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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기른 다람쥐 ㅣ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29
이상권 지음 / 자음과모음 / 2013년 2월
평점 :
이상권 소설집은 두 번째다. 이전에 읽은 「하늘로 날아간 집오리」에 대한 기억이 강렬해서 더욱 기대를 갖고 이 책을 읽었다.
「고양이가 기른 다람쥐」에는 4편의 소설이 담겨 있다. 이전 책만큼 강렬했다.
이상권 작가를 어떻게 분류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친자연주의 작가, 생태주의 작가, 어른을 위한 동화 작가, 친농촌 작가 등 붙이고 싶은 이름이 많다. 그의 책을 읽으면 이해될 것이다. 왜 이런 이름들을 붙여주고 싶은지. 책의 표지와 제목만 봐서는 아이들을 위한 동화나 청소년 문학이 아닐까 싶은데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다. (다시 책을 보니 출판사에서는 청소년 문학으로 이미 분류해 놓고 있다. 개인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이 책에 실린 4편의 작품들은 하나하나가 다 메시지를 담고 있다. 모두가 알고 있고 흔한 일이지만 가볍게 치부할 수 없고 그냥 흘려들을 수 없는 메시지다.
최근 들어 만난 소설 중 가장 강렬하게 내 마음에 와 닿았다. 일부러 피하지 않고 외면하지 않고 문제에 직면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무늬만 그럴 듯 해 보이고 흉내만 내는 아류들과는 다른 깊이가 있다. 최근 각종 문학상 수상작의 내용들이 현실을 반영하는 것들이 많다. 추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현실의 팍팍함에 동의한다는 반증이 되기도 하겠다. 이상권 작가는 소재 만 놓고 보면 따스하고 시골 냄새 나고 할머니 생각나게 하는 것들이지만 더 포근하게 보이려 포장하거나 왜곡하거나 값싼 감동을 선사하기 위해 미사여구를 덧붙이지 않는다.
“미안하다, 태희야...나 요새 삼겹살만 먹으면 이렇게 토해. 단 한 점만 먹어도 토해.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막 아우성치듯이 토해져 나와.” (p.15)
“태희야, 지난 2월에... 대민 지원을 나갔는데, 그게 동물들 살처분하는 일이었어... 그때부터야.” (p.15)
<삼겹살>이라는 작품은 삼겹살이라면 사족을 못 쓰던 오빠가 군 입대 후 나온 휴가에서 삼겹살을 먹지 못하고 모두 토해내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나는 몇 해 전 창궐하는 전염병을 막기 위해 수많은 가축들을 산 채로 매장하는 TV뉴스 장면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이후 그 어떤 소설에서도 이런 소재를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더욱 놀랐다. 작가는 시대를 반영하고 현실의 가장 여리고 약한 곳에 펜을 들이 밀어 몸으로 써내려가야 하는 사람들인데 이상권 작가를 통해 처음 이런 주제를 가진 작품을 만나게 되었다. 물론, 이미 이런 주제로 출간된 작품이 있는데 내가 알지 못할 수도 있다.
당시 가축 생매장을 담당하는 공무원이 죽기도 하고 정신병에 시달리기도 했으며 가축을 잃은 농민이 절규하는 장면들도 고스란히 TV로 전해졌다. 모두들 가슴 아파하고 그 규모가 워낙 컸던 터라 내 가족 아니면 내가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되기도 해 더욱 암담했었다. 군대에서 하는 대민지원이라는 것이 실제로 수통을 차고 일을 하는 병사들이 취사선택할 수 없는 일이기에 더욱 비극적이다. 수해 복구나 산불 진화 대민지원은 그나마 낫다. 살아있는 가축을 생매장 하는 일에 동원된 일반 병사들은 살아 있는 악몽을 경험했다.
두 번의 대민지원을 다녀온 후 부대에서 나온 돼지고기를 더 이상 먹지 못한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던 돼지고기 였는데 삼키지 못한다. 마치 산 채로 죽어버린 돼지의 환영이 그대로 살아 있는 것처럼 그렇게 괴상한 트라우마에 사로잡힌다. 휴가를 나와서도 마찬가지다. 이미 그의 몸은 돼지고기를 안으로 받아들일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무슨 팔자가 이렇게 사나워서 살아생전에 왜놈들이 염병하는 것도 보고, 6.25전쟁 나서 서로 총질해대는 것도 보고, 광주에서 군인들이 멀쩡한 시민들한테 총질해대는 것도 보고, 이렇게 지 자식 같은 소들을 다 잡아 죽이는 것도 보나…….” (p.186)
<젖>이라는 작품에서는 소 구제역이 주요 소재로 사용된다. 작가의 고향이 남도 쪽인지는 모르겠지만 광주 하면 이미 비극적인 여운이 떠오른다. 불과 30년 전에 수많은 사람들이 무고하게 희생된 피의 땅이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곳은 광주와는 떨어진 시골인 것 같다. 시골에서 땅만 부쳐 먹고 살던 노인들일지라도 광주에서의 비극은 알고 있다. 그만큼 비극적이고 처참하고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현실이었기 때문이리라. 왜놈들이 염병하고 같은 동포끼리 총질하는 꼬락서니에 그치지 않고 광주 학살까지. 더군다나 자식같이 키워오고 함께 지내던 소들을 잡는 꼴까지 마주한 노인들은 넋을 놓는다. 넋을 놓지 않으면 그것이 비정상일 것이다. 베트남에서 시집 온 쩐 투윗은 믿고 의지하던 남편의 교통사고를 마주 한다. 늙은 시어머니의 그칠 줄 모르는 잔소리와 의심을 이겨 내오던 유일한 도피처였던 남편의 부재는 필사적으로 소를 지키려는 시어머니의 발작적 행동에 버금가는 충격이었다. 하지만 쩐 투윗은 포기하지 않는다. 생을 놓지 않는다. 마음만 먹으면 잘나가는 베트남 언니를 통해 지긋지긋한 시골과 시어머니에게서 도망갈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기적적으로 출생한 송아지를 지켜내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젖을 물리는 어머니로 되살아난다.
