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어떻게 이동하는가 - 토플러가 말하는 제3 물결 정치학
앨빈 토플러 & 하이디 토플러 지음, 김원호 옮김 / 청림출판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누가 이기든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데?” (p.140)

 

정치가 밥 먹여주지는 않는다는 이상한 믿음에 심취된 대한민국 사람들(특히 젊은 사람들)은 이번에도 많이 투표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이 지긋한 기성세대들이 원래 투표열기보다 더욱 뜨거운 열기를 나타냈다. 괴상한 정치적 향수, 추억, 감정적 동조가 있기도 했지만 나이 지긋한 기성세대들에게는 정치가 밥을 먹여주지는 않을지라도 밥그릇에 담길 쌀의 양을 결정할 수는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이 책 「정치는 어떻게 이동하는가」를 읽어보면 정치에 대한 혐오를 넘어선 무관심은 대한민국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다만 저명한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와 그의 아내이자 같은 미래학자인 하이디 토플러는 이 책에서 아직까지 제3의 물결로의 완전한 변화는 오지 못했고 전반적인 정치적 무관심도 제2의 물결에서 제3의 물결로 전이되는 과정 가운데 겪는 하나의 진통으로 해석 한다.

 

 

기존의 정치구조들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하는 이유는 이것들이 더 이상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완전히 달라진 세상의 요구에 더 이상 부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p.182)

 

미국의 정치 구조를 예로 들면서 공화당, 민주당의 공약과 스탠스의 차이를 두고 논리를 전개하는 것이 아니라 300년에 걸쳐 지속되어 온 정치구조 전체를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토플러 부부는 그들의 유명한 책들에서 이미 예견한 이론과 가설들을 가지고 이것을 해석하는데 처음에는 ‘아직도 제3의 물결 타령이야?’생각했지만 여타 복잡하고 난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이론들 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제1의 물결을 지나 제2의 물결 속에서 인류는 무한할 것만 같은 발전과 진화, 성장을 거듭했다. 경제뿐만이 아니라 정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분명히 지금의 정치구조가 산적해 있는 현안을 해결하고 있지 못함은 분명한 사실이다. 전체 시민들을 대신해 정치를 하고 있는 정치인과 그들이 속한 정당은 나눠 먹기식으로 권력을 주고받았을 뿐 진정 그들이 대리하는 전체 시민과 국민들에게는 부응하지 못했다. 세계의 어느 나라건 정치인은 시민과 국민들에게 사랑받거나 존경받지 못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 아닌가? 자신들 손으로 직접 뽑은 대리자를 그토록 싫어하고 혐오하는 것이 말이다. 문명의 발전과 진화에 더불어 정치구조도 엄청나게 발전해 온 것은 사실이다. 얼마 전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영화「레미제라블」과 같은 사회적 배경보다는 최소한 나은 삶을 구가하고 있지 않나? 하지만 문명과 경제가 발달해 온 것만큼의 행보에 정치는 발맞추지 못했다. 어디까지나 시민과 국민을 대리하는 정체성을 가지고 겸손하게 그 뜻을 받들어야 하는데 권력이라는 괴물은 그들 스스로 주체·주인이라 인식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다음 선거 즈음 되면 스멀스멀 기어 나와서 지키지도 않을 헛소리를 늘어놓고 보장된 임기 동안 절대 들여다보지 않을 밑바닥까지 기어 내려가 악수를 해댄다. 시민과 국민들은 또 속을 줄 알면서 또 표를 던진다.

앞서 말했듯이 토플러 부부는 이러한 현상 또한 제3의 물결로 완전히 전이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탈대량화된 제3의 물결 사회는 산업시대에 만들어진 기계적인 다수결의 원칙을 근간으로 하는 정치 시스템보다 훨씬 더 정교한 시스템을 필요로 한다.” (p.190)

 

탈대량화되어야 하는 제3의 물결 사회를 운용할 정치 구조는 이전보다 분명 더 정교해야 한다. 지금처럼 온전히 저들에게 맡겨서 될 일은 아니다. 그것은 분명하다.

