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성장 시대가 온다 - 성장의 종말과 세계 경제의 미래
리처드 하인버그 지음, 노승영 옮김 / 부키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사실상 경제 전체가 영구적 성장이라는 불가능한 기대에 의존하고 있었기에 폭발은 모든 것을 날려 버릴 터였다.” (p.35)

 

영원한 성장은 있을 수 없다. 불가능하다. 자연적인 증가는 절대적인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식용으로 들여 온 베스와 블루길이 하천 생태계를 완전히 변화시켰다. 천적이 없는 종은 급격한 개체수의 증가를 가져왔다. 브레이크 없이 증가한 개체 수는 생태계의 교란을 가져왔다. 한창 베스와 블루길에 의한 하천 생태계 파괴를 염려하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들끓었던 적이 있었다. 너도 나도 앞 다투어 나와 대책을 제시했다. 하지만 자연 생태계는 스스로 균형을 맞추기 시작했다. 몇 년 안에 하천 생태계가 완전히 파괴될 것처럼 말했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문제는 인간이 만든 구조다. 자연은 장구한 시간동안 그래왔듯이 변화와 충격에 가장 적절하고 알맞은 형태로 진화하며 적응해 왔다. 마치 그렇게 하는 것이 사명인 것처럼.

하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 사람이 만든 구조는 결코 그렇지 못하다. 지구라는 행성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종 중 가장 막내임에도 모든 것을 한 순간에(지구와 생명 전체 나이에 비교하면)에 파괴하고 있다. 마치 인간만이 지구의 주인이고 주체인 것 마냥 지구와 다른 종을 소모했다.

불을 피우기 시작하고 농사를 짓고 문자를 만들고 왕을 세우고 전쟁을 하고 문명을 건설하면서부터 인간만이 최고인 것으로 착각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것이 문제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 「제로 성장 시대가 온다」는 지구와 자연, 다른 모든 종들과 함께 인간이 타고 있는 마지막 종착역에 관한 이야기다. 종착역이 가까워 왔는지, 이미 도착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이 책을 읽는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여질 것이기 때문이다.

문명의 첨단을 향해 달려가기 위해서는 성장만이 가장 주요한 담론이었다. 더, 더, 더……. 파이를 크게 만드는 것만이 인류의 생존과 미래를 위한 유일한 길로 여겼다. 각 국가들은 경쟁했다. 경제력으로, 군사력으로. 전쟁을 하기도 하고 무역을 하기도 하고 침략을 하기도 하고 식민 지배를 받기도 했다. 자본이 모든 것이고 자본주의만이 마지막 해결책인 것처럼 모든 인간들이 떠들어 왔다. 하지만 뼈아프게도(뼈만 아프면 다행이다) 미국이 한순간에 넘어지는 것을 지켜보며 이제까지 들어왔던 높으신 고관대작들과 현명하신 경제학자들의 무한 성장론이 뻥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미리 알았다면 억울하지 않았을까?

 

 

“월스트리트 중개인들은 자신이 연봉 수백만 달러를 받아 마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이 실제로 한 일은 채무 시스템을 쥐어짜 찔끔찔끔 떨어지는 기름을 받아 챙긴 것뿐이다. 나쁜 짓에 두둑한 보상이 따르자 월스트리트 전체가 나쁜 짓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p.89)

 

월스트리트 아큐파이는 전 세계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사실 월스트리트 아큐파이 이전에 월스트리트를 동경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미국 드라마와 영화를 보면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맨해튼의 야경을 볼 수 있었다. 경제와 문명의 첨단을 상징하는 그 건물들과 멋지게 주식을 거래하는 월스트리트 중개인들의 걷어진 와이셔츠 속으로 보이는 굵은 팔뚝을 동경했다. 뭐, 어차피 지구 반대편 극동지역에 살고 있는 내 살림살이에 전혀 그들의 멋진 팔뚝이 미칠 영향은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들의 멋진 이미지 뒤에 도사린 탐욕을 알지 못했다. 서브프라임 모지기 사태가 터지지 않았다면 여전히 그들은 전 세계인들에게 동경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배서니 맥린과 조 노세라가 공역한 「모든 악마가 여기에 있다」를 읽어보면 그들의 추악하고 위험한 탐욕의 정체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미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많은 학자들 사이에서 예측되던 일이었고 월스트리트와 금융당국, 정부와 중앙은행 등이 함께 모른 척 하기로 한 대표적인 케이스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본주의의 마지막 해결책이라 일컬어지던 신자유주의는 종말하고 있다.

