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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면 사랑하고 싶어져 - 시간산책 감성 팟캐스터가 발로 쓴 인도이야기
김지현 글.사진 / 서교출판사 / 2013년 4월
평점 :
이 책「그곳에 가면 사랑하고 싶어져」20대 아가씨의 인도 여행기다. 여행은 내가 직접 가야 가장 좋은 것이지만 원한다고 다 여행을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이런 여행기를 잘 골라 읽으면 물론 내가 직접 가는 것보다야 못하겠지만 대리만족을 할 수도 있고, 또 언젠가 그곳을 직접 여행할 때 참고할 중요한 자료가 될 수도 있다.
나는 해외여행은 4개국을 했다. 독일, 체코, 네팔, 몽골 이렇게 4개국이다. 몽골 여행 때에는 이미 알고 있었던 몽골 현지인의 집에 홈스테이를 하며 여행을 했었고, 네팔 여행 때에는 현지에서 NGO관련 일을 하고 있던 친구가 가이드 겸 여행 동반자가 되어 주어서 한결 수월하게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일단 현지인들과 말이 통하는 사람과 같이 여행을 하니까 바가지요금 폭탄을 맞을 염려도 없고 여행 책자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알고 있는 현지인들만 가는 여행 포인트와 식당에 갈 수도 있었다.
원래 나는 여행에 대해서 부정적인 편이었다. 굳이 큰돈을 들여가며 수박 겉핥기 식 여행을 하는 것이 못마땅했다. 책을 보면 더 큰 세계를 체험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그것이 몽골 여행을 통해 한방에 깨졌고 이후에는 계획을 세우고 차근차근 준비한 후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책 수백 권을 읽어도 얻지 못하는 것이 그곳에는 있었다. 뭐 그렇다고 전문 여행꾼이 된 것도 아니다. 수십 개국을 여행하면서도 얻지 못하는 것이 우연히 집어 든 책 한권에서 불쑥 튀어나올 때도 있기 때문이다. 하여튼 지금은 책을 좋아하는 만큼 여행도 좋아하는 정도가 되었다.
독일과 체코를 여행할 때에는 오로지 아내와 둘이서 모든 것을 찾아보고 예약하고 결정해야 했다. 현지에 알고 있는 사람도 없었고 교포 친구도 없었다. 요즘은 인터넷에 워낙 자세한 자료들이 널려 있어 잘 찾기만 하면 모든 준비를 마친 후에 비행기에 오를 수도 있는 실정이다. 아내와 5개월 전쯤부터 하나하나 처리를 해가며 준비하고 계획했다. 여행은 찾아보고 준비한 만큼 얻게 된다고 생각하는데 우리도 그랬다. 일단 준비하고 계획하는 그 자체도 너무 재미있었고 설레는 시간이었다. 5개월 동안 충분히 준비하고 대비하고 예행연습까지 했지만 모 출판사의 여행 관련 책자 ‘∼시리즈’를 구입했다.
이 책이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우리가 여행하고자 하는 도시를 이미 여행 한 사람이 자신의 여행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었는데 여행 내내 책을 옆구리에 끼고서 온 도시를 휘저으며 다녔다. 돌아올 때 쯤 되어서는 책이 너덜너덜 해졌다. 하도 들고 다녀서.
그 때 경험 이후 이 책과 같은 여행기를 담은 책도 가볍게 여기지 않게 되었다. 전문적인 작가는 아니라서 글이 서툴 수도 있고 뭔가 뒤죽박죽 인 것 같은 느낌도 지울 수 없었지만 20대 중반이라는 어린 나이에 혼자서 배낭을 둘러메고 미지의 세계로 날아갈 수 있었던 용기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또 원래 여행 후 책을 출간한다는 계획이 세워졌던 것인지, 우연치 않은 기회에 책을 출간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여행을 하면서 꾸준히 메모를 하고 스케치를 한 것도 대단한 일인 것 같다.
나의 경우를 뒤돌아보면 체코 프라하를 여행할 때 4일 정도를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프라하 온 시내를 아내와 둘이서 걸어 다녔다. 마침 크리스마스 시즌 이라 이런 저런 파티가 많았고 그해 겨울 동유럽에 30년 만에 큰 눈이 와서 도시 전체가 들뜬 분위기 였다. 그런 것에 우리도 완전히 젖어 들고 싶어 4일을 통째로 쏘다녔다. 재미있는 일이 너무 많았고 평생 잊혀지지 않을 장면도 많았는데 이런, 돌아다니고 보고 먹고 분위기에 젖는 것에 온 신경을 쏟다 보니 사진도 많이 못 찍고(주머니에서 손을 뺄 수 없을 만큼 춥기도 했다) 포인트 마다 메모를 하지도 못했다(누가 시킨 것은 아니지만 여행 스케치를 남기고 싶었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 사진을 보는 데 정말 찍고 싶었던 것은 찍지 못해서 얼마나 아쉽고 통탄스러웠는지 모른다.
