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양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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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신을 믿는 사람이든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이든 자기의 삶 한복판에 기적이라는 것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은 매한가지일 것이다. 그만큼 현실의 삶이 팍팍하고 고되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일어나서 씻고 밥 먹고 출근하고(등교하고) 일하고(공부하고) 퇴근하고(하교하고) 집에 와서 씻고 자고 하는 재귀순환이 무한히 반복될 것만 같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 바라는 기적이라는 것은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는 다는 것이 가장 큰 마력이기도 할 것이다. 아무나 갈 수 있는 해병대라면 지금처럼 해병대 전우회가 그렇게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없을 거라 확신할 수 있는 것처럼 기적이 누구에게나 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면 이미 그것은 기적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일상에서 기적을 경험하고 싶다.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시간과 공간이 무의미해진 나미야 잡화점에서 미래의 예측을 답장으로 받아 큰 부자가 된 하루미처럼 나도 당신도 그렇게 되고 싶을 것이다. 영원할 것만 같던 경기불황이 끝나는 시점에 갑자기 터져버린 부동산 열기를 타고 투자를 반복해 엄청난 돈을 번 후 부동산 버블이 터져버리기 직전 모든 매물을 처분해 피해를 입지 않는 예언자적 삶. 그렇게 예견된 미래를 이미 확보한 채 무한한 재귀순환을 또다시 반복한다면 나는 월요일 출근길도 너무 행복할 것 같다. 직장인들의 가장 큰 소원 중 하나가 단 하루, 단 하루만 미리 살아보는 것일 테다. 이틀도 사흘도 한 달도 아니라 단 하루. 이번 주 토요일 9시 10분!! 그 때로 미리 날아가서 잠시 숫자 몇 개만 확인할 수 있다면 그것이 나미야 잡화점 같은 잡화점이 되었건 우리 아파트 단지 안에 슈퍼마켓이 되었건, 단 하루!! 이번 주 토요일 9시 10분!!! 일생에 단 한번만 그때로 미리 가볼 수 있다면……. 하는 소원, 기적!!

 

이 책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전작들과는 많이 다른 작품이다. 그러면서도 결국 같은 맥락 안에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의 추리소설의 플롯과는 많이 다르지만 그가 주목하는 인간성과 그 객체적 인간성 사이에 존재하는 인간성의 본연의 모습, 결국 혼자서 살아갈 수 없도록 설계된 듯이 전개되는 일련의 사건들 간의 개연성은 이전의 작품의 그것과 유사하다.

 


“처음으로 상담 편지를 드립니다.” (p.19)

 

아쓰야, 쇼타, 고헤이는 각자의 이유로 직장을 잃은 백수들이다. 자의든 타의든 갑자기 잃게 된 직장은 삶의 무게를 천근이나 더하는 고통이다. 아직 젊고 해야 할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그래서 돈을 벌어야 하는데 직장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술 취한 아저씨의 지갑을 슬쩍하는 것으로 도둑질을 시작한다. 어린 시절 그토록 들었던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된다.’라는 어른들 말씀은 나이가 들수록 정말 맞는 말이다. 세 친구도 처음 취객의 지갑을 훔치는 것으로 시작된 일이 빈집에 들어가 절도를 하는 것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어쨌든 돈은 있어야 하고 바로 직장을 다시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고 동네를 어슬렁거리다 보니 별장처럼 지은 집이 있는데 주인은 2시간 거리의 도쿄에 살고 있는 부자이고 자주 오지 않는 다는 사실도 확인한 후 아무도 없는 하루미의 별장처럼 지은 집에 몰래 들어가 신나게 절도를 하고 있는데!! 아뿔싸!! 딱 걸렸다. 그래서 사람을 결박하게 되면서 절도라는 범죄명 앞에 특수가 붙게 된다.

