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그럴듯한 착각들
실뱅 들루베 지음, 문신원 옮김, 니콜라스 베디 그림 / 지식채널 / 2013년 1월
평점 :
품절


이 책 「당신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그럴듯한 착각들」은 우리의 일상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군중 심리와 개인의 심리적 기제의 작용 과정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심리학이라는 학문적 특성 상 본인은 자신의 심리적 상태와 작용 과정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마트에 가서 물건 하나를 집어들 때 ‘나는 왜 지금 이 깐대파를 집어 들었지? 나의 이 행동은 어떤 심리적 작용에 의해 표출된 것이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매 행동마다 그런 생각을 한다면 둘 중 하나다. 학문에 미쳐버린 심리학자이거나 정말 미친 사람이거나. 그래서 심리학에 대한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들으면 참 재미있다. 대학 때 심리학을 부전공했다. 본래 내 전공보다 더 열심히 강의 듣고 레포트 쓰고 토론하고 발표했던 기억이 있다. ‘내가 강의를 듣기 전에도 수 십 번 반복했던 그 행동이 심리학적으로는 이렇게 해석되는구나~’ 알게 되면 짜릿짜릿했다. 특히 발달심리학이 가장 재미있는 분야였는데 아쉽게도 이 책에서는 발달심리학에 대한 내용은 담겨 있지 않다.

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개인들은 타인과 관계를 맺어 살아갈 수밖에 없다. 물론, 외톨이로 살아가거나 문명과는 담을 쌓은 채 의도적으로 고립을 택한 채 살아가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대다수는 사회에 속해 있다. 당연히 사회에 속한 타인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심리적 작용과 결과는 관심을 가질 만한 주제다.

내가 대학 때 심리학 강의를 들으며 나의 행동과 성격, 기질의 형성에 대한 심리학적 분석에 무릎을 치며 동의하고 감탄했던 것처럼 이 책을 읽으면 심리학에 전혀 관심이 없던 사람이나 어렵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확인의 과정, 감탄의 기회가 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총12가지 주제로 우리가 그렇게 행동하고 관계 맺으며 살고 있지만 그 행동의 기제를 알고 있지 못했던 것을 파헤친다. 그러한 주제로 심리학자들이 실행한 연구와 실험을 제시하고 그것에 대한 살을 붙이는 형식으로 책은 전개되는데 올망졸망한 삽화까지 들어가 있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12가지 주제 중 나는 4가지 주제에 관심이 갔다.

첫 번째는 <무엇이 진정 군중을 움직이는가?>이다.

 

“군중을 동원하는 ‘연관성’은 위기나 갈등 상황 또는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나타난다. 그 상황이 실제 상황이든 가상의 상황이든 상관없다. 만일 갈등 상황에서 나타난다면 그 위협이나 갈등이 사라지는 순간 함께 사라진다. 실제로 조국이든 공화국이든 ‘위험에 처했을’때만큼 의미심장한 현실성을 드러낼 때는 없다.” (p.217)

 

 

2002년 4월 21일 프랑스 대선 1차 투표 결과 프랑스 내에서도 극우파인 루펜 결선에 오르자 프랑스 국민과 좌파지식인과 문화예술인은 물론 우파정치인에 이르기까지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똘레랑스를 견지하는 프랑스 시민의 힘을 보여주자는 군중집회를 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2차 투표에서는 이러한 군중의 열망이 그대로 투표에 반영되어 반대편 자크 시라크가 압승을 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고 한다.

군중을 움직이는 힘은 그들이 속한 사회(조국, 공동체)가 위기·위험에 처했을 때 가장 강렬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프랑스는 그것을 눈으로 보여준 것이다. 프랑스 시민의 힘이다.

이명박 대통령 임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군중집회가 열렸다. 조직이나 정치집단의 선동이 아니라 학생·주부·직장인들이 자발적으로 거리로 쏟아져 나와 국가의 위기에 대항했다. 결과는 프랑스의 그것과 완전히 다른 형태로 나타났지만 군중을 움직인 주체는 똑같았다고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완벽해 보이는 그들이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는 이유>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어빙 제니스에 따르면 결집력이 높은 집단의 구성원들일수록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해 다각도로 면밀히 검토하지 않은 채 쉽게 만장일치로 의견을 결정하는 경향이 있다.” (p.143)

 

이것은 여의도에 있는 사람들만 들여다봐도 100%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유권자들을 대리해 여의도에서 정치를 하는 사람들임에도 그들이 내리는 결정들을 보면 어리석다 못해 바보 같은 때가 많다. 그저 TV카메라 앞에서 ‘쇼’하는 배우들 같다. 국민적 열망을 담은 여러 가지 정책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하고 자기들 밥그릇 챙기는 연금법 같은 것은 여당이든 야당이든 한통속이 되어 일사천리로 통과시켜 버리는 자들이다. 아~ 이 사람들 미국 심리학자 어빙 제니스씨가 한 번 내한하여 300명 전원을 대상으로 실험 해봤으면 싶다. 이렇게 제니스씨의 이론에 충실하게 부합하는 실험 표본은 아마 지구상에 없을 것이다.

