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유 충남도보여행 -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걷기여행 48곳
(사)한국여행작가협회 엮음 / 상상출판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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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 동해바다를 인접한 해안도시이다 보니 일출은 수도 없이 봤다. 멀리 수도권과 서해안, 내륙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새해 첫 일출을 보기 위해 교통체증을 감내하고 멀리 동해안까지 온다. 1월 1일 새벽녘, 동해바다 수평선 저 너머의 날씨가 좋다면 찬란하게 떠오르는 붉은 태양을 마주하는 감격을 누릴 수 있지만 내가 이제껏 수십 번 일출을 본 경험을 미루어 보면 그 확률은 30%도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수평선 저 끝에는 구름이 끼어 있는 경우가 많아 구름 사이사이로 붉은 빛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급하게 소원을 빌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0교시 수업을 듣기 위해 등교하는 스쿨버스 차창 밖으로 본 수많은 일출은 인터넷이나 TV를 통해 본 예쁘면서도 기이하게 스멀스멀 올라오는 일출의 태양과는 많이 달랐다. 의도하지 않게 많이 보게 된 성장기의 일출은 감동도, 새로운 경험도, 더 열심히 공부를 하겠다는 다짐도 하지 않은, 그냥 지나가는 풍경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군대에서도 그놈의 일출을 지겹도록 보게 되다니……. 고향과는 멀리 떨어졌지만 동해안의 군소재지 부대에서 시작한 군 복무는 해안을 지키는 것이 임무였다. 밤새도록 순찰을 돌고 해가 뜨기 전 경계 근무를 하던 병사들을 인솔해 소초로 돌아가면서 보던 그 수많은 일출들……. 일출들……. 지겹고 또 지겨웠다.

한겨울 살을 에는 바닷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매복하고 있으면 몽롱해진다. 껴입을 수 있는 최대한 옷을 껴입고 양말은 신고 눈만 내놓은 채 얼굴을 감싸도 어떻게 그렇게 철저하게 온몸을 파고들 수 있는지, 동이 틀 무렵에는 온 몸이 얼어 있다. 근무를 다 마치고 추적추적 60트럭으로 기어 올라갈 때 등 뒤에서 올라오는 일출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그저 빨리 돌아가 따끈한 뽀글이 하나 끓여 먹고 근무 취침하는 것만 생각날 뿐이었다.



태안 해변 길의 해넘이 사진이 내 마음을 끌었다. 이 책 「걸어유 충남 도보 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사진이다. 물론, 고향이 서해의 태안이고 군 생활마저 서해안의 바다에서 한 사람이라면 내가 경험했던 그것만큼 지겹고 의미 없는 일몰일 수 있겠지만 나는 달랐다. 여기서 문득! 그렇게 고생고생해서 동해안까지 와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일출을 보며 감격하며 소원을 빌던 그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껏 단 한 번도 일몰(이후 해넘이로 한다)을 보지 못했다. 가을이 되면 여기 대구에서도 저녁 무렵이 되면 하늘이 주황색으로, 보라색으로, 때로는 분홍색으로 바뀌면서 새로운 감동을 주기도 하지만 서해 바다 끄트머리로 살포시 떨어지는 해넘이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지난 주 휴가를 내 전주와 군산 여행을 다녀왔는데, 해넘이는 보지 못했다. 그렇게 지겹고 의미 없을 만큼 많이 본 일출과 별반 다를 것이 있겠나 평소 생각했는데 책에 실린 사진 한 장에 눈과 마음이 멈춰버렸다. 정확하게 어디에서 어디를 잇는지 모르겠지만 구름다리 위에서 한 폭의 산수화처럼 펼쳐진 작은 돌섬 너머로 보이는 아득한 해넘이……. 생각만 해도 찌릿찌릿하다.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더 감성적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일출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일 것 같다. 뭔가 아득하고 슬프고 처연하고 아쉬운 감정? 물론, 앞서도 말했지만 태안 분들에게는 ‘오늘도 또 하루가 가는구먼~’하는 경험이겠지만 말이다.

 

이 책은 사진작가들의 충남 탐사를 그대로 옮겨 놓은 책이다. 여러 분의 작가들이 직접 충남의 해안과 산과 들과 유적지와 도서를 걸으며 기록하고 느끼고 보고 경험한 것을 실었다. 각자가 걷게 된 경로에서부터 주요 관광지, 도보 코스, 필요한 준비물, 코스에 대한 세부 정보(난이도를 포함한), 먹거리와 숙소, 그 지역과 관련된 재미난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다. 한 가지 딱 아쉬웠던 점은 너무 자세하고 친절하다 보니 글의 내용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사진작가들의 여행이다 보니 사진도 많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글의 분량 자체가 많았다. 하나하나 자세히 읽다보면 예술적으로 찍힌 사진을 보고 느낀 감성이 무너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사진 몇 장 실어 놓고 감상과 느낌을 강요하는 허접한 책들보다는 훨씬 낫다.



가장 좋아하는 TV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했던 에피소드 중 ‘의좋은 형제’가 있었는데, 그 이야기가 실화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충남 예산군에서 실제로 사셨던 조상님들 중 그렇게 의가 좋은 형제가 있었다는 것이 신기했다. 내가 살고 있는 경상도처럼 ‘행님~ 아시지예~!’ 뭐 이런 앞뒤 뚝뚝 잘라먹고 시작하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을 것 같다. ‘아이구~ 우리 형님을 우해서 내가 좀 더 하지 뭐~얼~’, ‘아이구~ 동상을 우해서 내가 이러는 게 당연한 데 뭘 그려~’ 뭐 이런 느낌?^^

 

충남 도보 여행을 하면 사람을 만날 것 같다. 지난 주 전북 전주와 군산 여행을 통해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사람이었다. 완전히 같은 한국어를 사용하면서 거의 다른 사투리를 구사하는 대구사람과 전주사람이지만 말이 통하고 마음이 통하는 경험을 하게 되어 신기했다. 또한 너무 친절하게 호의로 가득 찬 전주 분들 몇 분은 앞으로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될 것 같다. 이것이 여행이 주는 가장 큰 묘미이자 즐거움임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멀리 외국에 나가서 새로운 사람, 새로운 친구를 만나는 것도 더할 나위 없이 큰 즐거움이지만 내가 살고 있는 곳,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벗어나 여행하다보면 뜻하지 않게 만나는 좋은 사람들이 있다. 적어도 내 여행에서는 매번 그랬다. 철저하게 계획하지 않고 여행을 하는 나와 같은 유형의 사람에게는 책에서 소개하는 도보 여행이 체질일 것 같다. 전주와 군산 여행을 하면서도 택시를 타거나 내차를 이용해 이동하지 않았다. 걸어 다니고 버스타고 다니면서 여행하면 블로그나 여행 잡지에서 소개하지 않는 장면을 수도 없이 만날 수 있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과 여유다. 이 부분에서 눈물이 난다ㅠㅠ. 도보여행을 하려면 어느 정도의 여유와 시간이 필요한 데 쉽지 않다. 생활인, 사회인으로 살다 보면 말이다. 그래도 충남은 내게 매력적인 곳이다. 유일하게 한 번도 여행해 보지 못한 곳이 충남이기 때문이다. 곧 아이가 생기게 되어 언제 여행이라는 것을 할 수 있을까 짐작이 가지 않지만, 꼭 해보고 싶은 여행이다. ‘의 좋은 형제’들이 사셨던 예산도 가보고, 사진만 봐도 뭉클한 태안의 해넘이도 꼭 눈으로 담아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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