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의 탄생 - 기획이 곧 예술이다
소홍삼 지음 / 미래의창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어릴 때부터 무대에 서는 것을 좋아 했다. 아버지의 가무를 이어 받은 듯하다. 지금은 없겠지만 초등학교 시절 학예회 같은 것을 했는데 매년 나갔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3인조 댄싱팀을 만들어 현진영과 와와의 춤을 따라 하기도 했었고 김민우의 사랑일뿐야를 부르기도 했었다. 초등학교 소풍과 수학여행 사진은 죄다 까부는 것투성이다. 사람들은 내게 무대 체질이라고 했다. 첫인상은 다소 무서워 보이지만 끼가 많고 붙임성이 좋았다. 남을 웃기는 게 유일한 낙이던 시절도 있었다. 누가 나보다 웃기고 있나 두리번거리다가 멀리서 웃는 소리가 들리면 얼른 달려가 끼를 부리기도(?)했다. 실제로 가까운 친구 몇은 연극영화과에 진학하라는 진지한 권유를 하기도 했었다. 어떤 사람들은 무대공포증, 마이크공포증이 있다고 하는데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는 무대에 올라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 하는 게 좋고 나로 인해 웃는 게 좋다. 악기도 열렬히 배우던 때가 있어서 그쪽으로 나가볼까 고민도 했었다. (처음 드럼을 배우게 된 계기는 드럼을 치면 여자애들한테 인기가 좋았기 때문이다ㅎㅎ)

내가 서 본 무대 중 가장 크고 기억에 남는 무대는 두 군데였다. 하나는 고등학교 때 중창대회에 시대표로 나간 무대였고 또 하나는 대학 때 300명 정도 모인 연합수련회에서 드럼을 친 무대였다.

지금은 많이 점잖아(?) 졌다. 나이가 든 탓도 있고, 결혼을 한 탓도 있고, 힘이 달린 탓도 있을 것이다. 확실한 것은 분명히 어린 시절 보다 무대에 서는 일이 적고 서고 싶은 마음도 많이 줄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게 무대는 로망이다. 꼭 많은 사람들을 앞에 둔 무대만이 아니라 내가 가진 능력과 소질을 가지고 설 수 있는 무대가 있다면 언제든지 서고 싶다. 무대 위에서 뭘 할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무대에 서는 것이 힘들지 않다는 것이 중요하다. 어쨌든 나는 무대체질이니까.

살다보면 언젠가 무대에 설 수 있는 날이 올 것 같다. 그게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책 「무대의 탄생」은 무대를 만드는 사람들과 그 무대를 통해 메시지를 얻는 사람들, 그 무대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각 사례별로 기획배경 및 추진 과정, 에피소드 및 비하인드 스토리, 홍보마케팅 실행, 성공·실패원인 분석 등을 통해 예술 경영현장에서 유용하게 참고할 수 있는 자료가 되도록 하였다.” (p.7)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 사회에서 선 무대들 중 몇 가지 무대에 대한 기획배경에서부터 성공과 실패에 대한 분석에 이르기까지 읽기 쉽게 풀어내고 있다. 앞서도 말했지만 무대에 서는 것을 좋아했던 학창시절을 뒤로 한 채 이제는 생업과 나이에 묶여 제대로 된 무대에 설 일이 없는 내게 이 책은 못 다 이룬 꿈을 대신 이룬 사람들의 기록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무대를 좋아하지만 실제로 무대를 찾아다닌 것은 별로 즐기지 않는다. 결혼 전에는 뮤지컬 마니아였던 아내가 결혼 후에는 나와는 한 번도 뮤지컬을 보러 가지 않았다. 나는 뮤지컬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끄럽고 분잡스러우며 집중이 잘 되지 않고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너무 비싸다는 것이었다. 영화 한 편 보거나 책 한 권사거나 CD 한 장 사는 돈의 몇 배나 되는 돈을 지불해야 객석 저 끄트머리에 자리를 잡을 수 있다. 뮤지컬 배우들이 조금 성공하면 TV드라마에 많이 나온다. 아무리 뮤지컬을 해도 스타가 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궁금했다. 비싼 관람료를 받고 연일 매진되는 뮤지컬 공연이 엄청나게 많은 데 왜 늘 뮤지컬 배우들은 곤궁한 삶을 살고 있는지 말이다. 대형 기획사에서 독점을 하고 있거나 스타마케팅에만 치중하고 있거나 대관료가 너무 비싸거나 등등 혼자서 생각을 해보기도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정확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뮤지컬

