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맨손으로 학교 간다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지음 / 양철북 / 201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나의 학창 시절에는 문집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흔하디흔한 졸업기념 문집도 없었다. 그저 학교에서 하는 반공 표어·포스터 그리기만 했던 기억이 또렷할 뿐이다. 그때는 한 반의 학생이 50명에서 60명에 이르렀고 초등학교 저학년 때에는 학생들이 너무 많아 오전, 오후반으로 나누어 학교에 다니던 기억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인성교육이니 1:1 맞춤지도니 하는 것들이 가당키나 했을까 싶다. 요즘은 적어도 내가 학교에 다니던 때보다 학생 수가 반 정도는 줄어들었다고 알고 있다. 그렇지만 교사 1인당 30명에 가까운 학생들을 지도해야 하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임은 분명하다. 요즘 아이들이 예민하기도 하고 우리가 학교에 다니던 때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스트레스를 받는 지경이라 더욱 신경이 쓰이고 어려울 것이라 생각된다.

학교를 둘러싼 여러 가지 문제들이 이제는 학교와 학교의 구성원들이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 져서 3자의 입장에서 안타까울 때가 많다. 그나마 우리 때는 평생을 기억해갈 아름다운 추억 몇 개쯤은 가지고 있는데 요즘 학교 얘기를 들어보면 추억은커녕 큰 사고나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비록 나는 문집을 한 번도 해보지 못했지만 나의 학창시절 다른 반 친구들은 반 문집에 실린 자신의 글을 보여주며 자랑스러워했었다.

요즘 학교에서는 이런 문집 같은 것을 할 수나 있을지 의문이다.

나의 학창시절과 지금의 학교가 가진 공통점은 있다. 바로 일기쓰기다. 이 책에도 아이들이 쓴 일기가 많이 삽입되어 있는데 사실 우리 때 일기는 거의 벼락치기였다. 책에서처럼 매일 선생님이 거두어 검사를 하거나 코멘트를 달아줬던 기억이 없다. 일기도 방학숙제여서 개학을 하루 앞두고 부랴부랴 밀린 일기 쓰느라 쩔쩔매던 기억만 가득하다.

학생수가 30명이든지 60명이든지 이 일기쓰기는 꽤 중요한 것 같다. 선생님 입장에서야 비슷비슷한 일기 수십 개지만 선생님이 보는 내 일기는 단 하나이기 때문이다. 선생님과 나만 아는 비밀이다.

그런 비밀들을 담은 책이 바로 이 책 「우리는 맨손으로 학교 간다」이다. 글쓰기교육연구회 선생님들이 엮은 「우리반 일용이」를 너무 재밌고 의미 있게 읽었던 터라 이 책도 단숨에 읽어냈다.

 

 

「우리반 일용이」라는 책을 통해 학생들을 마음으로 사랑하고 사명감으로 교사 생활을 하고 있는 선생님이 아직도 많다는 사실에 감격했고 개인적으로 위로를 받기도 했다. 직접 만나지는 못한 선생님들이지만 아이들의 작은 목소리와 신음에 반응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해 돌보고 양육하는, 그래서 부모와 같은 역할을 하는 선생님도 만날 수 있었다. 이 책이 아이들을 지도하고 양육하고 돌보는 선생님들에게 조금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우리는 맨손으로 학교 간다」는 문집이나 과제, 일기를 통해 들여다 본 아이들의 속내에 조금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선생님과 아이 두 사람만의 비밀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물론, 정제되지 않고 터져 나오는 아이들의 속내를 판단하거나 미루어 두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듣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기뻐하는 선생님들의 정성도 가득 들어 있는 책이다.

 

 

<나뭇잎>

 

나는 오늘 집에서 늦게 일어낫다.

그래서 학교로 뛰어 가는데 나무에 조금 있던 잎이

더 이상 못 참아 엄마 품에서 떨어졌다.

나뭇잎이 불쌍하다.

그래서 그 벌어진 잎을 쭈어서 엄마나무 옆에

나뚜어 주었다.

