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홍합
한창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내 어머니는 참으로 생활력이 강한 분이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기 전까지 일을 하셨다. 보석 도매상에서부터 아이 돌보기, 밤껍질 까기, 공장일까지 줄곧 일을 하셨다. 지역에서는 건실한 회사에서 정비관련 일을 하셨던 아버지와 함께 늘 일을 하셨다. 나와 내 남동생이 모두 결혼해 이렇게 잘 살고 있는 것이 돌아보면 부모님의 헌신이었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마지막으로 하셨던 일이 라면스프에 들어가는 첨가물을 가공하는 공장이었다. 4남매의 장녀로 태어나신 어머니는 양반 끄트머리를 붙들고 계시던 외할아버지의 완고함 때문에 하고 싶은 공부를 중학교에서 멈춰야 하셨다. 어머니 나이 23세에 갑자기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세는 기울었고 남동생 셋을 위해 성남으로 상경해 일을 하셨다. 시골 여자로 태어나셨지만 강한 리더십과 추진력, 카리스마를 가지신 어머니는 그곳에서도 금세 또래들 중 리더가 되셨다고 한다. 결혼 후 생전 처음 온 지역에서 정착해 살면서도 그런 어머니의 기질은 도드라졌다. 각종 계와 모임, 동네에서 일어나는 갈등의 해소자가 되기도 하셨다.
마지막으로 일하셨던 라면스프 공장에서도 비공식 직함인 ‘반장’이 되어 수십 명의 아줌마들을 리드하셨다. 공장의 상황이 갑작스레 안 좋아져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게 된 수십 명의 아줌마들을 이끌고 노동관련 부서로 쫓아다니시고 공장장과 사장을 직접 만나 담판을 지어 퇴직금과 밀린 급여를 모두 받아내시기도 했다.
아마 남자로 태어나셨으면 못해도 회사 중역이나, 자치단체 장 정도는 하고도 남으실 분이다.
“잔뜩 열어놓은 창문이고 환기구를 통해 한여름의 뜨거운 기운이 밀려들었다. 지나가는 산과 밭, 논은 온통 푸른데 바람 없이 햇살만 가득한 그 풍경이 무거워 어쩌면 가장 왕성한 생명력이란 저렇듯 무겁고 힘든 색깔을 등에 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p.65)
한창훈의 「홍합」을 읽으며 계속 어머니가 생각났다. 여수 홍합 공장에서 일하는 아줌마들의 고된 하루하루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남편 수발하고 새끼들 키우느라 일을 놓을 수 없는 아줌마들. 그녀들에게 계절의 변화는 체화할 수 없는 일상일 뿐이다. 뼈가 삭는 고통일 뿐이다. 숨이 막히는 한 여름 초록빛 세상은 목을 조여 오는 답답함일 뿐이다.
「홍합」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아줌마라는 단어 하나로 통칭할 수 없는 개별적 고통과 한숨의 주체다.
“하늘에서 물 몇 방울 떨어진다고 사람들 마음이 그 새 창호지마냥 녹녹해지는 게 아주 우습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그러나 두고 보면 비라도 좀 내려 봐라, 나는 그 핑계 대고 놀란다, 세상만사 잊어 불란다, 소주 몇 잔만 눈앞에 있으면 온갖 시름 떨쳐버릴란다, 작정을 할 만큼 그들은 고달픈 것이다.” (p.23)
여수에서 순천에서 한 푼 벌기 위해 홍합 공장으로 모여든 여인들은 누구하나 곡절이 없는 이가 없다. 별의별 사연과 과거로 가득한 곳이다. 라디오 사연으로 써 내려가면 번지르르한 김치냉장고 하나쯤 거뜬히 받아낼 수 있을 만큼 구슬프고 어이없으며 짠하다. 하긴 경제적 어려움이 없고 남편 벌어오는 돈 만으로 새끼들 키우고 사고 싶은 옷 마음껏 살 수 있는 형편이라면 좁아터진 홍합 공장으로 출근하는 일은 당연히 없을 것이다.
멈추지 못한 일로 굳어진 손마디와 마음 심지는 얼핏 뻔뻔하게 교통법규를 무시하는 김씨 아줌마처럼 철판을 둘러놓은 것 같이 단단해 보이지만 그녀들이 살아온 삶의 굴절만큼이나 요동치고 잘못 건드리면 한꺼번에 쓰러져버리는 도미노 조각처럼 약하기도 하다.
그래서 좁은 공장에 모여든 서로를 위로한다. 내 옆의 00엄마의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이기 때문이다.
“뭐 그런 날도 있었다. 그만큼 흔한 수 있는 게 남편들의 폭력이었고 사실 그 폭력에 가장 시달리는 이는 바로 석이네이기도 했다.” (p.44)
“간간히 자신들도 눈가에 푸른 꽃을 달고 오면서도 누구 하나 그 몰골로 오면 천하에 못 볼 꼴 봤다는 듯 성화였다.” (p.79)
홍합 공장에서 일하는 여인네들의 남편들은 하나같이 인간 하자들이다. 제대로 돈을 벌어다 주는 놈 하나 없다. 열심히 배를 타지도 않고 열심히 농사를 짓지도 않는다. 싸지른 새끼들에게는 관심도 없다. 꼴에 사내노릇 한다고 술질에 계집질까지 가관이다. 공장에서 잔업이 있어 조금이라도 늦게 집에 올라치면 당장 때려치우라 되레 큰소리다. 술까지 마실라치면 어김없이 두들겨 팬다. 자식 낳아줘, 부모 공양해, 돈 벌어와, 밥상 차려주는 마누라를 두들긴다.
홍합 공장 여인들은 무저갱에서 탈출할 수 없다.
