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털 같은 나날
류전윈 지음, 김영철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이제는 미국과 당당히 어깨를 나란히 하는 중국은 동양문화의 중심이다. 주변국이 인정하든 하지 않든 바꿀 수 없는 사실이다. 오랜 기간 고유한 문화와 문명을 지켜왔다. 중세에서 미처 벗어나지 못한 채 아찔하고 고통스러운 근대를 겪기도 했다. 학창시절에 배운 중국의 역사는 기껏해야 고대사에서부터 근대까지에 국한된다. 정치적 이유도 있었겠지만 중국에 대해 더 알려고 하지 않은 이유가 더 클 것이다. 당장 내 나라 현대사에 대해서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국가에 살고 있는데 언제 중국의 현대사까지 참견할 수 있나.

그래서 중국의 현대사를 배경으로 하는 중국 작가들의 책을 읽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처음 읽은 책은 다이 호우잉의 「사람아 아, 사람아!」라는 책이었다. 신영복 선생님의 책을 읽다가 선생님이 번역한 책 이름을 발견하고 읽게 되었다. 한국의 현대사만큼 격랑을 직접 겪은 중국의 지식인, 작가들의 투쟁의 삶과 그들의 성공과 실패를 읽는 것이 신선했다. 그전까지 전혀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 다음에는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를 읽었다. 다이 호우잉과는 다르게 현실을 풍자하는 위화의 글이 더 마음에 와 닿고 재미도 있었다. 가족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피를 팔아야 하는 허삼관의 삶이 지켜보기 민망할 정도로 곤궁하고 비참했지만 피식 피식 튀어 나오는 실소를 참을 수 없었다.

중국은 구소련이 허망하게 무너지고 나서도 정치적으로 사회주의 이념을 고수했다. 지금도 그렇다. 구소련의 실패를 거울삼아 경제적으로 개혁·개방 정책을 조심스럽지만 과감하게 펼쳤다. 지금의 중국에 내포된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엄청난 빈부격차, 부정부패, 정치적 민주주의의 결여, 언론통제, 소수민족에 대한 탄압 등 수많은 문제가 있지만 실제로 중국의 근·현대사를 지나며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고 헌신한 청춘들의 삶에 대해서는 모르는 바가 많았다. 지금도 몇몇 작가들은 그런 소재로 책을 출간했다는 이유로 추방당해 있기도 하다.

 

이 책 <닭털 같은 나날>의 작가 류전윈도 위화와 함께 중국의 신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다. 다른 국가의 국민들은 물론 중국 국민들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조직이 가지는 생태적 특성을 특유의 블랙 유머와 자조 어린 필치로 그려 낸다. 정치적인 이념이나 국제관계 등이 배경으로 등장하거나 형이상학적인 거대 담론이나 이데올로기가 소설의 주된 전개 요소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류전윈은 현실의 자질구레한 일상을 통해 개인과 조직, 역사의 문제를 풍자한다. 풍자라고는 하지만 실제 소설 속 등장인물처럼 살고 있는 사람이 꼭 있을 것만 같다.

이 책은 총 3개의 작품이 실려 있다. <닭털 같은 나날>, <기관>, <1942년을 돌아보다>

먼저 <닭털 같은 나날>은 중국의 현대를 사는 소시민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마치 한 가족의 모습을 장시간 따라다니며 그와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상을 그대로 카메라에 담은 것 같다. 어떤 개입이나 꾸밈이 없다.

 

 

“모두 가만있는데 당신만 정의를 부르짖겠다면, 내일이라도 다시 시내버스를 타면 돼. 아무도 당신한테 통근버스를 타라고 강요하지 않아. 당신도 직장을 옮기려고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고 아첨했잖아. 뇌물을 주려다 복도에서 쫓겨나기도 했고.” (p.54)

“원래는 저도 별 도리가 없었는데, 직장 동료의 아버지가 바로 그 회사의 국장이라, 그를 통해 겨우 자리를 얻은 겁니다. 요즘 우리 사회가 좀 그렇지 않습니까?” (p.62)

 

자본주의 경제가 깊숙이 침투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중국의 전체 경제는 정부에서 주관하고 있다. 부패와 뇌물의 온상이기도 한 국영기업이 여전히 득세하고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도 국영기업이나 국가의 하위기관에 근무하고 있는 말단 사원이다. 국가 기관이라고 해봤자 특별한 것은 없다. 워낙 그런 국가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특별히 차별되지도 않는다. 다만 그의 고향 시골에서는 그래도 국가 기관에 취업해서 베이징에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 잔치가 벌어질 정도이지 아침 일찍 일어나 배급을 받으러 가야하고 직장에서는 그저 말단 사원일 뿐이다. 중국 사회에 만연한 뇌물 문화에 대해서도 작품에서는 당연하게 등장한다. 국가에서 운영하고 관리하는 조직이기는 하지만 전혀 법률이나 규정에 의해 인사절차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복도에서 뇌물을 주고받을 정도라면 사무실에서는 어떻고 보는 사람이 없는 은밀한 공간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아무리 말단 직책이라도 국가 기관이나 국영 기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있는 줄 없는 줄 모두 동원해서 아는 사람을 찾아내고 그 사람을 통해 뇌물을 전달해야 한다. 마치 기부금을 내고 입학을 하는 것처럼 그렇게 꽂아진다.

