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파는 상점 - 제1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5
김선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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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상 학생들을 많이 만난다. 일요일에는 교회 학생부서에서도 많이 만난다. 내가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힘 좀 내라.”이다. “힘내라.”도 아니고 “힘 내라.”이다. 하나같이 생기 없고 축 처져있다.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나도 너희들과 똑같은 시간을 보냈다. 지나고 나면 별 거 아니다.”라고 쉽게 단정 지어 말할 수 없다. 그 아이들이 받는 스트레스와 압박과 옥죔은 나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것 같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학교폭력, 자살, 왕따 청소년 집단이 골칫덩어리가 되어 버렸다. 교육당국도 정부도 가정도 어떻게 손 쓸 수 없는 괴물이 되어 버렸다. 그러니 교육청이라는 곳에서 학교에서만은 자살하지 말라고 “창문은 20cm만 열라”는 황당무계하고 어이없고 천박한 지시를 하기도 했다.

 

아이들을 한명씩 만나보면 여전히 밝고 맑고 어리다. 그리고 너무 여리다.

이 책은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가 얘기한 것처럼 섣부른 어른들의 판단과 염려 내지는 대책 따위는 없다. 어설픈 위로와 작위적인 공감도 없다. 다만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아이들의 언어와 아이들의 심정을 최대한 단어와 문장에 그대로 녹아내려 했다고 생각된다.

주체는 어른이나 어른의 눈높이가 아니고 철저하게 등장하는 아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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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책에서 부모는 다양한 형태로 등장한다. 온조의 아버지는 소방관이었고, 어머니는 환경관련 시민단체에서 일한다. 아버지는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시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들이 있지만 부재(不在)한 아버지를 대신해 주지 못한다. 언제나 자신 곁에만 머물러 있을 줄 알았던 어머니도 온조가 다니는 학교의 생물 선생님과 로맨스를 펼치기 직전이다. 온조는 소외감으로 괴로워한다.

 

온조와 가장 친한 친구인 난주는 이미 부모의 이혼을 경험했다. 새롭게 생긴 아버지가 너무 잘해주고 새롭게 생긴 어린 남동생 둘도 너무 귀엽지만 원체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난주의 성격 상 그렇게 드러나는 것일 뿐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온조의 [시간을 파는 상점]의 의뢰인 강토는 더욱 심각하다. 할머니 임종조차 핑계를 대며 지키지 않은 아버지를 보고 자랐고 할아버지는 강토 아버지를 고소하기에 이르는 집구석이다. 물론 책의 마지막에는 강토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자연스레 화해하는 모습이 나오기는 하지만 그간 괴로웠을 강토의 마음에 대한 보상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가네샤라는 가명을 쓴 괴짜우등생 혜지는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동화작가의 꿈을 접은 채 부모의 기대에 파묻혀 스스로 자신을 가두며 외톨이가 된다. 혜지의 유일한 탈출구는 심장을 울릴 듯 쿵쾅대는 헤비메틀 뿐이다.

난주의 짝사랑 정이현의 반에서 일어난 PMP 도난 사건의 범인인 아이는 가장 불행하다. 남부러울 것 없는 집안 형편이지만 도무지 부모의 기대와 요구에 닿을 수 없다. 사촌들은 모두 다 공부를 잘한다. 아이는 파국으로 향한다.

 

“그런 부모를 욕보일 수 있는 방법은 딱 한 가지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더래. 남의 물건에 손댔을 때 엄마가 병적으로 반응했던 것을 떠올린 거지.” (p.193)

 

부모의 기대에 따라오지 못하는 자식에게 가차 없는 몰인정과 무관심이 쏟아 부어진다. 아이는 물건을 훔치는 행위로 부모와의 마지막 끈을 잇는다. 불행의 절정이다.

책에 등장하는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실을 몇% 반영하고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현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 한다. 부모의 과한 애정과 관심 혹은 너무 부족한 애정과 관심 모두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이것이다.

 

“우리 엄마, 아빠하고는 진짜 말이 안 통해요!!”

 

그대로 좀 놔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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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

책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선생은 불곰이다. 생물 선생인 불곰은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다. 후줄근하고 머리도 멋있게 세팅하지 않았지만 흥분하면 더듬는 말투와 부스스한 외모, 무엇보다 아이들의 말을 들으려 하는 그의 마음이 어필이 된 것일 테다.

친구 중 공무원이 있는데 가장 싫어하는 직종이 교사라고 했다. 이유를 물어봤더니 교사들은 허구한 날 가르치기만 하니까 남의 말을 들을 줄 모른다는 거다. 자기가 동사무소에 문의하러 전화했으면서 오히려 선생입네 하면서 담당자를 가르치려는 태도. 학교의 여러 가지 문제를 두고 말이 많지만 나는 교사들 또한 변화의 대상이라 생각한다. 나의 학창시절을 떠올려 보면 지금 당장 그만 두어야 할 교사들이 한둘이 아니다. 자질이 되지 않는데 사립학교에 들어오는 교사가 많았다.

