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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세계사 - 우리가 알지 못했던 43가지 역사 이야기
박은봉 지음 / 책과함께 / 2013년 4월
평점 :
이 책은 이미 유명하다. 나만 몰랐다고 생각하는 편이 그나마 마음 편할 것 같다.^^ 모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책으로 출간되어 또 큰 인기를 끌었으며 십여 년 만에 보완, 수정되어 재출간되었다. 책의 부제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43가지 역사 이야기’다.
역사의 중요성은 오늘 아침 뉴스를 보고 더 절실하게 알 수 있었다. 어린 학생들에게 ‘야스쿠니 신사’가 뭔지 물어보니 “예? 신사요? 젠틀맨이요?”라고 했단다. “예? 야쿠르트요?”라고도 했단다. 지난 이명박 정권에서 저지른 교유 정책 중 가장 어이없고 심각한 일이었는데 5년이 지나 그 부작용이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일본의 우익 정권은 연일 그들의 과거를 각색하고 왜곡해 떠들고 있는데 역사 공부가 뒤안으로 사라진 한국의 청소년들은 3.1운동을 ‘삼 점 일 운동이요?’라고 알고 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되돌리고 제 자리를 찾게 해야 하는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교수, 학자라는 인간들이 정권에 빌붙어 저지른 만행은 반드시 심판해야 하고 당장 역사 수업의 비중을 높이고 멀리 있는 역사보다 구한말부터 일제 침략시기 역사를 자세하게 가르쳐야 할 것 같다.
역사의 중요성을 얘기하려다 보니 또 흥분했다. 이 책은 그리 심각한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다. 이 책이 최초 출간된 90년대만 해도 역사 교육은 교육과정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역사 공부야 당연히 학교에서 열심히 하는 것이기에 이 책처럼 우리가 학교에서 미처 배우지 못했던 역사의 뒷이야기나 재미있는 역사의 내용들은 담은 책이 인기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에서는 제대로 된 역사를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으니 답답한 현실이다.
한편으론 수 년 동안 없었던 역사교육을 갑자기 다시 시작해서 딱딱한 역사 이야기를 주저리 늘어놓는 것보다 이 책에 실린 내용처럼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주령비와 장순화는 같은 중국인이면서도 조국이 사회주의 중국과 자본주의 대만으로 분단되어 있는 까닭에 적대국가 국민이 되어 처음부터 ‘이루어질 수 없는’사이였다. 마치 북한 총각과 남한 처녀가 머나먼 외국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 것과 같다.” (p.75)
「내 연애의 모든 것」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가 방송되고 있다. 여·야의 남녀정치인이 서로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이다. 한국의 현실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허무맹랑한 스토리다. 이것보다 더 심각하고 복잡한 연애 이야기가 실제로 있었다고 한다. 사회주의 중국의 총각과 자본주의 대만의 처녀가 일본에서 사랑에 빠진 것이다. 제3국인 일본에서 공부하던 중에 서로의 태생과 국적에 상관없이 사랑에 빠진 젊은 남녀를 지켜줄 수 있는 것은 서로의 확고한 믿음과 사랑뿐이었다. 언론도, 여론도, 양가의 부모님도 안 된다고 할 게 뻔한 일이었다. 그들은 중국의 주석과 대만의 총통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들의 결혼을 인정해 줄 것을 요구한다. 결국 대만에서 결혼 해 지금까지 잘 살고 있다고 한다.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다. 드라마 보다 더 드라마틱한 일이 실제로 일어났던 것이다. 북한 총각과 남한 처녀가 만나 사랑에 빠진 것과 같은 일이 이미 예전에 일어났다. 개성공단에서 완전히 철수해 버린 지금 상황에서는 더욱 영화 같은 일이다. 주령비와 장순화처럼 서로 사랑부터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완벽한 베르사유 궁에는 이상하게도 화장실이 없었다. 때문에 성장(盛裝)을 한 선남선녀들이 정원 아무 데서나 용변을 보았다. 너무 가리지 않고 볼일들을 보자 정원사는 골치를 앓았다.”
“보다 못한 정원사는 여긴 정말 안 되겠다. 싶은 장소에 ‘대소변 금지’라는 팻말을 붙였다. 이런 팻말을 프랑스어로 ‘에티켓’이라 한다. ‘예절’, ‘예의’를 뜻하는 에티켓의 어원이 바로 이러하다.” (p.110)
이 이야기는 이미 다른 책에서 읽어 알고 있었다. 지금은 인도에 접한 차도에서 여성을 안쪽으로 들어가게 해서 보호하는 것이 에티켓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중세 유럽에서는 2층 집에서 밖으로 내던지는 오물로부터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안쪽으로 들어가게 했다. 그렇게 화려한 옷을 입고 화려한 화장을 하고 악세사리를 달고 다닌 시대에 화장실이 없었다니 글자로만 읽어도 냄새가 진동하는 것 같다.
