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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들리는 순간 - 인디 음악의 풍경들
정강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몇 해 전 대학교 주변 음식점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연예인 같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을 봤다. 마침 대학 축제가 있었고 많은 가수, 밴드가 초청되어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던 터였다. 내가 있는 식당 쪽으로 들어오더니 자리를 잡고 주문을 했다. 가만히 보니 크라잉넛이었다. 밴드 멤버들과 스텝 몇 명이서 밥을 먹으러 온 것이었다. 평소에도 무척 좋아하던 밴드라 반가웠는데 사인을 받거나 사진을 찍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당시에는 스마트폰이 없던 때라 일부러 디카를 들고 다니지 않으면 사진 찍는 것이 거추장스러웠다. 슬쩍 다가가 “팬입니다.”하고 악수 한 번 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웠다. 그들은 TV에서 보이는 모습 그대로였다. 뭐, 어떤 연예인들은 타고 다니는 밴에서 나오면서부터 다시 밴에 오를 때까지만 변신을 한다고 하던데 크라잉넛은 그렇지 않았다. 줄곧 장난 치고 아이 같이 노는 모습이었다.
나는 밴드 음악을 많이 들었다. 드럼을 교회에서 처음 배웠는데 학교에는 밴드동아리가 없었다. 교회에서야 교회음악만 줄곧 듣거나 연주할 뿐이라 다른 곳에서 드럼을 치고 싶었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그리고 아주 헤비한 메탈이나 하드락은 나와 잘 맞지 않았다. 한국의 메탈밴드 중에서는 블랙홀의 노래를 많이 들었다. 중·고등학교 당시 그들의 테이프를 많이 사서 테이프가 늘어날 때까지 듣곤 했다. 이상하게 외국의 슈퍼밴드들의 노래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음악에 완전히 빠진 것도 아니었다. 펜팔을 하던 여자아이가 선물해 준 보이즈Ⅱ맨의 노래도 너무 좋았고 월광소나타도 좋았다. (그 아이가 피아노를 전공했었다) 대학 때 잠시 밴드 동아리에 들어갔던 적이 있는데 오래 하지 않았다. 당시 잠깐 계속 음악을 할까? 고민했던 적이 있었는데 세계적인 드러머가 될 수 없다면 음악쯤은 포기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만큼 음악을 사랑하지도 빠지지도 않았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래도 교회에서는 계속 밴드 활동을 했다. 예배 시간에 연주를 하기도 하고 특별한 행사 때에도 연주를 했다. 교회 음악도 90년대 중반부터는 대규모 집회의 실황을 담은 음악이 주류를 이루면서 밴드의 역할이 커지게 되었다. 그래서 교회 음악도 많이 듣게 되었고 프로그레시브 메탈밴드 예레미의 음악도 많이 듣게 되었다. 드럼을 연주하는 것이 꿈에서 취미로 넘어간 시점도 바로 그 때였던 것 같다. 재미있었다. 기타나 건반은 연주하는 사람이 워낙 많은 데 반해 드럼은 연주하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으니까 더 자부심을 가질 수도 있었다.
군대 전역 후 들어 간 첫 직장에서도 밴드 동아리 활동을 잠시 했었다. 지친 일상을 벗어나는 데 그만한 것이 없었다.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하는 활동이다 보니 밴드 구성원 모두 애착을 가지고 서로에게 더 많은 음악을 권하기도 했다. 그 때 많이 들었던 음악은 레드핫칠리페퍼스(이하 RHCP)와 레이지어게인스터더머신(이하 RATM)이다. 지금도 그 두 밴드를 가장 좋아한다. 그루브를 한껏 살린 펑키한 RHCP의 음악은 기분이 좋을 때 들어도 좋고 기분이 안 좋을 때 들어도 좋다. 드러머 채드 스미스 형님의 적확하고 심플한 플레이를 좋아 한다. 1집 자켓 사진 만으로 충분한 RATM의 음악은 저항과 분노, 선전과 봉기다. 뉴메탈신의 큰형님격인 그들의 음악은 새롭고 신선했다. 1집과 2집이 발매된 지 벌써 15년 이상 되었는데도 지금의 음악보다 더 진보적이고 파격적이다. 쏘는 듯한 랩과 톰 모렐로 형님의 혁신적인 리프를 듣고 있노라면 존재하는 모든 스트레스는 한 방에 해소된다.
