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인 것의 개념 - 서문과 세 개의 계론을 수록한 1932년 판
카를 슈미트 지음, 김효전 외 옮김 / 살림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지난 주 대선정국을 뒤흔든 사건이 있었다. 안철수 후보의 사퇴 기자회견이 바로 그것이었다. 정치를 혐오하는 사람이나 무관심한 사람이라도 안철수라는 이름을 당연히 들어봤을 것이고 호불호의 기준을 떠나서 야당 후보와 단일화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해서도 당연히 들어봤을 것이다. 이 나라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최소한 한 번 이상은 안철수와 단일화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고 봐야 한다.

안철수 후보의 사퇴 기자회견 이후 SNS가 폭발했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서부터 허탈과 분노, 서운함과 안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예전처럼 일방적으로 정보를 발사하는 미디어를 대중은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기존 미디어의 속성과 한계를 알고 있고 그들이 언론으로서의 제 기능을 수행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아무리 많은 방송과 프로그램을 만든다 할지라도 대중은 그들이 생각하는 만큼 어리석지 않다. 이전처럼 여과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인터넷 게시판 문화가 SNS로 진화하면서 SNS를 사용하는 이용자 한 사람이 일인미디어가 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일방적으로 편집되어 발사된 정보에 현혹되지 않고 가치판단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서로간의 정보를 SNS상에서 공유하고 전파하게 되었다. 기존 미디어가 도저히 할 수 없었던 소통의 방향성이다.

그래서 지난 안철수 후보 사퇴를 두고도 기존 미디어에서 쏟아내는 분석과 판단은 적어도 SNS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먹히지 않았다. 오세훈과 한명숙이 붙었던 서울 시장 선거 이후 사람들은 더 이상 여론조사라는 것을 신뢰하지 않는다. 모든 여론 조사 기관이 일반 국민들을 상대로 조사했다는데 여론조사 기관이나 언론사·미디어마다 다른 결과를 낸다는 것은 넌센스다.

SNS는 이미 문화가 되었고 가장 훌륭한 소통의 시장이 되었다. 정치판도 허겁지겁 뛰어들어 어떤 사람들은 트위터 전사대를 만들기도 하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SNS야 말로 가장 정치적이고 정치적으로 사용되어야 할 도구라고 생각한다. 자기들끼리 모여서 나눠먹기 하고 재래시장 한 번 돌아다니며 악수하고(아! 악수하지 않는 분도 계시지!!) 어묵하나 집어 먹으면서 하는 소통 코스프레가 아니다.

 

정치!!

정치는 살아가는 방식이라 생각한다. 어떻게 살아가고 어떤 방향으로 살아가며 누구와 살아가느냐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는 내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정치인들이 떠들어 대는 수사(레토릭)가 내 피부에 확 와 닿지 않을 뿐이지 저들이 입법하고 통과시키는 법안들이 빠르게는 다음 달에 당장, 늦게는 수년 후에 내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정치에 대해서는 별나게 노이로제를 일으킨다. 정치는 마냥 정치인님들이나 하는 것이고 잘 모르는 아랫것들은 그저 선거날 투표나 하고 밥상 차려주면 밥이나 한 사발 퍼 먹는 것에 만족하라는 것인지. 정치적 발언을 했다고 해서 연예인들의 밥줄을 끊고 정치적인 유언비어를 퍼뜨렸다고 헌정 사상 최초로 감옥에서 수감 생활을 하는 정치인도 있으며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게재했다고 서민을 잡아 가두기도 한다. 도대체 그들이 정의하는 정치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이번 안철수 기자회견 후 유아인이라는 남자 연예인이 트위터에 자신의 생각을 올렸나 보다. 나중에 확인하니 꽤나 식견을 가진 사람이다 싶었다. 그런데 이것을 두고 또 난리를 치는 것이었다. 조금이라도 이름 알리려고 생쑈를 한다는 둥, 야권에 빌어 붙어 드라마라도 한 편 찍으려고 한다는 둥, 제대로 모르는 XX는 찌그러져 있으라는 둥. ‘이건 아니다.’ 싶을 정도로 정제되지 않고 노골적으로 공격하는 이들이 많았다. 아니, 그렇게 공격하는 사람들인 유아인씨의 트윗을 제대로 읽었는지 궁금했다.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연예인은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말도 못하나? SNS는 열린 공간이고 아직 미성숙한 미성년자들이 많이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정치적 편향을 가진 연예인의 언급에 가치관이 호도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마라!! SNS를 자유자재로 소화하는 중·고딩 들은 아직도 조간 신문과 9시 뉴스만 보는 꼰대들 보다 더 정치적인 정보와 자극에 의연하다. 관심이 없을 뿐이지…….

 

조지 클루니 형님은 시위하다 잡혀가셔도 간지가 좔좔 흐르는데, 한국의 연예인들 중 도대체 누가 정치적인 행동을 제대로 하기나 했나?? 나는 전혀 모르겠다.

철저하게 개인적인 공간이고 소통의 공간인 SNS에서 자신의 의견을 짧게 피력했을 뿐인데 그걸 가지고 난리를 치고……. 더 황당했던 것은 그것을 관망하며 기사화하는 저질 언론들이다.

얼마 후 배슬기라는 여자 연예인이 흔히 보수꼴통 진영에서 진보진영을 공격할 때 쓰는 종북좌파 프레임의 단어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것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것도 정말 코미디다. 배슬기씨가 자신의 트윗에 그러한 언급을 했다는 것은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볼 줄 알았다는 것이고, 그럼에도 삭제하지 않았다는 것은 배슬기씨 평소의 생각이라고 봐야 한다. 그 언급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과정이다.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 왜 문제시 되어야 하나?

