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간의 조건 - 꽃게잡이 배에서 돼지 농장까지, 대한민국 워킹 푸어 잔혹사
한승태 지음 / 시대의창 / 201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대학교 4학년을 앞둔 겨울 방학에 나는 처음으로 노가다(막일)를 해봤다. 내가 다니던 대학 앞으로는 도시철도 2호선 공사가 한창이었다. 그 해 겨울이 유난히 추웠는데 무작정 공사 현장에 세워진 컨테이너 박스로 찾아간 날도 귀가 떨어져 나갈 정도로 추운 날이었다.
“저기... 여기서 일하고 싶은데요.(당당하게 쳐다보며)”
“에??(여기서는 목소리가 평소보다 15dB이 올라갔다)”
“여기서... 일 할 수 있습니까?(가소롭게 쳐다보며)”
“네...(눈을 서서히 내리깔며)”
“여 학교 다니는 대학생 아니에요?(여전히 가소롭게 쳐다보며)”
“예...맞는데요...(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어...여서 일 할 수 있겠나?(끝까지 가소롭게 쳐다보며) 일 힘든데~”
다음날부터 새벽6시 출근을 시작했다. 당시 나는 공사 현장에서 걸어서 1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원룸촌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제 시간에 출근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5시30분에 일어나서 씻고 나와서 자전거로 한 겨울 새벽바람을 뚫어야 했다.
6시 까지 출근하면 현장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이 아침조회를 한다. 처음 들어본 이상한 음악을 틀고 간부로 보이는 사람이 나와 체조를 하면 아저씨들은 18,18,28 궁시렁대며 몸을 턴다. 그리고 체조를 한 간부보다 조금 더 높아 보이는 간부가 나와 아침 훈화를 하고 나면 현장 근무자들은 각 팀별로 흩어져 각 팀을 담당하는 십장의 통솔 하에 옹기종기 모닥불로 모여든다. 한바탕 욕의 향연을 듣다보면 내가 욕인지 욕이 나인지 모를 정도로 얼이 빠지곤 했었다. 하나같이 왕년에 한 가닥 해보지 않은 아저씨가 없었고, 하나같이 줄담배를 시도 때도 없이 피워 댔으며, 하나같이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고 경계했다. 하고 많은 알바 중에 왜 이런 험한 일을 하냐~
당시 내게 처음 배정된(?) 일은 철근보조공이었다. 지하철이 지하로 다니게 하기 위해서는 지하의 암반을 뚫고 그 곳을 완전히 콘크리트로 덮어야 한다. 지상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지하에는 무수한 콘크리트와 철골 구조물이 있어야 한다. 그 철골 구조물을 만들기 위한 틀을 만드는 것이 철근인데 수십 미터에 달하는 철근 수톤이 아침마다 배달되어 오면 그것을 용도에 따라 가공하고 변형시키는 일이 철근공의 일이었다. 다른 작업팀과는 달리 철근공은 지상에서 일을 한다. 공사장 펜스 안에 수십 톤의 철근을 쌓아둔 채 일하기 때문에 오다가 떨어지면 바로 작업을 해서 지하로 내려주는 것이 주된 일이었다.
나는 철근공 이씨 아저씨를 데모도(보조)하는 철근 보조공이었다. 주로 하는 일은 아저씨 말에 크게 대답하고 시키는 일 하는 것이었다.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한 겨울 날씨에 10차선 왕복도로 한편에 보기만 해도 비실한 철제 펜스를 두른 공사현장의 황량함도, 출근부터 퇴근하는 그 순간까지 한 시도 멈추지 않았던 아저씨들의 욕설도 아니었다. 바로 노가다 용어였다.
“야!(이런 현장에선 이름이 불려 꽃이 되길 바라는 것은 사치다) 저~ 가서 가꾸목 포바이포 갖고 와라, 얌마! 저쪽 철근 가빠로 덮어라!, 어이! 반도가지고 단디 해라, 나라시 똑바로 해라!”
처음 열흘 정도는 외계에 홀로 떨어진 지구의 유일한 생존자 같았다. 숱하게 지나가는 차들의 소음, 수시로 현장에 드나드는 트럭들의 소음, 아저씨들의 욕, 현장 기계들의 폭발적인 사운드.
아저씨들은 분명 소리 질러 오다를 줬는데 멀뚱멀뚱 서 있는 내게 다시 한 번 욕설과 함께 2차 오다를 내린다. 수백 번 정도 아저씨가 원하는 도구와 장비를 가져오지 못하다 보면 자연스레 노가다 용어가 몸으로 익혀진다.
