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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선 1
필립 마이어 지음, 임재서 옮김 / 올(사피엔스21) / 2013년 8월
평점 :
품절
하워드 진의「오만한 제국」을 읽지 않았다면,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을 보지 않았다면, 샘 멘데스의 『아메리칸 뷰티』를 보지 않았다면 나는 미국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책과 영화를 통해 미국의 진면목을 알 수 있었다. 막연히 미국이라 하면 좋은 나라, 잘 사는 나라, 우리나라를 도와 준 착한 나라로 인식해 왔다.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에 그렇게 인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알아 가면 알아갈수록 미국이라는 나라는 착한 나라만은 아니었다. 깡패 같고, 무자비하고, 부도덕하고, 비상식적이고, 위험천만한 나라인 것만 같았다. 어린 내게 그 누구라도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이쪽과 저쪽의 평가에 대해 가르쳤다면 허구한 날 영어공부 하느라 밤을 새고 이해도 되지 않는 문법을 붙들고 씨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뭐, 요즘도 자식 영어 공부 시키느라 별의별 방법을 다 쓰는 한국의 엄마들을 생각하면 오늘 내일 해서 사라질 문제는 아닐 것 같다.
작년에 읽은 업튼 싱클레어의「정글」은 현재 미국을 만든 힘의 추악한 단면을 고스란히 그려내고 있다. 모두가 동경해 마지않는(특히 한국인들이) 미국이라는 나라의 속살이 정육점에 배가 갈린 채 걸려 있는 한 마리 돼지의 적나라함처럼 펼쳐진다.
그렇다고 내가 반미주의자거나 미국을 증오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나는 류현진과 추신수가 미국프로야구리그(MLB)에 진출하기 훨씬 전부터 MLB의 팬이었다. 플레이스테이션2에서 가동되는 <MLB10 THE SHOW>라는 게임을 가장 좋아했다. 30개 팀의 선수들을 모조리 외울 정도다. NBA도 좋아 한다. 영어학원에서 일한 적도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될 때는 마치 내 나라에서 내가 원하는 대통령이 된 것 처럼 기뻐했었다.
하지만 무작정 미국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여전히 미국으로 인해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는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왜 자국 군에서는 폐물 취급을 받는 전투기를 굳이 우방국인 한국군에 비싸게 팔려고 하는 지나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FTA로 그만큼 퍼줬으면 됐지 얼마나 더 긁어가려 그러는지도 잘 모르겠다. 적대적 인수합병으로 돈만 챙기고 튀어버린 월가의 금융기업은 또 얼마나 많은지 일일이 셀 수 없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미국을 싫어한다고 이야기 할 수 없다. 오래전부터 DNA에 각인되어 흐르고 있는 숭미주의와 사대주의 사상이 내게도 동일하게 흐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흐흐...
“내가 터에퍼러였을 때, 아마 여섯 살쯤 됐을 땐데, 텍사스인 들이 우리 무리를 공격했어. 다음 날 동생과 나는 야영지로 돌아갔는데, 1백 명의 죽은 여자와 죽은 노인과 죽은 아이들 사이에서 엄마를 발견했어.” (p.422)
매컬로 가(家)의 가계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엘리’가 인디언에게 붙잡힌 후 그들의 일원으로 인정받아 함께 살게 되는데, 그를 좋아하는 인디언 여자와 잠자리에서 나눈 대화이다. 그 인디언 아가씨는 ‘초원의 꽃’으로 불리는 아리따운 여성인데, 내용 상 충격적인 가족사를 듣게 된다. 백인놈들에 의해 가족이 몰살당하고 자신과 어린 동생만이 살아남은 이야기다. 그런데 엘리는 전혀 동요하거나 미안해하거나 아파하지 않는다. 자신도 꼭 그렇게 인디언놈들에게 당했기 때문이다. 평화롭게 지주로 살던 엘리 가족에게 어느 날 밤 갑자기 인디언들이 침입했다. 무자비하게 가족을 죽이고 엘리와 형만이 사로잡혔다. 애완동물이나 장난감처럼 자신들을 취급하며 마구잡이로 괴롭히고 못살게 구는 인디언들 틈에서 탈출을 감행해 보기도 하고 반란을 시도해 보기도 하지만 엘리는 살아남아야겠다는 의지로 버티다. 형은 의지도 약하고 고난과 마주할 용기도 부족해 이겨내지 못하고 사라졌다. 엘리는 푸른 눈과 흰 피부를 가진 분명한 백인이지만 인디언이 되기 위해서 그들의 말을 익히고 그들처럼 행동하고 그들처럼 생각했다.
미국이라는 나라와 미국이라는 나라의 역사를 ‘공격과 지배’라는 큰 틀로 보는 내게 이 장면은 꽤 흥미로웠다.