“반면 공연계 일각에선 현실적 수용론을 제기하는 ‘주화파’도 없지 않았다. 이들은 그동안 한국 뮤지컬계가 과다경쟁으로 로열티를 올리고, 지나치게 스타마케팅에 의존해 제작비가 상승하고, 티켓 가격에 거품이 발생하는 등 문제점이 많다는 입장” (p.166)

“창작뮤지컬은 초기 제작비가 많이 드는 반면에 성공확률은 매우 낮다. 그러다 보니 수입 비용이 막대하게 들더라도 작품의 인지도나 완성도가 보장되는 외국뮤지컬을 선호하게 되는 것이다.” (p.285)

 

2000년대 중반 일본의 대형 기획사 극단 시키가 라이언킹을 가지고 국내로 진출했는데 이것을 두고 당시 엄청난 반대가 있었다고 한다. 가뜩이나 열악한 국내 뮤지컬 시장에서 일본의 대형 기획사에게 앞마당을 내줬다는 아우성에서부터 문화에 대한 일본 식민지화의 시작이라는 분노에 이르기까지 대단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극단 시키의 진출을 현실적으로 찬성하는 부류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 한국 뮤지컬계는 1세대 아이돌 출신 연예인들의 스타마케팅 전략으로 엄청난 뮤지컬 인기를 구가하던 때였고 그로 인해 뮤지컬 시장의 파이 자체가 과다 경쟁 구도로 들어가던 때였다. 당장 우리 편끼리 싸워도 ‘너 죽고 나 죽고’식의 무대포 경쟁이 되어 버리는데 엄청난 힘을 가진 극단 시키 앞에서는 풍전등화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극단 시키는 오랜 노하우와 세련된 연출, 무대 장치에도 불구하고 당시 국내 뮤지컬 관람료 20∼30% 수준으로 티켓을 판매 했다. 극단 시키 측은 이미 한국 뮤지컬 시장을 파악한 것이었다. 저자가 책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지나친 과다경쟁과 스타마케팅으로 티켓 가격에 거품이 잔뜩 들어 있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뮤지컬 질은 더 높지만 티켓은 저렴한 마케팅 전략을 들고 들어 온 것이었다.

지금도 이러한 구조는 크게 변화되지 않은 것 같다. 여전히 창작뮤지컬보다는 라이선스 뮤지컬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몇몇 스타 배우들은 국내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의 대부분을 돌아가면서 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도 이 배우가 주연하고 저 작품에서도 저 배우가 주연을 한다. 여전히 뮤지컬 배우들은 영화나 드라마에 진출한다. 더 돈이 되기 때문이다.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접근하는 시각부터 애초에 틀린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어느 정도는 손해 볼 것을 감수하고 뮤지컬을 만들어야 하는데 시장 논리로만 접근을 하니 이미 검증이 되고 대중에게 알려진 라이선스 뮤지컬을 들여올 수밖에 없었다. 위험부담을 안고 뮤지컬을 순수하게 창작해 내려는 마음이 없는 한 앞으로도 계속 이런 기형적 형태의 뮤지컬을 봐야 한다.

책에서 소개된 창작 뮤지컬 「명성황후」와 「대장금」, 그리고 세계적인 넌버벌 퍼포먼스 「난타」도 기획 초기부터 성공을 하리라 예상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수도 없이 실패하고 적자를 낸 후에야 뮤지컬의 심장으로 퍼포먼스의 심장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 이 작품들을 만들어 낸 PMC프로덕션은 공동대표로 있는 송승환씨로 더 알려져 있다. PMC프로덕션이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책에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나는 지금 한국의 무대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에 더 치중해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싶어 그 내용은 쓰지 않는다.