어는 정도 일이 몸에 익혀지니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2주 정도 출근을 계속하자 처음 나와 면접(?)을 봤던 십장 아저씨의 태도가 달라졌다. 뒤로 간식도 더 챙겨주고 작업화와 장갑도 챙겨주곤 했다. 하루 종일 함께 일하는 이씨 아저씨도 자신의 인생스토리를 들려주고 철근공은 주로 큰 공사 현장(도로, 교량, 원전 등)을 찾아 전국을 다닌다며 자기 밑에서 제대로 일을 배워 돌아다니자는 권유를 하기도 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아저씨들은 그들이 쓰는 사투리와 욕설의 다채로움만큼 다양한 인생들이었다. 함바(현장의 식당)에서 식사하며, 모닥불에 모여 앉아 간부 욕 하며 해주는 말들은 영화, 책 이상이었다. 당시 현장에는 동남아, 중국에서 온 사람들도 함께 일하고 있었다. 그들의 어설픈 한국말을 듣는 것도 재밌는 일이었다.
개강 전까지 3개월을 꼬박 일했다. 물론, 재밌기만 했던 것은 당연히 아니다. 크게 다칠 뻔 하기도 했고 수십 미터 지하 현장으로 떨어질 뻔도 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알이 배겨 걸으면 그대로 내 몸이 산산이 조각나 부서질 것 같은 고통을 맛보기도 했다. 군대에서도 걸려보지 않은 동상에 시달려 보기도 했고, 괜히 평온한 현장에서 물 흐리려 온 거 아니냐(지금 생각해보면 괜히 대학생이 들어와서 노조결성을 도모하거나 아저씨들을 선동하기 위해 들어온 거 아니냐는 정도였던 것 같다. 당시 내가 다닌 학교가 데모를 많이 하던 곳이라 그런가?)는 현장 간부들의 의혹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새로운 경험이 주는 기대가 훨씬 컸기 때문에 3개월을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
3개월 동안 나는 좋은 경험을 하고 사람들과도 잘 지내고 젊어서 고생을 꼭 해봐야지 했던 호기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피할 데가 있었다는 것이다. ‘너 같은 젊은 놈이 철근일 잘하는 놈 못 봤다. 나랑 같이 일해보자.’는 이씨 아저씨의 권유에도 감사하는 척 하면서 속으로 으스대며 거절할 수 있었던 것은
‘어차피 나는 당신과는 달라요~. 나는 여기에 그냥 알바 하러 온 거고요~. 나는 봄이 오면 저 길 건너 대학에서 공부할 사람이고요~. 졸업하면 그때 내가 여기에서 일했었지 하며 추억삼아 아주 가끔씩 떠올려는 볼게요~.’
“지금이 21세기라고 해서 모두가 화상 통화를 하고 제트팩을 메고 출근하는 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여전히 IMF시절을 살고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서울 올림픽 시대의 삶을 산다. 삶의 스펙트럼 전체를 살펴본다면 얼마나 소수의 사람들만이 ‘동시대적인’ 생활수준을 누리는지 확인하고 놀라게 될 것이다.” (p.238)
이 책 「인간의 조건」은 한국사회에서 루저로 통칭되는 한 젊은이의 잔혹기다. 꽃게잡이 어선에서 편의점과 주유소로, 돼지농장에서 비닐하우스로 이른 바 아무도 일하려 하지 않는 곳으로 일을 하러 갔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분명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지 않는 사람들이기도 했다. 모두가 너무 힘든 시기라고 하지만 여전히 시내 백화점에는 사람들로 넘쳐 난다. 없는 살림에도 아이패드는 꼭 사야하고 자동차는 남들 눈에 꿀릴 정도로 아닌 사양으로 꼭 타고 다녀야 한다.
이 책을 쓴 한승태라는 사람은 적어도 나의 노가다 경험보다는 훨씬 순수한 동기였던 것 같다. 여기서 ‘순수한’ 이라고 정의한 것은 그가 나보다는 더 생각 없이 일을 시작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서다. 밑바닥 인생을 경험하고 그것을 토대로 글을 써야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후일을 도모할 양분으로 삼아야지. 열심히 벌고 모아서 장사를 해야지. 뭐 이런 흔한 동기마저 없다. 적어도 이 책에서 저자 한승태가 이야기고자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그래서 동기가 순수하다. 그냥 산 것이니까 그렇다.
“이 괴상망측한 사회가 비틀거리면서도 여전히 굴러갈 수 있는 이유는 수많은 사람들이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음에도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p.438)
다만 그가 꽃게잡이 배에서 돼지농장에서 비닐하우스에서 주유소에서 만난 그 사람들과 그의 표현대로 괴상망측한 사회가 유지되는 이유를 찾았다는 것이 이 책을 통해 그가 하고자 하는 가장 절실한 말일 거라 생각한다. 작업장에서 숙소에서 술자리에서 누구보다 열을 올리며 욕지거리를 내뱉고 죽일 놈, 살릴 놈 하면서 당장 회칼을 집어 들고 쑤셔 넣을 것처럼 광분하지만 다음 날 출근하면 으레 고분고분한 사람으로 변해버리는 것. 응당 일한 대가를 받아야 함에도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일할 수 있다는 게 어디야, 남의 돈 버는 게 쉬운 일인 줄 알어?’ 라며 일하는 사람이 받아야 할 권리를 자체적으로 포기한 사람들이 막장 같은 사회를 굴려간다는 것. 하지만 저자는 심각하지 않다. 일을 시작하는 이유는 불분명했지만 그가 일을 그만둔 이유는 분명했다. 옆의 동료가 말하지 못하는 것을 상사에게 사장에게, 고용주에게 대놓고 얘기했다. 그리고 또 다른 막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러나 이 책이 심각하지만은 않다. 분명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하고 짜증이 밀려오고 분노가 솟구치는 내용임에도 책을 읽다보면 히죽히죽 웃기도 한다. 저자의 사람됨 자체가 심각하고 고뇌하는 캐릭터가 아닌 것이 그의 글에서도 드러난다. 최악의 환경과 상황임에도 그것을 재미있게 표현한다. 자신을 끊임없이 자학하며 상대를 웃기는 블랙코미디 같기도 하다. 이를테면 이런 부분.