 

 

아이들 글을 읽으니 누군가 내 머리를 세게 내리치는 것 같았다. 1년 가까이 아이들 형편이 어떤지 하나도 모르고 지내 왔구나. 그저 겉으로 보이는 모습으로만 아이들을 판단했구나.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아이들의 삶을 가꾼다고 떠들어 댔구나.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p.223)

 

맞춤법은 다 틀리고 시적 은유도 없는 시지만 아이의 속내가 고스란히 담긴 시다. 평소 선생님 말을 지독하게 듣지 않고 수업에도 집중하지 못하는 한 학생이 쓴 시에는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던 속마음이 가득했다. 엄마를 잃은 아이가 나무에서 떨어진 나뭇잎에 자신을 투영한 것이다. 자신처럼 나뭇잎은 엄마 품을 잃어버리지 말라고 ‘잎을 쭈어서 엄마나무 옆에 나뚜어 주었다.’ 선생님은 비로소 아이의 속내를 알아차린다. 그리고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자신이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아이를 판단했던 것을 반성한다. 이것이 교육자의 자세가 아닌가 싶다. 혹시나 교사로서의 위신이 떨어질까 봐 자신의 잘못된 행동과 말을 주워 담지 못하고 모른 체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과 진정한 소통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저 시를 본 선생님은 이 아이가 전과 같은 행동을 다시 한다 할지라도 대하는 태도나 행동, 말이 달라질 것이다.

 

 

“마음이 조금 가라앉고 아이들과 함께 앉으니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가위로 목을 그었다는 말에 그냥 흥분해 소리치고 때렸다. 선생 하다 보면 더한 일도 있는데 슬기롭게 풀지 못하고 일을 그르치기 일쑤다. 그다음엔 괴로워하고, 처음 선생 시작했을 때나 열여섯 해 지난 지금이나 똑같다.” (p.119)

 

아이 둘이 서로 싸워 한 아이가 다른 아이 목에 가위로 그었다는 것을 듣고 야단치지 않은 교사가 있을까? 아주 호되게 야단을 치고 부모님을 불러야 할 정도로 심각한 사안이 될 수 도 있다. 하지만 그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교실 내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에 일일이 경중을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게 된다면 마치 군대 훈육하듯이 아이들을 교육할 수밖에 없다. 위의 선생님처럼 슬기롭게 교실의 일들을 풀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상황만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한 번 더 생각하고 돌아보는 자세. 위의 선생님은 16년 동안 교사생활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타성에 젖지 않는 선생님이다. 여전히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할 줄 아는 선생님이다. 사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쉽게 결정내리고 체벌하거나 원리원칙대로 처리하는 것은 오히려 쉽다. 하지만 전후좌우를 따지고 문제를 둘러싼 당사자들의 말을 다 듣고 누구도 더 큰 상처를 받지 않도록 하는 과정은 어렵고 힘들다. 그래도 이런 선생님들이 있어 아직 학교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혜는 준혁이 자리를 부지런히 오가며 고구마 도장을 빌려 찍더니 다했다고 가지고 왔다 잘 못했다고 생각했지만 덤덤하게 잘했다고 말해 줬다.” (p.120)

“어제 지수한테 편지를 주었는데 오늘 답장을 써 왔다. 편지에 다시는 까불지 않겠다고 해 놓고 다른 날보다 더 말을 안 들었다.” (p.117)

“아침에 준혁이한테 초코파이 하나를 상으로 줬다. 글씨를 잘 쓴다고 줬다. 준혁이 글씨는 정말 엉망이었다.” (p.121)

 

김광견 선생님의 일기다. 이 일기를 읽고 너무 많이 웃었다. 지혜가 한 과제는 잘 못했지만 준혁이를 열심히 도와주던 마음씨가 예뻐 잘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정말 엉망인 준혁이의 글씨를 보고도 상을 줬다고 한다. 이런 선생님들이 정말 많았으면 좋겠다. 하루 이틀 교직 생활한 선생님들이 아닐 테고 딱 봐도 잘했는지 잘 못했는지 알 수 있고 반의 아이들 모두에게 똑같은 사랑을 줄 수는 없을 것이다. 수십 명의 아이들 모두가 마음에 들리는 없으니까. 하지만 차별은 하지 않아야 한다. 비록 선생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성에 차지는 않지만 그 모습 그대로 칭찬해주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선생님이 해주는 칭찬은 엄청난 효과가 있으니까.