“그러니까 여기에 묶인 글들은 오로지 나의 느낌의 세계에서만 정당하다. 나의 정서가 감전의 느낌으로 몸서리쳤던 음악에 대한 기록이다.” (p;8)
이 책 「당신이 들리는 순간」은 각자의 음악에 대한 기록을 기억하게 한다. 저자 자신이 분명하게 얘기하고 있듯이 음악은 듣는 이에 따라 달라진다. 그 자신의 느낌의 세계에서만 정당하기 때문에 오해하지 않고 강요받지 않는다. 철저하게 객관적이고 중립적이어서 마음에 들었다. 저자는 일간지 기자다. 일간지 기자라는 약력을 보고 책의 내용과 글을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필력이 상당했다. 다시 약력을 들여다보니 학부 때 국문학을 전공했었단다. 고개를 끄덕였다. 저자의 표현대로 각자의 정서가 감전의 느낌으로 몸서리쳤던 음악이 있었는지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았다. 이제까지 살면서 감전이 되었던 적이 없어서 정확하게 어떤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책상에 팔꿈치를 꽝~ ! 하고 찧었을 때 오는 그 아찔하고 짜증나게 아픈 느낌보다 더 심하지 않을까 싶다. 앞서 장황하게 이야기 했듯이 나에게도 그런 음악이 있었다. 마이마이 카세트로 듣던 블랙홀의 음악이 그랬고, 한참 동안 많이 듣던 교회 집회 음악이 그랬고, 레드핫칠리페퍼스와 레이지어게인스트더머신의 음악이 그랬다. 이어폰으로 들어오는 멜로디와 악기 소리가 순식간에 내 온몸을 훑고 지나가 내가 그 음악이 되어 버리는 물아일체의 현상^^;;
처음 배웠던 악기가 드럼이었고 교회, 대학에서 밴드 활동을 했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나는 주로 밴드 음악을 좋아한다. 우후죽순처럼 쏟아졌던 오디션 프로그램들 중에서도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했던 ‘탑밴드’라는 프로그램을 가장 좋아했다. 어차피 다른 여타 오디션 프로그램은 보컬능력만을 위주로 보기 때문에 나는 큰 관심이 없었다. 9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한국의 음악시장을 기형적인 괴물로 만들어버린 보이,걸그룹 음원시장은 아직도 망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곧 끝날 거라고 봤는데 아니었다. 아카시 나무의 왕성하고 질긴 생명력이 온 산을 망치는 것처럼 기획사에서 찍어낸 보이,걸그룹은 수도 없이 사라지고 또 태어나면서 그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모두가 이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모두가 그리로 뛰어 든다. 언제 들어도 낯 뜨거운 그들의 노래와 퍼포먼스는 지난 몇 년 동안은 한류라는 신기루에 포장되어 번식에 번식을 거듭했다.
그들의 노래에 이력이 난 사람들이 가끔 조용필에 열광하기도 하고 홍대 인디신에 눈을 돌리기도 하지만 그때뿐이다.
아참~!! 그리고 늘 궁금했던 점이 있다. 이렇게 기형적인 음악 시장을 가진 한국에서 어떻게 락페스티벌이 호황을 누리고 있는지 하는 점이다. 매년 여름이면 곳곳에서 락페스티벌이 열리는데 내한하는 외국 밴드들 거의 모두 한국의 팬들을 보고 놀란다고 한다. 한국 락팬들의 떼창과 뜨거운 호응은 이미 유명하다. 참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국가대표 축구 경기는 늘 만원을 이루면서 해당 홈팀의 프로축구 경기에는 찾아가지 않는 축구팬들의 양태와 비슷하다고 봐도 무방할까?
“후……. 마음이 아리죠, 뭐. 음악 하는 후배들이 참 곤궁합니다. 우리 어른들이 그렇게 만든 겁니다. 음악 시장을 얼른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려놓아야 해요.” (p.92)
많은 인디밴드들이 롤모델로 삼고 있는 산울림의 김창완씨의 말이다. 자세한 이야기까지는 하지 않지만 분명히 한국의 음악 시장이 잘못되었다는 것에는 크게 동의한다고 본다.
이 책에서는 저자가 직접 홍대에서 만난 인디밴드와 그들의 음악에 대한 소개가 담겨 있다. 다 읽고 보니 이미 알고 있는 밴드가 절반, 알지 못하던 밴드가 절반이었다.
“오디션을 보라니까 보긴 봤다. 그런데 네 명 가운데 악기를 다룰 수 있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개념 없는’ 청춘들은 아무렇게나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누구는 입으로 기타 소리를 내고, 누구는 입술을 떨어가며 드럼 소리를 냈다. 결과는 합격. ‘개념 있는’ 사장은 이들의 ‘개념 없음’에 미래를 걸었다. 밴드 크라잉넛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p.29)
“언젠간 랩 메탈을 들려주겠다며 멤버 전원이 얼굴을 랩으로 싼 채 공연을 했는가 하면, 연주하다 말고 갑자기 레슬링을 해 관객들의 배꼽을 잡기도 했다.”
