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 GO발뉴스 - 지승호 이상호의 위험한 인터뷰
지승호.이상호 지음 / 동아시아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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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편하게 살고 싶고 별 탈 없이 살고 싶은 것은 모든 사람들의 바람일 것이다. 내 몸 하나, 내 가정 하나 건사하는 것도 버거운 세상에서 주변을 돌아볼 여유를 갖는 다는 것은 어떤 때는 사치로 느껴지기도 한다. 당장 이번 달 월급이 통장에 들어오기도 전에 미친 듯이 빠져나갈 온갖 세금과 대출이자, 보험료를 생각하면 민주주의, 정의, 진정한 대통령 따위의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담론은 허세다.

나 하나 잘 되고 내 가장 하나 잘 꾸려가는 것이 나와 같은 소시민에게는 최고의 이상이다. 예전에 어떤 광고 문구에 “모두가 YES할 때 NO한다.”라는 것과 비슷한 것이 있었는데, 어릴 때는 ‘카피 참 잘 뽑았네~’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가만히 생각해보니 완전히 미친 짓이고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사회에서의 행동이다. 모두가 예스할 때 그냥 고개 처박고 따라가고 모두가 노 할 때도 그냥 고개 처박고 따라가야지 어떻게 모두가 따라가는 의견에 손을 들고 나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나.

그런데 그런 사람이 여기 있다.

참 골치 아픈 사람이다. 십 수 년의 기자생활 동안 오직 ‘탐사고발 기자’로 살아 온 사람이다. 덩치는 곰만 하고 얼굴도 엄청 크고 머리 스타일은 느끼하니 별 호감이 가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이 기자는 자신이 생각하는 기자관을 독특하게 소개한다.

 

 

“제 저널리즘의 원칙은 휴머니즘입니다. 양식은 리버럴하고요, 판단은 미학적으로 합니다.” (p.243)

 

연예인 노예계약 고발, 삼성X파일 고발, 병역비리 고발, 방산업체 고발 등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고발 보도를 했고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그로 인해 구속되거나 처벌받았다. 어떤 종편 채널에서 오죽 시청률이 안 나왔으면 무슨 먹거리에 대한 고발 프로그램을 만들었는지 그런 것만 찾으러 다니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프로그램이 있던데 이상호 기자는 그런 자잘한 고발 따위는 하지 않았다. 굵직굵직한 사안에 대해 터뜨렸다.

실제로 도저히 풀어낼 수 없는 실타래 마냥 얽히고설킨 대한민국의 비리의 역학관계는 정당하고 정의로운 고발을 한 이상호 기자를 조직 내 배신자로, 왕따로 만들어 버렸다. 책에서 여러 번 언급한대로 미행·협박은 기본이고 삼성X파일을 보도한 후에는 공황장애까지 겪게 되었다고 한다.

수십 건의 고발·고소를 당하고 실제적인 위협을 받고 조직 내에서조차 왕따를 당하고…….

이상호 기자는 기자라는 직업은 사회적 무당이라고 얘기한다. 도저히 어디에도 자신의 억울함을 신원할 길 없는 사람들이 찾는 사람이 무당인데, 무당은 접신하여 그 억울함을 풀어주고 함께 한바탕 웃고 우는 굿판을 벌이면 어느 새 그 억울함이 풀린다는 것이다. 기자라는 직업도 어디 국가기관이나 자치기관에 호소하고 탄원해도 도저히 들어주지 않는 그 억울함을 들어주는 직업이라는 것이다. 자신 또한 이제는 의뢰인이 찾아와서 사정을 얘기하는 것을 들어보면 ‘아~ 이건 전치 몇 주짜리다, 아~이건 최소한 구속이다, 아~이건 죽으라는 얘긴데??’ 감이 온다고 한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피하고 싶고 그냥 의뢰인이나 제보자 얘기 들어주는 것으로 그치려고 하는데 막상 듣다 보면 무당이 접신하는 것처럼 그 사람의 마음에 공감이 가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슬픔과 분노, 억울함과 체념에 오롯이 이입이 되어 또 그 진흙탕 속으로 기어 들어간다고 한다.

