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식탁 - 독성물질은 어떻게 우리의 일용할 양식이 되었나
마리 모니크 로뱅 지음, 권지현 옮김 / 판미동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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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마주하는 식탁에 죽음이 드리워져 있다는 제목이 자극적이다. 웰빙 이라는 단어가 광풍처럼 번지며 너도나도 좋은 먹거리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전까지 소비자에게 제품을 판매하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있던 기업들마저 자사의 제품 광고에 유기농, 웰빙이라는 카피를 넣어가며 유행을 부추겼다. 시사프로그램들 중 소비자의 먹거리를 고발하는 몇몇 프로그램은 방송 중에 주요 포털의 실시간검색어 상위에 랭크되기도 한다. 그만큼 사람들은 먹거리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단지 농촌을 떠나 도시에 정착한 이전 세대들이 고향에 대한 향수와 도시생활에서의 전원을 느껴보고자 텃밭을 가꾸거나 하던 것이 이제는 대규모 주말농장을 분양받기도 하는 사업으로 커지기도 했다. 근래에 들어서는 생산과 구매의 복잡한 중간과정을 한 번에 없애버리는 협동조합 형태의 사업들도 유행이다. 어린 아이를 가진 지인들 중 대다수가 지역 내 협동조합에 조합원으로 가입해 일반 대형마트에서는 찾을 수 없는 유기농제품을 다소 비싼 가격에 구입해 먹기도 한다. 아무리 자본주의사회라고 하더라도 사람이 먹는 음식에 장난질 하거나 단지 돈의 논리로 불법을 자행하겠나 싶지만 가만히 현대사를 돌이켜 보면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 했다. 바로 생각나는 것은 삼양라면 사건이었다. 폐유에 가까운 기름으로 만든 면발이 시중에 유통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건 이후 판매가 중지되었으나 슬며시 지금은 다시 판매되고 있다. 과자류에서 쥐의 꼬리로 의심되는 이물질이 나오거나 하는 사건은 유명했다. 내가 먹고 내 가족이 먹고 내 아이들이 먹는 음식에 이런 장난질을 하는 회사가 드러나면 소비자들은 분개한다. 불매운동을 펼치기도 하고 비난을 쏟아 붓기도 한다. 그런데 결국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다시 그 제품을 사 먹는다.

 

이것이 이 책 「죽음의 식탁」서평의 결론이다.

 

 

이 책은 거대 다국적 농약회사와 화학물질을 생산하는 회사가 어떻게 우리들의 식탁에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웠는지, 드리우고 있는지를 고발하는 내용이다. 저자는 이전 책에서 거대 다국적 농화학기업 몬산토를 고발했다. 그런데 이 책은 단지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존재론적 당위인 사기업만을 고발하지 않는다. 그렇게 소비자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고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농약과 화학물질의 생산과 유통, 소비가 단지 사기업의 천박한 이익추구에만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름만 들어도 신뢰가 팍팍 가는 세계보건기구를 비롯한 유럽정부의 각종 국영 협회와 연맹들이 어떻게 사기업과 연관되어 있으며 이들의 공공연하지만 내밀한 유착이 작용한 결과가 어떤 것인지 낱낱이 드러내고 있다.

 

 

“2009년 6월 11일,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 마거릿 챈이 엄숙하게 ‘신종플루 대유행’을 선언하면서 세계는 공포에 떨었다. 그로부터 1년 뒤, 수만 명이 죽어 나갈 것이라던 예측과 달리 ‘돼지 독감’의 희생자는 해마다 찾아오는 일반 독감보다 열 배나 적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백신을 제조하는 다섯 개 업체 - 노바티스, 글락소스미스클라인, 사노피 파스퇴르, 백스터, 로슈 - 에게는 황금 같은 기회였다. 백신 판매로 60억 달러나 되는 이익을 나눠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에 자문을 했던 ‘전문가’들이 이 ‘비통한 사기극’을 이용한 기업들과 유착 관계에 있었던 것이다.” (p.356)

 

 

