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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게 세상을 묻다 - 우리 사회 10대 난치병 feeling에서 thinking까지
이승연.김용희 지음 / 에이지21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영화를 많이 보는 편은 아니다. 심술이 많은 편인지 흥행이 엄청나게 되는 영화는 일부러 보러 가지 않기도 한다. 그래도 보고 싶은 영화는 꼭 챙겨본다. 10여 년 전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이 너무 보고 싶었는데 주위에서는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었다. 아침 첫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갔는데 그 영화를 보러 온 사람은 나를 포함해 2명이었다. 극장 측에서 적어도 4-5명은 있어야 영사기를 돌릴 수 있다고 해서 늦잠 자고 있던 친구놈 둘을 불러내 감격하며 영화를 본 적도 있다. 책을 읽는 것만큼 영화에 대한 취향도 꽤나 편식이다.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는 주구장창 보지만 관심 없는 감독의 영화는 아무리 흥행을 한다 해도 잘 보지 않는다.
고약한 심술이다.
이런 내 고약한 심술은 결혼을 하고 나서 많이 완화(?)되었다. 혼자였다면 절대로 보지 않았을 로맨틱 코미디나 액션물을 보러 따라다니다 보니 장르에 대한 편식도 어느 정도 개선되었다.
몇 달 전「레 미제라블」을 극장에서 보면서 옆 사람을 방해 할 정도로 눈물을 흘렸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내 이런 영화에 대한 특정한 편식과 고약한 심술은 거의 고쳐진 것 같다.
좋은 영화 한 편 보는 것은 좋은 책 한 권 읽는 것보다 더 좋을 때가 있다. 여운이 오래 간다. 어두운 상영관을 나서면서 마치 주인공과 하나가 된 듯한 착각을 하기도 하고 잠자리에 누워서도 재미있었거나 감동적이었던 영화의 잔상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영화 속 인물들을 통해 부닥치고 깨지며 고단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 저자들은 ‘재미있는’영화와 ‘재미없는’정치가 마주치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말합니다.” (p.5)
이 책 「영화에게 세상을 묻다」의 저자들은 다분히 정치적인 것 같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아 보인다. 책에서 소개된 영화들 중 정치적인 소재가 주제가 되는 것도 있고 첨예한 정치적 쟁점이 되기도 하는 것도 있지만 그렇게 정치적이지 않다. 유독 한국에서는 ‘정치적’이라는 의미가 남용되기도 하고 오용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정치는 우리의 삶과 가장 가까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치는 우리가 선출한 대리자들끼리 모여서 하는 것, 우리가 참견하기에는 어려운 것, 우리가 간섭할 수 없는 영역의 것이 결코 아니다. 그렇게 해서는 영원히 정치와 가까워질 수 없다. 바로 나의 일상에 직접적으로 간섭하고 영향을 주는 것이 정치이고 언제든지 뜻하고 의도하는 방향으로 정치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까지 그래왔든 질질 끌려 다니며 우리가 뽑아 낸 정치인들이 하는 꼴사나운 짓을 4년에서 5년 동안 지켜볼 수밖에 없다.
이 책의 저자들도 어렵게 정치적인 이야기를 풀어나가지 않는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들, 많이 들어왔던 이야기들을 재미있는 영화와 함께 풀어낸다.
“영화 초반에 버드가 자조적인 투로 이런 말을 던집니다. ‘투표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 마치 네 뜻대로 될 것 같다는 기분만 들게 할 뿐이지.’” (p.20)
케빈 코스트너가 주인공으로 연기한 [스윙보트]라는 영화는 예전에 읽었던 책에서 소개된 적이 있어 꼭 보고 싶은 영화였다.
선거 시즌에 되면 너도나도 쓰는 정치적 용어가 된 ‘스윙보트’ 내가 가진 한 표에 대한 가치를 직시하게 해주는 영화인 것 같다. 우리와는 선거제도가 달라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작년 총선에서도 불과 수백표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기도 했었다. 내가 행사하는 한 표가 당락의 여부를 넘어서 정치적 지형을 흔들 수 있다.
포털에서는 이 영화의 장르가 코미디로 되어 있다. 하루아침에 백수건달에서 전미 최고의 영향력을 가진 유권자로 신세가 바뀐 주인공의 삶과 정치인들이 보이는 이중적인 행태, 딸과의 잊었던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이 코믹하지만 따뜻하게 그려진 영화라고 한다.
결국 ‘가족의 사랑이 가장 중요하고 필요하다.’라는 아주 피상적이고 당연한 결말의 영화지만 당연하다고 해서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부모님을 모시고 보거나 아이와 함께 보기에 좋은 영화인 것 같다.
좀 다른 얘기지만 지난 대선에서 50대 이상의 투표가 ‘스윙보트’가 되었는데 앞으로 당분간은 이러한 정치적 지형이 더 심화되고 견고해 질 것이라 하니 정치하는 분들 머리가 아플 것 같다.
