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당 - 정치의 새로운 혁명
마르틴 호이즐러 지음, 장혜경 옮김 / 로도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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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통령 선거가 끝난 후 민주당의 후보를 지지한 사람들은 집단 멘붕에 빠졌다. 처음부터 불리한 판이었고 경기장, 심판, 관중마저 한쪽을 응원하는 경기였지만 그래도…….그래도…….작은 희망을 붙잡고 싶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멘붕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상실과 허탈과 분노가 더 이상 저장할 용량이 없을 만큼 커져 버렸다. 정권교체를 이루지 못한 것이 어떤 노동자에게는 절망의 극치로 다가갔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기 목숨을 버렸다. 올 겨울 지독한 한파와 더불어 사람들의 마음은 더 움츠러들었다. 

궁금한 것이 있었다.

가장 큰 멘붕에 빠지고 가장 큰 상처를 입고 가장 큰 절망에 빠져야 할 사람들은 큰 탈 없이 잘 지내고 있는 것이었다.

 

민주당.

민주당은 선거 전에도 보여준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선거 후에도 보여준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책임 뒤집어씌우기에 혈안이 되었다. 자신들 국회의원을 위한 연금법은 쥐도 새도 모르게 통과시켰다. 과반은 아니지만 100석이 훨씬 넘는 의석을 맡겼는데 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애초에 민주당 국회의원들에게는 ‘누가 대통령이 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지 싶다. 어차피 뱃지를 달고 있으니 말이다.

 

 

이 책 「해적당」을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작년에 인터넷에서 ‘해적당’에 대한 기사를 한 번 읽은 적이 있었는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유종일 교수의 「경제민주화가 희망이다」라는 책을 읽으며 87년 이후 정치적 한계에 대해 적확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한국의 정당구조가 얼마나 후진적이고 그 스펙트럼이 좁은지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이 책 「해적당」을 읽으면서 그 생각에 대해 다시 한 번 확신하는 계기다 되었다.

왜 한국의 민주당이 저렇게까지 새누리당스러운지 이제는 알 것 같다. 저렇게까지 의지가 없고 늙은 정당인지도.

 

“해적당은 이 두 집단, 즉 청년층과 실망한 투표 기피자들을 미래의 유권자로 끌어 모았다. 해적당에는 뭔가 새 출발의 분위기가 풍기기 때문이다.” (p.113)

 

지난 대선에서 사람들이 안철수에게 열광한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뭔가 새로운 출발의 분위기를 풍겼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다. 다른 많은 정치전문가들의 의견이 있지만 나는 그것 가운데에서도 ‘새누리당, 민주당 둘 다 싫다. 안철수면 좋다.’ 라는 생각이 그렇게 단기간에 많은 사람들이 안철수에게 열광한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수십 년 동안 양당이 정권을 양분해 왔지만 나아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지역주의를 조장하고 갈등을 첨예화하는 구조로 표를 얻어 냈다. 일단 뱃지를 단 이후에는 철면피가 되어 누릴 수 있는 온갖 것을 다 누린다. 정권을 맡겨도 보고 교체를 해보기도 했지만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이것이 핵심이다.

그래서 젊은 층은 민주당은 더 싫어한다. 단지 민주당이 야당이라는 이유만으로 진보입네, 개혁·민주진영입네 하는 얘기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지난 민주정권 10년 동안 민주당이 어떻게 해왔는지 MB정권 5년 동안 얼마나 무기력하고 무책임했는지, 이번 대통령 선거기간 내내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 이제는 다 알고 있다. 그래서 민주당은 더 싫어한다.

걸치고 있는 옷의 색깔만 다를 뿐 옷감, 디자인, 메이커, 가격은 새누리당의 그것과 똑같다.

그래서 사람들이 민주당을 싫어한다.

그런데 더 비극적인 사실은 민주당은 그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죄송하다며 석고대죄하거나 시장을 돌아다니는 쇼를 하기도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은 당신들에게 속지 않는다.

이 책에 소개된 해적당은 한국 사람들이 한 순간에 안철수에게 열광한 것처럼 독일 베를린 시민들의 마음을 얻었다.

