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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는 용산 - 딸에게 보낸 편지
김재호 지음 / 서해문집 / 2013년 1월
평점 :
2009년 1월 20일 용산에서 한국의 국민 6명이 죽고 23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참사가 일어났다. 한국의 수도인 서울에서 화염에 휩싸인 컨테이너와 진압을 위해 쓰인 크레인에서 경찰이 대치하고 돌이킬 수 없는 참사로 이어진 그 장면을 모두가 TV로 목격했다. 3년이 지난 지금 한국 사람들은 얼마나 용산 참사를 기억하고 있을까? 워낙 잘 잊는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이기에 쉽게 잊혀진 것은 당연하다. 용산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조차 제대로 되지 못한 판에 일반 국민들이 3년이나 지난 일을 생생히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목숨을 걸고 함께 농성을 하던 사람 다섯 명이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는 것을 눈앞에서 본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이 책의 저자 김재호씨가 그런 사람이었다. 눈앞에서 이웃이, 동지가 죽는 것을 봤지만 한순간에 그 조차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몰려 구속이 되었다. 그리고 어처구니없는 판결과 정부, 언론의 악의적이고 왜곡된 대처는 그를 절망에 빠뜨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용산 참사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져 갔다. 그런 사람이 붙잡을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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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호씨는 너무나도 평범한 사람이었다. 늦은 나이지만 사랑하는 아내를 만났고 40을 넘은 나이에 귀한 딸아이를 얻었다. 1984년부터 용산에 자리 잡아 금은방을 운영하며 살아 온 사람이다. 덜렁대며 지갑을 자주 잃어버리는 아내를 위해, 혹시나 아내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 몰래 아내의 외투 주머니에 돈 오천 원을 넣어주는 자상한 남편이다. 뒤늦게 얻은 딸 혜연이는 김재호씨의 유일한 꿈이자 희망이자 봄이자 노래였다. 자신의 외모뿐 아니라 성격까지 빼닮은 혜연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려서부터 엄마와 있었던 시간보다 아빠와 있었던 시간이 많은 혜연이는 아빠를 더 따랐다. 그런 혜연이에게 아빠는 늘 든든한 그림자가 되어 주고 방패막이 되어 주고 보호자가 되어 주었다.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치솟자 그는 “여기 사람이 있다”고 소리쳤다. 용산참사의 생존자로 그는 구속되었고, ‘도심 테러리스트’라는 폭도의 오명을 쓰고 징역 4년을 확정 받았다.” (p.5)
그런 평범하고 너무나 흔한 이 가정에 불행이 찾아왔다. 자상한 남편, 따뜻한 아빠가 어느 날 갑자기 아내와 딸의 곁을 떠났다. 떠날 수밖에 없었다. ‘도심 테러리스트’라는 무시무시한 죄명을 쓰고 가족의 곁을 떠났다.
처음엔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다고 한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피해자가 한순간에 가해자가 되어 징역 4년형을 받고 수감될 수 있는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는 자신을 지켜줄 존재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느끼는 순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어차피 노력하고 부딪혀도 손톱의 때만큼도 바뀌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은 그저 그 동네어서 오래 살아서 이웃들과 어깨걸며 잘 지내왔을 뿐이고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위해 작은 금은방을 운영하며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다른 이들을 도우며 살아왔을 뿐이며 아무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아 망루에 올라갔을 뿐인데……. 결론은 징역을 사는 수감자가 된 것이다. 아내를 매일 볼 수 없고 딸 아이 혜연이를 매일 안을 수 없다는 것이 쉬이 상상이 가지 않는다. 국가에 대한 절망과 좌절은 차치하더라도 아내와 딸을 매일 볼 수 없다는 갑작스런 상실은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을 아픔이었을 것이다.
다행히 그는 첫 면회를 온 아내와 혜연이를 보고 다시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리고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라고 한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일이 너무나 낯설었지만 아내와 혜연이를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주2∼3회 총 400여 통의 그림 편지를 보냈다. 그것을 엮은 책이 「꽃피는 용산」이다. 제목처럼 꽃이 다 꺾여버린 용산에다 보내는 슬픈 희망의 노래인 것이다. 하루아침에 가장과 남편과 아빠를 잃어버린 두 가족이 느낀 절망과 두려움 또한 쉬이 상상하기 어렵다. 서로가 서로를 너무나도 필요로 하고 사랑하는 김재호씨와 두 가족은 그림 편지를 통해 대화하고 사랑을 나눈다. 또한 이전에는 미처 알지 못하고 있던 소중하고 아름다운 가치들을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나누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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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오해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아빠가 딸아이에게 그림편지를 보내는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스토리라고. 절대로 그렇지 않다. 서로가 서로를 필사적으로 부둥켜안고 조금이라도 그들을 서로 잇고 있는 관계의 끈이 헐거워질까 봐 몸부림치는 것이다. 결코 낭만적이거나 아름답게 읽히지 않는다.