“크라잉넛은 저항하지 않는 록 음악도 가능하다는 걸 입증한 밴드다.” (p.34)
나는 크라잉넛의 이런 모습이 좋다. TV에서 그들의 라이브를 들으면 ‘아~ 연습 좀 더하지’ 싶다가도 그들이 쏟아내는 천진한 연주와 노래에 금세 빠져든다. 심각하지 않고 어렵지 않아서 좋다. 한참 음악을 듣던 시절 궁금했던 것이 왜 그렇게 외국 밴드음악만 듣는지 하는 것이었다. 거의 모든 이들이 외국 밴드음악만 들었다. 그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찬양을 보냈다. 한국 밴드의 음악은 정확한 이유도 말하지 않은 채 듣지 않았다. 카피를 해도 거의 외국 밴드의 음악이었다. 나는 처음 들었던 밴드 음악이 블랙홀이었다. 아마 그 영향이 가장 큰 것 같다. 그런데 한국 밴드의 음악을 들으면 마치 락의 계보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면서 무작정 듣는 개념 없는 락팬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내가 들어서 좋으면 그만인데 음악에도 서열을 정하는 그들이 우스웠다. 사실 그래서 대학 밴드 동아리를 그만두게 되었었다.
“그런데 때는 1997년, 느닷없이 집안이 주저앉는 걸 경험한 스무 살 무렵의 청춘들은 이 노래에서 더 이상 사랑이나 그리움 따위를 읽어낼 여유가 없었다.” (p.45)
많은 인디밴드가 책에 소개되어 있지만 결국 나는 평소에 좋아하던 크라잉넛과 델리스파이스에 또 다시 집중하게 되었다. 델리스파이스의 모던락은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의 밴드 이름을 알기 전 들었던 노래 ‘고백’과 ‘차우차우’의 가사에 완전히 감동하는 바람에 모던락까지 듣게 되었다. 1997년 수능을 실패하고 IMF로 집안의 가세가 단번에 기울어지던 그 추웠던 겨울. 델리스파이스의 가사는 그대로 위로가 되었다.
“홍대 주변에서는 이를 두고 ‘인디 정신 훼손’ 운운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가 음악을 생산하는 방식은 명백히 ‘인디’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인디라서 더 들을 만한 게 아니라, 인디로 불리건 말건 들어서 좋은 음악이 최고” (p.87)
반복해서 말하게 되는데 음악은 듣는 이가 좋으면 그만이고 하는 이가 좋으면 그만이다. 음악을 하는 이들 사이에서도 선구자가 되고 싶고 음악을 하고 듣는 대중을 선도하고 싶은 경기동부연합같은 자들이 있는 가 보다. 장기하와 얼굴들이 TV에 나오고 십센치가 예능에 나오고 크라잉넛이 광고를 찍는 것이 왜 ‘인디 정신 훼손’인가? 우리나라 밴드음악은 구리니까 레드제플린, 딥퍼플을 들어~ 라고 했던 꼰대들과 다를 게 뭔가? 나는 진보입네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저 서로 갉아먹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자신은 무슨 고귀한 혈통인양 나불대는 자들도 꼴 보기 싫고 음악계에서도 순수한 락의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TV출연 고사~ 뭐 이런 말 나불대는 자들도 똑같이 꼴 보기 싫다. 구차하고 꼰대스럽게 보일 뿐이다.
“김창완은 ‘존재하는 가치는 파괴돼도 된다.’고 말한다. 그런 가치 전복의 정신이 산울림 음악에 깔려 있다.” (p.95)
산울림의 음악을 듣기 전에 「하얀거탑」에 출연한 김창완씨를 보고 완전한 팬이 되었는데,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보니 그렇게나 많은 후배 밴드가 산울림을 롤모델로 삼고 있나 보다. ‘존재하는 가치를 거침없이 파괴’하는 것이 예술가의 특성일 텐데 그들조차 꼰대가 되어가는 현실이 안타깝다. 물론, 한국의 음악 시장 자체가 요상하다 보니 밴드 음악을 하는 것은 엄청난 용기와 헌신이 필요한 일이다. 락음악을 하는 자존심 하나 가지고 버티고 버티는 뮤지션들이 꼰대가 되어 가는 것도 일견 이해가 되지 않는바 아니다. 하지만 음악과 글을 창조해 내는 인디밴드(홍대 신을 비롯한 모든 송라이터가 가능한 밴드의 음악을 포함해서)는 예술가다. 자유롭게 창작하듯이 다른 음악을 대하는 것에도 자유롭고 창의적이기를 기대한다. 물론, 보이·걸그룹 아이들이 하는 노래는 제외하고.
책은 생각보다 재미있다. 무엇보다 저자의 필력이 예사롭지 않다. 밴드가 달라지면 문체도 달라진다. 사심이 가득 들어간 소개라 더 마음에 와 닿았다. 손가락질 하는 일간지에 소속된 기자라 편견을 가진 나의 속좁음이 부끄러웠다.
밴드음악이나 인디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면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