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선 그대가 꽃이다 - 시들한 내 삶에 선사하는 찬란하고 짜릿한 축제
손미나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대학 선배 형이 생각난다. 필리핀 어학연수 6개월을 다녀오고서는 마치 샌프란시스코에 2년 정도 살다 온 사람처럼 대화 마다 영어를 갖다 붙이고 대단한 자격증이라도 취득한 것처럼 허세를 부리던 형이었다. 고작 6개월, 그것도 필리핀에서, 더군다나 한국 사람들로 우글거리는 어학원에서 영어를 배우고 온 것이 전부였는데 말이다. 당시에는 뭘 저렇게 오버를 하지? 생각했다. 그런데 여행에 대한 생각이 180도 바뀌게 된 몽골여행 이후 내가 주위 사람들에게 대학 때 그 선배처럼 허세를 부리고 몽골에서 3년은 살다 온 사람처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3주 정도 여행한 것에 불과했는데 말이다. 경험은 무척 소중하다. 아무리 실감나는 간접경험이라 하더라도 짧은 직접경험에 비할 수 없다.

 

이 책 「파리에선 그대가 꽃이다」는 파리에서 3년을 산(여행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다. 파리에서 파리지앵으로 살면서 소설을 완성한 사람의 이야기다.

 

 

 

“눈부신 햇살이 1년 내내 쏟아질 것 같지만 그것 역시 사실이 아니다. 변덕 심한 한여름 하늘은 갑자기 먹구름을 몰고 와 소나기를 쏟기도 하고, 겨울은 한밤중처럼 어둡고 습한 날이 지긋지긋하게 이어져 악명이 높다. 음산한 날씨의 대명사인 런던보다 일조량이 적어서 우울증 환자가 더 많단다.” (p.32)

 

 

나와 아내가 계획하고 있는 여행 순위 중 상위에 랭크되어 있는 곳이 파리다. 많은 이상향 중 한 곳이다. 여러 번 리뷰에서 밝힌 바 있듯이 나는 원래 여행에 대해서 굉장히 부정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몇 번의 해외여행으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고,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하지 못했을 파리여행을 꿈꾸고 있다. 런던, 로마, 바르셀로나 보다 ‘파리’ 하면 괜스레 더 따뜻하고 멋있고 분위기 있을 것 같다. 프랑스, 파리... 흔히 생각하거나 기대하는 이미지가 있게 마련이다. 런던! 하면 우울한 날씨에 맛없는 요리가 바로 생각나듯이.

그런데 파리에서 3년을 산 사람은 파리의 날씨가 런던보다 더 고약하고 우울하다고 한다. 헐~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파리다. 파리는 따뜻한 햇살과 노천카페, 센느강, 푸른 하늘... 이런 게 아닌가 보다. 적어도 한 도시에서 3년을 산 사람의 말이니 웬만한 여행서적보다는 더 정확한 정보라 본다.

직접경험이 정말 중요하다. 말로만 듣거나 책만 읽어서는 알 수 없다. 직접 그 곳에서 그곳의 냄새를 맡고 그곳의 이미지를 내 눈에 담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지금 나는 휴가 차 서울에 올라와 있다. 평소 궁금했었던 이태원의 터키레스토랑에 가서 양고기 요리를 먹었다. 양고기라면 몽골 사막에서 먹었던 ‘허르헉’이 유일했는데, 터키식 양고기 요리는 화덕에 고기를 익혀 낸 후 그릴에 구운 것이었다. 인터넷에서 본 사진과 먹어 본 이들의 반응이 여러 가지이었는데, 역시 직접 먹어보는 것이 제일이었다. 사진으로 보고 글로 본 맛이 전혀 아니었다.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처음 맛 본 맛있는 맛’이었다. 생각보다 양고기 특유의 잡내도 덜했고 특유의 향신료 맛도 덜했다. 아주 맛있게 먹었다.

직접 경험하는 것이 가장 좋다.

 

 

 

“세상에, 말도 안 돼! 한국이 성형을 많이 하는 나라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정말이야, 그게? 우선 보톡스의 경우 쉰 살이 안 된 사람이 그런 걸 맞기 시작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난센스야. 게다가 멀쩡한 얼굴을 째고 뭘 넣거나 깎아낸다고? 그렇게 만들어진 얼굴은 전혀 자기만의 느낌이 없어지는데 왜들 그런 짓을 하는 거지?” (p.101)

 

이 부분을 읽으며 두 번째로 갔던 몽골 여행이 생각났다. 몽골 사람들은 한국과 한국 사람을 아주 좋아했다. 그들 말로 한국은 ‘솔롱고’. 무지개라는 뜻이고, 한국인은 ‘솔롱고스’. 무지개에서 온 사람이라는 뜻이다. 한국과 한국 사람에 대한 이미지가 아주 좋았다. 처음 갔던 몽골에서는 어딜 가나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다들 좋아 했다. 그런데 3년 후 몽골에서의 한국이미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우리를 초대한 몽골 형님은 요즘 한국 관광객들에게 폭행을 가하는 일이 많아졌으니 해가 진 이후 외출은 삼가라고 말할 정도였다. 이유를 알고 보니 전적으로 한국 사람들 책임이었다.

