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연애사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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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뜨거웠던 지난여름, 뻥 뚫린 고속도로가 산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차 안 에어컨 온도를 24,23,22도로 차례로 낮추어도 도무지 차 안은 시원해지지 않았다. 고속도로 양 옆으로 한 여름 산이 보였다. 녹색이라고는 차마 할 수 없는 진녹색 숲이 우거져 있었다. 나는 그대로 숨이 탁 막혔다. 먹잇감을 유혹하려 촉수를 아름답게 뻗친 어느 심해의 괴생명체 마냥 있는 대로 가지를 뻗쳐 마치 풍덩 뛰어들면 초록빛 바다 같았다. 하지만 관능적인 촉수에 이끌려 들어갔다가는 괴상망측한 입구멍으로 빨려 들어간다. 초록빛 바다 같은 여름 숲속으로 공중으로 뛰어 들어갔다가는 온몸의 뼈가 바스러지는 경험을 해야 할 것이다. 한참을 후텁지근한 차창 밖 숲을 쳐다보고 있으니 취한 듯 몽롱해졌다. 녹색은 사람의 눈을 편안하게 해준다고 하는 말은 모두 거짓말이다. 한 여름 숲을 한참 쳐다보고 있으면 머리는 핑핑 돌고 쓸데없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오래전 나는 지리산 속으로 들어가는 완행버스를 타고 있었다. 여차하면 미끄러지는 탓에 버스는 심하게 흔들렸고 거듭 시동을 꺼뜨리기도 했다. 사람들의 상차도 멋대로 춤을 췄다. 길이 좁고 험한 탓이기도 했지만 곳곳에 쌓여 있는 눈 때문에 더 그랬다. 비탈을 스쳐왔던 봉우리들이 저만치서 아득했고 다가오는 것들은 더 넓고 우뚝했다. 산과 산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골짜기도 깊었다. 골짜기마다 나무도 빼곡했는데, 한 그루도 빠짐없이 눈 더미를 화관처럼 이고 있었고 길은 진창이었다.” (p.121) <내사랑 개시>

 

한창훈의 글이 좋다. 이 책에 담긴 단편 작품 중 <내사랑 개시>의 도입부다. 나는 그의 글과 함께 오래전 탄 것 같기도 한 완행버스 속에서 매캐하고 비릿한 냄새에 취한다. 분명 한 여름 고속도로 변에 보이던 여름 숲을 회상했는데 지리산 속 어느 아찔한 겨울 계곡을 지나고 있다. 심하게 흔들리는 시골 완행버스의 서스펜션은 지면의 충격을 고스란히 내 위장에 전해 준다. 생전 한 적도 없는 멀미를 겨울 산 완행버스 안에서 하고 앉아 있다. 골짜기에 빼곡한 나무만큼 잡생각이 많아진다. 화관처럼 눈을 이고 있는 나무들이 애처롭다. 여전히 글은 진창이다.

그의 이전 작품 「홍합」을 읽고 한창훈의 팬이 되었다. 무심한 듯 펼쳐내는 비릿하고 반가운 밑바닥 사람들의 삶을 특유의 전라도 사투리로 버무려 내었다. 이 책 「그 남자의 연애사」에 등장하는 인물들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가 나오지 않는 것이 아쉽기는 했지만 책에 실린 단편들 모두 내 주변 사람들 이야기 혹은 내 이야기 같았다.

<내사랑 개시>의 도입부는 별 생각 없이 마주하게 되는 잡념을 무던하게 풀어내는 그의 글 특유의 방식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부분이다. 종종 그럴 때가 있다. 한참 일을 하다가 갑자기, 잠자리에 누워 잠을 청하다가 갑자기, 신나게 운전을 하다가 갑자기. 인생에 대해서, 가족에 대해서, 나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갑자기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늘어지며 뒤틀리고 얽히며 태풍경보가 내린 바다 한 가운데 떠 있는 배 안에 겪는 멀미처럼 지독한 고통을 겪을 때. 그럴 때가 있다. 나는 난리가 났는데 다른 건 아무렇지 않다.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의 일에 몰두하고 있고, 아내는 잘 자고 있고, 다른 차들은 쌩쌩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나만 슬로비디오다.

 

 

“생사를 다투는 응급실 시계와 바둑 시합장 시계가 똑같이 돌아가듯이 그의 시계도 그랬다. 하루하루는 죽겠는데 한 달은 금방 지나갔다. 돌아보면 나이가 한 살씩 들어 있기도 했다. 그는 전국의 일터를 떠돌았다.” (p.22) <그 남자의 연애사>

 

작가는 인생을 어렵게 그려내지 않는다. 특별한 사건을 만들지도 않는다. 물론 그의 작품을 다 읽지는 못해서 단정하지는 못하지만 내가 읽은 작품들은 모두 그랬다. 애써 극적으로 묘사하거나 전개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글이 더 좋다. 생사를 다투는 응급실 시계도 바둑 시합장 시계도, 내가 가지고 있는 핸드폰 액정에 뜨는 시계도 똑같은 각도로 시침과 분침이 벌어져 있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1분만 더 빨리 옮겨 왔으면 살릴 수 있는 생명이었음을 깨닫는 응급실 안의 통곡 소리도, 아무리 복기를 해도 1수조차 물릴 수 없는 바둑 시합장의 탄성 소리도 똑같은 절대적 시간 앞에서는 똑같다. 그래서 ‘그 남자의 연애사’를 들어보는 것이 때론 ‘나의 연애사’를 돌아보는 것만큼 아슬아슬하고 짜릿하다.