 

 

“공식적인 최종 결과 발표에 따르면 해적당은 8.9%의 득표율을 올렸고 이로써 의회에서 15석을 쟁취했다.” (p.8)

“독창적인 선거전, 선거자금 불과 5만 유로, 폭 넓은 인터넷 활동, 당찬 슬로건, 듬직한 젊은 후보들, 조건 없는 기본소득이라는 독특한 요구, 그리고 무엇보다 직접 민주주의 확대를 외침으로써 해적당은 베를린 시민들에게서 12만 표를 모으는 데 성공했다.” (p.9)

 

정치적 선진국 중 선진국인 독일에서도 정치적 의식이 가장 높은 도시 중 하나인 베를린에서 이름조차 괴상한 해적당이 12만 표를 얻었다는 것은 독일은 물론 유럽에서도 큰 뉴스가 되었다고 한다. 기사련과 사민당이 정권을 주고받는 양당 구조인 것은 분명하지만 한국의 양당 구조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꽤나 건강한 구조라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에도 좀 더 진보적인 사민당의 정책과 정당 활동에 만족하지 못한 젊은이들이 해적당을 만들었다. TV토론에 나와서 기존의 정치인들이 하지 못하는 유머를 하고 기존 정치인들이 입지 않는 옷을 입고 나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단순히 참신하고 새로운 젊은이들의 이미지만으로 선거에 임한 것이 아니라 유럽 내에서 오랜 기간 동안 여러 주체가 주장했지만 현실 정치에 접목하지 못한 ‘조건 없는 기본소득’, ‘직접 민주주의 확대’를 주요 공약으로 들고 나와서 최종적인 유권자들의 표심을 얻었다.

 

내가 더 놀란 것은 독일의 ‘녹색당’을 뛰어넘었다는 것이다.

 

“해적당의 급성장 성공스토리는 한창 잘 나갈 때의 녹색당의 성장을 압도한다.” (p.11)

“1979년 녹색당이 처음으로 브레멘 주 의회로 입성했던 때 모두들 지나가는 일시적 현상이라 생각했지만 결국 녹색당은 외무장관까지 배출했다. 그날 이후 독일엔 젊은 층의 목소리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공포가 지배하고 있다.” (p.109)

 

앞서도 말한 바 있듯이 독일은 기사련과 사민당이 주도하는 양당 구조이지만 군소정당이 스펙트럼이 엄청나게 넓은 정치 선진국이다. 극우정당부터 극좌정당까지 한 테두리 안에서 공존하고 있다. 그 사이에서도 가장 큰 존재감을 가지던 ‘녹색당’을 ‘해적당’이 넘어섰다는 것이 놀라웠다. 독일 내에서도 굉장히 큰 영향을 끼치고 세계적으로도 많은 젊은이들에게 정치의식을 고취시킨 것이 ‘녹색당’이기 때문이다. 책에서의 소개대로 외무장관까지 배출한 ‘녹색당’이었지만 그들 또한 사민당과의 연정을 통해 좀 더 진보적이고 급진적인 세력의 표를 잃게 된 것이었다.

참 부러운 현실이었다.

한국의 젊은 층은 터질 것 같은 열망과 분노와 참여의지를 도대체 어디로 쏟아내야 하는지 찾을 곳이 없는데 적어도 독일은 선택의 여지가 많았다. 그것도 한국처럼 구조는 양당구조이지만 실제로는 일당구조인 후진적인 정치구조가 아니라 엄청나게 넓은 스펙트럼의 정치적 테두리에서 선택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선진적이라 생각되었다.

진보정치 집단 자체가 궤멸된 한국의 정치 현실에서 ‘녹색당’조차 눌러버린 새로운 진보·개혁적 정당인 ‘해적당’의 출현은 한 없이 부럽다.