 

 

“실제로 지난 『2008년 뮤지컬 실태조사』에서도 뮤지컬 작품 수입금액을 기준으로 상위 10편을 살펴보면, 창작뮤지컬은 단 1편뿐이다. 국내 뮤지컬계를 온통 라이선스 뮤지컬이 휩쓸고 있다는 점을 여실히 드러낸 연구 결과이다.” (p.178)

 

몇 년 전 통계지만 참고할 만하다. 라이선스 뮤지컬이 이미 구조화 된 한국의 뮤지컬 무대에서 창작뮤지컬이 살아남을 가능성은 적다. PMC프로덕션의 선례가 있기는 하지만 아주 드문 정도가 아니라 유일한 경우라고 봐야 한다. 앞으로도 한국의 뮤지컬 팬들은 계속해서 엄청나게 비싼 티켓을 사야하고 라이선스로 사온 외국 뮤지컬을 봐야 할 것이다. 쉽게 깨질 구조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오페라

“50만원이 넘는 티켓 값은 ‘오페라의 대중화’라는 취지를 무색하게 만드는 지나친 상업성 추구라는 비난을 불렀다. 오스트리아의 브레겐츠음악제의 야외 오페라, 핀란드 사본린나의 야외 오페라축제 등에서도 티켓 값은 아무리 비싸도 21만원을 넘지 않고 3만원이면 저렴한 티켓을 구입할 수 있다.” (p.100)

 

오페라도 뮤지컬과 거의 비슷한 구조적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명한 해외 라이선스 오페라가 반짝 국내에서 인기가 있으면 이후에는 모조리 해외 라이선스 오페라로 도배가 된다. 서울뿐만 아니라 지역 대도시에서도 오페라 무대가 선다. 사실 오페라는 뮤지컬 보다 더 어렵다. 나는 지역에서 열린 오페라축제에 딱 한번 가봤다. 지루해도 그렇게 지루할 수 없었다. 물론 오페라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야 황홀한 시간이겠지만 무슨 말인지도 모를 대사와 노래를 듣고 있는 것이 곤욕이었다. 오페라는 뮤지컬보다 더 비싸다. 교양 있고 돈 좀 있고 품위 있는 사람들이 전유하는 무대로 인식되어 있다. 외국어로 부르는 노래와 하는 대사를 못 알아들어도 알아듣는 척 하는 것인지, 진짜로 다 알아 듣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오페라 티켓을 주저하지 않고 구입한다. 세계적인 오페라 축제보다 왜 한국의 오페라 티켓 값이 무모하게 비싼지 모르겠다. 한국 사람들이 세계에서 가장 비싼 값을 주고 외국 브랜드 옷이나 명품을 사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어서 오페라 같은 고급문화를 헐값에는 볼 수 없어서 그런 것인지…….

 

 

“오페라의 대중화와 관객개발을 위해서는 오페라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문제와 함께 우리말과 언어로 관객에게 다가가야 한다. 가사를 우리말로 고치면 음악적인 뉘앙스에 변화가 발생할 수 있지만, 라이선스 뮤지컬이 시행초기의 어색함을 벗어났듯이 오페라도 충분히 가능하다. ‘원어로 공연을 해야 있어 보인다.’는 오폐라계의 낡은 관행과 인식에서 시급히 탈피해야 한다.” (p.113)

 

저자의 주장에 100% 동의한다. 구조적 문제가 있지만 뮤지컬은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대중화 되었다. 재미있게 즐기고 비싼 티켓 값이 생각도 나지 않을 만큼 기쁘게 기립박수를 치고 나온다. 그러나 오페라는 뮤지컬에 비하면 아직 멀었다. 아~! 물론 오페라가 ‘그런 저급한 뮤지컬과 나는 동급으로 여기지 마라. 나는 고급을 유지할래!!’라고 하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오페라가 더 대중화 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기 위해서는 바뀌어야 할 것이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원어가 아니라(공연을 하는 배우들도 얼마나 힘이 들까) 배우도 관객도 다 알아듣는 우리말도 하면 안 될 이유가 도대체 뭔지 좀 알려주기를 바란다. 저자의 지적대로 뮤지컬도 처음에는 무지하게 낯선 장르였다. (내게는 아직도 낯선 장르이고 더 친해질 여력이 없는 사이기는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뮤지컬 배우들이 유명해 지고 많은 사람들이 뮤지컬 무대를 찾는다. 대중화에 성공한 것이다. 저자는 오페라도 뮤지컬과 같은 전철을 밟아야 한다고 피력하지만 글쎄……. 자존심 강한 오페라가 그렇게 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현재까지는.