 

 

“기자생활을 통해서 저 스스로를 폭탄으로 만든다는 생각을 했어요. 순도 높은 다이너마이트가 되기 위해 제 생활의 밀도를 높여왔던 거지요.” (p.197)

 

이상호 기자의 저 말이 참 멋있었다. 이 책 「이상호 GO발뉴스」는 지승호씨와 한 인터뷰를 엮은 책이기 때문에 이상호 기자가 직접적으로 하는 말이 많이 담겨 있다. 그 중에서도 나는 저 말이 가장 좋았다. 스스로를 폭탄으로 만든다는 생각. 아무도 하지 않는 생각이다. 지난 5년 동안 우리는 언론이 얼마나 망가질 수 있는지를 체험했다. 기자라는 사람들이 입을 다물고 제대로 취재해서 보도하지 않으면 얼마나 왜곡되고 편향된 뉴스가 될 수 있는지 명확히 알았다. 누구 말마따나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 사람이 기자’이고 ‘가장 말을 듣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기자’인데 그런 기자가 없었다. 아니, 있었어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런 기자는 기사를 쓸 수 없었으니까. 그런데 이상호 기자는 스스로를 폭탄으로 정의한다. 터뜨려질 목적으로 만들어진 폭탄. 누가 폭탄을 만들어 놓고 집안에 진열해 놓은 후 ‘이야~~ 멋있다. 내 폭탄’ 하나? 폭탄은 터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이상호 기자는 자신을 그렇게 정의했다. 다른 자질구레한 설명을 필요 없다. 불발탄이나 공갈탄이 되지 않기 위해서 생활의 밀도를 높였다고 한다. 내 콧등이 시큰해졌다. 나는 이상호라는 사람을 잘 알지 못하고 기껏해야 그의 책 두 권을 읽었을 뿐인데 그가 그에게 찾아오는 제보자나 의뢰인에게 이입이 되는 것처럼 나도 그의 고됨에 이입이 되어서 일까? 삼성X파일을 보도하기 위해 오랜 기간 술·담배도 하지 않고 치밀하게 자신의 일상을 정돈했다고 한다. 보도 후에는 온갖 억측과 비난, 위협과 따돌림에 시달렸고 도피하듯 날아 간 미국에서도 여전히 공황장애에 시달렸다.

아니, 다른 얘기 다 필요 없고! 이상호 기자처럼 살 사람이 있나?

이미 최고의 권력이 된 자본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돈이 되지도 않고 내 안위를 내가 걱정해야 하는 저런 일을 할 사람이 있나? 없다. 그저 저 만치 떨어져서 ‘저 사람 참 멋있네~.’ 박수 쳐 주거나 아예 관심 없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상호 기자를 응원해야 한다.

 

나는 사실 고 노무현 대통령을 비난하거나 비판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아무리 내가 좋아하던 사람이라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안 좋은 소리를 하면 바로 쌍심지를 켜곤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발로 뛰며 선출한 첫 대통령이었고 지난 5년을 겪으며 더 그리웠었다. 그의 마지막 삶이 비극적이었던 것도 중요한 기제였다. 이상호 기자는 참여 정부 시절에도 정부와 정권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과 고발을 했었다. 그래서 참여정부의 실정과 노무현 대통령의 판단 미스와 한계에 대한 자세한 의견이 나오는데, 나는 처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고 설득력이 있는 논리였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이상호 기자가 어떤 정치적 위치함에 따라 비판하거나 찬양하거나 하는 일반 정신없는 기자들과는 달리 어떤 정치적 편향이나 편견 없이 비판할 것은 비판하고 보도할 것은 보도하며 고발할 것은 고발하는 기자라는 것을 알고 나니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한 비판도 수용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고마웠다.

 

 

또 재미있었던 내용 중 하는 구당 김남수 선생에 관한 내용이었다. 예전에 TV 토크쇼에 나온 아주 키가 작고 눈썹이 흰색인 노인으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 소개되고 있어 신기했다.

 

 

“구당의 삶과 저의 주장은 한마디로 ‘의료 민영화 반대’로 정리할 수도 있습니다. 의료까지 영리화되면 어떻게 되겠어요…….사람들이 곰쓸개에 빨대를 대고 바로 쓸개즙을 빨아먹듯이 사람의 장기에 자본주의의 빨대가 박히는 거예요. 인간으로부터, 인체로부터 바로 수익을 빨아먹는 장치가 의료 민영화다, 영리병원이다, 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p.175)

 

구당 선생의 삶과 이상호 기자의 취재와 보도는 생각보다 심층적이었다. 나는 단지 TV에서 한 번 봤을 뿐이고 다른 매체들을 통해 뜸에 대한 전문가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이상이었다. 서양의학이라는 것은 병을 70%이상 완치시키지 못한다는 것도 맞는 말이었다. 또한 의학에 공학이 덧입혀져 산업이 되었고 산업은 곧 자본의 속살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병원에 가면 고가의 검사를 받아야 하고 많은 약을 처방 받아야 했다. 하지만 그래 놓고도 완전히 치료하지 못하는 것이 한계라는 점도 이해가 갔다.

