외노조 판결이 났다. 진보 교육감이 대거 당선되자마자 수구언론에서는 당장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난리를 치고 새누리당에서는 직선제를 폐지하자는 논의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진보교육감에게 대거 투표한 학부모들이 전교조 법외노조 판결에 대해서도 들고 일어나야 정상이라고 보는데, 아무런 동요도 없다. 언론의 보도도 없고 넘치는 sns도 없다. “전교조=빨갱이=데모” 이 프레임이 고스란히 작동되는 것이다. 슬픈 현실이다.
국회 청소노동자들의 파업이 한때 큰 파장을 일으켰었다. 국회의원 선거 이전, 반드시 처우를 개선해 주겠다며 고개를 숙이던 후보가 당선 이후 찾아갔더니 고개를 빳빳이 들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사진은 유명하다.
기득권과 권력으로부터 뭔가 시혜를 요구하거나 단발성 호의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지난 이명박 정권과 지금 박근혜 정권을 통해 온 몸으로 체감하고 있다. 책에서도 강조하는 것처럼 “뭉쳐야 한다. 힘을 합쳐야 한다. 그래야 힘이 생긴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부끄러워하지 말고 주눅 들지 말고. 절대로 본인들의 잘못이 아니다. 절대로 당신들의 잘못이 아니다.
이런 책은 초등학교 문고에 반드시 포함해 많은 어린 학생들이 읽어야 한다. 절대로 그럴 일은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