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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비 사회를 넘어서 - 계획적 진부화라는 광기에 관한 보고서
세르주 라투슈 지음, 정기헌 옮김 / 민음사 / 2014년 4월
평점 :
아이가 태어난 지 1달이 되었다. 아직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의 부성애가 생기지
않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기는 한데, 지인들의 조언을 듣다보면 그렇게 비정상적인 것은 아니라 판단되어 다행으로 여기도 있다. 딸아이의 태명은
봄봄이였다. 이 녀석이 아빠를 닮아 성격이 급했던 탓인지 예정일보다 3주 일찍 세상으로 나왔다. 그전부터 이것저것 필요한 육아용품을 사기는
했지만 아직 3주나 예정일이 남아서 출산 후 바로 필요한 용품들은 미처 장만하지 못했다. 병원에 있는 3일 동안 이것저것 사러 다닌다고 정말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했었다. 출산 및 육아 용품은 또 왜 그렇게도 다양하고 방대한지, 일일이 인터넷에서 찾아 준비하는 모든 예비엄마들과
초보엄마들, 다산엄마들이 대단해 보였다. 그런데 예상치도 못한 난관이 찾아 왔다. 아마 봄봄이 탄생 1주 정도가 지난 시점이었을 것이다.
아내로부터 보일러가 고장 났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때가 4월 말이었고 비가 3-4일 연속으로 내리던 때라 아침저녁으로는 꽤 쌀쌀했다. 태어난 지
1주일 밖에 되지 않은 봄봄이를 위해서 당장 조치를 취해야 했다. 결국 출장기사를 불렀다. 수리비는 17만원인데, 보일러가 노후되었으니 교체하는
것이 더 낫다고 했다. 보일러 교체 비용은 60만 원 선이었다. 부품 2개 교체하는 비용이 17만원이나 나오는 것도 이해가 안 됐지만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전 주인이 보일러를 한 번 교체한 적이 있는데 처음 설치된 연도에서 10년이 지났으니 노후 될 대로 노후되었다는 출장기사의 말이
곧이들리지 않았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당장 이사할 예정이 없고 한 번 교체하면 10년 정도는 쓸 수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교체하려 했으나
보일러 관련 일을 하는 지인으로부터 부품만 교체하라는 조언을 듣고 부품만 교체했다. 현재까지는 잘 돌아간다. 출장을 왔던 기사가 ‘이 집은
신생아도 있고 하니 당연히 보일러를 교체하겠지!’라고 생각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보일러를 비롯한 가정 내 모든 가전제품에서부터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이런 매뉴얼이 존재한다. 매 5000km 주행마다 엔진오일을 교환하라는 자동차 서비스센터의 매뉴얼은 당연히 지켜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왜 보일러는 10년도 못 쓴 채 교체해야 하는지, 왜 엔진오일은 5000km 정도밖에 견디지 못하는 것인지 이 책 「낭비 사회를
넘어서」가 명쾌하게 설명한다.
“하드디스크는 애초부터
3년 정도의 수명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기 때문이란다.” (p.15)
“1881년 에디슨이
만든 최초의 전구는 수명이 1500시간에 달했다. 1920년대 생산된 저구의 평균 수명은 2500시간이었다.”
(p.41)
1924년 12월 제너럴 일렉트릭사를 포함한 전구 제조업체 관계자들은 제네바에 모여 전구
수명을 결정하는 회의를 열었다고 한다. 이른바 ‘푀부스 카르텔’이다. 회의 결과 전구의 수명을 1000시간 이하로 제한하자는 목표가 정해졌다고
한다. 이렇게 매뉴얼은 자본의 논리와 태도로 정해졌고 이것은 소비자에게 진리로 세뇌되었다. 에디슨이 처음 만든 전구의 수명보다 못한 전구를
21세기 사람들이 쓰고 있는 것이다. 하드디스크는 왜 애초부터 3년 정도의 수명으로 정해졌는지 책은 정화하게
설명한다.
“계획적 진부화는
인위적으로 수명을 단축하거나 결함을 삽입하는 방식을 말한다.” (p.34)
“인위적으로 공산품의
수명을 단축시켜 새로운 소비를 자극하기 위해 사용되는 모든 종류의 기술을 가리키는 포괄적인 개념이다.”