먼저 개발을 명목으로 울란바타르의 부동산을 대규모로 사들인 후 몽골인 들에게 비싸게 되파는 부동산 투기를 대대적으로 펼쳐 시내 땅값과 집값을 엄청나게 상승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몽골 여행이 대중화 되면서 한국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유흥업소와 불법 윤락업소가 엄청나게 생겨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사건 사고가 많아지고 점점 한국과 한국 사람에 대한 이미지가 안 좋아졌다고 했다. 할 말이 없었다. 너무 부끄러웠다.

파리에 살고 있는 사람이 프랑스 인이 ‘한국이 성형을 많이 하는 나라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라고 말했다는 것 자체가 낯부끄럽다. 얼마나 유명하면 그 사람들도 다 알고 있을까 싶다.

 

 

 

한국과 프랑스 엄마들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이런 거야. 영어 성적은 별로지만 수학에 뛰어난 아이가 있을 때 두 나라 엄마들의 교육은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나가지. 한국 엄마는 뒤떨어지는 과목인 영어를 집중적으로 가르치고, 프랑스 엄마는 아이에게 재능이 엿보이는 수학을 열심히 가르치는 거야. 어쩌면 당장 눈에 보이는 전체 석차는 한국 학생이 높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자기의 전문 분야에서 빛나는 성과를 내는 사람은 프랑스 학생이 될 가능성이 높지 않겠어?” (p.119)

 

 

한국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 프랑스인일까 싶다. 작가의 친구가 이렇게 정확하게 한국의 교육실정을 파악하고 있다니 놀랍다. 하긴 작년 대선 전 프랑스 언론에서 대선 정국을 그 어떤 한국 언론보다 정확하게 보도한 일도 있었다. 영어는 물론 수학과 국어도 잘해야 하는 한국의 아이들은 참 불쌍하다. ‘내 아이 만큼은’ 이라며 기를 쓰고 시키는 엄마들도 불쌍하다. 예술 고등학교에서 플루트를 전공하는 아이가 있다. 시험 기간이 되면 스트레스로 아이가 미치겠다고 했었다. 전공 실기 연습도 해야 하고 인문계 아이들만큼은 아니지만 영어, 수학 공부도 해야 된단다. 예고에서 악기를 전공하는 아이에게 얼마만큼의 학력 수준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때론 나와는 전혀 다른 타인의 눈을 통해 제대로 된 나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파리에 살고 있는 프랑스인의 눈에서 한국의 교육현실을 가장 객관적으로 볼 수도 있고, 울란바타르에 살고 있는 몽골인의 눈에서 한국인의 추악한 탐욕을 가장 적나라하게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소설 속 인물이 드디어 서서히 그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p.223)

 

 

나는 평소 이 책을 쓴 손미나씨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KBS 아나운서라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다. 아나운서라는 것은 알았지만 어느 방송국 출신인지는 몰랐다. 그녀의 전작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여행 작가 인 줄 알았다. 원래 외국어나 여행에 대해 어릴 때부터 관심이 많았다고 책에 소개되어 있다. 스페인에서도 오래 있었고 그 여행기가 책으로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까지 되었다고 하니 살짝 부러웠다. 이후 프랑스에서 살았고 그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이 출간되기 전 그녀의 첫 장편소설이 출간되었다고 하니 더 시샘이 났다. 찌질 하게 하는 시샘. ‘좋겠다. 이 사람은. 여행하면서 책 내고. 어? 소설도?’ 손미나씨는 프랑스에서 소설을 썼다. 파리에 있으면서 황석영, 신경숙, 김영하 작가들과도 직접 만나 소설과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참 부럽고 질투가 났다. 내가 그때 파리에서 그 작가들을 만났다고 하더라도 내가 개인적으로 그들에게 글쓰기에 대한, 소설에 대한 충고를 들을 수는 없었을 테니 말이다. 손미나씨는 베르나르 베르베르도 직접 만났다. ‘나도 1년 정도는 언어 공부하고 1년 정도는 글 쓸 수 있는데’ 싶었다. ‘어느 정신 나간 출판사에서 제의해 주면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날아갈 수 있는데’ 싶었다. 꿈같은 얘기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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