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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하루 다른 행복 - 부처 핸섬, 원빈 스님과 함께 가는 행복의 길
원빈 지음 / 이지북 / 201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스님들이 쓴 책을 많이 읽어보지 못했다. 베스트셀러인 혜민 스님의 책은 좋아하지 않아서 일부러 읽지 않았고 예전에 불경을 공부해 보려고 읽은 책 몇 권이 전부다.
이 책의 첫 장도 큰 기대 없이 넘겼다. 책을 쓴 스님의 법명이 원빈인 것이 특이 했고 ‘부처 핸섬’이라는 카피 문구를 보며 ‘센스 있으시네~’ 정도였다.
“영천 삼사관학교로 가는 길. 마치 삼청교육대에 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완전 암울했죠.”
책의 앞부분 이 문장을 보며 원빈 스님을 좋아하게 되었다.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동질감과 함께 이미 나는 바운스를 타며 오른 손을 들고 스님의 박자에 맞춰 책을 읽었다. ‘부처~ 핸섬~!!’
나도 영천 삼사관학교 출신이다. 대학 졸업 후 학사장교 임관을 위해 후보생 훈련을 받던 곳이 영천 삼사관학교 였다. 6월 말에 입소해 한 여름 뙤약볕 속에서 16주간 훈련을 받는다. 3사관학교(앞에 ‘3’자를 붙이는 것이 바른 표기다)에는 3사관학교 학생뿐만 아니라 나와 같은 학사장교 후보생, 원빈 스님처럼 군종사관 후보생, 군의관으로 임관하는 군의관 후보생 등 수많은 사관후보생들이 훈련을 받는 곳이다. 아! 사관후보생은 장교가 되기 전 붙는 직책인데 아직 장교도 아니고 민간인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의 사람을 말한다.
입소하는 후보생들 숫자가 엄청나기 때문에 거의 1년 내내 입소와 퇴소, 훈련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내가 훈련을 받던 6월 말부터 10월 말까지는 나와 같은 학사사관 후보생들만 입소해 훈련을 받았는데 여러 교관과 조교들의 말을 빌리면 일반 장교후보생들 훈련이 제일 빡세고 그 다음이 군종사관후보생, 가장 당나라 부대같이 훈련하는 사람들은 군의후보생들이라고 했다.
군종사관후보생으로 입소한 사람들은 성직자가 되기 위해 공부를 한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혹은 성직자로 이미 생활하다가 입소한 사람들도 있었다.
“입소 첫날 목사님, 신부님, 스님들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시작된 체력 테스트!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달리기….” (p.28)
하지만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예비역, 현역 모두가 공감하는 한 가지 사실은, 내가 근무하는 곳이 제일 힘든 곳이라는 것이다. 왜 남자들은 시도 때도 없이 군대 얘기하고 또 하고, 또 하는지, 저번에 했던 얘기를 왜 또 다시 반복해서 하는지……. 자신이 했던 군 생활이 가장 힘들었기 때문이다. 다른 거 없다.
원빈 스님에게도 3사관학교 훈련은 분명 힘들었을 것이다. 나와 같은 일반 후보생들은 ‘우리가 제일 힘들게 훈련받고 있다.’라며 툴툴대면서도 자랑스러워했지만 원빈 스님도 훈련을 받을 때는 제일 힘들었을 것이다.
군대 얘기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원빈 스님도 내가 훈련 받았던 3사관학교 출신이라는 것 하나로 이만큼 주저리주저리 하는 거 보니 나도 군대 얘기하는 거 좋아하나 보다.^^
이 책은 원빈 스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엮어 만든 책이다. 앞서 길게 말했듯이 원래 이런 종류의 책을 좋아하지 않는데 끝까지 정성 들여 책을 읽고 이런 종류의 책에 대한 선입견을 다소나마 깨게 된 것은 원빈 스님이 나와 같은 3사관학교 출신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다른 책들과 다르다. 이미 훈련소에서 수많은 청춘들과 직접 소통하고 수년 때 페이스북을 통해 귀중한 나눔과 소통을 하고 있는 내공이 글에서 느껴진다. 주로 상대방과 타인에 대한 이야기보다 나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그래서 더 공감이 간 것인지도 모르겠다. 요즈음 내가 하고 있는 가장 큰 고민 중 하나가 바로 ‘나’에 대한 문제라서…….
이 책을 읽으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너무 중요한 일이지만 일상에 치여 살다 보면 늘 우선순위가 저 뒤로 밀리는 일이다. ‘나’를 돌아보는 일.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어렵지만은 않은 일이다.
