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야기를 만드는 기계
김진송 지음 / 난다 / 2012년 12월
평점 :
1. 두꺼비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국내 최대 두꺼비 산란지인 망월지는 대구시 수성구 욱수동에 위치해 있다. 매년 2월 두꺼비의 서식지인 인근 욱수골에서 산란지인 망월지로 이동하는 두꺼비들의 장관부터 5월에서 6월 사이 부화된 새끼 두꺼비 수백만 마리가 서식지인 욱수골로 이동하는 장관이 펼쳐지는 곳이다. 이곳은 그 보존가치를 인정받아 ‘꼭 지켜야 할 자연유산’으로 선정되고 해당 지자체가 두꺼비들의 이동이 원활하고 안전하게 하기 위해 펜스를 설치하기도 하며 망월지에 서식하는 외래어종 블루길과 배스 잡기 대회를 펼치기도 한다. 도심 속에 국내 최대 두꺼비 산란지가 있다는 것 자체가 이야깃거리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어린 시절 흙이 있는 놀이터나 모래사장에서 친구들 혹은 가족들과 함께 불렀던 노래다. 누구나 한 번은 불러봤음 직 한 노래다. 모래 속에 한 손을 집어넣고 그 위로 흙은 보듬어 덮으며 부르는 노래. 그런데 왜 두꺼비에게 헌 집을 줄 테니 새 집을 달라고 하며 우악스러운 노래를 부르는 것일까?
해당 두꺼비는 그저 제 어미의 어미가, 그 어미의 어미가, 그 그 어미의 어미가, 그 그 그 어미의 어미가 그랬던 것처럼 흙길을, 신작로를, 아스팔트를 건너 알을 낳고 그렇게 어미가 한 대로 다시 산으로 올라가는 일을 했을 뿐인데. 그들은 그냥 거기에 있었을 뿐이다.
두꺼비에게는 애초에 집이라는 개념조차 없었을 텐데 말이다. 웃기는 일이다. 나쓰메 소세키의 고양이가 시크하게 내뱉는 인간에 대한 말과 이 책에 등장하는 개와 의자가 나누던 대화와 같은 인식 정도가 두꺼비들에게도 있지 않을까 싶다.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헌 집, 새 집을 논할 자격이 있는지 말이다.
2. 이야기
“작년에 아주 작은 몸으로 겨우 망월지를 헤엄쳐 나와 추적추적 비가 오는 밤 친구들과 함께 엄마가 가르쳐 주었던 옆 집 아줌마와 아저씨가 이야기 해주었던 그곳으로 올라갔었다. 앞도 보이지 않고 낯선 공기와 무시로 들리는 벌레와 곤충이 내는 소리들은 무서웠다. 하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많은 친구들이 있어 안심이 된다. 희미하게 코끝으로 전해오는 나무와 돌, 계곡물의 냄새가 점점 가까워오기 때문이다. 그래. 엄마가 들려주던 그 이야기 그대로다. 그 냄새가 맞아. 우리는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긴 이야기 속으로 걸어들어 갔다.”
「작은 두꺼비 이야기」
“어디엔가 부유하고 있는 생각의 입자를 잡아내고 싶다면 우리는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아니면 이야기를 만드는 기계를 작동시키든 해야 할 것이다.” (p.25)
붐비는 스타벅스 안에서 1시간만 앉아 있어 보라. 애써 관심 없는 척 이어폰을 꽂고 있어도 이어폰 패드와 귀 구멍 사이로 들어오는 저 수많은 소리들. 지난여름 어렵게 얻은 월차를 방구석에서 썩히기 싫어 책과 노트북을 들고 스타벅스로 갔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아무리 사용해도 뭐라 하지 않는 콘센트가 즐비한 그곳으로. 그러나 37도의 폭염보다 더 무서운 아줌마들의 뒷담화 파티가 벌어지고 있었으니.
일부러 들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기껏해야 1미터 남짓한 옆 테이블에 앉은 내가 잘못이었다. 시월드, 남편, 자식, 집값, 핸드백, 홈쇼핑, 누구누구집 시월드, 누구누구집 남편, 누구누구집 자식, 누구누구집 집값, 누구누구 핸드백……. 아~ 도저히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아줌뫼비우스의 뒷담화띠여!!!!
이야기는 부유해 다닌다. 하지만 이야기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사람은 따로 있기 마련이다. 몇 명이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 해도 상관없이 그 곳에는 이야기의 주도권을 쥔 사람이 분명이 있다. 부유해 다니는 생각의 입자, 이야깃거리를 센스 있게 잡아 채 내 것으로 소화해 풀어내는 것은 능력이다.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사람이다.
스타벅스가 떠나갈 듯, 볼륨을 아무리 높여도 내 이어폰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고주파의 아줌마 목소리들은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끝도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은 사람일까? 기계일까?
“이야기의 시간을 이미지의 시간으로 바꾸는 일, 그게 ‘이야기를 만드는 기계’를 만드는 일이다.” (p.11)
망월지에서 욱수골로의 여정은 죽음의 여정이었다. 흙길이 신작로가 되고 신작로가 아스팔트가 되고 냄새나고 미끄러운 아스팔트에는 욱수골 바위덩이 보다 훨씬 큰 괴물 같은 것들도 요란한 빛을 내뿜고 굉음을 내지르며 질주한다. 많이들 죽었다. 언제부터인가 이상한 것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상한 망같은 것들을 만들어 그곳으로만 갈 수 있게 하기도 하고 낚시꾼들을 불러 모아 우리를 한 입에 잡아먹는 커다란 물고기를 잡아가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사진을 찍기도 하고 그 사진을 찍는 인간의 새끼로 보이는 인간은 밝게 웃으며 안녕 인사하기도 했다. 무서웠다.