숙명처럼 자신의 팔자를 탓하기도 하고 이혼을 결심하기도 하지만 단 한명도 실행하지 못한다.
부끄러운 훈장처럼 얼굴에 푸른 꽃을 피워오면 지난 주 자신이 피워온 푸른 꽃을 기억 못하는 듯이 더 길길이 날뛴다. 죽일 놈, 찢어 죽일 놈, 망나니 같은 놈 악을 써보지만 그녀들은 무저갱을 벗어나지 못한다.
“앞집 옆집 같이 공장 다니는 여자들은 모두 돌아왔는데 유독 그녀만 늦는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또 그 입방아를 무슨 수로 견뎌내겠는가. 도대체 이놈의 동네엔 말 못해 죽을 사람은 하나도 없다.” (p.181)
공장의 유일한 총각 문기사와 설레는 로맨스를 꿈꾸는 승희네는 일찍 죽은 남편의 부모와 자식들을 결국 벗어내지 못한다. 노총각과 과부의 로맨스는 전혀 불륜적이지도 외설적이지도 않다. 소설 속 승희네의 인생이 너무 구차하기 때문일 거다. 둘만의 사사로운 시간을 가질라치면 어김없이 태풍으로 배가 가라앉거나 옆집에 불상사가 생긴다. 무슨 대단한 야반도주를 꿈꾸지도 뜨거운 하룻밤을 바라지도 않는데 그것조차 이놈의 무저갱은 허락해주지 않는다.
그래도 이 책은 구차하고 애달프게만 읽히지 않는다.
작가 한창훈의 네이티브 전라도 사투리 표현이 일단 한 몫 한다. 그리고 남자들만 모여 있는 곳과는 달리 여자들만 모여 있는 곳은 늘 깔깔깔, 까르르르가 넘쳐나기 마련이다.
몰래 공장을 빠져나와 아들내미 학교에 다녀온 후 다른 여인들과 시비가 붙는 일도 있지만 마침 생선을 수송하는 트럭이 공장 옆 논두렁에 거꾸러져 맨손으로 팔뚝만한 우럭을 잡아와 다 같이 소주 한 잔 기울이는 재미도 있다.
깔깔깔, 까르르르는 그네들에게만 통하는 정서요. 배출구요. 잠시나마 무저갱을 잊을 수 있는 짜릿함이다.
제일 나이 많은 언니를 망구로 놀리고 시답지 않은 남자 일꾼들과 노골적인 농지거리를 주고받으면서도 깔깔깔, 까르르르.
한창훈은 새콤달콤 알싸하게 잘 버무려진 홍합초무침처럼 여인들과 사투리와 깔깔깔, 까르르르를 섞어낸다.
돌이켜보면 내 어머니도 그러셨던 것 같다. 공장에서 일하고 계신 어머니께 전화를 드리면 어머니 음성 뒤로 아줌마들의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녀들은 그렇게 견뎌냈던 것이다.
한창훈의 글에 완전히 매료됐다. 구슬프지만 재미있고 고되지만 위안이 된다. 인물과 사건을 버무려내는 전라도 사투리는 맛있는 초고추장처럼 찰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김훈과는 또 다른 재미와 감동을 준다. 내가 좋아하는 글이다. 이런 작가를 이제야 안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거문도 출신답게 초기작 대부분이 섬과 바다와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여러 권 구입했다. 좋아하는 작가 목록 상위에 올려놓으니 부자가 된 듯하다.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바르셀로나 올림픽이 한창이던 1992년 여름인데, 중간 중간 언급한 당시 정치적 상황과 전라도 사람들의 인식. 80년 5월 광주에 대한 기억은 작품에 더 큰 긴장과 재미를 선사한다. 하지만 심각하지 않게 표현한다. 홍합공장 여인들의 삶을 기똥차게 버무려 내는 것처럼 딱 그만큼에서 멈춘다. 그래서 더 임팩트 있다. 구구절절 늘어놓는 작가가 얼마나 많은가.
공장의 유일한 총각 문기사와 유일한 젊은 과부 승희네의 로맨스가 어떤 식으로든 영글었으면 싶었는데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문기사와 아슬아슬한 로맨스를 이어가던 승희네는 공장에 출근하는 것만이 무저갱에서의 탈출이었다. 집안일은 내팽개친 시어머니와 꼬장꼬장한 시아버지, 참새 새끼마냥 저녁밥만 기다리는 새끼들은 가녀린 승희네의 어깨를 짓누르기만 하는 돌덩어리다. 한 여름 달게 익어가는 포도송이 같은 나날이었는데, 일생 도움이 안 되는 시어머니가 내일부터 공장 나가지 말고 논일 하란다.
“내일부터 공장에 못 가고 농약 친단다. 씨발 것, 독사야 내 발 물어라.” (p.185)
승희네는 과부에서도 며느리에서도 편모에서도, 자기를 둘러싼 무저갱에서 조금도 벗어날 수 없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출렁대는 논물에 발을 담그지만 이내 빼버릴 수밖에 없다.
근데 오히려 딱 이만큼이어서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좋지 않은 결말에 대한 예상은 뚜렷하고 핑크빛 결말에 대한 기대는 모호하고 흐릿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소설에 생소한 단어가 많이 나왔다. 나름 책을 읽어왔다고 생각했는데 모르는 단어가 참 많았다.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뜻을 찾아보는 것도 쏠쏠하게 재미있었다.
“에멜무지로 앉아” (p.12)
“흉내를 내며 얼굴을 빤히 대고는 기롱지거리를 했다.” (p.27)
“그예” (p.37)
“한갓지게” (p.56)
“틉틉한” (p.138)
“고시랑거리며” (p.229)
한창훈의 다음 작품을 읽을 생각에 벌써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