기억난다. 벌써 4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2009년 초여름 한국 주요 언론에서도 연일 보도를 쏟아냈었다. 들어보지도 못했던 ‘신종플루’라는 것이 전 세계적으로 대유행이고 어린아이나 노약자 심지어 성인에게도 치명적이라는 것이었다. ‘플루’라는 것이 단지 감기바이러스를 일이키는 것에 불과하지만 ‘플루’라는 단어 앞에 ‘신종’이 붙게 되면서 사람들의 공포는 가중되었다. ‘신종’이라는 단어가 전염병을 수식할 경우에 그것이 가져오는 불확실성에 의한 공포는 재난 수준이 이를 수도 있다. 그래서 미리 예방주사를 맞아야 한다며 난리도 아니었다. 정확한 기억인지는 모르겠으나 보건당국에서는 어린 아이와 노약자들에게는 무료로 접종을 실시했고, 그 기준에 속하지 않은 대다수의 성인들은 자기 돈을 주고 백신을 접종해야 했었다. 실제로 TV에서는 ‘신종플루’로 인해 사망한 사례를 계속해서 보도했고, 유명 탈렌트의 아이조차 그것으로 인해 사망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 그 ‘신종플루’를 파헤친 저자의 기록은 충격적이다. 세계보건기구라는 정말 이름만 들어도 무한 신뢰가 가는 기구의 사무총장이 새로운 전염병의 대유행을 선언했을 때, 전 세계의 사람들은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한국의 질병관리본부에서 선언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신뢰를 가진 기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과는 어이없게도 대형 다국적 제약회사의 배를 불려주는 것에 그쳤다는 것이다. 이름만 들어도 신뢰를 있는 대로 던져주고 싶은 세계보건기구의 사무총장의 대유행 선언이후 1년이 지나면 수만 명이 사망할거라고 했던 신종 전염병의 치사율은 매년 찾아오는 일반 독감의 그것보다 10배나 작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간 공포로 인해 뭉칫돈을 벌어들인 이들은 백신을 만든 제약회사들이었다는 것이다.

 

다국적 제약회사들과 유착된 ‘전문가’라는 놈들이 세계보건기구를 펌프질 했다는 것이다. 이런 거대한 사기극이 일어날까? 싶은데, 실제로 일어났다.

 

 

“식품 사슬을 오염시키는 해로운 제품을 규제할 때 주로 사용하는 도구인 일일섭취허용량은 소비자의 건강보다는 기업을 더 보호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p.305)

 

 

일일섭취허용량. 이 단어도 낯설지 않다. 우리의 식탁위로 올라와서 섭취하게 되는 음식물에 들어가는 거의 모든 제품들에 명시된 단어다. 일일섭취허용량. 소비자를 죽음으로부터 지켜주는 마지막 보루라고 생각되는 이 단어의 탄생 일화가 허무맹랑하다.

 

 

“몇 명이 테이블에 둘러앉아서 정했지요.” (p.327)

 

 

몇 명이 테이블에 둘러앉아서 “일일섭취허용량이라고 정합시다.”라고 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과학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허용 범위’란 사회적이고 규범적이며 정치적 혹은 상업적인 개념입니다. 또 누구를 위해 ‘허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허용 범위의 개념 뒤에는, 얻는 이익에 비해 리스크를 허용할 만한가하는 질문이 늘 숨어 있습니다. 이익을 보는 쪽은 항상 소비자가 아닌 기업입니다. 리스크를 감수하는 쪽은 소비자이고 이익을 가져가는 쪽은 기업인 것이죠.” (p.333)

 

 

맞다. 우리의 섭취허용량을 정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없다. 물론 테이블에 둘러앉은 몇 몇은 전문가들이었다. 일반 소비자들보다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공부한 사람들이다. 그렇다 해도 소비자로서의 권리를 그들에게 위임한 적이 없다. ‘허용범위’라는 개념은 철저하게 정치적이고 상업적인 개념이다. 몇 명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정했으니, 그 ‘허용범위’의 주체와 객체가 무엇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책의 설명대로 기업 입장에서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셈이다. 너무 흔하고 반복적으로 노출되어 있어서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던 ‘일일섭취허용량’이라는 개념에 이토록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숨어 있는지 몰랐다. 이런 일들이 왜 벌어졌던 것일까?

