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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킨 - 피부색에 감춰진 비밀
니나 자블론스키 지음, 진선미 옮김 / 양문 / 2012년 5월
평점 :
나는 피부가 검은 편이다. 남동생은 하얗다. 어릴 때 사진을 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오죽하면 동네 친구 녀석은 나와 동생을 가리켜 바둑알의 ‘흰 돌’, ‘검은 돌’이라 했었다.
지난 주 여름휴가를 다녀온 후 나의 피부는 더 검게 되었다. 남동생은 지금도 하얗다.
"우리 신체에서 피부만큼 다양하고도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는 기관은 없다. 그러나 피부를 신체기관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p.8)
"넓이는 약 2제곱미터(약 0.6평), 평균 무게는 4킬로그램이나 된다." (p.9)
나도 이 책 「Skin 피부색에 감춰진 비밀」을 읽지 전에는 피부가 중요한 신체기관인지 몰랐다. 뼈나 장기 같은 신체기관은 평소에 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중요하구나~’ 생각하지만 피부는 매일, 매순간 보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 나는 피부가 신체기관이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그저 ‘내 피부는 내 동생에 비해 검은 편이다.’ 정도의 인식에 불과했다.
"피부는 인체 생물학적으로 매우 중요하며,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도 언제나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p.13)
만약 피부가 없다면 요즘 같은 불볕·찜통더위에 동반되는 강력한 자외선에 몸의 각 기관은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저자는 인간 피부의 가장 놀라운 특성 중 하나가 털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여기서 털이 없다는 것은 다른 온혈동물들 비교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저자는 인간이 진화를 거듭하면서 털이 없어진 가장 큰 이유는 땀이라고 설명한다. 다른 영장류에 비해서 많은 땀을 흘리는 인간은 털이 없어지는 진화를 하게 된 것이다. 직립보행을 하게 되고 도구와 연장을 사용하게 되면서 털의 부재가 가져올 수 있는 피해를 최소화 했고 이것이 피부색의 다양화를 가져온 결과라 얘기한다.
이 책에서 가장 중점을 두고 있고 나 또한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은 인간의 피부색에 대한 저자의 의견이었다.
우리는 피부색이 다른 인종에 대해서는 유독 신경을 쓰면서 ‘왜 우리는 다른 피부색을 가지게 되었을까?’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다. 뭐 돈 되는 일도 아니고 생각해봐야 시원한 답을 내릴 수도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난 주 스타벅스 매장에서 창립 몇 주년을 맞아 모든 음료를 반값으로 판매한 적이 있다. 동료 몇 명과 매장으로 갔는데 줄이 2겹·3겹으로 뒤엉켜 있었다. 그래도 반값이라 하기에 30분을 기다려 평소에 잘 먹지 않는 벤티 크기를 주문했다. 내가 가본 중에 가장 사람이 많았다. 시끄럽고 덥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일순간에 모든 이를 정적에 빠뜨린 사람이 등장했다. 키는 작아도 185cm정도, 몸무게는 적어도 150kg정도가 되어 보이는 흑인아저씨였다. 땀을 소나기처럼 흘리며 등장한 아저씨를 최소한 백 개가 넘는 눈이 일제히 쳐다보는 것이었다. 정확하게 왜 그랬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지만 그 흑인아저씨는 자신에게 쏠린 백 개가 넘는 눈에 적잖이 당황했는지 소나기 수준을 넘어선 호우경보 수준의 땀을 쏟아냈다.
물론, 요즘은 워낙 외국인을 많이 볼 수 있어서 크게 신기하고 낯설 것도 없었는데 덩치도 워낙 크고 흑인 중에서도 아주 피부색이 짙은 흑인이라서 많은 사람들이 쳐다본 것 같다.
저자는 피부색이 다른 것에 대한 의문에 간단하게 대답한다.
[인간이 오랜 시간에 걸쳐 진화하고 이동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이다. 특별한 이유와 신에 의지에 의한 차이가 아니라 인간의 자연에 대한 적응이라 할 수 있다.