“홍어를 삭힌 데 쓴 짚에다 소변과 식초를 뿌린 다음 그 속에다 청국장과 날생선과 날고기를 열 달 정도 묵혀둔 냄새 같았다.” (p.188)
국도변을 지나다 보면 갑자기 훅! 하고 차안으로 유입되는 분뇨 냄새 중에서도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돼지사육장, 돼지농장 인근의 냄새다. 맡아 본 사람은 누구나 알 것이다. 저자는 법인에서 운영하는 대규모 돼지 농장에서 일했는데, 그가 그곳에서 맡은 냄새에 대한 표현이 재미있다. 지옥의 냄새라는 단편적인 표현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입체적이고 다면적인 묘사는 흡사 ‘내가 지금 돼지농장 기숙사 안에서 이 책을 읽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착각과 함께 순식간에 콧구멍을 손으로 움켜쥐기에 이르렀다.
이런 부분 말고도 앞서 말한 대로 자신의 절망적인 상황을 블랙코미디로 승화하는 부분이 많은데 키득거리며 웃으면서 슬픈, 어느 유명한 카피라이터의 표현대로 웃픈 상황이 책의 곳곳에서 펼쳐진다.
“긴장 때문에 깊게 잠들 수가 없었다. 나는 언제나 일어날 시간이 되기 전에 잠을 깼다.” (p.32)
“오늘 오전발이만 하고 땃배 잡으러 간다.”
선주가 말했다.
한 문장 안에 처음 듣는 단어가 두 개 이상일 땐 언제나 큰형님에게 뜻을 물었다. (p.53)
“항구에서는 모든 사람의 삶이 하향 평준화된 사회가 주는 만족감이 있었다.” (p.83)
어설픈 위로는 독이 된다. 나는 최소한 이 책을 쓴 한승태씨와 비슷한 경험을 잠시나마 해본 적이 있다. 6시 출근 시간을 맞추기 위해 새벽잠을 깨우고 일어나 늦지 않으려 자전거 페달을 미친 듯이 밟아댔던 기억, 도로 한 벌판의 현장에서 겨울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며 한참을 일하다 참 시간에 맞춰 모닥불에 모여 듣던 아저씨들의 오색 창연한 욕의 향연, 한 대가리·반대가리부터 반도·반셍·가빠·오함마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던 단어를 열흘 만에 몸으로 배웠던 기억, 그들과 나누었던 이야기, 이야기, 이야기.
처음의 동기와 일을 그만두게 된 경위가 저자와는 많이 달랐다. 그래서 그의 동기가 최소한 나보다는 순수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 또한 뭐 그렇게 불손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돌이켜 보면 이씨 아저씨를 따라 데모도 하며 전국을 떠돌아다니는 삶도 내게 어울렸을지도 모른다. 함께 일하던 방글라데시 형님들을 자취방으로 초대해 함께 놀았던 밤도 소중한 기억이다.
저자의 말대로 결국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 없는 체스판에서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병정하나에 불과하다면 최소한 좋았던 기억과 지금의 삶의 양분이 된 과거의 경험을 곱씹는 것은 결코 찌질한 회상이나 비겁한 회피가 아니다.
한승태씨가 지금은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도 최선을 다하고 있으리라는 추측이다.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나아지지 않는 삶의 고됨이 여전히 두 어깨를 내리 누르지만 분명히 최선을 다하고 있다. 분노로 가득한 거대한 풍선 안에서 살고 있는 것 같은 한국이라는 사회가 언제 뻥~! 하고 터져버릴지 모르지만 적어도 「인간의 조건」과 같은 책을 읽고 더 슬퍼지고 더 화나고 더 우울해지는 사회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풍선이 터지기 전까지 말이다. 내가 10년 전 철근 보조공의 일을 곱씹으며 뭔지 모를 마음의 충만함을 느끼는 지금처럼 이런 종류의 책을 보며 가볍게 웃음 짓고 일상을 대하는 마음을 한 번 더 다 잡는 정도였음 좋겠다.
정말 딱 그 정도 만이었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