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발명가
최우근 지음 / 북극곰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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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빠빠 빠 빠밤~ 빠빰~ 빠빠빠빠 빠밤~!

 

‘이 사건은 0월 0일 일어난 사건으로서...’

 

로 시작되고 끝나던 프로그램. 한 때 엄청난 인기를 얻었던 <경찰청 사람들>이다. 현역 경찰관이 프로그램의 나레이션을 하는 당시로서는 엄청난 파격이었던 프로그램이다. 전혀 어색하지 않는 전문 성우나 배우가 아니라 실제 경찰관이 나와서 어색한 표정과 말투로 나레이션을 하는 것이 무척이나 재밌었던 기억이 있다. <경찰청 사람들>이 방송된 다음날 학교에 가면 어김없이 시그널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친구들과 장난을 치기도하고 어제 나왔던 경찰 아저씨의 재미난 표정과 사투리를 흉내 내기도 했다.

이 책 「이웃집 발명가」의 작가가 바로 <경찰청 사람들>의 작가였던 최우근 씨다. 책의 소개 글과 추천 글만 보고 이 책에 대해 정말 궁금한 점이 많았는데 표지 뒤에 실린 저자에 대한 설명만 읽고도 충분했다. 어린 시절 <경찰청 사람들>에 대한 추억이 이렇게나 컸는지 몰랐다. ㅎㅎ

희곡이라는 장르는 낯설다. 희곡 작품이 무대나 공연장, TV세트를 통해 극으로 탄생해야 하는데 한국의 실정은 호락하지 않다. 연극 장르는 더 이상 확산되지 못한 채 고사되었다고 봐야 한다. TV에서는 방송국과 외주의 특정한 업체에서 만들어내는 일주일 간격의 코미디쇼가 전부다. 그것도 요 몇 년간은 단 하나의 프로그램만 살아남았을 뿐이다. 연극과 TV를 제외하고 희곡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 어디에 있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없다. 아주 어린 시절, 동네를 방문하는 약장사 공연단이 있었다. ‘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라~!’ 이 말을 실제로 들어 봤다. 내 기억에 그 아저씨, 아줌마들은 동물들도 데리고 나와 공연을 했고 주로 차력과 마술을 했던 것 같다. 여장한 아저씨가 삐에로 같은 화장을 하고 연기를 하면 둥글게 모인 어른들이 박장대소를 하던 기억도 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것조차 없다. 희곡이 공연되고 오를만한 무대가 없는 것이다.

 

이 책에 실린 네 편의 작품은 이미 연극무대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 무대에서 공연된 네 작품들이 각각 어떤 평가를 받았고 관객들에게 어떤 호응을 받았는지 알수 없지만 적어도 연극이라는 장르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한 생각부터 들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친구와 간 서울에서 <택시 드리벌>이라는 연극을 봤다. 충격이었다. 경상도 중소도시에서는 절대로 접할 수 없는 공연이었다. TV보다, 영화보다 더 생동감 있고 신났다. 이후로 몇 편의 연극을 더 보기는 했지만 이제까지 본 영화 편수에 비하면 상대도 되지 않는다. 내가 살고 있는 대구에도 몇 개의 소극장에서 연극 공연이 오르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보지 못했다. <택시 드리벌>을 너무너무 재미있게 봤지만 더 찾지 못했다.

그 때 본 <택시 드리벌>에서는 질퍽하고 구수한 욕설이 난무했다.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정부와 있는 놈들에 대한 비판도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것에 주목할 틈도 없이 내 눈 바로 앞에서 연기를 펼치는 두 배우에게 온통 정신이 빼앗겼다.

연극의 무대 연출은 영화나 TV극의 그것보다 단순할 수밖에 없다. 오로지 배우들의 연기와 탄탄한 시나리오 만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네 편의 작품은 재미있다. 콘티 형식으로 서술해 놓았기 때문에 속도감 있게 읽을 수 있었다. 대사가 길지 않고 인물 간에 주고 받는 형식이 대부분이어서 긴장감도 있었다.

 

 

첫 번째로 실린 <이웃집 발명가>에서는 현대인과 강요받는 현대인의 생활 패턴을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다.

 

“또, 또, 또 변명한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알아듣겠어요? 지금 처한 현실에 안주하는 건 박사님 인생에 아무런 보탬이 안 된다구요. 그런 자세로, 박사님이 그렇게나 원하는, 이름만 대면 척하고 알아들을 만한 유명한 발명품을 어느 세월에 만들겠냐구요.” (p.31)

 

로즈밀러 양은 현실적인 인물이다. 뜬구름 잡는 박사를 보고 답답해한다. 로즈밀러 양의 평소 성격과 기질로 보면 답답하고 속 터지기만 한 발명가 곁을 떠나지 못한다. 로즈밀러 양의 태도가 발명가의 그것보다 더 답답해 보인다. 아내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고 오다가다 마주치기만 하는 이웃일 뿐인데, 막무가내의 논리로 계속 발명가를 상대한다. 현실에 필요한 사람은 넘쳐 나고 찾아보면 만날 수도 있을 텐데 현실 감각 제로인 발명가 곁을 떠나지 못한다. 떠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일 테다. 결국 로즈밀러 양도 관심이 필요한 현대인의 전형일 뿐이었다. 훤한 대낮에 어둠을 만들어 내는 발명가의 창조적인 발명품은 로즈밀러 양의 말대로 아무 곳에도 쓸모없는 발명품이다. 찾아보면 필요한 곳은 있겠지만 당장 먹고 사는 데는 필요가 없다.