구당 김남수 선생은 50년 전부터 서양의학의 한계를 설정하고 동양의학을 보급하고 무리한 수술이나 약의 복용보다 침과 뜸으로 체질을 개선하고 몸에서 저절로 면역을 강화하는 것이 진정한 병의 치료라는 것을 설파한 사람이라는 소개였다.

하지만 구당 선생의 이런 주장은 병원은 물론 한의사들에게도 엄청난 타격으로 다가왔다.

 

 

“비싼 임대료, 인테리어비, 홍보비에 나아가 고가의 한의대 교육비까지 계산하면 침뜸만 놔줘서는 수지가 맞지 않겠죠. 헐값에 들여오는 중국산 약재를 섞어 약을 만들면 많게는 수십 배의 차익을 누릴 수 있는데, 누가 침뜸을 하겠습니까. 뜸으로는 도저히 타산이 안 맞는 거죠.” (p.183)

 

수지타산을 맞춰야 하는데 구당 노인네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모든 사람들이 쉽게 쑥을 구해 뜸을 뜨고 그것이 오히려 병원에 가서 비싼 검사를 받거나 한의원에 가서 비싼 약을 구입해 먹는 것보다 더 효과가 있다면 한의원들 다 문 닫아야 할 판이었다.

생각해 보니 언젠가 한참 구당 선생이 TV에도 많이 출연하고 책도 출간되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께서도 간단한 뜸도구를 구입하셨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갑자기 사이비 침구사니 뭐니 해서 떠들썩하더니 TV에도 나오지 않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앞서도 말했지만 이미 자본이 권력의 정점에 있는 지금. 구당 선생의 주장은 반자본적인 것이다. 한의원에 환자가 많이 찾아와야 약을 팔아 이익을 남기고, 그것을 정·관계에 로비하기도 하고 할 텐데 모두가 쉽게 저렴한 쑥을 사서 집에서 뜸을 뜬다면 한의사 업계와 병원에게는 재앙일 것이다.

 

아무도 보도하지 않아 잊혔던 구당 선생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가 실려 있어 재미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싸이에 대한 내용도 짧게나마 실렸는데 얼마 전에도 싸이와 김장훈관련 보도를 해서 이상호 기자가 욕을 많이 먹은 적이 있다. 솔직히 가만히 있었어도 되는데 괜히 나섰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이상호 기자는 그렇게 생겨먹지 않은 사람이다. 그냥 가만히 입 다물고 앉아있는 것이 체질적으로 맞지 않는 천상 기자다.

그가 생각했을 때 분명히 저건 아닌데 싶은 게 있으면 참지 못하고 얘기한다. 불필요한 오해와 비난과 비판을 감수한다. 결정적으로 삼성X파일 보도 이후 그는 더 큰 사람, 더 용감한 기자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며 나도 이상호기자에 대한 오해를 풀 수 있었다. 아니, 오해라기보다 제대로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책을 읽다보면 처음 소개 한 그의 기자관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그는 사람을 정말 사랑하는 휴머니스트다. 어디에서 메이지 않는 리버럴한 사람이며 치밀하고 밀도 있고 삶을 꾸려가면서 한방에 멋지게 터뜨리는 미학자다.

그래서 그를 더 응원하게 되었다.

 

기자 생활 십 수 년을 하다 보니 이제 웬만한 것에는 흔들리거나 겁먹지 않는다고 한다. MBC자회사에서 만든 <손바닥뉴스>가 갑자기 폐지되고 해고하지도 않으면서 식물인간처럼 살아가게 만들었지만 또 잡초처럼 살아나 대안 언론인 <GO발뉴스>를 만들었다. 이상호를 싫어하거나 무서워하는 사람이나 조직, 집단에게는 얼마나 성가시고 귀찮고 두려운 존재일까 생각하니 기분이 고소하다.

앞으로 큰 거 한 건 터뜨리고 싶다는 말을 책의 말미에 많이 하고 있다. 나는 서서히 걱정부터 되기 시작한다. 이제껏 그만큼 시달리고 공격당하고 피해를 입어 왔는데 더 큰 거 하나 하고 싶단다. 무서운 사람이다.

저들에게는 오금이 저려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릴 선언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더욱 응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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