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서, 시대를 읽다 - 문화투쟁으로 보는 한국 근현대사
백승종 지음 / 산처럼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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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6개월의 군생활 동안 소대장 생활을 1년5개월여 했다. 내가 근무한 부대는 해안에 위치해 있었고 주된 임무가 해안경계근무였다. 중대가 담당한 소초가 2개가 있었고 3개 소대가 번갈아가며 소초에 투입되었다. 소초는 독립부대다. 한번 투입되면 3∼4개월 동안 낮에는 교육훈련, 밤에는 경계근무가 반복된다. 소대인원, 타중대 파견인원, 상근인원을 포함하면 40명 정도의 병력을 관리하고 책임져야 하는 위치에 있었다. 앞서 말했듯이 소초는 독립부대이기 때문에 식사부터 교육훈련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알아서 해야 했다. 주둔지 부대에 있을 때 보다는 다소 느슨하고 탄력적으로 부대를 운영할 수 있었지만 어느 독립 부대나 그렇듯이 하루가 멀다하고 순찰·순시·온갖 검사가 잇따랐기 때문에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을 수 없었다. 밤낮이 바뀌는 소초 생활도, 사고 치는 상근인원들도, 열악한 근무환경도 크게 힘들지 않았다.

나에게 가장 어려웠던 것은 정신교육이었다. 군에 다녀온 남자들은 모두 알 것이다. 내가 소초장 생활을 할때는 수요일이 정신교육 시간이었다. 말이 정신교육이지 국방부에서 내려오는 대북안보관을 그대로 읽고 전파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물론, 제대별·계급별 간담회도 하고 토론 시간이 계획에 있기는 했지만 역점을 두는 것은 안보관 확립이었다. 하지만 내가 소대장을 했을 때에도 병사들의 의식수준은 국방부의 그것 이상이었다. 주적관·안보관은 이미 탄력적이었다. 쉽게 말하면 군에서 이런 정신교육을 하는 의도조차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설문을 하게 되면 대한민국의 주적을 미국이나 일본으로 적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나 또한 판에 박힌 의도적인 정신교육을 해야 하는 것이 괴로웠다. 그래서 주로 자유토론을 했었다.

그러던 중 한번씩 상급부대로부터 내려 온 공문의 사본이 소초에까지 오게 된 경우가 있었는데 ‘국방부 선정 불온서적’에 대한 내용이었다. 정말 웃겼던 것은 이미 시중에 베스트셀러였던 책도 있고 주둔지 대대에서 일괄 구입한 책들 중에 불온서적 대상에 끼여 있는 책도 있었다.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이런 불온서적을 지정하고 ‘읽지마라’고 하는지 어이가 없고 황당하기 까지 했다.

전역한 후에도 국방부는 한번 더 ‘불온서적’을 지정해 만인의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이 책에서는 금서의 문제를 ‘문화투쟁’이란 관점에서 바라볼 것입니다.” (p.5)

“미풍양속이 구실이 됐든, 올바른 종교적 신앙, 혹은 정치적 이념을 위해서라 하든 금서는 결국 ‘문화적 헤게모니’를 둘러싼 싸움입니다.” (p.16)

 

금서를 통해 시대를 읽는다는 저자의 발상이 신선했다. 단순히 시대적 상황이나 배경에 의해서 금서가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문화투쟁’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분석한 노력을 책에서 그대로 발견할 수 있었다. 어느 시대에나 금서는 있어왔다. 어느 시대에나 힘은 있어왔다. 힘을 가진 자가 있었고 반대로 힘을 가지지 못한 자가 있었다. 힘을 가진 자(들)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 힘을 유지하고 싶었을 것이고 힘을 가지지 못한 자(들)는 어떻게 해서든지 힘을 얻고 싶었을 것이다. 이것은 역사다. 갈등과 투쟁의 반복이다.

 

 

“「정감록」이 성리학이라는 지배 이데올로기를 상대로 평민지식인들이 벌인 ‘문화투쟁’의 수단이었다는 점을 설명하고 싶습니다.” (p.53)

“신채호의 을지문덕 예찬은 신채호식 영웅사관의 표현이었습니다. 단순히 을지문덕이라는 개인을 추앙하는 데 뜻을 둔 것이 아니었어요. 대신에 을지문덕이라는 민족적 영웅을 중심으로 한민족의 관념적 일체감을 강화하려는 고도의 전략이 깔려 있었습니다.” (p.138)

 

조선 시대 「정감록」과 일제 강점기 「을지문덕」은 조정과 일제라는 구체제에 대한 반발이었다. ‘갈아 엎자.’, ‘뒤집어 버리자.’라는 것이기 때문에 조선의 조정과 일제는 탄압하고 금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반대로 이 책들은 민중들에게 불티나게 읽혔다. 오랜 시간 시달려 왔고 지배받아 왔기 때문에 당연히 생각되던 것들이 책을 읽어보니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쓰나미처럼 민중의 마음을 휩쓸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체제 전복이나 폭력 투쟁에까지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진짜 소시민들이 마음을 대변하는 현상이라 생각되기도 한다. 최소한 책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었다면 말이다. 또한 분명히 「정감록」과 「을지문덕」을 쓴 이들은 그것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목표가 있었을 것이다. 그 목표와 목적이 민중의 그것과 부합하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권력과 지배층에 대한 투쟁이라는 관점의 출발은 동일하기 때문에 열광했다.