“일조량이 많은 저위도 지역에서 일조량이 적은 고위도 지역으로 인류가 이주해감에 따라, 순전히 생식과 번식에 유리한 방향으로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피부색이 옅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p.298)
또한 인간의 피부색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자외선에 대한 적응이라 주장한다. 위도에 따라 일조량은 물론 노출되는 자외선의 양도 다르기 때문이다. 당연히 인간은 이러한 변화에 따른 자연선택을 결정했을 것이고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피부색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불과 몇 세기 전만 해도 피부색이 다른 것을 신의 저주니, 노예로 타고난 운명이니 하며 같은 인간인 흑인들은 노예로 사고팔았었다. 노예가 해방된 지 수 세기가 지났음에도 여전히 세계 곳곳에는 인종차별이 존재한다. 오죽하면 유명한 축구선수도 골세리머니를 하며 “No Racism”이 적힌 티셔츠를 보여주겠나.
몇 해 전 모 방송사의 교양프로그램에서 실험을 했다. 백인 남성과 동남아 남성이 지나가는 서울 시민들에게 길을 묻는 설정이었다. 인종·피부색이 다른 것에 따라 반응이 어떨지 조사하는 실험이었다.
실험의 결과는 많은 사람들의 예상 그대로였다. 백인 남성에게는 그렇게 친절할 수가 없던 사람들이 동남아 남성에게는 그렇게 불친절할 수 없었다. (물론, 실험의 한계와 오차는 존재한다)
아직도 피부색은 그 사람을 판단하는 유효한 기준이다.
하지만 「Skin 피부색에 감춰진 비밀」을 읽으며 저자의 피부색에 대한 주장을 읽으니 위와 같은 인식이 얼마나 멍청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사람을 피부색으로 분류하는 방법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피부색은 분명히 적응의 결과 이며, 특정 인구집단에서 피부색의 진화는 해당 지역의 환경 조건 -특히 자외선 양- 에 큰 영향을 받는다." (p.132)
피부색을 자외선의 양에 대한 적응의 결과로 분석하는 것은 처음 봤다. 그래서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실에서 일어나는 피부에 대한 질병(특히 피부암)과 피부시술에 대한 일부의 언급도 꽤 재미이었다.
"오늘날에는 먼 거리를 빠르게 이동할 수 있으며, 때로는 선조들의 고향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으로도 이주하기 때문에 피부가 새로운 지역에 적응하기가 어렵다. 피부가 환경 변화를 따라 잡을 시간이 없으며, 새로운 환경에 비해 피부가 너무 옅거나 짙은 경우가 많다." (p.154)
우리의 조상 인류는 그 이동과 적응의 기간이 무척 멀고 길었기 때문에 적응하는데 문제가 없었지만 지금은 몇 시간 만에 대륙을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의 피부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아주 오랜 시간 서서히 변화하고 진화하면서 선택되어진 피부색과 피부의 특징이 혼란을 겪게 되는 것이다.
"자외선 양이 많아서 짙은 색 피부가 중요한 보호 기능을 수행하는 적도 지역 국가들도 예외는 아니다." (p.217)
"보톡스의 사용은 영장류를 진화시킨 추진력들 간의 갈등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다." (p.221)
또한 많은 여성들이 화장을 많이 하게 되고 미용시술을 많이 하게 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얻어진 것들이 균형을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진화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선택되고 적응된 피부색임에도 더 옅은 색으로 화장하고 미용용품을 바르고 시술을 하게 됨으로 점점 피부의 균형이 깨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접근도 신선하고 재미있다.
너무 많이 맞아 제대로 웃지도 못하는 여자 연예인들을 TV에서 보면 얼마나 부자연스러운가? 로봇처럼 얼굴 근육을 움직이지 못하는 그녀들을 볼 때마다 나까지 불편해진다.
무엇이든 자연스러운 것이 좋은 것이다.
억지로 바꾸려 하면 탈이 난다.
피부색에 감춰진 비밀이 거창한 것은 아니었지만 가장 적합한 적응의 결과이고 나의 검은 피부도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적잘한 장치라는 사실에 아주 천천히 잘 적응해 주신 인류의 조상들에게 감사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