 

책에 실린 또 다른 단편 작품 <기관>의 주인공 린도 국가기관의 말단 직원이다. 어차피 오르지 못할 나무 쳐다보지도 말라고 했다는 한국의 속담을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큰 욕심 없이 자리만 보전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래서 한국의 공무원들이 그러는 것처럼 출근해서 퇴근하기 까지 별다른 일을 하지 않는다. 시키지 않는 일은 당연히 하지 않고 시키는 일이라도 꾸역꾸역 대충대충 시늉만 낼 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상사들인 쑨,러,장,차오,펑의 모습을 보며 린도 부패와 뇌물과 비리의 축제에 발을 들여 놓는다. 무슨 수를 쓰든 한 자리라도 기어오르지 않는다면 그의 생활은 결코 단 한 발자국도 나아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온갖 방법을 동원하고 꾀를 부려 승진하고 더 많은 돈을 받고 더 큰 집으로 이사하고 더 큰 차를 전용차로 몰고 다니는 그의 상사들의 모습이 비로소 눈에 들어 왔다. 그래서 린은 시키지 않은 일도 한다. 시키는 일은 기가 막히게 해 낸다. 그래도 여전히 그는 입당조차 할 수 없다. 단지 일을 잘 하는 것만으로는 승진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내가 열심히 하면 승진도 하고 입당도 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며 혼자 설레발을 치면 또 자연히 그것이 어떤 상사에게는 밉보일 구실이 될 수 있다. 재수가 없으려니 하필 린의 입당 문제를 손아귀에 쥐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 상사였다. 이런 저런 수를 쓰고 온갖 줄을 대어 그의 상사들이 그렇게 했던 것처럼 그렇게 ‘우리 사회가 좀 그런’ 그것을 시도한다.

 

직장에서 전투를 치르고 집에 돌아와서도 산발적인 국지전은 도무지 끝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수도 검침을 하는 영감에게 밉보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자칫 영감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가 수돗물이 끊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p.13)

 

수도를 검침하는 영감의 눈치도 살펴야 한다. 애지중지 하는 침대에 턱하니 걸터앉아 뻐끔뻐끔 담배를 피우고 가래를 뇌까려도 그저 마음속으로 분을 낼 뿐이다.

 

 

“배추더미가 산처럼 쌓여 있는 모습을 보며 겨울 내내 먹어치울 생각을 하니 벌써 비위가 상했다. 하지만 아내의 기분이 좋으니 그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집 안의 분위기는 오히려 전보다 더 부드러워졌다.” (p.66)

“린은 집에 돌아와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수도가 또 막혔고, 같이 사는 상대 집 여자가 방에서 성질을 부리고 있었으며, 그의 방에서는 딸아이가 앙앙 울고 있었다. 게다가 어머니는 감기에 걸렸고, 아내는 침대 옆에 앉아 눈물을 뚝뚝 떨구고 있었다. 어머니, 언제쯤 이런 생활이 끝날까요?” (p.136)

 

<닭털 같은 나날>의 남편도 <기관>의 린도 지긋지긋한 직장 생활을 내팽개치고 싶다. 시원하게 욕이나 퍼붓고 싶다. 받아 먹을 때는 모두 다 들어줄 것처럼 하다가 받아먹고 나서는 나 몰라라 하는 저들의 탐욕을 견딜 수 없다.

하지만, 하지만 아내와 가족 앞에서 다시 한 번 마음을 추스른다. ‘올해는 절대 배급받지 말아야지’다짐하면서 동시에 배추 배급 줄에 서 있는 자신을 경멸한다. 두 손 가득 배추 단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며 아내에게 강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리라 다짐하지만 그러지 못한다. 집안 가득 쌓인 배추더미를 보며 벌서부터 비위가 상하지만 아내의 기분이 좋으니 만사 오케이다. 애처롭고 귀엽다. 메스껍게 쌓인 배추더미를 직장 상사들이라 생각하며 발길질을 하고 싶지만 그런 배추더미를 보며 만족해하는 아내의 기분이 상할까 근처에 가지도 못한다. 어쨌든 아내의 기분이 좋으면 나도 좋은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하고 온몸이 부서져라 아부하고 갖다 바쳐도 승진은커녕 입당도 되지 않는 린은 그래도 기관을 그만둘 수 없다. 내 집하나 없어서 다른 부부와 함께 집을 쓰며 매일 여자들 싸움에 지쳐 있지만 그래도 기관에 붙어 있어야 입당을 타진해 보든 승진을 노려보든 할 수 있다. 오늘도 아내는 옆 방 여자와 다퉜고 그 화를 받아줘야 한다. 아픈 어머니가 마음에 걸리고 딸아이는 앙앙 울어 댄다. 그래서 이 생활을 끝낼 수 없다.

 

닭털 같이 흐드러지게 휘날리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나날이다. 그들에게 현실은 수용 범위를 넘어선 닭장에 가득 들어찬 닭들의 털이다. 푸드득 날갯짓에 후드득 떨어지는 털이지만 가볍게 떨쳐 내거나 쉽게 밟을 수 없다. 몸으로 기록한 하루하루다.

누군가에게는 지금, 당장의 현실일 수 있다.

누구도 닭털처럼 가볍다 할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