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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븐 할둔 - 역사의 탄생과 제3세계의 과거
이브 라코스트 지음, 노서경 옮김 / 알마 / 201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전부터 급속도로 빠지게 된 드라마가 있다. MBC에서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에 방송되는 <마의>다. MBC가 허접방송의 반열에 들어가면서 아예 11번은 리모컨질도 하지 않았는데 영화 [클래식]이후로 팬이 된 조승우의 연기를 놓칠 수는 없었다. 처음 1회를 시작할 무렵에는 워낙 바쁠 때라 퇴근하면 방송을 볼 수 없었다. 2주 전에 비로소 <마의>를 보게 되었다. 이병훈 감독의 전작들에서도 늘 나타난 특징이지만 과거의 역사를 아주 디테일하게 묘사하고 그려내는 것이 <마의>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말을 비롯한 가축을 치료하는 의사인 마의가 조선시대에도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또한 이번 주에 방송된 회차분의 내용에서는 마의가 인의 시험을 보기위해 공부하고 동인경이라는 일종의 마네킹에 침술 연습을 하는 장면이 나왔다. ‘마의’를 소재로 한 사극이 없었을 뿐더러 생소한 소재에 신선한 내용과 장면이 삽입되어서 완전히 몰입하며 시청했다.
과거는 과거다. 역사라는 담론은 그것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주체가 어떤 목적과 방향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수백 년 전 조선시대 일어난 일을 안방 드라마로 시청하는 것을 시청자들은 좋아한다.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배웠던 교과서의 내용보다 더 빠르게 쉽게 브라운관을 통해 이해하고 습득한다.
우리의 역사에 대해서도 이렇게 단편적이고 객체적인 입장에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데 중세 북아프리카에 대한 역사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이븐 할둔의 생애가 1332년부터 1406년까지이므로 우리로 치면 조선조 초기에 해당하는데 그때의 그런 이슬람 지역을 상상한다는 것은 지금도 어렵다.” (p.354)
이 책 「이븐 할둔」은 마그레브 지역(북아프리카 튀니지, 알제리 지역을 통틀어 지칭하는 개념)의 역사에 대한 기록이다. 이븐 할둔이라는 마그레브 대(大)역사가의 역사서이다. 학교 다닐 때 배웠던 세계사 시간을 아무리 떠올려 봐도 북아프리카 하면 그저 이집트 스핑크스와 피라미드가 고작이다.
드라마 <마의>에서 열연을 펼치는 조승우를 통해 조선 현종 시절 마의에 불과하던 백광현이 갖은 어려움을 뚫고 임금의 주치의인 어의에까지 이르는 과정을 간접적으로 체험한다. 마찬가지로 세계사, 특히 중세사에 대한 지식과 정보는 거의 유럽에 국한된 교육에 불과하기 때문에 마그레브라는 개념도 생소할뿐더러 이 책에서 소개된 이븐 할둔에 대해서는 이름조차 어색하다.
“여러 해 전에 절판된 이 책을 재간하기로 결정한 데는 이유가 있다. 이븐 할둔과 그의 저작에 대해 이슬람주의자들이 행하고 있는 비방에 반대하기 위해서이다.” (p.9)
“<역사적 유물론과 변증법적 개념의 형성>이라는 장 제목에서 보듯이 그의 제3세계 분석의 방법론은 마르크스주의였다. 단순화하면 역사의 전개가 다분히 착취와 피착취 구조에 의한다는 관념이었다.” (p.358)
이 책의 저자인 이브 라코스트는 이븐 할둔이 정의한 마그레브 지역에서 출생한 역사학자이다. 젊은 시절 모국인 알제리의 정치적 상황(오랜 기간 정치적 격변을 겪었던)을 온 몸으로 체험하고 프랑스에 유학 해 이븐 할둔의 저작을 일게 되면서 마그레브 지역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된다. 이 책이 출간된 1960년대만 해도 미·소의 냉전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고 오랜 기간 이어져 온 유럽열강의 식민 통치가 해당 식민지 국민들의 저항에 부딪혀 갈등이 첨예하던 시기였다. 제국주의적 관점에서는 자신들의 식민 통치가 ‘미개하고 미성숙한 열등한 나라와 국민을 개도하고 발전시킨다.’는 명목을 내세웠다. 단순히 정치적 데마고기를 넘어서서 식민지의 역사와 문화를 부정·폄하하고 자신들의 식민 통치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하지만 유럽의 많은 지식인들, 특히 제 3세계(마그레브 지역을 포함한)출신의 지식인들이 마르크스주의에 의한 역사과정에 대해 공부하게 되면서 자신들 모국의 상황에 적용하게 되었다. 역사는 어쨌든 착취와 피착취라는 간단하면서도 첨예한 갈등의 연속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따라서 이미 수백 년전 이슬람주의 이전 아랍문화에 대한 객관적이고 설득력 있는 이븐 할둔의 역사서에 빠져들었음은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겠다.
“이븐 할둔은 경제와 사회, 정치를 둔화시킨 중세적 구조를 연구했다.” (p.23)
이븐 할둔의 그의 대표적인 저서 「역사서설」을 통해 중세적 역사가 유럽에 국한된 역사만이 아님을 피력한다. 일찍이 로마시대 이전부터 이집트와 모로코, 더 나아가서 이베리아 반도 남쪽 그라나다 지역까지 세력을 떨친 북아프리카의 마그레브 지역에 강성했던 부족 왕조에 대한 역사를 기술한 것이다.
