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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된다고 하지 말고 아니라고 하지 말고 - 임윤택 에세이
임윤택 지음 / 해냄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고등학생 아이가 생일 선물로 이 책을 선물해 줬다. 고등학교 1학년인 그 아이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중3때부터 키워온 댄서의 꿈을 위해 열심히 준비하고 연습하고 있다. 부모님의 반대와 학교 선생님의 반대, 주변인들의 비웃음과 차가운 시선에 힘들어 할 때도 있지만 늘 밝게 웃으며 온 몸에 멍이 들도록 춤을 추는 아이다.
그런 아이가 선물해 준책이라 남달랐다.
지난 슈퍼스타K 시즌3은 단 한 편도 보지 못했다. 중간 중간 울랄라세션, 버스커버스커라는 이름이 나오고 그룹 미션 뭐 이런 말만 들었다. 결국 울랄라세션이 우승을 하고 끝이 났지만 대중들에게 더 유명해 진 건 버스커버스커였다. 싱어송라이터라는 아티스트적 요소가 대중들에게 어필하고 내게도 그랬던 것 같다. 기존의 가수와는 다른 노랫말과 귀엽게 생긴 외모 등이 한몫했다. 정작 우승은 울랄라세션이 했지만 나는 그들의 노래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우승 이후 방송에도 나오지 않고 음반도 나오지 않아 관심이 없었다.
잠깐씩 본 기억으로는 오색찬란한 무대의상을 입은 키 작은 멤버들이 노래하면서 춤추는 그룹. 딱 그 정도였다. 그리고 리더인 임윤택씨가 암투병 중이라는 것. 그 정도.
“무슨 일이 생겨 내가 없더라도 아이들이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리고 반드시 그렇게 될 수 있도록 해야만 했다.” (p.262)
슈퍼스타K 시즌3가 가장 인기가 있었던 시즌이 된 데에는 그룹의 참가를 허용해 스펙트럼을 넓힌 탓도 있지만 탄탄한 실력과 개성을 가진 참가자들이 많았고 슈스케에서 가장 중요시 하는 스토리가 많았던 시즌이었다고 한다.
슈스케 참가 직전 임윤택씨는 암 발병을 알았고 그 상태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을 알고 멤버들에게 참가를 독려했다.
이미 많은 장기로 암이 전이되어 있는 상태였고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오랜 시간 동안 팀을 꾸려 온 리더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이름을 알리고 혹시 자신이 부재하더라도 알아서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고 싶은 의도였다고 했다.
“춤과 노래는 물론 연기, 연주, 작사, 작곡 등 종합 엔터네이너로서 필요한 분야를 총망라한 ‘엔터테인먼트 제국 건설’이 지금 나의 최종 목표다.” (p.7)
책을 읽으면서 선입견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또 한 번 알게 되었다. 암 투병중인데 춤도 잘 추는 구만. 키들이 왜 저렇게 작아. 노래를 하던지, 춤을 추던지 하나만 하지. 작사, 작곡 능력이 없는데 무슨 아티스트야 아티스트는. 뭐 이런저런 생각들. 일부 네티즌은 임윤택 암 투병 조작설 이라는 황당한 음모설 까지 제기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임윤택의 꿈은 이미 춤에 빠져들기 시작했던 중학교 시절부터 단 하나였다.
‘엔터테인먼트 제국 건설’
춤을 좋아하거나, 노래를 좋아하거나, 연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마음껏 연습하고 그 꿈을 위해 도전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자신의 꿈을 발견하면서 학업에는 다소 미진하기도 했고 학창시절 잠시 방황하기도 했지만 그의 꿈은 변함이 없었다. 팀 내 분란이 생기고 해체되고 재결성되는 것을 반복하면서도 자신의 꿈을 잃지 않았다.
이것이 힘이다.