발명가는 그의 유일한 친구, 블랙도 말할 수 있게 했다. 개가 말을 할 수 있다니…….

 

 

“개를 조수로 쓰다니……. 이건 명백한 동물학대예요!”

“동물학대요...?”

“전 학대 받은 적 없는데요?”

“불쌍한 것.. 자기가 학대받는 줄도 모르다니...” (p.41)

 

로즈밀러 양은 발명가와는 전혀 대화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계속 둘은 대화를 지속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타협점을 발견하지 못한다. 발명가와 함께 사는 개, 블랙을 대하는 태도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발명가는 자신의 곁을 지키는 블랙을 위해 그가 말을 할 수 있게 한다. 블랙과 소통하고 그를 통해 위로 받고 힘을 얻었던 것이다. 발명가와 블랙에게는 당연한 것일 수도 있었지만 로즈밀러 앙에게는 다르게 받아들여 질 수도 있다. 그녀의 말대로 개는 개다워 하고 개답게 살아야 하는데 인간도 아닌, 개도 아닌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 물론, 블랙은 얼토당토 않는 말이라고 항변하지만 사람이란 자기 생각대로 사는 존재다. 스스로 깨닫지 않는 이상 웬만해서는 자신의 생각을 바꾸거나 고집을 굽히지 않는다. 사실 로즈밀러 양과 발명가는 서로에게 필요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존재하는데 서로 티격태격 할 뿐이다. 생각이 너무 다른데 접점이 보이지 않는다. 성격과 기질이 맞지 않는 사람과 함께 지내는 것은 곤욕이다.

결코 반갑지 만은 않은 두 사람을 통해 현대인이 맺는 관계의 군상들을 생각해 본다. 누구나 자기 마음에 맞고 마음에 드는 사람과 같이 지내고 싶다. 그런데 그렇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티격태격 주고받는 로즈밀러 양과 발명가, 블랙과의 대화를 통해 현재를 그대로 직시한다.

 

 

두 번째 작품 <판다 바이러스>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을 생각나게 했고, 세 번째 작품 <거기에 있는 남자>는 류승범이 출연한 영화 <만남의 광장>을 생각나게 했다.

 

 

네 번째 작품 <이웃집 발명가 두 번째 이야기>는 첫 번째 이야기에서 그렇게 티격태격 하던 로즈밀러 양과 발명가가 결혼해 부부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렇게 안 맞는 사람 둘이 결혼을 했다. 당연히 사랑하니까 결혼을 했겠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건데요?”

“개라면 당연히 개답게 살아야지.”

“사람들은 모두 사람답게 사나요?” (p.323)

 

아프리카로 3년 동안 여행을 떠났던 블랙이 돌아왔지만 발명가와 결혼한 로즈밀러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발명가를 남편으로 두고 있지만 그녀의 생각은 바뀌지 않는다. 사람이 나이를 먹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고 바뀔까? 절대 바뀌지 않는다. 내 부모님을 봐도 뻔히 알 수 있다. 30년 넘게 부부로 살아왔지만 신혼 초 싸웠던 그 사소한 것으로 아직도 다투신다. 그런 부모님을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사람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나 자신을 봐도 그렇다. 유독 내가 싫어하고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성격과 기질은 죽어라고 바뀌지 않는다. 어느 정도 노력을 하고 애를 써서 이제는 괜찮겠지 잠시만 마음을 놓으면 어느새 툭 하고 튀어 나온다.

개라면 개답게 살고 사람이라면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 바뀌지 않는 성격과 기질에 목숨 걸 필요 없다. 생겨먹은 대로 살면 된다. 다만 염치 있게 살아야 한다. 나는 작가의 표현을 염치로 해석 했다. 개라면 개다운 염치, 사람이라면 사람다운 염치. 절대적인 기준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각자 판단해야 할 사항이다.

염치조차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세상이라 피곤하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여긴 이미 가진 자들의 세상이에요. 약자에겐 단 한 계단 올라갈 수 있는 지식도 정보도 기회도 제공되지 않아요. 이제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빼앗기고 더 빼앗기고 완전히 빼앗기겠죠. 물론 저건 박사님이 만드셨죠. 하지만 박사님이 저걸 없애신다면... 그건 약자들의 새로운 질서 속에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도둑질하는 겁니다.” (p.367)

 

돌아온 블랙은 여전히 이상을 가지고 있다. 3년 동안 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기린과 결혼도 하고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면서 발명가와 나눈 이상이 현실이 될 수 있음을 직감했다. 그래서 더욱 발명가를 독려한다. 도저히 바뀔 것 같지 않은 구조적인 문제에까지 도달한다. 개답지 못하게 말이다.ㅎㅎ

 

 

“저기 언덕 위에 미성 아파트 있잖아. 거기 관리소장인데... 경비 자리가 비었다고 해서 아까 면접 봤거든. 내일부터 나오래.” (p.379)

 

발명가는 현실과 타협하고 살아갈 방도를 마련하는 것 같지만!!

결말을 그렇지 않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 한다.

영화 얘기를 여러 번 하게 되는데 마지막 장면은 짐 캐리가 주연한 <트루먼 쇼>의 결말 장면을 생각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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