‘골드러시’로 서부개척시대가 열리고 동부 항구에 몰려 있던 백인들의 러시가 이어졌다. 서부로, 서부로 가기만 하면 원하는 옥토를 얻을 수 있고 삽만 갖다 대면 펑펑 쏟아지는 황금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동부에서 서부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멀기도 멀었다. 가다가다 지쳐 정착한 백인들도 많았고 기어코 서부에 닿은 백인들은 더 많았다. 백인들의 입장에서는 하루하루가 개척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새로운 땅을 발견하고 개간하고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원래 그곳에서 수천, 수만 년을 살아 온 원주민들에게 백인들의 골드러시는 한 밤 중의 날벼락이었을 것이다. 평화롭게 땅에 발을 딛고 바람이 가져오는 냄새를 맡으며 살아 온 그들에게 백인의 등장은 악몽이었다.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원래 백인이 평화롭게 정주하고 있던 인디언들을 살육하고 쫓아냈으니 백인들이 무조건 악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복수라는 논리로 똑같이 백인들을 공격하고 죽인 인디언들의 행위는 선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이 책 「더 선」의 흐름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지 않아 좋았다. 오히려 한 가정의 100년 역사를 통해 미국 근대를 톺아보는 전개가 좋다. 매컬로 가(家)의 과거와 현재를 왔다 갔다 하는 전개 방식도 전개의 긴장감을 더하는 구성이라 본다. 만약 무조건 ‘백인이 나쁘다.’라는 것으로 읽혔다면 나는 이 책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동시에 무조건 ‘인디언이 피해자다.’라는 것으로 읽혔더라도 마찬가지다.
“씨발, 나는 좆같이 더러운 인디언이 되지 않을 거야, 엘리. 난 차라리 죽는 게 나아.” (p.83)
함께 인디언 부족에서 붙잡힌 형이 그 생활을 견디지 못해 엘리에게 털어놓은 속마음이다. 하지만 엘리는 생각이 달랐다. 의지도 달랐다. 어차피 죽어버릴 바에야 살아남는 것을 선택했다. 엘리에게는 ‘좆같이 더러운’ 것이라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의미 없이 죽어버리는 것이 ‘좆같이 더러운’ 것이었다. 결국 엘리에 의해 매컬로 가(家)의 역사는 이어지게 된 것이니 어쨌든 엘리의 그 선택은 옳았다.
“우리 가족의 많은 이들을 앗아갔고 어쩌면 몇 명을 더 앗아갈지 모르는 이 땅을 대령이 얼마나 사랑하는지, 나는 모른다.” (p.107)
후에 엘리의 막내아들이 되는 피터 매컬로의 일기에 기록된 내용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찾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닿은 곳은 말 그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다. 새로운 법을 만들고 새로운 경제를 일으키고 새로운 가족들을 탄생시켰다. 서부로 서부로 달려가 미국이라는 나라는 만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최초 역사는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나는 이것이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맥락이자 주제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미국을 바라볼 때 상반된 의견이 있는 것처럼 비록 그것이 ‘국가’라는 거대담론이 아닐지라도 하나의 사안에는 반드시 양면성이 존재한다. 동시에 양가성 또한 존재한다. 매컬로 가(家)라는 한 가족의 역사를 통해서도 이것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아버지가 아무리 사랑한 땅일지라도 자식들에게는 아무런 쓸모없는 불모지로 여겨질 수도 있다. 동시에 자식들이 아무리 소중히 여기는 가치일지라도 아버지에게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의 객기로 여겨질 수도 있다. 동시에 두 가지를 인정해야 한다. 물론, 내가 그 가족의 일원이라면 그 정도의 객관화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미지수지만...
“어디 틀어박혀 숨어 있고 싶지 않는 한, 나는 별이 지기도 전에 일어나서는 젖은 풀밭을 걸어가 차가운 시냇물로 물 항아리를 채우고 화톳불이 꺼지지 않게 손을 봤어. 하루 중 남은 시간은 여자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맡아 했지.” (p.159)
이럴 때는 엘리의 삶에 대한 자세가 가장 좋다고 본다. 그것이 ‘옳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좋다’고 하는 것이다. 엘리는 인디언 부족의 일원으로 인정받아 ‘티에테티’로 불렸다. 그들의 가족이 된 것이다. 「더 선」이 몇 권이 더 출간될지 알 수는 없지만 2권, 3권으로 이어지면서 엘리가 어떻게 다시 가문을 일으키는 지 궁금했다. 당장 닥친 현실과 구조를 엎을 수 없다면 현재에 최대한 충실하고 요구되는 것들에 자신을 맞추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아버지처럼 의식이나 양심 따위에 시달리지 않는 막무가내 짐승이 될 것. 인간이란 쇠고기 같은 소모품에 불과하다는 확신을 품고 숙면을 취할 것.” (p.252)
엘리의 아들 피터 매컬로가 아버지를 평가하는 내용이다. 이 한 문장을 통해 엘리의 생애 후반부가 어떻게 펼쳐질 지 어느 정도 가늠이 되기도 한다.
다만 그 열심과 삶에 대한 의지가 자식들에게는 어떻게 비춰질지 모르겠다. 목숨을 걸고 삶을 지켜온 엘리인데, 인생의 후반부 아들에게서 ‘막무가내 짐승’이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면 그것이 행복한 인생은 아닐 것 같다.
다음 시리즈에서 펼쳐질 엘리의 그 치열한 삶의 여정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