 

 

“자원 고갈, 환경 파괴, 구조적 금융·통화 실패” (p.30)

“화석 연료 고갈 ,물 부족, 식량 위기, 금속·광물 고갈, 기후변화, 대규모 환경 재앙”

 

사실 더 심각한 문제는 위와 같은 것들이다. 저자는 책에서 위에서 열거한 문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저자가 ‘석유피크’에 대한 전문가라는 사실이 이에 한 몫 했을 것이다. 학자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이미 ‘석유피크’는 지나갔고 석유를 비롯한 다른 화석연료들도 같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 지금까지 인류의 문명 발전과 경제 성장에 가장 큰 추동력이 되었던 화석연료의 종말은 지구의 종말 정도로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다. 또한 물 부족 문제. 이것은 기후변화·대규모 환경 재앙 문제와 궤를 같이 하고 있는 부분인데 지구 담수층의 물 전체의 양이 급격하게 줄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큰 원인은 기후변화에 둔다. 갈수록 지구전체가 뜨거워지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부터 이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으니까 20년이 훌쩍 지난 얘기다. 20년이 훌쩍 지났음에도 문제가 해결되거나 뾰족한 대책이 마련되기는커녕 완전한 기후변화에 도달하고 있으니 절망적이다. 남극과 북극이 녹고 있고 비는 예전처럼 많이 오지 않는다. 농업과 공업은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물은 필수적이다. 지구 표층에 물이 없어지니 담수층에 있는 물까지 퍼 올리게 된다. 점점 물은 줄어든다.

식량 위기, 금속·광물 고갈 또한 심각한 문제다.

수 년 전부터 외신을 통해 전해지는 유럽 국가들의 국가부도 위기는 남의 나라 일 같지 않다. 불과 십 여 년 전에 한국도 구제금융 체제에 들어갔었고 최소한 한국보다는 잘 살고 경제도 튼튼하리라 생각하던 유럽조차 경제위기에 직면해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이런 유럽의 경제위기에 대해 일반적인 해석이 아니라 유로존과 그 유로존의 금융당국, 유로존 안에서도 앞서있는 몇몇 나라들의 이해관계가 함께 맞물리며 발생한 문제라고 해석하는데 100% 동의했다.

결국, 미리 예방하고 최소한 그런 위기의 정도를 줄일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계가 존재한다. 증거는 분명하다. 우리는 한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우리는 방향을 바꾸지 않았고 어쩌면 이미 도달했는지도 모른다.” (p.196)

 

증거가 분명했음에도 경제성장만이 해결책이라 떠들어 댔던 것처럼 분명한 증거를 알려주지 않았다.

아직 젊고 아이도 낳아야 하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은데 한계를 향해 가고 있고 어쩌면 도달했을지도 모른다는 저자의 말이 유독 슬프게 들린다. 방향을 바꾸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국가가 책임질 수 있는 일은 아닐까?