이 정교한 정치시스템에 관해서는 이 책에서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하기는 하는데 굳이 리뷰에서까지 소개할 만큼 특별한 대안은 아니다. 이미 지난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종말을 예견하며 새로운 경제구조의 대안을 제시한 책이 쏟아졌다. 쏟아진 책의 종류만큼 다양한 대안이 쏟아졌으면 좋았겠지만 몇 권만 읽어보면 나머지는 다 거기서 거기다. 물론 현재까지는.

토플러 부부가 주장하는 정치구조의 제3의 물결이 정확하게 어떤 형태인지 모르겠다. 가늠이 잘 되지 않는다. 책에서 제시한 대안이 내게는 별로 설득력이 없어서 그런 것이기도 하고 정치구조를 뒤엎고 새롭게 판을 짤 대안이 쉽게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이런 것은 잘 생각하지 않는 주제다.

이 책에서는 그것을 확인할 수 없었지만 앞으로 쏟아질 책이나 이론에서 확인하고 찾아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새로 제안되는 제도들에 대해서는 비현실적이라는 딱지를 붙여 그대로 죽이려 하는 ‘아이디어의 암살자들’과도 싸워야 한다.” (p.214)

 

더불어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새롭게 창조된 구조가 이제껏 자신들이 누려온 기득권을 빼앗고 자신들의 자리를 가로챈다고만 생각한다면 토플러 부부가 말하는 제3의 물결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주장대로 ‘아이디어를 암살하려는 자들’은 분명 지금의 시스템의 정점에 있는 사람이거나 그 정점에 있는 사람에게서 콩고물을 얻어먹는 사람일 것이다. 결코 그들의 자리를 쉽게 내어놓지는 않을 것이지만 전혀 대안이 되지 못하고 해결책이 되지 못하는 지금의 정치체제를 전환하는 것이 거대한 힘이 되어 동력으로 작용한다면 못할 것도 없으리라 생각된다.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하드웨어는 언제나 소프트웨어보다 더 중요한 것이었으나, 우리는 컴퓨터혁명을 통해 현실은 오히려 그 반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p.135)

“제3의 물결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원료는 바로 소프트웨어를 비롯한 무형의 것들인데, 전 세계의 사회주의는 이러한 제3의 물결 경제가 부상하는 상황에 대해 아무런 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p.136)

 

사회주의 체제가 성공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분석이 재미있었다. 이분들은 거의 모든 현상을 자신들이 내어놓은 이론 안에서 해석하는데, 좋게 보면 재미있는 일이다. 어설프게 남의 것 따라하고 모방하는 것보다야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유물론적 세계관과 인식은 토플러 부부가 말하는 제3의 물결로의 전환에는 쥐약이었다. 소프트웨어는 눈이 돌아갈 정도로 급속도로 변형하고 발전하는데 여전히 하드웨어만 쥐고 나사를 조이고 하는 제2의 물결에나 어울릴만한 그들의 자세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원인이 된 것이라고 분석한다. 뭐, 전적으로 동의하기에는 좀 성긴 것 같다.

 

 

“대량생산 중심의 제2의 물결 경제에서 지식 중심의 제3의 물결 경제로의 전이를 완전하게 이루어낸 나라는 아직 없다.” (p.55)

“‘프롤레타리아’는 ‘코그니타리아(cognitariat - 기존의 프롤레타리아를 대신해 21세기를 이끌어갈 새로운 권력계층으로 떠오른 유식계급을 일컫는다)에 의해 대체” (p.103)

 

하지만 여전히 토플러 부부는 미래를 예견하고 예측하는 데 힘을 쏟는다. 그것에는 아낌없는 박수와 찬사를 보낸다. 당장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인생인데 수십 년간 미래를 연구하고 분석하고 예측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선행되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얘기하는 것에 슬쩍 목소리를 얹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 것을 먼저 말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끊임없는 노력과 성찰, 연구와 고민이 없으면 불가능 한 일이다.

제2의 물결에서 제3의 물결로 전이되는 과정을 그들과 함께 지켜보는 것도 유의미한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