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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식탁 - 지친 내몸과 마음을 위한
이원종.이소영 지음 / 청림Life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작년부터 본가에 내려가면 꼭 들리는 곳이 있다. 부모님이 가꾸시는 텃밭이다. 두 분이 모두 충북 시골이 고향이시고 직장생활을 시작하기 전까지 집안의 농사를 맡아 하셨었다. 아버지께서 재작년 정년퇴직을 하시고 나서 아는 분의 배려로 작은 텃밭을 갖게 되셨다. 봄철 쉬는 날이면 인근 야산으로 고사리를 채취하러 다니시고 바쁜 직장생활 중에도 텃밭을 가꿀 여력이 되시면 상추라도 심으셨던 두 분이다.
대장암 투병생활이 거의 끝나가고 정년퇴직도 하셨겠다. 신이 나셔서 이것저것 작은 텃밭에 안 심은 채소, 과일이 없었다.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자라는 상추 탓에 작년에는 부모님은 물론 우리 부부의 지인들에게까지 무공해 유기농 상추를 넉넉히 베풀 수 있었다.
올해는 작년보다는 좀 더 계획적으로 심으시기는 했는데 뭐 수요보다 공급이 월등히 높다보니 본가에 내려가는 족족 트렁크에 넘칠 정도로 채소와 과일을 싣고 온다.
“누가 어디서 어떻게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음식들이 우리의 식탁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p.20)
부모님께서 텃밭은 가꾸시는 가장 큰 이유는 아버지 건강 때문이다. 워낙 좋아하시기도 하지만 대장암 완치를 앞두고 있으셔서 더욱 식생활에 관심이 많으시다. 아무리 깨끗한 대형마트나 매일 얼굴을 마주치는 재래시장에서 파는 채소라도 내가 직접 심어서 거두는 채소보다 믿음을 줄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실제로 본가에서 가져오는 채소는 대형마트에서 파는 채소보다 못 생겼다. 빛깔로 곱지 않고 크기도 제 멋대로다. 여기저기 벌레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런데 먹어보면 정말 다르다. 맛이 있다.
이 책 「영혼의 식탁」은 나의 부모님처럼 자신이 직접 텃발을 일구어 채소와 과일을 심고 직접 닭을 키우는 사람이 쓴 책이다.
‘먹는 것’에 역사 상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요즘이다. 무엇을 먹느냐? 어떻게 먹느냐? 얼마나 먹느냐? 언제 먹느냐? 라는 것이 초유의 관심사다. ‘보릿고개’ 라는 말은 요즘 아이들에게는 속담보다 더 낯설 것이다.
“문제는 항상 너무 많이 먹어서 탈이다. 토할 정도로 배가 부른 상태에서도 계속 먹는 동물은 인간밖에 없다고 한다.” (p.40)
현대인의 ‘먹는 것’에 대한 관심이 절정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대인은 많이 먹고 있다고 지적한다. 나도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나의 모습만 봐도 단번에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초여름부터 건강을 위한 다이어트를 계속 해오고 있다. 처음 시작할 때보다 체중도 줄고 체력도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먹는 것을 줄이는 것은 너무 힘들다. 폭염이 극심하던 2주 전 쯤 저녁을 먹지 않고 뛰다가 탈진 바로 직전의 상황에까지 간 적이 있다. 이후 저녁을 조금 먹고 뛰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했는데, 이것이 문제다. 조금만 먹어야 하는데 양껏 먹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더운데 뛰려면 조금 더 먹어야 돼’ 자위하지만 그렇게 먹은 날은 어김없이 속이 부대껴 평소 뛰는 거리를 채우지 못한다.
‘먹는 것’에 대한 양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특히, 정상적인 환경에서 자라지 못한 육류를 섭취하는 것에 대한 연구와 지적, 캠페인이 봇물 터지듯 일어나고 있는 요즘이다. 지금은 ‘고기가 없어서 못 먹는 시절’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고기를 먹느냐가 중요하다.