 

 

“우리 반에는 상이 참으로 많다. 다달 연필 깎기를 하면서 주는 손재주 있다 상, 모둠 활동을 자랬다고 모둠 식구 모두에게 주는 모둠 상, 훌라후프 잘 돌린 상, 모래 쌓기 잘한 상, 맨발로 잘 걸은 상, 벌 받기를 잘한 상... 결석을 한 뒷날에 주는 결석 상도 있다.(중략)

상은 칭찬이다. 그래서 상은 많을수록 좋지만 다른 동물들을 주눅 들게 하면서까지 주고받아서는 안되겠다 싶어서 이렇게 여러 가지를 만들었다.“ (p.141)

 

윤태규 선생님의 아이디어는 정말 기상천외하다. 나의 학창시절에는 들어보지 못했던 상들이다. 우리 때는 분단이었는데 이제는 모둠이라고 용어가 바뀐 것도 처음 알았다.(‘분단’이라는 용어를 다시 생각해보니 완전히 군대용어다. 끔찍하다ㅡ.ㅡ) 모둠 상도 있고 모래 쌓기 잘한 상도 있고, 하하하, 벌 받기 잘한 상도 있단다.

 

 

“칭찬은 좋은 것이기는 하지만 상을 받는 까닭이 구체로 드러나지 못하고 막연하게 인격을 평가하는 듯한 ‘품행이 방정하고 학업 성적이 우수하여’ 이렇게 써 주는 상장은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상은 누구라도 인정할 수 있도록 상장 문구를 아주 분명하게 써야 한다. 청소를 잘했으면 청소 잘한 상을 줘야지 착한 어린이상을 줘서는 오히려 칭찬이 아니라 부담을 주게 된다는 말이다.” (p.142)

 

그냥 틀에 맞춰져 있는 똑같은 상이 아니라 아이들 각자에게 맞는 상이다. 정말 기발하고 그 정성이 느껴져서 내 마음까지 따뜻해진다. 이런 상을 받는 아이들은 얼마나 좋을까? 꼭 성적이 우수하거나 품행이 방정해야만 상을 받던 것과는 천지가 다르다. 상에 있어서도 아이들을 차별하지 않고 누구하나 소외되지 않도록 배려하는 윤태규 선생님의 아이디어는 놀랍다. 벌 받기 잘한 상을 받았다면 어떻게 그것을 잊을 수 있겠나. 두고두고 추억하며 선생님을 떠올리고 반 친구들을 떠올리는 계기다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선생님들이 윤태규 선생님처럼 아이디어를 쏟아 내고 뭔가 꼭 창의적인 교육지도를 해야만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교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전제가 아이들을 한 번 더 생각하는 배려였으면 한다는 말이다.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분명 전국 곳곳에 이런 선생님들이 많을 거야. 그래 분명히 그럴 거야.’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최면을 거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확신이 생긴다. 비록 학교를 둘러싼 문제가 너무 심각해져 있는 상태지만 학교와 교사, 학부모와 학생, 지자체와 교육당국 간에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에 급급한 것이 아니라 정말 아이들을 위해 학생들을 위해 서로를 배려하고 믿어주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매번 ‘내가 아니라 니가 바뀌어야 한다!!’라는 이기적인 마음과 태도로는 절대로 문제를 풀지 못할 것이다.

 

 

“글쓰기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민준이 마음은 들여다보지 못하고 문제아로 내 마음에 남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정인숙 선생님처럼 흔히 문제아로 불리는 아이들을 볼 수 있다면 분명 학교는 지금과는 달라질 것이다. 아무도 손댈 수 없을 것 같았던 학생이 따뜻한 말과 관심, 위로에 눈물을 쏟아내고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어 함께 치유해가는 것을 우리는 많이 봐 왔다. 단지 TV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나도 당신도 그렇게 해야 한다. 그저 공부만 하는 기계로 대하기에는 아이들의 존재는 너무 귀하다. 요즘 아이들은 어른들을 무서워하지 않고 나무람을 폭력으로 되갚기도 하지만 속내를 알기 전까지는 쉽게 판단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학교에 책임을 전가할 수 없는 것처럼 부모에게 전가해서도 안 된다. 주변에 있는 아이들부터 관심을 가져야 한다. 글쓰기교육연구원에 속한 선생님들처럼 다른 선생님들도 아이들과 글쓰기 공부를 하거나 매일매일 일기를 주고받으면서 소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단지 선생님이기 때문에 단번에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아이는 없을 것이다. 매년 반복되는 생활이지만 교사의 사명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직까지는 학교에 희망이 있고 되살아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학교가 아이들에게도, 교사에게도, 학부모에게도, 지켜보는 제3자들에게도 불편하고 미간이 찌푸려지는 곳이 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더 이상은.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그것의 출발은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다.

 

 

<싸움>

 

우리 아빠 일하는 데에서

돈을 안 준다.

엄마, 아빠는 싸운다.

저러다

이혼하면 안 되는데

때리면 안 되는데

그 돈이 뭔데

이렇게 아프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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