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세요? 북극곰 꿈나무 그림책 6
엠마누엘레 베르토시 글.그림, 이순영 옮김 / 북극곰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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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참 많이도 뛰어 다녔었다. 지금은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선 곳이 어린 우리들에게는 요새였다. 야트막한 야산을 한 달음에 오르락내리락했다. 주변에 흩어진 나뭇가지와 나무판자들을 주워 모아 기지를 만들어 전쟁놀이를 하기도 하고 당시 유행하던 수많은 놀이를 하기도 했다.




 

하교해 책가방만 집에 던져 놓고 바로 뛰어 올라가 해질녘까지 한참을 놀았다. 그때는 참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이나 게임기도 없었고 비싸기도 했다. 그저 친구들과 동네 형, 동생들과 몸으로 부대끼며 뛰어 놀고 뒹구는 것이 좋았다. 휴일에도 방학에도 무거운 가방을 둘러메고 학원으로, 학교로, 과외로 끌려 다니는 요즘 아이들을 보면 불쌍하고 안쓰럽다. 언젠가 MBC 무한도전에서 [명수는 12살]이라는 에피소드를 방송했었다. 연기자들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그 시절 친구들과 하는 놀이를 재현하고 함께 즐기는 내용이었다. 무한도전 연기자들 대부분이 나보다 형들이지만 그들이 하는 놀이 대부분은 내가 어린 시절 동네 형들, 친구들, 동생들과 하던 놀이였다. 그 방송을 보고 아이들에게 그 얘기를 하며 아는 놀이가 있는지 물어봤는데 하나도 없었다. 얼굴이 벌개져서 신나게 떠드는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아이들에게는 전혀 자신들과 상관없는 얘기였을 것이다. 학원 숙제, 학교 숙제, 과외 숙제하기에도 하루가 다 모자란 자신들인데 얼마나 한심스러웠을까.

 

“우리 모두는 한때 어린이였습니다. 세상 모든 어린이들이 그 사실을 잊지 않고 자라기를 바랍니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훨씬 인체공학적이고 인체에 무해하며 안전한 장난감이 많다. 여러 전문가들이 개발하고 고안한 집중력 향상 프로그램도 즐비하고 심리 검사도 흔하다. 게임 세상은 완전히 별천지다. 아버지 주머니에서 천원을 몰래 훔쳐 한판에 50원 하던 동네 오락실에서 해가 질 때까지 오락을 하던 때는 지금 아이들에게는 조선시대 얘기와 다름없을 것이다. 비싸기는 하지만 좋은 장난감도 많다. 나와 같은 어른들은 ‘우리 때는 참 재미있게 실컷 놀았는데 요즘 애들은 참 불쌍해’라고 생각하거나 말할 때가 많다. 상황은 많이 달라지고 할 수 있는 것도 많이 달라졌지만 어린이는 어린이다. 아이는 아이다. 어른들도 누구나 자신의 아이였던 시절을 추억하며 그리워한다.

친구들과 만나 어린 시절 경험을 나눌 때마다 그 어떤 주제보다 더 재미있고 신나게 대화를 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친구들도 자신만의 어린 시절, 아이였던 시절, 어린이였던 시절을 좋아하는 것 같다. 절대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불변의 진리가 그것을 더욱 아련하게 만드는 것 같다.

 



 

“우리는 한때, 삽이었고 펜치였고 톱이었고 망치였고 못이었고 나사였고 그물이었고 흙받기였고 자물쇠였고 양동이 손잡이였고 파이프였고 손톱깎이였고 모자였고 돌이었단다.”

