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을 찾아서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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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역사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선생님이 ‘지방’이라는 말은 ‘중심’이라는 개념에 대한 비하를 전제한 인식이라 하셨다. 그래서 ‘지방’이 아니라 ‘지역’이라고 표현해야 되며, ‘중심’이라는 것의 기준은 명확하지 않다고 하셨다. 어린 나이였지만 ‘참~ 맞는 말이네~’했다.

 

“변방과 중심은 결코 공간적 의미가 아니다. 낡은 것에 대한 냉철한 각성과 그것으로부터의 과감한 결별이 변방성의 핵심이다.” (p.141)

 

하지만 신영복 선생의 「변방을 찾아서」의 변방은 ‘지역’도 ‘지방’도 아니다. 공간적 의미가 아님을 책의 처음과 마지막에 강하게 말한다.

‘낡은 것’

미련이 남아 버리지 못하고 있거나 완전히 익숙해져 떨쳐내지 못하고 있거나 가진 것을 지키려 내어 놓지 못하고 있거나 혹시나 나보다 더 가질까 양보하지 못하고 있는 모든 것들의 통칭이라 이해했다.

 

“변방을 낙후되고 소멸해 가는 주변부로서가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의 전위(前衛)로 읽어 냄으로써 변방의 의미를 역전시키는 일이 과제가 될 것이다.” (p.40)

 

‘변방’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가지는 낙후와 구림, 촌스러움으로 오히려 소멸하고 이겨내야 할 과제로 인식할 때가 많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중심부로 꼭대기로 들어가고 올라가려 아등바등하는 것일 테다.

 

하지만 신영복 선생은 ‘변방’을 또 다른 ‘창조’를 낳는 역동성으로 인식 한다. 이겨내고 떨쳐 버리는 것을 넘어선 ‘뒤집어엎음’이다. 전위(前衛)하는 것이다. 부정(否定)하여 새로운 세상으로 도약하는 것이다.

 

“내가 쓴 글씨가 있는 곳을 찾아가서 그 글씨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낸 글이다.” (p.7)

 

이 책 「변방을 찾아서」는 신영복 선생이 여러 가지 이유로 자신의 글씨를 써 준 곳을 찾아가 그 글씨를 쓴 연유와 글씨가 탄생한 배경, 상황을 설명하고 찾아간 곳의 모습을 살펴보는 글의 모음이다.

 

책에서 등장하는 곳의 지리적 특징이나 역사·정치적 배경을 차치하더라도 신영복 선생의 글은 모두 변방을 지향한다. 중앙·권력·정치를 지양하는 가치를 지닌다. 거기서 신영복 선생을 재발견 하는 것이다.

1995년 서울시에 기증한 [서울]이라는 작품이 이 가치를 가장 극명하게 대변한다고 생각하는데, 서울의 ‘서’자와 ‘울’자를 각각 북악산과 한강수로 형상화했다. 북안은 왕조의 권력을 상징하고 한수는 민초들의 애환을 상징하는 것으로 대비한 것이다.

 

 

“백성들의 애환은 뒷전이었고 그것이 탁상에 오른 경우에도 권력 투쟁의 방편에 불과했다. 그런 북악을 멀리 두고 한강수는 유유히 흘러간다. 서울시는 북악보다는 한강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권력의 중심이기보다는 시민들의 삶을 껴안고 흐르는 강물이어야 한다고 생각 한다.”

 

 

떠밀려 죽지 못해 존재하는 열등과 콤플렉스로 점철된 구질구질한 삶이 아니라 가치를 지향하는 변방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분명히 새로운 창조를 전제한 변방이다.

 

“인류사는 언제나 변방이 역사의 새로운 중심이 되어 왔다.” (p.25)

 

가만히 생각해보면 정말 맞는 말이다. 책에 소개된 신영복 선생의 말대로 근동에서 태동한 역사의 흐름이 그리스·로마로 합스부르크 왕가로 영국으로 미국으로 옮겨진 것과 중국의 왕조가 끊임없이 변방의 침입과 지배로 반복되는 변방의 역사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변방과 나의 변방에 대하 주목해야 함을 자명하다.

 

우리의 변방과 나의 변방에 대한 열등과 콤플렉스를 이겨내는 일이 새로운 창조와 역사를 낳은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구체적 답은 쉽게 찾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깊이 고민하고 성찰해야 할 문제다.

 

“놀라운 것은 변방의 작은 고인돌 하나로 남아 있는 이곳에 해마다 100만이 넘는 추모객이 찾아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봉하 묘역은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나는 해후의 자리이면서 변방이 창조 공간이 되는 도약의 자리였다.” (p.140)

 

봉하의 고 노무현 대통령 묘역은 참 볼품없다. 그가 살다 간 여정처럼 늘 그렇게 변방이다. 우뚝 선 동상도 아니고 위용을 자랑하는 거대한 비석도 아니고 걸을 수만 있으면 어린 아이라도 올라가 놀 수 있는 낮은 고인돌이다. 소멸과 탄생의 장(場)이다. 비통과 위로의 장(場)이다.

 

“수많은 국민이 오열했던 비극의 현장, 작은 고인돌 하나로 남은 묘역이 그 변방의 고독을 떨치고 새로운 시대의 ‘시작’으로 도약하고 있었다. 변방의 기적이 아닐 수 없다.” (p.133)

신영복 선생의 인식에 깊이 공감한다.

“우리의 현대사에 있어서 광주와 노무현(1946∼2009)은 시대를 가르는 아이콘이다. 누구도 광주의 비극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없듯이 누구도 노무현의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p.134)

 

사족을 달 수 없는 깊이 있는 성찰이다. 현대사에 지극한 관심이 있는 나의 흩어져 있어 갈피를 잡을 수 없던 사고를 한 데 뭉칠 수 있게 해준 성찰이다. 신영복 선생께 감사드린다.

사실 신영복 선생의 성찰까지 닿는 것이 쉽지 않다. 아직은 너무 멀다.

그래서 나는 ‘나의 변방’을 찾아보려 한다.

내가 미처 알지 못하고 있거나 애써 외면했거나 무시해 왔던, 그러나 새롭게 창조될 가능성이 농후한 ‘변방’을 찾아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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