“2006년 국내 육류 1톤을 생산하는데 사용된 항생제는 750g이었다. 이는 항생제를 많이 투여하는 것으로 알려진 미국의 290g에 비해 거의 3배에 해당하는 양이다.” (p.168)
“양계장에서 가두어놓고 키우는 병아리는 보통 40일이면 큰 닭으로 성장한다. 그러나 우리 집처럼 방목해서 키우는 병아리는 6개월이 되어야 큰 닭이 된다.” (p.12)
저자는 식품영약학 교수이자 직접 밭을 가꾸고 닭은 기르는 농부로서 현실을 지적한다. 항생제를 먹은 동물의 고기는 2차적으로 그 고기를 섭취하는 인간에게도 항생제 성분을 전달한다. 국내산 고기라고 무조건 믿어야 하는 것도 아닌 가 보다. 우리에 가두어 키우는 동물이 얼마나 비정상적으로 사육되고 있는지는 여러 보도와 책을 통해 많이 알려졌다.
그래서 저자는 결론적으로 제안한다.
“나의 대답은 ‘소육다채(小肉多菜)’ 이다. 육식은 적게, 채소는 많이 섭취하라는 뜻이다.” (p.204)
참 쉬운 말이다. 간단한 말이기도 하다. 무분별하게 육식을 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유행이나 별다른 자기 기준 없이 채식만을 고집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최대한 육식은 적게 하고 채식은 많이 하라는 것이다.
나는 특별히 육식을 좋아하지도 채식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고기는 기회가 있으면 맛있게 먹는 편이고 채소는 가리지 않고 즐겨 먹는 편이다.
사실 내게 가장 큰 문제는 가족력일 것이다.
아버지께서 대장암으로 투병을 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아버지는 그렇게 고기를 좋아하시지도 많이 드시지도 않았다. 담배를 많이 태우셔서 폐암에 대한 걱정은 많았지만 대장암은 뜬금없었다.
나중에 어머니와 우리 가족의 식생활을 복기해 보니 [짜고 맵게 먹는] 특징이 있었다.
결혼 후 처음 아내의 반찬을 먹었을 때, 좀 싱거웠다. 그런데 다른 집의 음식을 먹어보면 거의 싱거웠다. 내가 어려서부터 음식을 다소 짜고 맵게 먹었던 것이었다.
다행히 아내의 기가 막히는 요리 솜씨는 나의 짜고 맵게 먹는 식생활을 거의 바꾸어 놓았다. 그래도 늘 가족력에 대한 걱정은 있다. 그래서 음식을 먹을 때마다 조심하고 한 번 더 생각하려 한다.
토마토와 마늘, 양파가 특히 대장암의 위험을 낮춰주는 효과가 있다고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데 다행히 세 가지 모두 내가 즐겨 먹는 것들이다. 아직은 젊지만 저자가 책에서 줄곧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젊었을 때부터 예방의 차원에서 식생활을 점검하고 계획을 세우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한다.
그리고 본가에서 공급해 주시는 엄청난 양의 채소와 과일은 마트에 가지 않아도 될 만큼 풍족하다.
“채소는 날로 먹으면 무기질이나 비타민, 엽록소, 효소 등의 생리활성 물질을 살이 있는 상태로 섭취할 수 있어 훨씬 영양가가 높다.” (p.124)
오늘 아침에도 밥상에 많은 채소가 올라왔다. 날로 먹은 채소도 있었고 살짝 데친 채소도 있었다. 식사 후에는 과일도 먹었다.
이 책의 저자에게 말했다면 분명 칭찬해 주었을 것이다.
“배고픔의 신호를 배우자. 몸이 영양분을 필요로 해서 진짜 배가 고픈 것인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혹은 심심해서, 남들과 같이 있어서 먹는 것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p.221)
고기를 먹든지 채소를 먹든지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는 것이 중요하고 좋다. 사실, 먹는 즐거움조차 이런저런 것을 재고 고민해야 한다면 그것 또한 스트레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오래 건강하게 맛있는 것을 먹으려면 나의 지금 식생활을 가만히 돌아보고 고칠 것은 고치고 해야 할 것은 과감히 해보는 결단이 필요하다.
내가 지금 배고픈 것이, 이 신호가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인지 찬찬히 생각해 보는 것에서부터 출발해 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