책의 첫 부분은 이들 세 명이 절도를 한 후 사람을 결박하고 허둥지둥 도망 나와 나미야 잡화점에 숨게 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부분은 절도를 하게 되는 경위와 도망 나와 지금은 그들 세 명으로 인해 피해자가 된 도쿄의 갑부 하루미가 호스티스 생활을 하던 아가씨 시절 앞서 말한 나미야 잡화점에서 받은 미래를 예측하는 편지로 인해 자신이 부자가 된 것에 대한 진심어린 감사를 담은 편지를 받는 것으로 끝이 난다. 언뜻 보면 이것 또한 재귀순환이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이 분명히 저기쯤인 것 같은데 거길 만져보면 또 다른 시작인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그의 이전 작품들에서 줄곧 사용했던 사람, 인간성 간의 계획된 듯 한 개연성, 바로 그것이다.

 

계획에 없던 특수절도를 저지르게 된 세 사람이 숨어든 곳은 이제는 폐가가 된 나미야 잡화점이다. 그들이 어린 시절 잡화점의 할아버지는 유명한 사람이었다. 장사보다 사람들 고민해결에 앞장서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들의 짓궂은 장난에도 어김없이 진심어린 답장을 해주던 그 곳. 그곳에서 시간과 공간이 초월되고 한 여름 낮 아스팔트 위의 뱀춤같은 아지랑이처럼 시간과 공간이 묘해지는 경험을 한다. 고민을 들어주고 답장을 써주던 할아버지는 이미 잡화점을 떠난 지 오래지만 여전히 그곳을 찾아와 고민 편지를 던져 넣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특수절도 피의자이자, 백수들이자, 도망자들인 그들은 답장을 하기 시작한다.

 


“대부분의 경우, 상담자는 이미 답을 알아. 다만 상담을 통해 그 답이 옳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거야.” (p.167)

 

<한밤중에 하모니카를>의 가쓰로도 <시빅 자동차에서 아침까지>의 잡화점 아들 다카유키도 <묵도는 비틀스로>의 잡화점 손자 고스케도 <하늘위에서 기도를>의 길 잃은 강아지 호스티스 하루미도 정말 할아버지에게, 나미야 잡화점에 자신의 고민을 해결 받기 위해 고민 편지를 던져 넣는 것이 아니다. 내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 나의 고민에 진지하게 반응해 주는 사람. 그 사람을 찾고 싶은 것이다.

 


“이 사람이 감사하는 대상은 바로 우리야. 우리한테 고맙다고 편지를 보내준 거야. 우리 같은 놈들한테, 쭉정이 백수인 우리한테…….” (p.444)

 

절도 피의자이자, 백수들이자, 도망자들인 아쓰야, 쇼타, 고헤이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던 가쓰로, 다카유키, 고스케, 하루미는 [나미야 잡화점]에서 [기적]이라는 고리로 한 데 연결 된다.

 

사람은 함께 살아야 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나미야 잡화점으로 연결 된다. 그리고 또 한 곳. [환광원] 이라는 사회복지시설로 연결 된다. 그곳에서 생활했었던지, 그곳을 후원했었던지, 그곳에 대해 알고 있었던지 어떤 방식으로든 [환광원]으로 연결된다.

작품 속 인물들이 살아 온 배경, 시기, 방법은 모두 다르지만 결국 사람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아쓰야, 쇼타, 고헤이의 범행이 그들의 계획과는 다르게 흘러가 그들은 나마야 잡화점으로 숨어들어갈 수 있었고 그들로 인해 가쓰로, 다카유키, 고스케, 하루미가 그들의 고민에 대한 답장을 받을 수 있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되는 나의 그 행동이 그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일지도 모른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어차피 사람을 떠나서 살아갈 수 없음은 자명하다. 매일 매일 스트레스를 몇 배로 적립해 주는 저 직장 상사, 저 친구, 저 가족을 떠나서 살 수 없다.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멋있게 사직서를 집어 던지며 사무실 문을 쾅 닫고 나올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친구들 사이에서도 늘 내가 손해 보지 않고 관계를 유지해 나갈 수는 없다. 부모의 잔소리, 사이가 좋지 않는 형제와 사는 것 또한 내가 두부 자르듯 쉭 하고 잘라내 버릴 수 없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와는 조금은 다르게 상사와 친구와 가족을 쳐다봐야 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물론, 그런 노력을 굳이 하기 싫거나 귀찮거나 현상 유지에 만족하는 사람은 지금처럼 사는 것이 백번 옳은 길이다. 하지만 [나미야 잡화점]을 통한 사람들 사이에서의 기적을 경험하고 싶다면 나를 제외 한 상대방을 보는 눈을 달리해야 한다.

