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알사냥꾼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염정용.장수미 옮김 / 단숨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인생을 살면 살수록 사는 게 뭔지 더 모르겠다. 예전에 어릴 때 어른들로부터 그런 얘기를 들으면 ‘무슨 뚱딴지같은 얘기지?’ 했었는데, 지금은 내가 그런 뚱딴지같은 넋두리를 늘어놓을 때가 있다. 이런 생각과 더불어 요즘 내 머릿속을 온통 채우고 있는 생각은 ‘뭐가 선이고 뭐가 악이지?’ 하는 것이다. 거창한 철학적·종교적 궤변을 늘어놓기 위함은 아니다. 그냥 살다보면 그런 것들에 일상이 무너져 내리기도, 하늘에서 내려오는 단 하나의 동아줄이 되기도 한다. 나의 욕망과 기대와 꿈을 버무려 야무지게 내 삶, 그 한가운데로 밀어 넣으려 해도 아무것도 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철이 든 이후부터 세상을 보는 눈이 많이 달라졌다. 철이 들기 전까지 세상이, 어른들이, 선생들이 가르쳐 준 것들은 진실이 아닌 것이 많았다. 다들 각자 다른 이유들로 각자의 욕망과 자리보존의 처절함을 내게 투사했을 뿐이었다. 철이 든 시점은 정확하게 책을 제대로 읽기 시작한 시점과 일치한다. 책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까지 철이 들지 않은 채 그저 세상이, 어른들이, 주변 사람들, 그리고 TV에서 말해주는 것만 진실인 양 알고 살았을 것이다. 뭐, 그랬다면 오히려 더 살기 편했을 수도 있겠다. 크게 분노하지 않고, 고민하지 않고, 떠들어대지 않고 살면 되니까.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것이고 이미 든 철, 떨쳐낼 수도 없다. 그냥 이렇게 살아야 한다. 분명히 잘못된 것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지적을 하면 이런 대답들이 돌아왔다. “나만 그러냐! 더 크게 해 먹는 진짜 나쁜 놈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랬다. 정말 그랬다. 살아보니 정말 그랬다. 대학을 졸업하고 시작한 군 생활과 그 이후의 직장생활에서 이것은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그저 내가 다들 그렇듯이 입 다물고 한 패가 되면 만사 오케이였다. 굳이 드러내고 이야기하고 싫은 내색하지 않으면 모두가 오케이였다. 그런데 정말 그들의 말이 맞았다. 정말 살다보니 더 크고 나쁜 놈들이 더 많았다. 이야기해보기는 커녕 싫은 내색조차 할 수 없는, 내 토악질이 도저히 닿을 수 없는 저 만치 높은 곳에서 가부좌를 틀고 있는 나쁜 놈들이 많았다. 이놈들에 비하면 다들 그렇게 그렇게, 쉽게 쉽게 살면 된다던 선배들과 동료들은 애교 수준이다. 그래서 더 슬프고 암담하다.

“왜냐하면 악은……. 악은 그 어떤 경우에도 살아남기 때문에.” (p.412)

악은……. 정말 그 어떤 경우에도 살아남는다. 지난 대선 전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가 그렇게 얘기했던 “불법은 성실하다.”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성실하고 끊임없으며 치밀하다. 그래서 살아남는다. 그리고 보편적이다. 철저하게 보편적이다. 이 책 「눈알사냥꾼」에 등장하는 연쇄살인마 차린 주커는 분명한 악이다. 주커는 성실하고 치밀하다. 끊임없이 알리나와 알렉스 곁에 있다. 결코 떠나지 않는다. 그것이 악이다. 주커가 여성들을 납치해 강간하고 눈알을 뽑아내고 눈꺼풀을 제거하는 행위 자체도 악이지만 알리나와 알렉스, 나와 당신에게서 떠나지 않는 것이 악의 본 모습니다. 사실 악은 멀지 않다. 때론 너무 가까워 밭은 숨을 내쉬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이런 말이 있죠. 적은 우리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로 파괴되는 것은 친구에 의해서이다. 제 옆 우리에 있던 소녀는 결코 포로가 아니었어요. 이해하시겠어요? 이리스가 연기를 한 것뿐이었어요.” (p.274)

주커의 또 다른 피해자 타마라의 말이 정확하다. 우리를 정말로 파괴하는 것은 가까운 존재일 수 있다. 물론, 모든 경우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빈도에 상관없이 가까운 친구나 존재로부터 존재론적 악을 발견한다면 내상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클 수밖에 없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악은 가깝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악의 태동은 아주 가까운 곳에서부터 돌고 돈 다는 것이

다. 나는 그렇게 이 책이 읽혔다.