“청소년은 어쩜 이렇게 바스라지기 쉬운 존재들일까요? 어쩜 이렇게 예민하고 광적인 흥분에 휩싸일 수 있을까요?” (p.95)
[건축학개론]으로 엄청난 팬층이 생긴 배우 이제훈씨가 주인공으로 연기한 영화다. 얼마 전 TV에서 다룬 학교폭력과 왕따 관련 내용과 비슷한 면이 많은 영화였다. 세 명의 친구는 늘 함께 다니는 말 그대로 절친이다. 사소한 다툼과 갈등 따위는 헤드락 한방으로 해결되는 머슴애들이다. 그런데 이들 사이에 조금씩 골이 깊어진다. 작은 오해가 큰 싸움으로 번지고 이들의 우정은 폭력으로 바뀐다. 어제까지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갑자기 나를 왕따 시킨다. 셋 중에서도 힘의 우열을 가진 아이가 드러나고 중립적인 입장이던 나머지 한 아이는 힘을 가진 아이의 편에서 어제까지 친구였던 힘없는 아이를 왕따 시키는 데 동참한다. 결국 이 아이 마저도 힘을 가진 아이를 떠나게 되고 힘을 가진 아이는 모든 걸 잃게 된다는 내용이다. 앞서 언급한 TV프로그램도 비슷한 내용이었다. 여자 중학교 1학년 한 반에 10명 정도의 아이들이 모여 그룹을 형성한 친구들이 있는데 그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들이다. 그런데 한 명도 예외 없이 10명의 아이들 모두 초등학교 때 왕따를 경험했다는 것이다. 다름 아닌 자신들 10명의 친구들 사이에서 말이다. 말 그대로 돌아가면서 왕따를 시키고 왕따를 당하는 당했다. 어제까지 수다 떨고 카톡하고 그것도 모자라 집에 가서 몇 시간씩 통화 하던 친구가 다음 날 아침 나를 왕따 시키는 경험을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친구들. 이것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또래 집단들에서는 거의가 자신들 같다고 한다는 사실이 더욱 놀라웠다. 그런 친구들 사이에서 진정한 신뢰와 사랑의 관계가 생길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뾰족한 해결 방법이 없었다. 인위적으로 제한하고 통제할 수 없는 문제이고 이제는 일반화된 현상이기 때문인 듯 했다.
‘너희는 도대체 왜 그러니?’
한숨짓는 것보다 아이들이 정말 우리 때와는 너무나 다르고 고통과 아픔을 견뎌내는 역치값이 예전의 아이들보다는 현격하게 낮다는 것을 직시하고 어떻든지 아이들을 안아주는 배려와 진심이 필요하다.
[파수꾼들]이라는 영화에서처럼 어린 시절 바스러진 관계를 경험한 아이들은 몸은 비록 성장할 지라도 여전히 ‘어른아이’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도에는 힌두어 외에도 상용어만 14개가 있다네요. 한 언어로 영화를 찍는다고 해도 그걸 알아듣는 인도 사람이 100퍼센트라고 장담할 수 없으니 중간 중간에 춤과 노래로 ‘눈치껏’ 내용을 따라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p.99)
한 아이가 나를 보고 영화 [세 얼간이]에 나온 주인공 중 한명을 닮았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나중에 영화를 보면서 나는 도무지 찾아낼 수 없었다. 주인공 셋 중 나와 닮은 사람은 없었다. 영화에서 란초역을 연기한 배우와 닮았다고 했던 것 같은데 나는 잘 모르겠다. 눈이 크고 쌍꺼풀이 진하고 피부색이 좀 어두운 것 빼고는 하나도 닮지 않았다. 키도 란초보다는 훨씬 크다.^^;;
대학 때 친구가 인도 영화를 국내에 수입하는 일을 하고 있어 영화에 큰 관심이 없는 내가 인도영화를 좀 많이 보게 되었다. 발리우드 영화는 뮤지컬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경우가 대다수다. 영화의 흐름이나 전개에 상관없이 뜬금없이 단체로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친구에게 물어봤지만 인도 영화를 직접 수입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도 정확한 이유를 말하지 못했는데 이 책을 보며 알게 되었다. 중국 다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인도이기에 가능한 일인 것 같았다. 이유를 알고 나서 다시 본 영화 [세 얼간이]에서 이전과는 다른 감동과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영화를 보기 전 영화의 배경이 되는 상황을 미리 알아본다면 영화를 더욱 깊고 재미있게 볼 수 있다.
영화에 대해서 깊은 관심이 있거나 전문적인 평론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다소 싱거울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와 같이 영화에 대해 잘 모르지만 좋아하기도 하고 영화에 대한 좀 더 다른 면을 알아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재미있고 유익할 것 같다.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고 우리의 일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정치’의 문제를 쉽고 살에 와 닿게 영화와 함께 소개받을 수 있어 부담이 되지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