(p.37)
‘계획적 진부화’는 낯선 개념이다. 하지만 책을 읽어보면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개념이다. 내가 보일러 교체의 순간, 엔진오일 교체 순간 느꼈던 그 감정과 궁금증이 바로 ‘계획적 진부화’로 인해 유발된 것이다. 개념을 풀어
설명하지 않아도 한번쯤은 경험해 봤을 것이다. ‘계획적 진부화’는 미국에서 창안된 포드주의와 맞물려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단기간에 전 세계를
잠식했다. 또 이것은 성장담론과 결합하면서 가공할 만한 힘을 지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컨베이어벨트에서 무한하게 상품을 찍어 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상품이 마모되거나 수명을 다해야 한다. 한번 만들어낸 상품이 수십 년씩 간다면 포드주의식 모델은 완벽하게 실패하고 만다. 그래서 고의적인 수명
단축이 필요한 것이었다. 책에서 소개되는 스타킹의 경우도 그렇다. 최초로 나일론 소재 스타킹이 개발되었을 때는 자동차도 들어 올릴만한 탄력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스타킹 회사는 모조리 망할 것이다. 적절히 찢어지고 적절히 마모되는 스타킹을 만들어야 계속해서 스타킹을
소비자들에게 팔 수 있는 것이다. 짐짓 자본의 논리만으로 따지자면 맞는 말인 듯싶기도 하고, 만약 내가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의 사장이라면 당연한
논리일 것이다. 일부러 망가뜨리지 않는 이상 완벽하게 가동되는 보일러를 만든다면 특허는 받을 수 있겠지만 결코 돈을 벌수는 없을 것이다.
“끝없이 욕망을 추구하는
활동으로서 현대 소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p.23)
그런데 이것이 도를 넘어섰다. 자본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세상이 온 것이다. 자본의 논리와
자본을 대하는 소비자의 감정이 전복되어 종속되는 결과에 이른 것이다. 휘황찬란한 광고를 넋 놓고 들여다 보다 보면 어느 순간 ‘사고 싶다. 갖고
싶다.’라는 욕구를 느낀다. 결코 만족하지 못하는 소비적 욕망을 만들어낸 것이 전적으로 자본의 세뇌인 것인지, 애초부터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던
본성인 것인지는 유전심리·사회심리 전문가들이 논할 일이다. 어쨌든 현대의 소비자들은 끝없이 욕망을 추구하는 활동에 매진한다. 소비하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 되었다. 나라에 빚이 쌓이고 가정에 빚이 쌓여가도 끊임없이 소비를 자극하고 종용한다. 거듭되는 소비만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처럼 광고한다.
“특정 한계를 넘어서
버리는 순간 우리의 실행 능력은 느끼고 상상하는 능력을 무한정 초월해 버리고 만다. 안더스가 ‘프로메테우스적 괴리’라고 명명한 이 해소할 길
없는 간극은 우리의 도덕의식을 말 그대로 마비시켜 버린다.” (p.75)
소비적 욕망에 잠식당한 소비자들은 자본에 의해 완전히 지배된다. 책에서 소개된 유대인
철학자 귄터 안더스의 ‘프로메테우스적 괴리’는 한국 사회에서 정확하게 구현된다. 안더스는
‘계획적 진부화가 제너럴 모터스사를 위해 좋은 일이라면 그것은 미국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고
인류 전체를 위해서도 좋은 일인 셈이다.’ 라는 형태로 소비자들의 도덕의식을 마비시킨다고 소개한다.
며칠 전 황당무계한 스포츠기사를 보았다. 이승엽이 홈런을 쳐서 이건희 회장이 깨어났다는
기사였다. 병상에 있는 이건희 회장이 평소 야구를 좋아해 병실 TV를 통해 삼성의 경기를 보고 있었는데, 이승엽 선수가 홈런을 친 순간 이건희
회장의 의식이 회복되었다는 것이다. 이 만화 같은 일이 스포츠 신문은 물론 포털 뉴스에서도 주목하며 보도를 쏟아냈다. 삼성을 욕하면서도 삼성에
입사하고 싶어 하는 대다수 한국인들의 ‘프로메테우스적 괴리 심리’를 가장 적확하게 이용한 기사라고 생각 된다. 삼성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논리는 여전히 유효하다. 기업 과세를 조금이라도 늘릴라치면 전 사회적으로 폭발하는 논리다. 삼성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 워낙 오랫동안 들어왔던
말이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것이 사실일까? 사실이라면 정부차원에서 결단을 내려서 그런 고위험의 가능성을 분산시켜야 맞는 것 아닐까?