우리는 그저 엄마가 전해주는 이야기대로 그렇게 했을 뿐이다. 나 또한 그렇게 할 것이고 내 새끼 또한 자신의 새끼에게 그렇게 해 줄 것이다.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두꺼비다.
3. 기계
“논리적이고 수학적인 계산은 감으로 바꿔버리고, 감각적 섬세함은 물리적 기능으로 대체하며, 상상의 자유로움을 경험의 차원으로 끌어내리려는 몸에 밴 버릇은 도무지 벗어버릴 수가 없었다.” (p.203)

나는 기계치다. 아니! 기계와 친하지 않다. 아니! 기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기계는 나를 싫어한다.
컴팩 프리사리오 시리즈 구형 노트북을 9년 째 쓰고 있다. 아이폰 5를 사고, 아이맥을 사고, 미니 아이패드를 샀다고 자랑하는 친구놈 면전에서 “그 돈이면 내가 사고 싶은 책을 몇 권을 살 수 있으며.. 블라블라...”
그렇다고 집안에서 풀려진 나사를 조이거나 철마다 커튼을 바꿔 달거나 전등과 형광등을 교체한다 거나 자동차 보닛을 열어 엔진오일 양을 체크하거나 워셔액 보충쯤은 거뜬히 해낸다.
하지만 저자가 사용하는 장비로 추정되는 위 사진을 보면서 나는 ‘이쁘다’라는 생각보다 ‘무섭다’라는 생각이 앞섰다. 그렇다. 나는 기계와 친하지 않고 그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다. 고로 기계가 나를 좋아해 줄 리도 만무하다.
이 책 「이야기를 만드는 기계」는 꽤 흥미로운 책이었다. 미술평론가이자 목수이도 하고 국문학을 전공한 그의 글은 깊었다. 중간 중간 등장하는 그의 작업실로 보이는 곳의 사진은 노출을 최소화 한 듯 밝음보다는 어두움에 가까웠다. 그래서 그의 글이 더 깊어 보였다.
문명의 이기(利器)의 첨단을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이야기조차 기계가 대신한다고 생각하면 개인적으로 나는 슬프다. 스타벅스의 아줌마들과 망월지의 두꺼비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보다 더 편리하고 인간에게, 그리고 자연에게 이로울 수 있는 문명은 과연 이기(利器)일까? 이야기조차 아줌마와 두꺼비를 대신하는 기계는 이기(利器)가 아니라 이기(利己)다.
저자는 아줌마와 두꺼비와 기계를 잇는다. 삼각 다리를 놓는 작업 과정과 결과물을 담담하게 책에 담았다. 단순히 나무만 다루는 사람이 아니라 단순히 작품 평론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단순히 책보고 글만 쓰는 사람이 아니라 세 가지를 할 줄 아는 사람이라 작품도, 글도, 사진도 깊다.

[짐을 잔뜩 진 노새]와 [하늘에 갇힌 새]라는 작품은 제목과 작품의 사진만으로 수백 페이지 책을 갈무리하고도 남는다. 문명의 이기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과 공존해야 하는 두꺼비들 사이를 잇는다. 저자의 깊은 노력이 마음에 와 닿는다.
해야 할 이야기가 있고 해야만 하는 이야기가 있다. 하루를 가만히 돌이켜 보면 ‘왜 그때 그 말을 했을까’ 후회할 때가 있다. 그렇다. 사람은 안 해도 되는 이야기를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해야만 하는 이야기. 불편한 이야기. 사람들이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 중요한 이야기를 무시하지 않는 것이 작가의 삶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직업 작가는 물론이고 책을 읽고 그 책에 대한 서평을 쓰는 사람들도 작가다. 이야기를 창조해내는 사람은 작가다. 작가는 시대를 부유하는 이야기를 잡아내야 하기 때문에 시대의 그늘과 생채기에서 눈을 돌리면 안 된다.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것도 즐거울 수 있지만 기타를 만드는 일도 즐거울 수 있습니다……. 단지, 딱 일한 만큼의 한 달 치 월급이 꼬박꼬박 나올 수 있다면 말입니다. 사장이 돈 떼먹고 도망가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멀쩡한 회사를 닫아걸고 저 멀리 도망쳐 새 공장을 짓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p.217)
[기타 만드는 사람들]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콜트 노동자인 것 같았다. 그들이 열악하고 불합리한 환경에서 만들어 내는 기타를 연주하는 사람들만 즐겁다면 세상은, 문명의 이기는 너무 이기적이다. 밥벌이를 넘어서는 즐거움이 동반될 수 있다면 기타 만드는 이야기는 그들의 자식과 자식들에게 이어져 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만들어 낸 제도와 법률은 사람을 이롭게 해야 한다. 문명도 이롭게 해야 하고 두꺼비들에게도 이로워야 한다.
4.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결론은 사람이다. 두꺼비에게 새 집을 달라는 우악스런 요구를 하는 것도 사람이다. 첨단의 첨단을 넘어 도저히 그 끝을 알 수 없는 문명을 창조해 내는 것도 사람이다. 기계를 만들어 내는 것도 사람이다.
사람과 두꺼비와 기계 사이의 단절을 막고자 다리를 이으려고 하는 것도 사람이다.
결국은 사람이다.
두꺼비와 스타벅스 아줌마와 기계와 나를 이어주는 것은 사람이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울까?
사람의 몫이다.
「이야기를 만드는 기계」또한 사람이 만들어 낸 것이다.
사람의 몫이다.
이제 우악스런 손짓은 주머니에 집어 넣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