아이가 크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지 못하는 아빠의 심정이 절절하게 녹아 있다. 완전하게 모든 것을 의지하고 자신만을 지지하고 응원해주던 세상의 단 하나뿐인 남편이 없는 아내의 심정이 절절하게 녹아 있다. 자신과 너무 똑같아서 너무 좋은 아빠를 잃은 아이의 심정이 절절하게 녹아 있다.
특히 김재호씨가 딸 아이 혜연이에 대한 복잡한 심정이 담긴 편지는 읽기조차 어려웠다. 징역 4년형을 받았지만 ‘혹시나 재판이 잘 되면 빨리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라는 가족의 희망이 차례로 꺾이고 힘들어하는 아내와 딸아이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남편이자 아빠에게 엄습했을 절망과 아픔과 좌절의 깊이는 가늠할 수 없다. 짧은 편지글이지만 딸아이를 향한 지치지 않고 무한한 사랑을 가득 느낄 수 있다. 함께 했던 추억, 지나간 이야기들, 소소한 일상들조차 10분이라는 짧은 면회 시간을 통해서만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그들을 지치게 했을까.
그럴 때마다 김재호씨는 만화를 그렸다.
책에 실린 한 커트 한 커트가 결코 쉽게 그려진 그림이거나 쉽게 쓰인 글이 아니기에 더욱 애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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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지켜준 것은 그들 자신이다.
국가도 조직도 단체도 김재호씨 가족을 지켜주지 않았다.
“정신과 전문의 선생님의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마음속 큰 충격과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적 이상증세입니다. 빨리 치료를 받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뒤늦게 이 소식을 들은 아빠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안타까움에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자기야~ 우리 딸 어쩌면 좋으니. 이 못난 아빠 때문에” (p.255)
갑작스런 아빠와의 이별로 정신적 외상을 입은 혜연이는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하고 아내 또한 이유 없는 무기력과 우울증을 앓기도 했다. 그렇지만 아무도 엄마와 혜연이를 지켜주지 않았다. 엄마가 혜연이를 지켜주고 혜연이가 엄마를 지켜줬다. 그것으로 버틴 것이다. 남편이 보고 싶고 아빠가 보고 싶고 절실하게 필요했지만 엄마는 엄마대로 혜연이는 혜연이대로 서로를 보듬고 치유하며 버텨 나갔다.
그것이 언제 끝날지 모를 싸움을 홀로 하고 있는 남편과 아빠를 향한 진정한 응원과 사랑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한 순간에 모든 것을 놓아 버리고 싶은 절망의 끝을 경험하다가도 자신만을 기다리고 있는 아내와 혜연이를 떠올리며 재호씨도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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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연이는 훌쩍 자라 5학년이 되었고 사춘기에 접어들어 엄마와의 다툼도 늘어났다. 아빠 재호씨의 딸에 대한 그리움이 가장 잘 드러나는 커트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3년이 지나 갔다. 몸과 마음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달라지는 딸아이를 혼자 힘으로 양육하는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가까이서 만질 수 없는 딸에 대한 애틋함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키가 얼마나 컸을지, 공부는 잘 하고 있을지, 늦게까지 게임 하느라 학교에 지각은 하지 않는지, 사춘기라고 엄마한테 짜증을 많이 내지는 않는지, 아빠에 대한 그리움이 원망으로 바뀌지는 않았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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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문화연대)
김재호씨는 만기 출소 3개월을 앞둔 2012년 10월 26일 공주교도소에서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아내와 딸을 만난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이후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김재호씨가 옥중에 보낸 편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믿고 싶다. 그들의 다음 이야기는 반드시 해피엔딩이어야 한다고. 제대로 된 진상규명조차 되지 않았고 참사의 피해자는 분명하지만 가해자는 밝혀지지 않은 지금 김재호씨와 아내와 혜연이 세 가족의 이야기가 헤피엔딩의 결말로 향해 가지 않는 다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반드시 잘못된 것이다.새로운 대통령이 취임을 했다. 전 정권에서 제대로 밝히지 못한 용산참사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공식석상이나 언론을 통해 새 대통령의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비록 전 정권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반드시 제대로 풀어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라의 수도에서 일어난 참사다. 6명이라는 국민이 죽었다. 사람들의 기억에서는 점점 잊혀져 간다. 피해를 입은 사람과 가족들은 여전히 고통 받고 있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다. 끝나지 않은 사건이다.김재호씨의 세 가족이 예전처럼 다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일이다.또한 우리들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