진짜 그 논리대로 삼성이 망한다면 큰일이지 않나? 삼성이 망해도 나라가 망하지 않도록 자본력과 영향력을 분산시키는 게 맞지
않나?
불행하게도 ‘계획적 진부화’의 논리는 저자와 같은 탈 성장 주의자들을 제외하고는 어디에서도
제기되지 않는다.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이 당연한 논리인 것이다. 며칠 후에 있을 지방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도 모두 성장, 발전, 개발의 공약을
가지고 있다. “제가 당선이 되면 탈 성장 주의를 모토로 삼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이것이 현실이다. ‘계획적
진부화’와 탈 성장주의 담론도 유럽에서는 이미 수십 년 된 개념인데,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은 거의 없다. 나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평균 18개월 정도
사용되고 버려지는 휴대 전화는 비소, 안티몬, 베리륨, 카드뮴, 납, 니켈, 아연 등 생물체에 유해한 다량의 독소를 포함한 쓰레기 더미들을
만들어 낸다.” (p.99)
“모조품의 사회는
계속해서 당신을 기계처럼 사용하고, 기계처럼 연료를 공급하고, 기계처럼 감시하고, 기계처럼 일만 하도록 만들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되면 고장 난 기계처럼 내다 버릴 것이다.” (p.86)
미국에서 한 해 평균 1억대 이상의 휴대 전화가 버려진다고 한다. 그 정도는 아니겠지만
비정상적인 모바일 강국인 한국에서도 엄청난 양의 휴대 전화가 버려질 것이다. 평균 18개월 정도 사용되고 버려진다는 통계가 어느 나라를 대상으로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저자가 한국의 상황을 통계 내었다면 18개월 보다는 훨씬 짧은 주기였을 것이다. 버려지는 휴대 전화는 다른 국가에서
재활용되지 않는 이상 모조리 쓰레기다. 다량의 독소를 포함한 쓰레기. 1년에도 몇 번씩 최신 기종의 휴대 전화가 만들어 진다. 약정 기간을
채우지 않아도 새 휴대 전화로 교체할 수 있는 편법은 넘쳐 난다. 마침 휴대 전화는 어느 정도 사용을 하면 고장도 잘 난다. 현대 기술과 문명의
총아라 할 수 있는 휴대 전화는 ‘계획적 진부화’를 담보하는 최전선에서 소비하는 욕망을 부추긴다. 자본의 논리는 애초부터 모조품을 만들어 낸다.
얼마 동안의 기간밖에 존재할 수 없는 태생적 모조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미 자본의 논리에 지배당하는 소비자들에게 짧은 수명주기는 중요하지
않다. 곳곳에 최신 기종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소비의 주체로 오해하며 개별 주체 또한 단지 하나의 모조품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은
모른다. 용역천지인 사회다. 대형마트에도 대학병원에도 하물며 국가기관에도 용역으로 가득하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비정규직의 무분별한 양산은
소비자이면서 동시에 모조품으로 전락하는 기구한 소비주체의 운명을 가속화 했다. 끝도 없이 소비하며 살지만 동시에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깊숙이
모조품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필요에 의해 단번에 버려질 수 있는 모조품으로.
“내구재의 공동 사용은
성장 반대론자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현실화할 때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 (p.109)
내구재의 공동 사용으로 모조품으로 전락해 완벽하게 자본의 논리에 지배당하고 있는 처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저자는 내구재의 공동 사용 말고도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하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는 결코 실현될 것 같지 않다.
‘아파트 공화국’이 되어 동네 개념보다 더 협소하게 ‘단지개념’을 만들어 낸 한국 사람들에게 내구재의 공동 사용은 먼 나라 얘기일 뿐이다.
여전히 대다수의 한국 사람들은 한국이 아직도 성장해야 하고 개발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오죽하면 대통령이 기껏 꺼내드는 경제카드가
‘규제철폐’일까. 지난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기점으로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원전 폐기에 대한 담론에서도 엄청나게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고리 원전의 고장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어도 크게 문제시 되지 않는다. 아직 토건개발은 먹혀드는 선거이슈이고 복지, 분배,
평등 담론은 성장, 발전, 개발 담론에 비해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못한다.
저자도 몇 가지 대안으로 수십 년 동안 쓰나미처럼 몰아쳐 온 자본의 논리를 단번에 극복할
수 없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하지만 이런 논리의 공포와 비극적 결말에 대해 인식하는 것이 출발이라고 지적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보다
문제를 직시하고 아무도 제기하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 인식하고 공유하고 전파한다는 것은 유의미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