 

“화석연료 자원이 거의 없는 일본이 자원 공급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동중국해의 석유·가스 매장지를 놓고 다투느라 중국과의 영유권 분쟁이 격화될지도 모른다.” (p.266)

 

작년 말 갑자기 중국과 일본이 센카쿠 열도를 두고 갈등을 벌였다. 두 나라는 서로 자신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급기야 군사적 충돌까지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기도 했다. 세계경제를 좌지우지 하는 중국과 세계경제 3위의 일본이 조그만 동중국해의 섬들을 가지고 난리를 쳤다. 그곳에 엄청난 양의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중국도, 일본도 급한 것이다. 이미 한계에 부딪혀가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서 군사적 충돌까지 각오하고 자원 확보를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그런데 국가를 믿을 수 있을까? 역사를 운운하며 자원 확보에 대한 야욕을 포장하는 국가를 믿을 수 있을까?

 

“세계 성인 인구 중 최상위 부유층 1퍼센트는 계속 부유해져 2000년에 전 세계 자산의 40퍼센트를 소유했으며 최상위 부유층 10퍼센트가 전 세계 총자산의 85퍼센트를 차지했다. 반면에 하위 50퍼센트는 전 세계 부의 고작 1퍼센트를 소유하고 있다.” (p.283)

 

국가는 결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을뿐더러 어설프게 개입하다가 문제만 크게 만들 뿐이다. 세계 총자산의 85퍼센트를 최상위 부유층 10퍼센트가 차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국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 최상위 부유층 10퍼센트에게 세금을 걷어 내 세계 부의 고작 1퍼센트를 소유하고 있는 하위 50퍼센트를 먹여 살려야 하는데 지금 어디 국가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국가가 있나?

암담한 일이다.

 

새 정부가 출범하게 되는 한국의 현실은 더욱 참담하다. ‘경제민주화’ 담론이 선거용 캠페인 정도로 사용되는 현실에서 국가에 기댈 멍청한 국민은 없다. 정권교체 보다는 당장 떨어질지도 모를 내 강남 아파트 집값이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기성세대가 있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돈 들여 만든 공익광고에서는 아이를 낳으면 국가가 모든 양육을 책임져 줄 것처럼 이미지 메이킹을 하지만 곧이곧대로 믿는 바보 같은 국민은 없다.

다만 최소한 지금보다는 더 나빠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정말 그것뿐이다.

 

 

그렇다면 기업은 해결을 해 줄 수 있을까?

 

“기업은 인간과 자연을 착취하면서도 법적·도덕적 책임을 면제받는다.” (p.318)

 

요즘 한창인 테니스 메이저 대회 호주오픈을 보며 궁금증이 생겼다. 선수들의 멋진 플레이를 방해하는 기업로고가 너무나도 선명하기 때문이다. KIA가 곳곳에 박혀 있다. 스폰서 중에서도 메인스폰서인 것 같다. TV화면에 가장 잘 노출되는 곳에 KIA가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수십, 수백억에 달하는 후원을 할 텐데 말이다. 국내 소비자들에게는 껍데기만 바꾼 차를 수백만 원씩 비싸게 받고 똑같은 차종이라 할지라도 수출용 차량은 성능이 월등하게 좋고, 조그마한 결함이 있을 때에는 신속하게 리콜을 하는 그들. 그러면서도 한국 선수 단 한명도 진출하지 못한 테니스 대회에 그렇게 많은 돈을 들이는 까닭이 뭘까? 아무리 싸게 수출해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일본과 독일의 자동차들을 보다 더 많은 돈을 들여 광고를 하는 수밖에 없는 것인가? 박지성이 맨체스터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할 당시 엄청난 후원으로 논란이 된 한국타이어와 첼시를 후원하는 삼성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은 어느 한쪽으로부터는 무한한 착취를 가하고 모든 죄를 면제받는다. 결코 국민을 책임져주지 않는다고 미리 살펴 본 국가는 기업을 향해서는 무한 사랑이다. 규제, 세금, 공정거래 따위는 눈 가리고 아웅이다.