오히려 한국 연예인을 비롯한 문화예술인, 체육인 등은 더 정치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 「정치적인 개념」은 사실 어려운 책이다. 이미 출간된 지 80년이나 된 책이고 딱딱한 이론서이기 때문이다. 저자인 카를 슈미트가 독일 사람인 것도 한 몫 하는 것 같다. 특유의 문체를 경험할 수 있다.

 

 

“국가의 개념은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전제로 한다.” (p.31)

“본래의 적과 동지의 편 가르기 중 겨우 어떤 적대적인 계기만 남을 뿐이며, 모든 종류의 책략과 술책, 경쟁과 음모의 형태를 취하고, 가장 기묘한 거래와 정략을 ‘정치’라고 부르게 된다.” (p.44)

 

카를 슈미트의 생애는 그야말로 순탄치 않았다. 요동치는 정세 한 가운데 20세기 초 유럽의 한 가운데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법과 철학을 공부하고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나치스에 부역하기도 하고 추방되어 학문과 강의에만 매진하게 된다. 젊은 나이에 전쟁을 겪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한국 사회에서 세대 갈등이 첨예한 가장 큰 이유는 한국전쟁에 대한 경험의 차이에서 온다고 생각하는데 카를 슈미트는 이런 전쟁을 두 번 겪었다. 자신의 학문적 집대성이 나치스에 의해 사용되기도 했다. ‘국가’라는 기틀이 제대로 확립되기 전 ‘정치적’ 투쟁의 한 가운데서 정치적인 개념을 논하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언제 어떻게 갑자기 국가 지도자가 바뀔지도 모르고 오늘 연합한 국가가 내일 배신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가장 정치적인 것은 ‘책략과 술책, 경쟁과 음모, 거래와 정략’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카를 슈미트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개념인 ‘적과 동지’ 개념은 이러한 그의 생애 전반에 걸친 경험에 의한 사고의 결과였을 것이다.

 

 

“세계가 오락의 세계가 되지 않기 위한 유일한 보증은 정치와 국가이다. 그러므로 정치적인 것의 반대자는 최종적으로 오락의 세계, 즉 즐거운 세계, 진지하지 않은 세계의 구축을 바란다.” (p.214)

“진정한 정치이론이란 모두 인간을 ‘악한 것’으로 전제하는, 즉 결코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라 ‘위험하고 동적인 존재’로 간주한다는 것을 제시한다.” (p.240)

 

한 국가의 지도자는 국민들이 ‘정치적’이 되는 것을 좋아할까? 싫어할까? 쉽게 판단을 내릴 수 없는 문제이다. 여기에서 ‘정치적’이라는 것의 범위는 국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더 많이 가지고 연일 계속되는 정치뉴스에 일희일비하고 지역구 국회의원들에게 항의하고 건의하기도 하고 학부모를 둔 엄마들은 모여서 학원이나 과외, 대학 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지역 교육감의 정책에 대한 토론을 하기도 하는 뭐 그 정도. 전혀 현실적으로 이루어 질 수 없는 허황된 얘기인가? 제대로 된 지도자라면 이런 정치의식의 성숙을 반가워하고 오히려 고마워해야 된다. 그렇지만 반대로 제대로 되지 않은 지도자라면 국민들이 ‘정치적’이 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 할 것이다. 그냥 매일을 악다구니로 몸서리치며 살아가기를 바랄 것이다. 정치 얘기 하는 것이 배부를 소리 하는 것인 양 찬밥신세를 받아야 한다. 그것을 바랄 것이다. 그래서 그냥 다들 고개 푹 숙이고 투표 날에나 기어 나와 도장 찍고, 찍 소리 안 하고 또 4년, 5년 그렇게 가는 것이다. 국가 예산을 어떻게 남용하든지, 어떻게 국민의 기본권을 유린하든지, 부정과 비리가 얼마든지 상관없이 국민들 한명한명 살아가는 꼴을 너무나 힘들게 세팅해 놓으면 저절로 정치와는 무관한 국민이 될 수밖에 없다. 정치에 관심 없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최소한 나는 투표하지 않았다.’ 라는 소극적이고 패배주의적인 자세로 자신의 무관심을 자위하는 것은 제대로 되지 않은 지도자가 바라는 딱 그 수준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정치적인 사람, 정치적인 국민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유아인씨도, 배슬기씨도 직업은 연예인이지만 더욱 정치적인 사람, 정치적인 국민이 되어야 한다. 단순히 연예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정치적 발언과 언행이 문제시 되어서는 안 된다. 비정상적이다. 한편으론 씁쓸하다. 국민들 대다수가 정치에 관심이 많고 정치적인 사람들이라면 몇몇 연예인들의 정치적 발언과 언행이 이슈화 되거나 기사거리조차 되지 않을 텐데 얼마나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으면 이런 허접한 가십조차 이슈가 되고 기사거리가 되는 지 안타깝기가 그지없다.

 

카를 슈미트의 딱딱하고 어려운 이론서를 한 마디로 정리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살고 있는 시대 상황과 조우하여 피하지 않고 내가 멀리해야 할 적과 내가 가까이 해야 할 동지를 구분하는 행위가 정치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적과 동지의 범위가 사람이나 조직에 국한된 것이 아님은 자명하다. 무엇보다 기본적으로 정치에 대한 관심이 가장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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