 

요즘 아이들은 장래희망에 연예인을 가장 많이 적는다고 한다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내가 아이였을 때에는 지금보다 오히려 직종이 다양했던 것 같다. 그때보다 지금이 직종의 수가 훨씬 많을 텐데 지금 아이들의 눈에는 연예인이 가장 멋있고 예쁘게 보이는 것 같다. 아직 나는 아이가 없지만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답답하다. 예전 이야기를 자꾸만 하게 되지만 그때는 학교 등하교시 거의 걸어 다녔다. 물론 부모님 세대 때 ‘십리길, 이십 리길을 걸어 학교에 다녔다.’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열새 발의 피지만 걸어 다녔다. 걸어 다니며 들풀도 보고 꽃도 보고 산에 흐드러진 아카시 냄새도 맡고 길가에 떨어진 나무며 철근이며 보이는 대로 주워 다가 산에 있는 ‘우리 기지’에 쟁여 놓고는 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어떤가. 초등학교 하교 시간이 되면 학교 주변에 온갖 학원차로 가득 차 있다. 태권도 학원, 미술학원, 영어학원, 수학학원, 음악학원. 직접 아이들을 모시러 온 학부모 차량도 가득하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흉악 범죄가 많이 일어난 탓도 있겠지만 어쨌든 아이들은 걷거나 뭘 만지거나 줍거나 할 시간이 없다. 그럴 상황이 애초에 차단되는 것이다. 아이들을 위해서 인조잔디를 깔고 우레탄을 깐 최신식 운동장이 많다. 요즘 아이들은 언제 흙을 만져보나 싶다.

뛰고 뒹굴며 착한편이 되어 보기도 하고 나쁜편이 되어 보기도 하며 나무로 만든 총과 칼로 전쟁놀이도 하고 옷이 찢어지고 상처가 날 정도로 뒹굴어 보기도 하는 것은 생각 없는 나 같은 아직 아이 없는 어른의 현실감 없는 배부른 소리일까?

하긴 요즘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 워낙 잘 되어 있어서 밭에서 농작물을 길러 보기도 하고 유치원 내에 최신식 놀이터와 수영장이 갖춰진 곳도 많고 외국인 선생님들이 직접 영어를 가르쳐주기도 하며 놀이와 체육, 레크레이션을 전공한 선생님들이 직접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한다니 나의 어린 시절 그때보다 더 유익하고 도움이 되는 교육환경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말 그게 정답이고 정말 아이들을 위한 것일까 싶다.

 



 

“내가 누구냐고? 나는 한때 돌이었고 자물쇠였고 망치였고 양동이 손잡이였단다.”

 

좋은 책, 좋은 TV프로그램이 너무나 많지만 아빠, 엄마가 아이를 앉혀 놓고 자신들의 어린 시절을 얘기하고 아빠가 돌이었고 자물쇠였던 기억, 엄마가 망치였고 인형이 있고 들풀이었으며 놀이터였던 기억을 얘기해 주는 것이 아이에게는 그 어떤 최신식 놀이와 책과 교육보다 좋은 것이 아닌가 싶다.

어린 아이에게는 부모가 절대적인 영향을 준다고 했던 대학 때의 발달심리학 수업이 떠오른다. 그런데 그것도 요즘은 부모를 대신한 것들이 많아 적용되지 못하는 것 같다. 아빠와 엄마의 달래는 말보다 스마트폰과 뽀로로나 타요를 보여주면 더 좋아하니 말이다.

 



 

“나는 왜 이 책을 만들었을까? 스스로 질문을 해 보았어요. 그리고 답을 찾았어요. 어린이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었던 거예요. 환상 속에 빠져보는 즐거움. 조각품들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관찰하는 즐거움. 그리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보는 즐거움을 주고 싶었어요.”

 

아이들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만들어 갈 수 있는 힘을 전해주는 것. 나를 포함한 어른들이 해야 할, 반드시 해야 할 숙제다. 우리 부모님들이 우리에게 그렇게 해주었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아이들에게 해야 한다. 늑대와 맞선 양을 어떻게 구할 것인지 단박에 얘기해 주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자신들의 말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할 것인가. 이것은 분명한 숙제다. 어렵지만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한다.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주고자 하는 어른들의 마음을 이 책을 통해 찾아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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