“비너스상은 두 팔이 없다. 어깨 바로 아래쪽에서 잘려나간 것이다. 하지만 밀로 섬에서 처음 발견되었을 때는 분명 두 팔이 다 있었다고 한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p.164)
비너스상... 정말 아름답다. 학교에서 처음 본 사진에 그녀의 두 팔이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없는 줄 알았다. 처음부터. 학교 선생님도 그녀의 팔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 된다. 그런데 처음 발견되었을 당시에는 그녀의 두 팔이 온전하게 붙어 있었다고 한다. 이런... 완벽한 그녀를 봤다면 더욱 그녀를 좋아했을 텐데...^^
“‘지리상의 발견’후 유럽 바깥 세계로 진출한 유럽인들은 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에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현지의 주요 문화재와 국보급 보물들을 본국으로 실어 날랐다. 그러니 루브르나 대영 박물관은 프랑스인, 영국인 들이 세계 도처에서 거둬들은 수집품의 진열장이요 제국주의의 상징인 셈이다.” (p.170)
제국주의는 전 세계에 생채기를 냈다. 해가지지 않는 대영제국은 그들의 발이 닿은 곳에서 진귀한 것들을 모조리 싹쓸이 해 갔다.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우리야 먼 나라 이야기할 것도 없고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으로 인해 한반도 전체가 수탈을 당하고 귀한 것들은 모조리 빼앗겼다. 당시 일본인들이 얼마나 많은 조선의 보물을 가져갔는지 파악조차 되지 않는다고 한다. 제대로 된 친일파 청산조차 못한 지경이니 제대로 파악 해 되돌려 받을 길은 요원하다.
당시 제국주의자들은 그들의 위세가 영원히 계속될 것으로 알았을 것이다. 대영제국은 영원히 해가지지 않을 것이고 그 넓은 아프리카 대륙을 자로 재어 직선으로 나눈 후 나눠 먹는 야만적인 행동도 별로 대수롭지 않았을 것이다. 멀리까지 가서 보는 것도 귀찮으니 영국으로 들여와, 프랑스로 들여와 수시로 편하게 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것이 한두 건이 아니었겠지. 값나가는 것이라고는 모조리 쓸어갔을 테니까.
원래 있던 곳, 그 자리에서 더욱 아름다웠을 더 많은 비너스들이 팔이 잘려나가고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머리가 날아가는 일이 얼마나 많았을까.
두 팔이 잘려나간 비너스 사진이 오늘따라 더 안쓰럽다.
“방정환은 ‘어린이’란 말을 널리 보급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전까지는 아동 혹은 소년이란 말을 썼다. 방정환은 늙은이, 젊은이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동을 한 인격체로 인정한다는 의미에서 어린이라는 말을 쓰자고 했다.” (p.210)
소파 방정환에 대한 후대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지만 그가 ‘어린이’라는 말을 만들어 널리 보급한 것에는 큰 의미를 두어야 한다고 본다. ‘어린이’라는 단어가 단순히 나이를 구분 짓는 명칭이 아니라 한 인격체로 인정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잘 알지 못하는 사실이다. 어린이날에 대한 부침이 많았지만 여전히 어린이는 소중한 존재다. 어린이가 학교에 입학하고 청소년으로 성장해 청년으로 장성해 가는 과정이 고난하고 힘든 현실이기에 어린이를 잘 성숙시키는 것은 시대의 화두이다. 이미 부모가 된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전부 그런 걱정들뿐이다. 이민을 갈수도 없고 어린 나이에 이역만리 타국으로 유학을 보낼 형편이 되지 않는 부모들은 어린이기 되기 전부터 자신들의 아이의 미래를 걱정한다. 새 정부가 들어섰으니 우리의 어린이들을 처음 소파 방정환이 의미부여 했던 본래의 소중한 뜻을 온전히 담아 어린이들이 밝게 성장할 수 있는 사회로 만들어 주기를 기대한다.
“보통 인디언 하면 야만스럽고 미개한 종족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이들은 수천 년에 걸친 고유의 문화와 역사를 지리고 있었다.” (p.223)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가야 역사를 매우 소홀히 다루고 있다. 가야를 별도 항목으로 세우지 않고 신라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경우에만 곁들여서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가야에 관한 옛 기록은 일연의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짤막한 기록 ‘가락국기’가 고작이다.” (p.317)
역사는 승자들의 기록일 경우가 많다. 반대로 이미 사장된 역사는 패배의 역사일 경우가 많다. 그래서 승자의 편에서 기술되고 전해진 역사의 기록은 사장된 역사에 대해서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멀리 아메리카 대륙 인디언의 역사도, 가야국의 역사도 전해지는 역사가 전부는 아닐 것이다.
지나간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역사에서 배울 수 있고 배워야 하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최소한 지금처럼 역사가 제대로 평가되지 못하고 평가 절하되고 있는 상황은 바뀌어야 한다. 잠시만 소홀히 해도 지금과 같은 “예? 신사요? 젠틀멘이요?”, “삼 점 일 운동이요?”, “야스쿠니요? 야쿠르트요?”라는 등의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한다. 소중한 것을 제대로 지켜내지 않으면 후대에 물려줄 것이 별로 없어진다. 제대로 역사 교육을 받지 못한 지금의 청소년들이 기성세대가 된 후가 더 암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