“소,닭,돼지,염소... 오랫동안 인간의 살과 영혼이 되어온 보살님들이여, 부디 우리 인간들의 어리석은 탐욕을 용서하시고, 원망을 푸시고, 다시는 인간들의 가축으로 태어나지 마십시오... 자, 그러허니 모든 원한과 근심을 다 내려놓으시고 편안하게 떠나가십시오.” (p.147)
독실한 교회 신자인 시어머니는 남편의 교통사고도, 소를 생매장 하는 것도 쩐 투윗이 신심으로 예수를 믿지 않고 교회에 출석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억지를 부린다. 잠시라도 자기가 자리를 비우면 쩐 투윗이 당장 도망갈 거라고 지레 짐작해 멀리 사는 동생을 불러 감시하게 한다.
쩐 투윗은 우연히 본 스님이 동물들의 명복을 비는 염불을 듣게 된다. 시집오기 전 베트남에서도 불교를 믿지는 않았지만 진심으로 동물들의 넋을 기리고 남편의 완치되도록 빈다.
이 부분은 저자가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소설 집필의 동기가 된 생각과 일치된다.
“이번 소설집을 엮으면서 숱한 동물들을 떠올렸다. 특히 구제역이다 조류독감이다 하여 아무런 유언조차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등진 수백 수천만 동물들의 영혼을 떠올렸다. 잔인한 학살극이었다. 그런 학살극이 또 있었을까? 그들은 아무런 죄가 없다. 오직 동물로 태어났다는 죄밖에 없다. 그들은 인간들을 원망조차 하지 않고 죽어갔다. 나는 한 인간으로서 너무 부끄러웠고, 어린 시절 나를 거쳐 간 숱한 생구들에게 미안했고, 내 살이 되었던 숱한 생명들에게 죄스러웠다.” (p.232)
시골 태생인 이상권 작가에게 동물들은 나와 같은 도시 출신과는 전혀 다를 것이다. 애완용으로 기르는 동물들과는 또 다른 교감이 있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작가는 구제역이다 조류독감이다 하면서 생매장한 것을 학살극이라고 표현한다. 조금 과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소설을 통해 작가는 줄곧 인간들의 무자비함을 드러낸다.
“어이, 상권이, 우리는 저 닭님들은 모시고 살고 싶네. 그걸 업으로 받아들이고 싶네. 논농사를 접고 닭농사를 지으려고 하네. 벼를 키우는 것이나 닭님을 키우는 것이나 다 똑같은 것 아닌가. 다 모시는 것이지. 잘 모셔서 우리의 몸속으로 들어오게 해야 우리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해지는 것 아닌가? 닭님들을 모시고 싶네.” (p.96) <시인과 닭님들>
그래서 전원생활에서도 이웃의 간섭으로 제대로 키우지 못했던 닭들을 양도한 문인 선배의 말에 더욱 감동을 받는다. 인간이 무자비하게 밀어붙인 4대강 공사와 인간이 저지른 자연 파괴로 인해 되돌려 받고 있는 이상기후에도 끄떡없이 살아남은 닭들을 향해 작가의 문인 선배는 존대를 한다. 닭이 아니라 닭님이라 높이는 것이다. 수많은 처세술 서적과 자기관리 서적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당장 닥친 위험 앞에서는 속수무책인 인간들보다 어린 새끼들 한 놈의 털 하나까지 다치지 않고 위험을 이겨낸 닭님들의 생태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작가는 사람이 인정받고 존중받아야 할 만큼 동물들에게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이 동물애호가들을 위한 책이 아니지만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미 동물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당연히 생명으로서 동물들을 존중하고 그들과 평화롭게 살 길을 찾아야 하는데 인간의 삶이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드러내 놓고 ‘나는 동물 애호론자요.’ 떠들거나 철저한 채식주의로 살 거나 그린피스 활동을 하거나 모피와 가죽의 사용을 반대해 누드 퍼포먼스를 펼치거나 하는 등의 적극적인 활동을 모두가 할 수는 없다. 일상에서 동물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생각 하나를 바꾸는 편이 차라리 빠르고 옳은 길이라 생각 된다.
당장 닭님, 개님, 고양이님 부를 수는 없지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내 생각의 어떤 부분을 바꿀 수 있는지 생각해 볼 요량이다.
작가처럼 생구로 동물들과 함께 살아 온 경험은 없다.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어느 쪽이든 편견을 가지고 성급하게 판단하지 않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이상권 작가를 통해 이 땅의 민낯을 있는 그대로 마주할 수 있어서 불편했지만 의미 있는 시간 있었다. 그저 뜬구름 잡는 얘기 실컷 들으면 들을 때는 재미있을지 몰라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이내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이상권 작가의 작품은 오래토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해 주고 싶은 작품이고 작가다.
“특히 집에서 기르는 짐승들은 사람 말을 알아들어. 소도 알아듣고, 돼지, 개, 닭, 염소도……. 쥐는 사람이 기르지는 않지만 사람과 같이 살지. 그래서 쥐도 사람 말을 알아듣는단다.” (p.217) <고양이가 기른 다람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