 

 

“크레디아 4대 프로젝트. 조수미,신영옥,홍혜경의 뒤를 이을 ‘제4의 소프라노’를 찾아라. 한국형 크로스오버 테너를 찾아라, 유키 쿠라모토에 대항할 한국의 뉴에이지 아티스트를 찾아라, 실내악을 활성화시킬 20대의 매력적인 남성그룹을 만들어라.” (p.191)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로 유명한 ‘앙상블 티토’를 만든 크레디아라는 기획사는 클래식 기획사다. 그들의 4대 프로젝트가 오페라계에도 좀 자극을 줬으면 한다. 대중에게 다가가지 않는 무대는 대중이 외면한다. 당연한 이치다. 크레디아에서 기획한 ‘앙상블 티토’는 용재 오닐의 스토리로 인해 급격하게 유명해지기도 했지만 실내악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높이는 데는 일조했다. 이미 활동하고 있는 크로스오버 테너도 있고 한국적 뉴에이지 아티스트도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 수 있으리라 본다. 일단 어렵지 않으니까 다가갈 수 있다. 오페라처럼 부담스럽지 않다.

 

 

 

서커스

“동춘서커스 2009년 11월15일 청량리 공연을 끝으로 활동을 중단. 현재 총 단원 수가 50명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대부분이 중국인이다. 현재 이 인원으로는 원활한 서커스공연을 펼치기 어렵다.”

 

동춘서커스가 이렇게 어려운 상황인 줄 전혀 몰랐다. 동춘서커스는 아니지만 아주 어린 시절 공성운동장에서 크게 열린 서커스 공연은 아직도 생생하다. ‘태양의 서커스’가 이미 세계적인 컨텐츠가 된 마당에 아직도 천막 서커스 공연을 해야 하고 단원의 대부분이 중국이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단원이던 개인이 홀로 운영을 하고 있고 단원들 월급을 주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며 서커스 전용극장을 만들기로 한 계획은 여러 번 수포로 돌아갔다고 한다. 마음이 아팠다. ‘태양의 서커스’나 ‘중국의 기예’와는 분명히 다른 동춘만의 서커스가 사람들의 애환을 달래고 시름을 덜어주는 역할을 했는데……. 저자는 여러 가지 방향으로 동춘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는데 현실성이 적어 보여 소개하지는 않는다.

다만, 사람들이 좀 더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아이돌 올림픽에서 출중한 운동 실력을 선보인 샤이니의 민호군이 동춘 특별 게스트로 곡예를 한다든가 육상돌 시스타 보라양이 공연을 한다면 관중 동원은 물론 시큰둥하던 지자체나 해당 기관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을 수 있을 텐데……. 그런 방법이 아니면 동춘서커스를 살릴 방안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재정적 압박과 수입 및 지출간의 격차 속에서도 좋은 작품을 무대에 올렸을 때의 성취감과 보람은 경제적 손해에서 오는 불안과 좌절감을 뛰어넘을 만한 보상감을 안겨준다. 그래서 예술경영인들은 불 보듯 뻔히 적자가 예상될지라도 도전하고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무대에 올린다.” (p.338)

 

아직 한국에서 오르는 모든 장르의 무대는 경제적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고 한다. 자세한 내막을 다 알지는 못해도 이해가 되는 측면이 있다. 문화·예술 분야로 돈을 버는 장르는 아주 극소수로 한정되어 있다. 저자는 책에서 줄곧 무대를 만드는 기획자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연출·배우·관객도 중요하지만 무대를 만들고 디자인하고 운영하는 기획자가 무대를 결정하는 것이 대분이라고 한다. 많이 부족하지만 그나마 한국의 문화·예술이 이 정도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은 저자의 말대로 돈 안 되는 장르에도 사명감과 열정을 가지고 뛰어드는 그들 기획자(예술경영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동춘서커스가 살아났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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