중세유럽의 시각에서 기술된 역사와는 다른 것이었다. 중세유럽의 시각에서 북아프리카와 이슬람, 아랍은 그저 미개하고 미성숙된 유목민족에 불과했다. 그래서 자신들의 군사적 침탈과 박해는 개도와 개종의 정당화의 도구로 사용했다.
“북아프리카가 언제나 낯선 제국의 일부였다는 것은 틀렸다. 알제리와 튀니지는 8세기에서 14세기까지 토착 왕조들에 의해 통치되었다.” (p.137)
이 책에서는 8세기 무렵부터 이븐 할둔이 왕성하게 활동한 14세기까지에 대한 마그레브 지역의 역사에 대해 자세히 기술한다. 학교에서 배운 적도 없고 다른 책에서도 본 적이 없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신선하게 읽혔다. 내용과 그 내용에 대한 기술자체는 지루했지만 요약하자면 마그레브 지역이 중세유럽이 얘기하는 그런 미개하고 미성숙하며 불완전한 구조의 유목민족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중세유럽이 재편되기 이전 중부 아프리카의 강성한 왕국이던 말리와 수단에서 생산되는 금을 유통하고 소비하는 중요한 길목에 있었기 때문에 이미 10세기 전부터 중동과 중국에 이르기까지 무역이 성행했고 도시구조는 수세기 이후 중세유럽이 만든 그것보다 우수했다는 것이다.
당시 금이 화폐단위로는 최상에 있었고 금의 생산과 확보, 유통이 부족의 생사를 결정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수많은 부족이 사라지고 탄생하는 반복된 역사가 이어졌다.
“이슬람의 출현 이전부터 아랍인들은 이미 역사성에 대한 일정한 관심을 내보였다. 그들의 구전문학을 보면 아랍인들이 그들의 족보, 특히 부족들이 항복한 전투의 서사적 이야기를 중요하게 여기고 이를 연구하는 데 얼마나 관심을 쏟았는지 알 수 있다.” (p.296)
저자인 이브 라코스트가 이 책을 집필하던 1960년대는 정치적·이념적 냉전이 첨예하던 시기였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해야 한다. 이미 경제적·문화적·정치적으로 수많은 혁명과 투쟁을 겪으며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 선 유럽의 강대국들의 입장에서는 이제야 독립투쟁을 하고 민중투쟁을 하는 북아프리카의 소국들이 가소롭게 보였을 것이다. ‘저들은 아직도 저렇게 미개하다.’라는 인식이 밑바탕이었을 것이고.
하지만 19세기 이후 열강의 식민침탈로 이전까지 지속되어 오던 마그레브 지역의 역사와 문화가 역사에서 잠시 지워졌을 뿐이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서유럽과 달리 북아프리카에서는 정착된 계서적 질서, 봉건적 복종의 연계망이 발달하지 않았다. 북아프리카는(유럽에서 사라진) 부족 권력으로 훨씬 더 강한 친족 관계의 힘을 보존했다.” (p.191)
“북아프리카의 경우 구조적으로 꽉 막혔던 것이 문제였으며, 그러한 봉쇄성은 부족 구조들의 우월권 유지와 그에 부속되는 두 가지 사항에 기인했다. 하나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의 불가능이다. 그리고 분명한 개인주의적 계급이 되어 주민을 지속적 종속의 상태 속에 두지 못한 특권층의 무능이다.” (p.338)
중세유럽이 탄생하고 궤도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혁명과 투쟁이 반복되었고 하루아침에 나는 새까지도 떨어뜨리던 황제가 참수되고 시민들이 혁명을 일으키고 그런 과정에서 끊임없는 자기분열로 이루어진 도시계급이 형성되었다.
마그레브로 정의되는 북아프리카 지역은 이 과정이 더뎠고 애초에 부족단위로 모든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활동이 지속되고 반복되었던 그들에게는 중세 유럽의 봉건적 구조가 들어올 틈이 없었다는 것이다.
투쟁에 의해 쟁취한 사적 소유는 반드시 지켜야 할 재산이지만 명확하게 나와 너의 소유구조가 나뉘어 있지 않은 부족 형태에서는 사적소유는 모호한 개념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역사의 주체는 중세유럽이 가져가게 되었고 중세유럽의 흐름에 편승하지 못한 마그레브는 강성하던 부족국가 이전 시기의 열악하고 힘이 약한 상태로 돌아가고 말았다.
“합리주의는 마치 근대 서양만의 창안이고 따라서 독점적 자산인 듯 간주한다면 타당치 않은 태도이다.”
하지만 역사서술의 주체가 되었다고 해서 그들의 식민지의 역사마저도 부정해서는 안 된다. 승리하고 지배하는 역사만이 역사의 주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저자의 주장은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이미 수백 년 기술된 마그레브의 대(大)역사가 이븐 할둔에 주목했던 것도 바로 그 이유에서다.
다만, 그런 주체적 역사적 역량을 가진 마그레브 지역이 19세기 이후 열강의 땅따먹기 싸움에 자신들의 온 몸을 내어줄 수밖에 없었던 상황과 한계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술이 없다. 아마 투쟁의 중심에 있던 60년대였기 때문이리라 미루어 짐작한 따름이다.
역사는 사실 재미있는 분야다. 과거의 역사를 돌이켜보는 것은 현재를 고찰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현명한 방법 중 하나이다. <마의>를 보면서 ‘조선시대에도 지금의 수의사와 같은 사람들이 있었구나~. 그런 마의가 어의까지 올라 간 역사가 실제했구나~!’ 생각하는 것처럼 전혀 알지 못했던 마그레브 지역의 역사를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것은 그래서 큰 의미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