물론, 모든 교사를 두고 하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책에서 등장하는 교사들은 중립적인 위치에 있다. 사건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 3자의 스탠스를 취한다. 작가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오히려 나는 이것이 더 답답했다. 수십 명의 아이들 하나하나 인성교육까지 책임져 달라는 건 아니지만 학교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수수방관하고 어떻게든 무마하려는 직무 유기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아이들이 왜 더 이상 학교를 신뢰하지 않고 학교에서 학원·과외 숙제를 하는 지 교육 당국자들은 깊게 깊게 생각해야 한다.

 

“온조는 화가 났다. 알아보지도 않고 무조건 걱정부터 앞세워 미리 차단하는 어른들의 섣부름이 싫었다.” (p.168)

 

학교에서 매일 만나는 교사가 매일 집에서 만나는 부모가 하는 소리와 똑같은 소리를 할 뿐이라면 아이들은 이렇게 말 할 것이다.

 

“우리 담탱이, 완전 꼰대야 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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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평범한 하루의 시작이었습니다. 우리 생활이 알다시피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일상의 연속이지 않습니까.” (p.12)

고등학교를 졸업 하고 대학을 졸업 하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는 인생의 과정을 밟아가도 여전한 일상의 연속이라는 것을 아이들은 모를까? 아니, 알고 있다. ‘힘들다, 힘들다.’하는 얘기는 부모로부터 수도 없이 들어봤을 테고, 맨날 나오는 뉴스라는 것이 어렵고, 잔인하고,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것들뿐이니 아이들도 알 건 다 알고 있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그 때는 가장 어렵다.

그걸 인정해 줘야 한다.

“임마~! 나 때는 너희들 보다 더 힘 들었어~~.”

이러는 순간 아웃!! 이다.

아이들은 지금이 가장 힘들다. 숨 막히고 가슴이 답답하다. 누구하나 제 마음 털어놓을 사람 없다.

아이들의 일상에 주목해야 한다. 다들 살아가는 일상이 그 아이에게는 유일한 일상이니까.

 

“어느 순간, 시간은 돈이 될 수 있으니 시간을 팔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p.39)

 

유약하고 사고만 치고 싸가지 없는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쿵짝쿵짝 일을 벌이고 일을 해결한다.

온조가 만든 [시간을 파는 상점]은 ‘당신의 특별한 부탁을 들어드립니다.’라고 홍보한다. 누가 그런 곳에 의뢰를 하겠나 싶지만 ‘시간’이라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시간’의 흐름에 자신의 꿈과 삶을 반추하는 ‘10대’ 아이들의 의뢰가 계속 된다.

재밌는 것은 인터넷 상 블로그나 게시판 같은 곳에 가장 먼저 벌떼 같이 달려드는 음란성 광고가 이곳에도 손길을 뻗쳤다는 것이다. 철들지 못한 어른들의 이상야릇한 의뢰가 들어오기도 했다.

상점 주인 온조는 어린 10대 지만 자신이 세운 철칙과 기준에 벗어나는 의뢰에 대해서는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PMP사건과 정이현, 가네샤라는 아이디를 쓰는 혜미, 강토와 할아버지 등 사건이 겹치고 중첩되면서 소설은 긴장을 유지한다. 자극적인 소재와 표현이 없음에도 소설 끝까지 유지되는 것은 전적으로 작가의 뛰어난 구성력이다.

 

어린 시절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서 가장 궁금했던 것은 미국의 고등학생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운전을 하고 학교 등하교 때도 차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자유로운 옷차림은 물론 머리 스타일, 화끈한(?) 졸업파티 같은 것들이 신기하고 동시에 부러웠다.

입시가 워낙 힘들고 고등학생은 힘든 때니까……. 아직 어리니까……. 보호해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적으로 어른들의 선입견이 아닐까 싶다.

물론, 고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였다면 내가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고등학교 때까지 아니, 대학에 가서도 여전히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의 환경은 성인아이만 양산하는 꼴이라 생각한다.

 

“가네샤 : 네가 처음이라고 했잖아. 난 이제껏 외톨이였어. 외로운 섬이었다고. 아무에게도 다리를 놓을 줄 모르는 외떨어진 섬 말이야. 처음으로 다리를 놓고 싶은 맘이 생겼어. 낯간지러운 일이긴 하지만,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용기가 난 건 처음이야.” (p.136)

 

반에서 공부를 가장 잘 하지만 늘 혼자 있고 아이들과 대화도 안 하고 자기가 왕따를 당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서 반 아이들 전체를 왕따 시키는 혜지와 같은 아이도 온조의 상점을 통해 회복된다. 부모도, 선생도, 교육당국도, 정부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있을 때 가장 재미있다. 가장 편안하다. 자기들의 문제는 자기들끼리 풀어야 한다.

 

어른의 입장에서는 못 마땅할 수도 있다. 정해진 틀 안에서 내가 컨트롤 할 수 있어야 자신의 마음이 안정되기 때문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면 한 번 제대로 맡겨보는 건 어떨까?

그들이 만들 시간의 상점, 미래의 상점, 불안의 상점, 관계의 상점, 불평의 상점을 든든히 지지하고 지켜봐주는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말이다.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둬요!!”

“알아서 할게요.”

 

라는 말에 바로 욱!! 하는 것이 치밀어 오른다면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덜 된 상태인 것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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