 

 

“하나가 가면 또 하나가 오고. 고통스럽지. 죽을 맛이었어. 그런데 정말 못 견디겠는 것은 이 햇살인 거야. 아, 그 여름 햇살. 뜨거운 한낮의 태양이 저 높은 곳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거야. 내 눈만 찔러대는 거야.” (p.169) <판녀>

 

물론, 나의 고통이 가장 크다. 내 군생활이 가장 힘든 것처럼 내 고통을 다 표현할 수도 그럴 필요도 없다. 3명 중 1명이 암에 걸린다는 세상이지만 암에 걸리지 않는 나머지 2명의 가족은 암에 걸린 가족의 고통을 전혀 알지 못한다. ‘판녀’는 꽃다운 중학생 나이에 동네오빠 3명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그 중에는 사촌오빠도 끼어 있다. ‘판녀’가 그림을 그리는 창녀가 될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 문제는 차치하고, 고통의 한 가운데에 있는 사람은 오롯이 그것이 세상의 전부가 된다. 그 한 가운데에서 자신이 믿는 신을 절대적으로 의지하거나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자신의 신념을 지켜내는 것을 나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세상이라는 고약함과 나. 이렇게 단 둘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처절하고 차가운 세계다. 한참동안 성폭행을 당하는데도 여전히 내 눈만 찔러대는 뜨거운 한낮의 태양은 어쩌면 ‘판녀’가 살아갈 인생의 격랑을 미리 파노라마로 보여주는 세상의 비열한 동정심이었는지도 모른다.

 

 

“아까 사실, 당신을 한참 쳐다보고 있었어. 내가 보고 있다는 거 몰랐지? 꼭 사막이나 바다를 마주하고 선 사람 같더라. 그런 경우 있잖아? 길이 너무 멀어 출발을 못 하는.” (p.163) <판녀>

 

고통에 마주한 사람만이 고통에 마주한 사람을 알아낼 수 있다. 인사치레로 툭툭 던지는 동정은 구역질을 동반한다. ‘판녀’는 세상 끝에 홀로 선 사내를 발견한다. 유일하게 발견할 수 있었다. 길이 너무 멀고 참담해 차마 발을 떼지 못하는 서성임. 작가의 이전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는 ‘섬’이다. 세상의 끝, 인식의 끝을 ‘섬’으로 상정한 작가의 끈질김이 소설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아름답고 고즈넉하고 손때가 묻지 않은 아담하고 따뜻한 ‘섬’의 이미지가 아니라 아득하고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참담함의 이미지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아득함과 참담함에 절망할 필요는 없다. 모두가 ‘섬’에 닿아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작가는 보통의 이야기, 나와 너의 이야기를 ‘섬’의 이미지에 투영해 낼 뿐이다.

 

 

“결혼을 했어도 외로움은 없어지지 않았다. 끊임없이 누군가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애생이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어서 나도 어떻게 할 수가 없어.” (p.108) <인생은 이렇게>

 

리사무소에 있는 주민현황표에 나온 여자주민들 중 스무 살 이하와 늙은이를 제외한 모든 여자들을 좋아한 남편과 함께 사는 여자 ‘애생’의 인생은 그야말로 외딴 ‘섬’이다. 만약 가능한 일이었다면 마을 여자 전부에게 장가를 들려고 하는 남편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이 더 가관이다.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어서 나도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없다.

 

 

솔직하게 말해봐. 그놈이랑 뭔 짓을 한 거야?” (p.206) <그 여자의 연애사>

 

<그 남자의 연애사>가 있었다면 당연히 <그 여자의 연애사>도 있어야 한다. ‘애생’의 남편이 마누라는 복창 터지는 줄 모르고 세상 편한 이야기를 지껄이는 것처럼 그렇게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은 복잡하고 다단하다. 이 사람이 있으면 저 사람도 있는 법이다.

어김없이 섬을 찾아와 아니, 자신을 찾아오는 박선장과 몸을 섞은 그 여자는 그 여자의 남편이 부리는 주사 섞인 추궁이 기가 막히다. 자신과 결혼하기 전에 만났던 남자들의 시시콜콜한 과거사까지 감자 캐듯 캐내고 볶아대는 그 여자의 남편이 역겹다. 그저 빌어 붙어사는 주제에 남편이라고 욕지거리를 쏟아 낸다. 하지만 그 여자의 우악스러움으로 자식 놈들 키워 내고 이날 이때껏 살아냈다. 능력 없는 남편이라는 작자의 욕지거리는 먼지일 뿐이다. 그마저 술기운으로 악을 쓰는 모습이 애처롭기는커녕 더 화가 난다.

그 여자는 일격에 상황은 역전시킨다.

 

솔직히 말해. 이 시간까지 그 관광객 여자들이랑 뭐했어?” (p.221) <그 여자의 연애사>

 

 

그렇다. 살아가는 꼴이, 모습이.

만화경으로 세상을 보는 것처럼 복잡하다. 누구 하나 ‘틀렸다.’고 할 수 없다. 모두가 모두에게 ‘다를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아니, 살아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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