조선의 조정과 일제는 무서웠을 것이다.

 

 

“리영희의 책들은 체제가 금지한 진실을 폭로함으로써, 한국 사회를 시민 중심의 민주 사회로 이끌어나간 ‘문화투쟁’의 기폭제였습니다. 리영희의 문화투쟁은 ‘진실’을 향한 열정이었다고 볼 수 있어요.” (p.211)

 

내가 가장 존경하는 지식인 고(故)리영희 선생에 대한 내용이 있어 더욱 반가웠다. 리영희 선생의 책은 나보다 10∼20년 대학을 먼저 다닌 사람들에게 살아있는 교본이었다. 당시 학생운동의 성경이기도 했던 리영희 선생의 책이 대부분 금서였다는 사실은 그의 책 「반세기의 신화」를 처음 읽으면서 알게 되었었다. 리영희 선생의 책을 읽으면 모두 ‘투쟁가·운동가’가 된다는 말이 있었다고 하는데 나는 투쟁가·혁명가는 되지 못했지만 그의 책을 읽고 세계관·사회관·가치관을 확립할 수 있었다. 출간된 지 20∼30년이 지난 책이었지만 여전히 한국사회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관통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리영희 선생은 단순히 글을 잘 쓰는 작가가 아니었다. 언론인이었고 지식인이었으며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수감생활도 부지기수로 했었고 정권이 바뀌고 정치인들이 옷을 갈아입는 다고 해서 비판의 칼날을 내리지 않았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서 신화처럼 떠받들어지고 세뇌되어 왔던 거짓을 도려내고 진실을 알리는데 평생을 바친 사람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리영희 선생의 삶과 그의 책을 ‘문화투쟁’의 관점에서 분석한 저자의 시도가 마음에 들었다. 실제로 그런 삶을 몸으로 살아 낸 선생님이었기 때문에 여전히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살아 숨쉬는 선생이자 선배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1970년에 발표된 김지하의 시 「오적」은 험난한 투쟁의 출발점이었습니다. 그 시는 곧 금지됐고, 시인은 영어의 몸이 됐습니다. 시인이 어느 정도 자유를 되찾은 것은 1980년 말이었습니다.” (p.180)

“「오적」은 군부독재정권은 물론이고 그와 결탁한 특권층의 비리를 신랄하게 풍자한 것. 첫째가 재벌, 둘째가 국회의원, 셋째가 고급공무원, 넷째가 장군님, 다섯째는 장차관들” (p.186)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실소를 아니 지을 수 없는 코미디가 많이 벌어지고 있는데, 최근들어 가장 나의 배꼽을 잡은 것은 김지하였다. 사람이 한 번 변하면 겉잡을 수 없다는 것을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김문수와 비슷한 반열에 올려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나는 김지하의 책을 직접적으로 본 적은 없다. 그래서 그가 한 때 학생운동의 상징이었고 심장이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단순히 운동권 작가였고 오랜 세월 투옥되었던 민주열사였다고만 알고 있었다.

이 책을 읽고 모 인터넷 신문의 기사를 보고 나서 김지하의 최근 행태를 보게 되었다. 그래서 재미있고 슬프기도 했다.

한국 현대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역사적 인물이었음에도 말로가 저렇게 구차하고 너저분할 수 있을까 생각되기도 했고 적어도 현대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사람이라면 그로 인해 영향을 받고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된 사람들이 많을 것인데, 자신의 사상전향으로 인해 받은 많은 사람들의 상처와 아픔은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이기적이다.

한 때는 내놓는 책마다 금서가 되고 정권에게는 반드시 잡아 들여야 할 지식인이자 운동가였던 자가 뒤늦게 변신하여 보이는 모습이 애처롭다.

하지만 김지하 개인을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러한 실제 예가 이전에도 많았기 때문에 놀랍지도 않다.

다만 지금 내가 김지하의 「오적」을 구해서 읽는다 해도 70년대 당시 숨어서 몰래 「오적」을 읽으며 통쾌해 했던 그들의 카타르시스를 100분의 1도 느껴볼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조금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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