 

 

“단지 자유로운 소통을 위해서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를 활용하는 수준이 아니다. 이들에게 인터넷은 정치적 혁신을 가능하게 하는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플랫폼이다. 이들은 그래서 당원들이 인터넷상에서 민주적으로 의사를 표현하고 결정할 수 있게 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p.165)

 

한국에서도 지난 몇 년 동안 수많은 팟캐스트 방송이 생기고 기존 정치권에서도 무시 못 할 힘을 가지기도 했다. 한쪽으로 완전히 치우쳐 공정보도가 실종된 기존의 뉴스는 보지도 듣지도 않게 되었다. SNS를 통한 정치의식 고취와 투표독려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그 이상을 해내지 못한 것이 한계였던 것 같다. 아무도 들려주지 않은 진실한 목소리를 들으며 쾌감을 얻기도 하고 확인되지 않은 음모론이었지만 적극적으로 믿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재미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한계였던 것 같다. SNS만 보면 대선 결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 되어야 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 주고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것에 매몰되었다. 독일의 ‘해적당’이 했던 것처럼 새로운 플랫폼을 구축했어야 했다. 물론, 독일과 달리 한국에서는 가능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는 물음은 있지만 팟캐스트 방송으로 쏠린 젊은 층의 마음을 담아내는 그릇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실제로 상에 올려 요긴하게 사용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아무리 예쁘게 만들고 단단하게 만들었다 하더라도 쓰이지 못하면 그릇은 그릇이 아니다.

 

 

“해적당의 핵심은 정치 속으로 걸어 들어가 그곳에서 내용적으로 무언가를 바꾸려 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 자체를 변화시키려고 노력한다는 점이다.” (p.71)

“저의 비전은 정당이 있기는 하되 더 이상 정치의 가장 중요한 측면이 되지 않는 세상입니다. 저의 비전은 모두가 쉬지 않고 자신의 제안을 적어 넣을 수 있는 시민의 플랫폼입니다.” (p.79)

 

실제로 베를린 시의원이 된 해적당의 당원들 중 20대와 30대가 많다고 한다. 이들은 기존의 정당 구조를 뛰어넘는 시도를 했다. 기존의 정당들이 하지 않은 시도를 한 것이다. 끊임없이 내부적으로 대화하고 토론하고 합의하며 주요 결정들은 당원 전체가 직접 참여하는 ‘직접 민주주주의’를 이미 경험하는 등 플랫폼 자체를 바꾸려는 시도다. 사민당과 녹색당에 입당 해 기존 정치인과는 다른 정치인이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해적당’ 만이 할 수 있는 정치를 시도한 것이다. 언제나, 누구든, 어떤 제안이건 인터넷을 통해 당과 대화하고 소통했다.

 

놀라웠다. 부러웠다.

한국의 정치 현실이 참담했다.

 

앞으로의 5년, 10년이 더 걱정이 된다. 민주당은 차라리 새누리당과 합당을 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지금 이대로 선거철만 되면 새누리당과 다른 척 하는 것은 이제 아무도 속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무책임하고 무기력하고 무뇌적인 당신들의 모습에 더 이상 표를 던질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새누리당과 합당해 원래 옷을 입는 편이 낫다.

그리고 독일의 ‘해적당’과 같은 정당이 만들어지지 않는 이상 한국 정당정치가 발전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진보정당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 지 오래다. 지난 민주정권 10년과 MB정권 5년, 이번 대선을 통해 정치를 맛본 젊은이들이 ‘해적당’과 같은 새로운 플랫폼을 장착한 정당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또 다시 안철수든, 박원순이든 누구 한 사람에게 기대는 정치가 아니라 스스로 주체가 되고 세력이 되는 정치. 이 책에 등장하는 ‘해적당’과 같은 꿈과 같은 정당이 태어났으면 좋겠다.

 

 

“정치가들은 민중의 언어를 잊어 버렸거나 그 언어를 사용할 의지를 잃어 버렸다. 수백만 기층 민중의 요구는 바로 이것이다. 우리를 진지하게 대하라! 우리의 말에 귀를 기울여라! 우리한테 물어라! 우리를 참여시켜라!” (p.40)

 

그래서 정치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할 수밖에 없고 그들을 무서워하고 선거철뿐만 아니라 늘 그들의 눈치를 보는 정치세력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우리를 진지하게 대하고 우리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우리에게 물어보며 우리를 참여시키는 정치 구조가 한국의 정치 현실에서도 이뤄지기를 고대한다.

그리고 그런 새로운 정치세력은 저 밑에서부터 끓어오른 민심을 오롯이 담아내는 그릇이 되어야 한다. 그 동안 너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그냥 땅에 쏟아졌으니 말이다. 이제는 더 이상 땅에 떨어지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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