이 책의 저자는 인도를 여행하면서 그녀의 눈에 담고 싶고 인상 깊었던 순간과 사람과 일들을 잘 남겨두고 스케치 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아메바가 되었다. 아메바가 된 이후로는 아무런 편견과 선입관, 잣대 없이 사물이나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되었고, 어떠한 이상함이나 의문도 생기지 않았다. 그러자 마음이 편해졌고,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기 시작 했다.” (p.52)
저자는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하고 특별하게 하고 싶은 것도 정해지지 않은 혼란스러운 20대를 뒤돌아보고 정리하고자 인도로 떠났다. 사실 인도라는 곳이 신비롭기는 하다. 흔히 인도 여행자들은 인도를 여행한 후 두 가지 반응을 한다고 들었다. 너무 좋아서 조만간 다시 가거나 아예 인도를 사랑하게 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너무 힘들고 너무 더럽고 너무 피곤해서 다시는 인도를 가지 않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고. 저자는 아마 전자 쪽인 것 같다. 내 친구 하나도 대학 시절 인도 여행 이후 완전히 인도를 사랑하게 되어서 대학원 공부를 인도에서 하고 졸업 후에는 인도 무역 관련 회사에서 일하다가 지금은 인도 발리우도 영화를 수입하는 회사의 사장님이 되었다. 지금도 1년의 1/3정도는 인도에 들어가 살고 있다.
저자는 처음에는 많이 당황했다고 한다. 그녀도 출국 전 인도에 대해 많은 정보를 찾아 복 알아볼 만큼 알아봤겠지만 여행이라는 것이 책에 쓰인 대로 또는 남들이 한 여행대로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인도 특유의 냄새부터 사람들 환경 모두 처음에는 자신이 인도에 온 것을 후회할 정도였으나 하루, 이틀 지나며서 아메바가 되기로 했다고 한다. 정말 지혜로운 자세다. 굳이 여행지까지 가서 한국에서 살던 습관과 기질대로 살 이유가 없다. 여행은 또 다른 내가 살아가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내 경우도 그랬다. 프라하를 여행할 때 국내에서 출간된 프라하 관련 여행책자를 들고 다녔는데 어떤 식당을 소개하면서 ‘웨이터가 불친절하고 노골적으로 팁을 요구한다.’라고 쓰여 있다. 그 식당 음식이 너무 유명한 곳이라서 꼭 먹어 보고 싶었기에 마음을 단단히 먹고 들어가 음식을 주문하고 맛있는 식사를 하고 나왔는데, 책에 적혀 있는 소개 글이 하나도 맞지 않았다. 웨이터들은 너무 너무 친절했고 팁으로 지폐 두 장을 올렸는데 한 장은 돌려주기 까지 했다. 식당의 규정이라면서. 그 책의 저자가 프라하를 여행한 것이 나보다 1년 반 정도 빠른 시기였는데 완전히 달랐다.
그래서 여행은 직접 해야 하는 것이다. ‘∼더라.’ ,‘∼카더라’ 하는 것들은 그 사람들이 겪은 여행이고 내가 겪을 여행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여행이 설레는 것이다. 어떤 일이 생길까? 어떤 일이 벌어질까? 두 근 반 세근 반하는 그 마음.
“오늘도, 어제도, 내일도 시간마다 입버릇처럼 달고 다닌 말, ‘여긴 인도니까!’ (p.118)
“인도에서는 기차만 제대로 타도 인도 여행의 절반은 먹고 간다는 속설이 있다. 그만큼 타기가 복잡하고 연착도 심하고 안내방송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아 힘든 것이 인도 기차다.” (p.198)
나는 비록 많은 곳을 여행하지는 못했지만 여행지에서는 될 수 있으면 현지 음식을 많이 먹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음식이라는 것에는 그곳만의 특별한 문화와 가치, 습관과 기질이 완전히 배어 있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같은 된장찌개도 집집마다 맛이 다르듯이 우리가 여행하는 그곳에서도 그곳만의 특별한 음식이 있을 것이다. 똑같은 메뉴라도 식당마다 맛이 다를 것이고 분위기도 다를 것이다.
저자가 ‘여긴 인도니까!’ 라는 깨달음을 얻은 후 인도 여행에 대한 더 큰 오픈마인드가 생긴 것처럼 여행지에서는 철저하게 그곳에 맞춰야 한다. 출장을 간 것이나 아주 중요한 연락을 기다리지 않는 이상 로밍 서비스도 하지 않은 채 완전히 그곳에 젖어야 하는 것이다.
체코 여행 때 우연히 만난 현지인을 따라 간 벼룩시장이 정말 인상 깊었다. 책에는 나와 있지 않은 곳이었다. 현지인들만 아는 벼룩시장에 가보니 그들이 집에서 직접 쓰는 물건을 싼 값에 살 수 있었고 직접 만든 음식을 맛볼 수도 있었다. 책에도, 인터넷에도 나와 있지 않은 곳.
여행지 어디를 가든 그곳에서 완전히 젖어드는 것이 제대로 된 여행을 하고 기억에 남는 여행을 할 수 있는 첫 번째 지름길이다. 가장 중요한 방법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인도의 모습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사진이 조금 더 구체적이고 글이 조금 더 매끄러웠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인도의 매력을 담아내는 데는 큰 무리가 없는 것 같다.
내가 여행했던 네팔과는 인접해 있지만 완전히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는 인도도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