아무것도 아닌 세 친구의 답장에 많은 사람의 인생이 바뀐 것처럼 그래서 결국엔 그 세 친구도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고 그들의 범죄에 대한 자수를 하고자 하는 마음을 먹을 수 있었다는 것은 기적이다.

 

몇 날 몇 달을 ‘단 한번만 토요일 밤 9시 10분으로 가서 번호 6개 확인할 수 있게 해주세요~!!’ 기도해봤자 그런 것 들어줄 신은 없다.

차라리 내일 월요일 아침에 사무실·학교·학원·가게 등에서 만날 그 사람, 매일 오르내리는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만날 그 사람, 매일 출·퇴근 신호대기한 차 양 옆으로 한 번씩 마주치는 그 운전자, 매일 함께 밥 먹는 그 사람들. 그 사람들이 언제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나와 기적을 나눌 사람이 될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과 만들지 모를 기적을 꿈꾸는 편이 훨씬 생산적이고 희망적인 기다림이 되지 않을 까 싶다.


 

“아니, 몇 마디만 써 보내도 그쪽은 느낌이 크게 다를 거야. 내 얘기를 누가 들어주기만 해도 고마웠던 일, 자주 있었잖아? 이 사람도 자기 얘기를 어디에도 털어놓지 못해서 힘들어하는 거야.” (p.31)

 

대단한 것이 아닐 것이다. 단지 내 얘기를 들어주는 그 사람이 있어 살아갈 맛이 나는 것처럼 나도 그 사람들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 그 사람이 자신의 얘기를 내게 털어놓는 것만으로 그 사람의 힘듦이 조금이나마 덜어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그 사람과 내가 만들 기적의 첫 단추, 아니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보다 더 멋진 기적을 함께 이루어 갈지도 모를 천 단추를 멋지게 끼운 것이다.

 

우리가 늘 하게 되는 착각, ‘누군가 날 도와줬으면, 내게 연락해 줬으면, 나를 찾아와 줬으면…….’ 라는 생각만 하다가는 기적은커녕 답장은커녕 고민한번 들어 봐주지 못할 지도 모른다. 내가 먼저 해야 한다. 왠지 내가 지는 것 같고 자존심 상하는 것 같지만 내가 먼저 해야 한다.

나는 이 리뷰를 쓰기 전 오늘 오후 몇 개월째 틀어진 관계로 꺼림칙하던 그 사람과의 오해를 풀었다. 내가 먼저 사과했다. 늘 그 사람이 내게 먼저 잘못한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사람이 먼저 사과하지 않는 이상 절대로 화해하는 일이 없다고 호언했다. 어차피 평생 볼 사람도 아닌데 아쉬울 것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먼저 사과했더니 그 사람이 더 크게, 더 많이 사과했다. 몇 달 째 앙금이 한 방에 날아갔다.

오늘 만큼은 신이 네 단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시겠다. 해도 다음 주 토요일 밤 9시 10분으로 보내주세요. 라고 말하지 않을 것 같다. 오늘 밤 만큼은 그 사람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축복을 신께 부탁하고 싶다. (부탁을 하자마자 다음 주 토요일 밤으로 데려가 달라는 소원을 빌지 않은 것을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기적은 내가 먼저 시작하는 것이다.

나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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