“모든 재앙의 근본은 부딪힘입니다. 나와 너의 부딪힘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는 ‘내가 옳다.’라는 생각이 숨어 있죠.” (p.41)
“두려움을 버리세요. 그럼 그 사람을 밀어내는 나의 벽이 사라집니다. 그럼 져줄 수 있습니다. 져주면 이길 수 있습니다. 내가 자유로워지고, 행복해질 수 있답니다.” (p.80)
‘내가 옳다.’라는 생각. 나는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내 양심을 속일 수 없다.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늘 부딪힌다. 부딪혀야 한다. 부딪힘의 정도가 사안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오늘 하루도 몇 번이나 부딪혔는지 모른다. 때론 가볍게 툭툭 털고 지나갈 부딪힘도 있고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거나 완전히 뚜껑이 열려 폭발 직전에 이르는 부딪힘도 있다. 나와 우리는 늘 이 부딪힘의 원인을 ‘너’에게서 찾는다. 이미 ‘나’를 합리화한 상태에서 ‘너’를 본다. 니가 잘못 했고, 니가 먼저 시비를 걸었고, 니가 먼저 화를 냈기 때문이고……. 원빈 스님의 말대로 ‘내가 옳다.’, ‘나는 옳다.’, ‘내가 뭐!!’라는 생각이 온통 ‘나’를 가득 채우고 있어서다. 맞는 말이다.
어딜 가나 트러블메이커가 존재 한다. 내가 매일 만나는 사람 중 한 명도 그런 이다. 자기가 다 옳고 독불장군처럼 밀어 붙인다. 칭찬하는 듯 하면서 빙빙 둘러 비꼰다. 일일이 참견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다.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정말 나보다 그 사람이 옳다면?’ 머리가 멍해졌다. 나는 늘 내가 옳고 그 사람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사람이 트러블메이커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 사람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트러블메이커라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나와 그 사람 사이에서는 무조건 ‘내가 옳다.’라고 할 수 없는 게 아닌가?
져주는 것. 이것도 어렵다. 말은 정말 쉬운데 어렵다. 직장에서도 어렵고 가족에게는 더 어렵다. 친한 지인들에게도 어렵다. 승부를 벌여서 지는 것보다 더 어렵다. 어설프게 져주다가는 오히려 상대방을 더 화나게 만들 수도 있는 노릇이다. 스님의 말대로 내 안의 두려움을 버리고 밀어내는 것이 져주는 것이다. 문장은 간단하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나는 그 트러블메이커에게 져 줄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 없다. 아직 그 사람을 보며 평정을 찾을 만큼의 수양이 덜 된 탓이다.
“나는 포커페이스다. 포커페이스다……. 그러니 내 마음을 들키지 않겠지?”
지나가던 친구가 한마디 던집니다.
“너, 화났니?”
멍~. (p.114)
나는 절대 도박을 할 수 없다. 나는 완벽한 언포커페이스다. 딜러가 던져 주는 카드를 모조리 다른 이들에게 보여 주고 나서 게임을 시작하는 것이다. 지고 들어가는 게임이다.
혈기가 왕성하던 때(물론 지금도 왕성하지만^^)에는 감정이 고스란히 얼굴에 드러나는 것이 싫었다. 이미 내 마음을 들켜버리는 것 같기도 하고 책을 읽으면서 이성적이고 냉정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타고난 것은 꾸준한 노력과 습관으로도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내 감정을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낸다. 불편하기도 하고 편하기도 하다.
그래도 원빈 스님보다는 낫다. 나는 일반인이라 굳이 포커페이스를 해야 할 때가 그렇게 많지는 않은데 스님은 성직자인데 포커페이스를 못하신다니, 어지간히 힘드시리라 짐작 된다. ^^ 절에서 만나는 스님들은 늘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계실 때가 많은데 법복을 입고 언포커페이스하는 원빈 스님의 모습이 어떨지 궁금하다.^^
“자신을 가치보다 높게 생각하는 것, 오만입니다.
자신을 가치보다 낮게 생각하는 것, 역시 오만입니다.
행복해주기 위해서는 자신의 가치를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겸손을 가장한 오만의 향기를 내뿜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세요.” (p.199)
겸손을 가장한 오만의 향기…….
할 말이 없다.
정확하게 나를 두고 하는 말이다.
나의 가치를 높게도 낮게도 생각하지 않는 훈련과 노력이 필요하다.
나의 가치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나도 상대방도 피곤하게 하지 않는 지름길이다.
나는 원빈 스님이 나와 같은 3사관학교 출신이라 급호감이 갔지만 이 책은 원래 내용 만으로도 참 좋다. 가볍게 쓰인 글들이 아님은 금방 알 수 있다. 다른 것보다 ‘너’, ‘세상’ 보다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스님의 글귀와 생각들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