“틀렸습니다. 그 여자들은 성희롱을 당했죠. 그러고는 침묵을 지키고 그 불의의 사건을 덮어두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들은 피해자였어.”

“아뇨, 가해자였습니다.” (p.332)

주커가 알렉스와 알리나를 잡아 놓고 이야기한다. 왜 알렉스의 아내를 죽이고 그의 아들 율리안을 납치했으며, 알리나를 그렇게 성실하고 끊임없이 괴롭혔는지를. 알렉스와 알리나의 입장에서는 주커가 악의 근원이고 요체다. 그로 인해 모든 일이 시작되었고 그의 죽음으로 인해 모든 절망이 마무리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주커의 입장에서는 꼭 그렇지 않았다. 알렉스의 아내, 니콜라, 타마라, 알리나, 그리고 여러 피해자들, 심지어 이리스에 이르기까지 그녀들로 인해 악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들의 부주의함, 그들의 무책임함, 처리하지 못한 두려움으로 인해 악의 뿌리가 견고해지고 자라고 자라 다른 부수적 피해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단순히 스릴러 장르 소설로 묶을 수 없는 철학적 화두를 던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선은 어디이고, 악은 어디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이런 주커의 독백을 대하는 알렉스의 분노는 일견 당연하다. 거의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 반응이다. 무슨 개소리냐!! 너의 범죄를, 너의 추악한 욕망을 정당화하기 위한 합리화에 불과하다고. 그런데 정말 솔직하게, 생각해 보자. 작은 일상의 갈등에서부터 주커와 같은 연쇄살인마, 국가적 재난·재해에 이르기까지 선과 악을 두부를 반으로 자르듯 구분할 수 있을까? 누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난 그 놀란 표정을 절대 잊지 못할 거야. 내 말은 그 여자 모습은……. 아주 평범해 보였어. 우체국 창구에 앉아 있는 뭐 그런 여자처럼 말이야.” (p.276)

니콜라는 이리스의 얼굴을 보았다. 스승인 주커를 도와 자신을 제물로 바치려는 그녀의 얼굴을 본 것이다. 그런데 그 얼굴이 더 충격적이었다. 너무나 평범하고 평범해서. 주변에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지나치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의 얼굴이어서. 악은 그런 것이다. 우리들 가까이에 숨어 있는 것이다. ‘여기 내가 악이요. 나를 잡아다가 능지처참을 하시오~’라고 하는 악은 없다. 때론 너무 가까이에 있어 설마 악이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을 뿐이다. 악은 일상에 편재(遍在)한다.

“내가 눈알수집가야.”

숄레가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p.393)

알렉스 초르바흐는 가까이에서 그를 눈알수집가로 의심하기도 했고, 가열찬 수사로 눈알수집가인지 눈알사냥꾼인지를 찾아 나선 숄레의 충격적인 고백을 듣는다. 숄레가 바로 그 눈알수집가라는 것을. 그의 계획과 설계 안에서 모든 악이 이루어졌음을. 그래서 주커의 피해자들을 격리해 치료하고 있던 토르박사의 말을 책의 말미에서야 제대로 깨닫게 된다.

“왜냐하면 악은……. 악은 그 어떤 경우에도 살아남기 때문에.”

잔인무도한 프랑크 라만과 주커에게서, 이리스와 숄레에게서 악은 어떤 경우에도 살아남는다. 주커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도 또 다른 주커의 모습으로, 또 다른 숄레의 모습으로 우리들 가까이에 다시 환생한다. 그 기생충과 같은 악이 생존할 수 있는 숙주의 환경이 너무 적절하고 적당하기 때문이다. 하루만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나열해 보면 알 수 있다. 이 세상에서 기생하는, 아니 어쩌면 이 세상을 통제하고 설계하는 악의 힘과 편재성을.

“당신의 눈을 들여다보는 것과 내 영혼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비기기. 알리나, 대체 잃을 게 뭐가 있죠?” (p.55)

앞을 볼 수 없는 알리나에게 있을지도 모르는 특별한 능력, 마사지 하는 사람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는 능력으로 편재한 악을 소탕할 수 있을 거라는 무모한 기대는 버려야 한다. 악은 그대로 있지 않는다.

피체크의 시리즈가 눈알사냥꾼에서 끝날지 아닐지 모르겠다. 사실 이런 장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 책은 몰입해 읽었다. 구성이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긴장감을 탑재한 스릴러 장르가 이렇게도 읽히는 구나 싶었다. 몇 권 읽다 포기한 일본의 추리소설 장르와는 확실히 다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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