“우리 팀이 예선전에서 보여준 것은 남들과 다른 독창성이었다.” (p.66)
“붕어빵 기계에서 찍혀 나오는 똑같은 붕어 모양처럼 내 인생을 남들과 똑같이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p.155)
슈퍼스타K에서 울랄라세션이 보여 준 무대 중 가장 압권이었던 것은 신중현의 ‘미인’을 편곡 해 부른 무대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 무대가 이미 슈스케 출연 전부터 수많은 무대에서 이미 한 공연이었다고 했다. 통기타로 대변되던 미사리의 공연 문화를 바꾼 것도 그들이었고 그곳에서 한 공연의 대부분이 슈스케 공연에서 재연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슈스케에 나와서 최루성 스토리를 탑재해 우승한 팀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들만의 무대와 공연을 하고 있었던 사람들이었고 그들만의 노하우로 트렌드를 만들어 온 팀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티스트의 조건 중 작사·작곡 능력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절대적인 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울랄라세션이 방송을 통해 보여 준 공연은 독창성이었다. 그리고 편곡능력. 수많은 가수와 댄서가 있지만 편곡을 자유자재로 하면서 춤과 노래까지 잘하는 팀은 드물다. 공연 또한 다른 가수들과는 달랐다.
“<슈퍼스타K>에서 매주 정해지는 미션은 달랐지만 그때마다 우리가 새로운 스타일의 무대를 보여줄 수 있었던 것도 형이 오랫동안 준비해 온 결과였다.” (p.301)
미사리에서 공연문화의 새로운 트렌드를 만든 그들을 모방해 수많은 팀이 생겼다고 한다. 기존의 통기타, 포크송은 거의 사라지고 노래와 춤을 개성 있고 구성한 팀이 우후죽순 생겼다. 정상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달라야 하고 독창성이 있어야 했다.
미사리에서는 독보적인 존재였지만 다른 곳에서는 인지도가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열악한 조건을 벗어날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들이 좋아하고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춤과 노래를 마음껏 하면서 돈도 벌수 있다는 사실에 밤을 새우며 콘티를 짜고 공연을 기획하고 춤추고 노래했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단지 살기 위해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울랄라세션은 리더십 있고 친화력 좋고 열정으로 가득 찬 임윤택을 중심으로 이미 준비되어 왔던 것이다.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오랜 시간 팀을 이끌어 온 임윤택의 사람에 대한 진정성이라고 생각했다. 팀이 잘 될 때, 팀이 잘 안 될 때. 임윤택은 늘 자신의 팀원들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갔다고 한다. 임윤택만을 스카웃하기 위한 기획사의 제의도 몇 차례 있었지만 동생들을 두고 떠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자신들은 더 큰 무대를 밟을 수 있고 더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줬다고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한 주에도 수많은 보이·걸그룹이 탄생하고 소멸하는 현실에서 외모·실력이 특출나지 않은 그들이 끝까지 꿈을 버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팀 구성원들 간 관계의 진정성이다.
KBS 불후의 명곡에서 공연하는 울랄라세션을 보면서 가장 강하게 들었던 생각은 ‘이야~ 저 사람들 참 즐기면서 한다.’ 라는 것이었다. 분명 라이브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일이 힘든 일일 텐데 멤버들 얼굴에 찡그림을 찾을 수 없었다.
책을 읽고 나니 일견 이해가 된다.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리고 고대하며 준비한 무대인가. 그들은 분명 즐길 수밖에 없었다.
임윤택씨는 아직도 투병중이라고 한다. 암이라는 놈이 워낙 골치 아픈 놈이고 꽤 진행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제껏 그래왔던 것처럼 암 따위 떨쳐버리고 더 큰 꿈과 무대, 공연을 위해서 달려갔으면 좋겠다.
이 책을 선물해 준 아이도 꿈을 잃지 않기를 기도한다.
주변과 비교하지 말고 상처 되는 말을 흘려버리며 그것을 향해 달려가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