 

 

“나는 회전문 인사(Revolving Door) 기업 대표들이 정부 단체나 국제기구의 고위직을 차지하고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고, 임무가 끝나면 다시 기업으로 돌아가는 시스템” (p.359)

 

 

이유는 바로 ‘회전문 인사’다. 한국인들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하고 친숙한 단어다. 지난 이명박 정권에서부터 현재 박근혜 정권에까지 이 ‘회전문 인사’의 폐해는 심각한 수준이다. 그나마 정권과 여당 주변에서 가장 깨끗한 인사라고 평가되던 안대희씨가 총리직 발표 6일 만에 황급히 사퇴했던 것을 보면 현 정권의 인사 난맥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우리나라 상황이고.

 

(여러 번 반복하게 되는데) 이름만 들어도 신뢰가 가득 가득 가게 되는 국제기구에서도 이런 ‘회전문 인사’가 만연해 있다고 하니 충격적이다. 미국이 유령기구처럼 만든 IMF나 국제은행 같은 기구는 경제·금융 분야니까 그런 일들이 있으리라 짐작했지만 보건과 환경을 다루는 국제기구들조차 이런 ‘회전문 인사’가 만연해 있다고 하니 막막하다. 전 세계를 아우르는 다국적 농화학·합성화학 기업들이 각국의 정부 단체는 물론 국제기구의 고위직에까지 마수를 뻗치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독성학자와 화학자 들이 화학 업계와 매우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p.39)

“우선 기업이 돈을 대는 연구소 대부분은 에스트로겐 성질이 있는 화학물질에 반응을 보이지 않는 쥐를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p.502)

“현재 사용되는 농약 중 동물이나 인간에게 암을 유발하는 제품은 전무하다. 농약과 암의 상관관계는 추정일 뿐이지 견고한 데이터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다.” (p.237)

 

 

 

이들의 역할은 아주 중요하다. 책에서 소개된 유명한 학자는 줄곧 다국적 농화학 기업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그 기업의 고위직에 가게 되고 이후에는 그 기업의 막대한 연구 지원을 받아 저런 연구결과들을 내놓는 것이다. 이런 어용과학자들의 연구결과는 다국적기업과 각국의 정부단체, 국제기구의 삼각 회전문 인사를 용이하게 하는 윤활유가 된다. 일부 환경단체나 저자와 같은 운동가들에 의해 농약과 화학물질의 폐해가 과학적으로 검증되어 증거로 제시되었을 경우, 자신들이 고용한 유명한 어용과학자들의 연구 결과가 반증으로 제시되는 것이다.

아무리 과학이 발전했다 하더라도 100% 증거란 존재하기 어렵다. 수많은 농약 피해자들의 임상사례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100% 기업의 책임으로 입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관련 학계에 종사하는 모든 학자와 과학자들이 기업의 책임을 묻는다 하더라도 각국의 정부기관과 국제기구에 유착된 다국적 기업들을 벌할 수 없을 텐데, 기업이 제시한 당근에 넘어간 어용과학자들이 소수라도 있는 한 기업은 계속해서 돈을 벌수밖에 없다. 기업의 주머니에 들어가는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의 식탁에는 죽음이 가까워지고, 그 농도가 짙어진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새로운 개혁은 인간이 환경에서 화학물질에 노출되어 모든 상황을 고려한 ‘노출학’을 바탕으로 해야 합니다. 더 이상 망설일 시간이 없습니다.” (p.552)

“화학오염물질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가능한 한 유기농을 드세요.” (p.557)

 

 