 

 

“전 세계 경제 담론을 바꿔야 한다. 성장의 종말에 어떻게 적응할지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하지만 논의를 이끌어 내려면 우선 불편한 진실을 끄집어내야 한다. 자원 고갈과 파국적 환경 파괴를 비롯한 현 상황에서는 경제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 말이다.” (p.337)

 

국가, 기업, 유엔 등등이 따로 놀아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저자의 말대로 세계 경제 담론을 바꿔야 한다. 신자유주의가 모든 해법이 될 수 있을 것처럼 떠들던 경제학자들은 자신의 판단착오를 반성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분명한 한계와 위험이 있음에도 입 다물었던 학자와 국가, 기업, 언론도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거기서 머물러 있지 말고 함께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추상적인 이런 제안이 가장 적절하고 빠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자원고갈과 파국적인 환경 파괴 외에 앞서 살펴 본 지구 전체적인 문제들은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누구 하나가 발 벗고 나선다고 해서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불편하고 암담하고 때론 절망적이지만 자꾸만 끄집어내 공론화하고 얘기해야 한다. 더 이상 숨기고 감추고 축소하는 것으로 덮을 수 없다. 이미 성장의 한계가 분명하고 가시적인 지구적 문제들은 가득하다.

 

 

 

결국 로컬(Local)로!! 

 

“이웃과 손잡기, 공동체의 복원력 키우기, 공동안보클럽 만들기”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특히 재난영화나 외계인의 침공 같은 영화의 결말은 백이면 백 어떤 평범한 시민의 용감한 행위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다. 영화를 볼 때마다 ‘또 저러고 있네~’ 일갈하지만 다음에 또 그런 비슷한 영화를 본다.

전 지구적 위기와 문제를 해결하는 대책도 결국 별다르지 않다.

[이웃과 손잡기, 공동체의 복원력 키우기, 공동안보클럽 만들기] 각 주제에 대해 저자는 자세하게 설명하지만 제목만 봐도 어떤 내용인지 쉽게 유추해 낼 수 있다. 구체적인 대안도 제시하고 실제로 로컬 공동체를 형성해 국가 단위의 경제위기를 극복한 사례도 소개한다. 다소 맥 빠지는 당연한 결론에 조금 실망하던 찰나, 실제 사례들을 보니 공감이 가고 ‘우리도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기대가 생기기도 했다.

세계 경제 주체들이, 각 국가가, 공룡 기업들이 만루 홈런 한방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면 결국 우리들이 해결해야 한다. 마음 맞고 뜻이 맞는 사람들이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 문명의 첨단 이전 공동체가 가졌던 힘을 복원하는 노력. 그것이 산적한 극한의 위험을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를 대안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동체를 복원하는 것이다. 석유가 고갈되면 기존 운송 수단을 이용할 수 없기에 생활공간이 국지화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지역 단위에서 살아가고 소통해야 한다. 지금처럼 익명화 되고 파편화된 도시적 삶에 작별을 고해야 한다. 탈석유 시대에는 혼자 살아갈 수 없다. 이웃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p.397)

 

맞는 말이다. 익명화 되고 파편화된 도시적 삶과 작별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모든 것을 때려치우고 귀농을 하거나 공동체를 만들어 산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현실적이지 않다.

현실적인 것은 당장 아파트 위층과 아래층에 사는 사람조차도 알지 못하는 현실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쑥스럽지만 먼저 인사를 건네고 애꿎은 휴대폰만 만지작거리지 않아야 한다. 맨 꼭대기 층부터 내려오면서 아저씨 4명이 타고 있는데 엘리베이터 각 구석에 서서 얼굴은 휴대폰에 빠질 듯이 밀착되어 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506호다. 406호와 606호에 누가 살고 있는지 모른다. 갑자기 닥칠지 모를 전 지구적 위기로 대재앙이 닥친다면 나와 내 가족을 도울 수 있는 것은 국가도 기업도 멀리 떨어진 친척도 아니라 바로 내 옆집, 윗집, 아랫집 사람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처럼 그렇게 갑자기 대재앙이 닥치지는 않을 것이라 철석같이 믿고 있지만.

 

오늘 퇴근길 엘리베이터에서는 무조건 먼저 인사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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