 

 

세 번째는 <왜 우리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할까?>이다.

 

“그 종파의 추종자들이 너무나 열심히 기도를 해서 감명 받은 외계인들이 지구를 지켜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후 추종자들은 전보다 더 열심히 포교 활동을 하며 한층 단결력이 강화되었다……. 자신들의 모든 행동들을 부정해야 했으니 그럴 바에는 차라리 믿음을 강화하는 편을 택한 것이다.” (p.113)

 

휴거, 종말……. 뭐 이런 말들이 내 생애 가운데 벌써 몇 번이나 있었다. 1992, 1999, 2000, 2012. 얼마 전 모 TV 프로그램에서 종말론을 신봉하던 사람들에 대한 취재를 한 내용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이 내 걸었던 종파의 이름도 간판을 내리고 교주도 자취를 감추고 종말을 기다린다는 사람들이 폭행·사기·공갈·협박 등 현세에서 가능한 실증죄를 많이 지어 경찰수사도 강도 높게 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그들이 거의 없어졌을 거라 생각했는데 취재 결과 그들이 더욱 은밀하게 그들만의 믿음을 더욱 굳건히 지켜오고 전파해 오고 있었다. 나는 그 내용을 보면서 아찔했다. 조금만 밖에서 바라보면 어처구니없고 말도 안 되는 내용인데 안으로 들어갈수록 그들이 스스로 만들어 놓은 믿음에 빠져 벗어나지 못하는지 섬뜩했다.

사람은 정말 그렇다. 목숨을 걸 정도로 신봉하고 신뢰하던 믿음이 어느 날 한순간에 거짓으로 드러난다면 차라리 이제껏 내가 보여 온 믿음의 형태를 부정하기 보다는 차라리 믿음을 더 강화하고 나의 믿음을 합리화하는 편이 더 낫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쉽게 읽고 서평에서는 쉽게 쓸 수 있지만 사실 무서운 것이다. 자신이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믿고 있다고 착각하는 그 착각을 믿는 것이다. 맹목적이고 폐쇄적일 수밖에 없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네 번째는 <틀린 줄 알면서도 왜 다수의 의견에 따를까?>이다.

 

“다수(타인)에게서 얻은 정보를 진실의 증거라고 여기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놀림감이 되는 일을 피하기 위해 다수의 의견을 택해 동조하거나” (p.78)

 

이것은 많이 알고 있는 이론일 것이다. 분명히 A라는 줄이 제일 짧은데 나를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들이 B라는 줄이 제일 짧다고 말하면 나도 B라고 말해버린다는 것이다. 모두가 YES할 때 NO하고 모두가 NO할 때 YES하는 사람은 사회 생활 내에서는 부적응자, 돌+아이, 눈치 없는 사람으로 비난 받는다. 결코 용기가 아니다. TV광고나 드라마에서는 그런 사람들이 역경을 겪지만 결국 최종 승리자가 되는 장밋빛 스토리를 만들어 내지만 최소한 내가 살아본 현실에서 그렇게 하는 사람들은 조직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손가락질 받고 인정받지 못했다. 나서기보다 입 다물고 남들 하는 만큼만 하면 적어도 내쳐지지는 않는다. 다수의 의견이 설령 잘못된 결과를 낳는다 해도 책임은 n분의1만큼 경감되기 때문에 부담도 적다.

 

 

책에 소개된 12개의 주제들 중 재미있고 와 닿았던 4개의 주제들만 살펴봤는데, 책을 읽어보면 사실 더 재미있다. 책을 읽으면서 ‘어! 맞아~! 나도 그런 생각을 했었지, 그런 행동을 했었지, 그때 걔가 그런 말을 한 게 이런 뜻이구나~’ 여러 번 고개를 끄덕였다. 사회심리에 관한 책이지만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어차피 내가 살아가고 당신이 살아가는 일상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런 책을 읽는다고 해서 이런이런 내 행동은 고쳐야지, 이건 잘못된 거야. 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심리학적 기제로 개인과 군중의 심리를 분석한 것뿐이지 옳고 그름의 문제를 논하는 내용의 책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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