책의 결론 부분을 읽으며 맥이 빠졌다. 가능한 유기농을 사 드시라니. 물론, 기업과 정부단체 국제기구까지 유착된 현 상황을 타계할 다른 방법이 없으니 이해된다. ‘일일섭취허용량’이라는 낯설지만 전혀 모르고 있었던 기업의 사기멘트에 속지 말고 제품 하나를 사더라도 더 꼼꼼하게 따지고 찾아보고 검색하는 적극적인 소비자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그렇지 않으면 만연한 자본주의의 서슬을 감당할 수 없다. 알아서 찾아보고 알리고 공유하는 것만이 답이라고 나도 생각한다. 다른 가계 영역에서의 소비를 줄여서라도 시중가격보다는 다소 비싼 유기농 음식을 찾아서 구매하는 것도 노력 여하에 따라 가능한 일이다.

 

 

“조지 W. 부시가 연임하면서 공공 보건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지요. 피터 안판테가 그랬듯이 저도 잘릴 뻔했습니다.” (p.254)

 

 

하지만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문제는 정부의 태도다. 미국 국립환경보건원 제임스 허프 박사는 지난 대선 결과를 받아 든 한국의 49% 시민들이 가졌던 그 멘붕과 비슷한 멘붕을 겪은 사람이다. 조지 W. 부시가 연임하게 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부시의 연임이후 미국의 보건당국에서 일하던 제임스 박사는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다고 표현했다. 보건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미국 국민들의 안전과 보건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어야 하는데, 거대 기업이나 정부의 정책에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면 잘라버리는 것이었다. 지난 이명박 시절 그 어떤 말단직이라도 참여정부에서 했다면 이유를 막론하고 잘라버렸던 사례와 유사하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위축된다. 하고 싶은 말은 목 뒤로 넘기고 듣고 싶어 하는 말만 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도 국가에서는 ‘규제 철폐, 규제는 암덩어리’라는 표현을 써가며 어떻게 해서든지 규제를 없애버리려 하는 모양이다. 세월호 이후에도 그런 말을 하는 걸 보면, 3년 반 남은 임기동안 정말 무수히 많은 규제를 철폐할 생각인가 보다. 그런데, 국민의 건강·보건·환경에 관한 규제도 철저한 자본의 논리로 처리한다면 죽음의 식탁은 이미 바로 내 밥상머리에까지 와 있는 꼴이 될 것이다. 어떤 규제는 수십 년 이어 온 관성과 관습에 의해 불필요하게 존재하는 것도 있을 수 있고 어떤 규제는 개발이나 성장에는 걸림돌이 되기는 하지만 전체의 안전과 안녕을 위해서 존재해야 하는 것도 있을 수 있다. 정부나 정부단체, 전문가들께서는 일반 소비자 혹은 시민들보다 똑똑하시고 더 잘 알고 계시니 그런 규제들을 잘 구분해 내시겠지만 불일 듯 일어나는 의심과 노파심은 거둘 길이 없다.

 

 

“그때까지 다뤘던 농약 때문에 병에 걸렸다고는 정말 단 한 순간도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제조업체를 믿었고, 판매를 승인한 기관을 믿었으니까요.” (p.119)

 

 

기업에서 정부 기관에서 괜찮다. 괜찮다. 해서 농약을 사용했는데, 내 몸이 완전히 망가진다면 도대체 어디에다가 하소연을 할 수 있을까. 단지 농약이 아니라 엄청나게 많은 화학물질을 안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그것들이 정확하게 어떤 물질로 구성되어 있고 어느 정도의 노출이나 섭취로 인해 어떤 질병이나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는지 차근차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는 곳도 없다. 앞서 말했듯이 소비자가 알아서 찾아나서야 한다. 암담하고 슬픈 일지만 딱히 다른 대안이라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 거대 다국적 기업들이 갑자기 한날한시에 그간 자신들의 잘못된 논리와 제조행태를 사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자사의 제품을 사용한 소비자들에게 합당한 보상을 하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현재 시스템은 질병을 양산할 수밖에 없다. 정치, 경제, 규제, 이데올로기의 규범이 인간의 건강이나 환경보다 이윤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p.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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