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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1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평점 :
「설국」이라는 제목을 보고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첫 번째는 홋카이도였다. ‘눈의 나라’ 설국. 눈 하면 일본에서는 당연히 홋카이도를 생각하기 마련인데, 아니었다. 이 책의 배경이 되는 니가타현은 지리상 동해와 인접해 있고 도쿄와의 거리도 멀지 않은 지역이었다. 두 번째는 [신 설국]이라는 영화를 찍은 배우 ‘유민’이었다. 한 동안 국내 연예계에서 활동하다 일본으로 돌아간 유난히 얼굴이 새하얗던 배우 ‘유민’이 생각났다.
소설의 배경이 된 니가타 현 유자와 지역은 4월 언저리까지 눈이 온다고 한다. 한국의 영동지방의 지리적 특성과 유사하다. 한껏 수증기를 담은 구름이 태백산맥의 준령에 부딪혀 눈을 쏟아 내듯 니가타 현 유자와 지역 또한 습기를 머금은 북풍이 높이 1963m의 다니카와 산에 부딪혀 많은 눈을 쏟아낸다고 한다.
「설국」은 시종일관 여러 가지 눈 덮인 이미지를 떠올리게 했다. 언젠가 드라마에서 영화에서 봤던 장면, 검은 밤바다만 빼놓고 사방이 눈으로 뒤덮인 한 겨울 매복진지에서 한 없이 떨어지던 함박눈을 봤던 장면 등.
작품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눈’이 형상화되고 개별 캐릭터에 투영되기도 하며 배경 및 캐릭터의 심리묘사를 대변한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p.7)
서양인의 마음을 한 방에 잡았다는 작품의 첫 문장이다. 새하얀 눈이 생각난다. 눈이 부시도록 하얀 눈 말이다.
눈은 반드시 녹는다.
아무리 추운 겨울에 내린 눈이라 해도 반드시 녹는다.
“창틀 안으로 보이는 잿빛 하늘에서 커다란 함박눈이 흐릿하게 이쪽으로 떠내려 온다. 어쩐지 고요하고 비현실적인 세계였다.” (p.129)
“먼 산들은 눈이 자욱할 때와 같은 부드러운 우윳빛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p.59)
작품에서 배경을 묘사하는 ‘눈’은 아름답고 황홀하게 그려진다. 때로는 몽환적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환상적이기도 하다. 한창 내리는 함박눈은 모든 것을 잊게 만든다. 한창 내리는 함박눈을 한참 바라보고 있다 보면 스멀스멀 걱정 반 투정 반이 기어오른다. ‘내일 출근 어쩌지? 체인을 감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버스 타고 갈까? 눈 녹으면 차 엉망일 텐데? 제기랄~!’
하지만 작품 속 ‘눈’은 녹지 않을 눈 같다. 그렇게 느껴진다. 눈이 녹은 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결코 녹을 것 같지 않은 ‘눈의 세계’다.
인간의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감정의 양태도 그러하다. 사랑, 연민, 신뢰. 변하고 바뀔 것을 확실하게 알고 있지만 적어도 나만은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나의 그 사람만은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렇게 되리라고 끊임없이 자기주문을 건다. 아무리 각박하고 감정이 메말라버린 현실이라 해도 인간이라면 기대고 싶은 감정의 원형이 있다. 찌든 일상을 잠시라도 잊게 만들어 주는 사랑, 연민, 신뢰. 그냥 기대고 싶은 것이다.
“시마무라는 공허한 벽에 부딪는 메아리와도 같은 고마코의 소리를, 자신의 가슴 밑바닥으로 눈이 내려 쌓이듯 듣고 있었다.” (p.134)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심리는 쉽게 녹아버리는 ‘눈’과 같다.
특히 시마무라는 흩날리는 눈처럼 공허하고 메마르다. 일정한 직업이 없이 무용관련 번역일을 하는 한량 시마무라는 이미 다 녹아버린 ‘눈’을 가지고 ‘눈’의 고장을 찾는다. 새로운 삶에의 의욕과 기대는 애초에 없었던 것 같다. 그냥 갔는데
‘눈’과 같은 고마코와 요코를 만난다.
작품의 중반부는 시마무라의 료칸 방에 무시로 찾아오는 고마코와의 대화로 이어진다. ‘눈’과 같은 대화다. ‘금세 녹아 버리는 눈’이다. 한 방에서 함께 대화를 나누지만 결코 점성이 있어 뭉쳐지는 찰진 눈처럼 감정을 함께 호흡하지 않는다.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점성 없는 싸리눈처럼 둘의 대화는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간다.
시마무라를 향한 고마코의 연정은 식지 않는다. 아무렇지도 않게 방문을 닫고 도쿄로 돌아가는 시마무라를 고마코는 매년 기다린다.
공허하고 메마른 시마무라는 요코에게 마음이 간다. 요코에게 ‘눈의 결정’과도 같은 순수하고 원초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고마코에게는 파혼한 유키오가 있고 유키오를 간호하다 게이샤 일을 하게 되었는데 유키오의 현재 애인은 요코라는 복잡 미묘한 구조는 별 문제 없다. 계속해서 고마코보다 요코에게 가는 자신의 마음을 제지하지 않는다.
원초적인 순수함을 지닌 요코는 도쿄로 돌아갈 때 자신을 꼭 데리고 가줄 것을 부탁한다. 시마무라는 흔들린다. 요코는 작품의 마지막까지 가장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으로 헌신한다. 큰 화재가 난 건물에서 노약자와 어린 아이를 구하려다 온 몸에 화상을 입게 된다. 여인(人)이라기 보다 여신(神)으로 정형화된다.
결국 시마무라의 ‘눈’은 모두 녹아 버렸다.
눈의 고장 ‘설국’에 처음 왔을 때에도 별다른 기대 없이 목적 없이 왔기에 일 년 만의 방문 후 돌아갈 때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었고 고마코와 요코 사이에서 중년의 메마르고 차가운 싸리눈같은 가슴을 불태우지도 못했다. 그냥 스스로 녹아버렸다.
그래도 시마무라는 별로 손해 날 것이 없어 보인다.
어차피 돌아갈 곳이 있기 때문이다.
고마코만이 눈으로 뒤덮인 눈의 고장 ‘설국’에서 ‘눈’처럼 흩날리는 시마무라를 기다릴 뿐이다.
사실, 내게 「설국」은 좀 어려웠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고 그 이름도 찬란한 노벨상까지 받은 작가니까 말이다. 나는 늘 노벨상을 받은 작품과는 맞지 않았었다. 읽고 나면 항상 ‘이게 도대체 왜 노벨상을 받았지?’ 했었다.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을 읽은 후 치밀었던 실망과 난해함을 되풀이 하고 싶지 않아 일본 소설은 오쿠다 히데오 정도만 읽고 있었다.
「설국」도 작품의 말미에 갑자기 불이 나고 요코가 사람들을 구해내는 장면이 끝내 이해되지 않았다. 흡사 국내 막장 드라마의 인물 간 구조 같은 얽히고설킨 관계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왜 굳이 화재가 나고 요코가 희생해야 했는지는 쉬이 설득되지 않는다.
뭐, 작품을 읽는 독자가 판단하고 이해하고 느끼기 나름이니 더 긴말을 필요 없다. 나는 그랬다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은 다르게 읽었으면 그만이다.
다만, 하루키와 겐자부로로 인해 등한시 했던 일본 소설이었는데, 「설국」이후 다른 고전들 위주로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개인적으로는 큰 계기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