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계곡 - 눈을 감고 길을 걷는 당신에게
유병률 지음 / 알투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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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자본주의’시대를 이렇게 간략하고 명확하게 그리고 무엇보다 이해하기 쉽게 정리한 책은 요 근래 보지 못했다. 최근 10여 년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월스트리트 시위’로 대변되는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뒤덮었다.

 그에 따라 자연적으로 그것에 관한 수많은 책이 쏟아졌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월스트리트 시위’가 일어난 근본 원인과 배경, 과정과 결과, 전망과 해결방안 등 쓰나미처럼 밀고 나왔다.

 

그런데 그런 일단의 책들과는 다르게 이 책 「죽음의 계곡」은 미국의 자본주의에 대한 태동과 시대의 경과에 따른 변천 과정을 스피디하게 다루고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미국식 자본주의가 예전처럼 위용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한 세기 정도를 끌고 온 힘의 원천과 힘의 이면을 살펴보는 일은 굉장히 의미 있는 과정이다.

미국의 자본주의가 세계 자본주의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준이 되고 잣대가 되어 왔다. 미국경제사에 관한 책을 읽어 이것을 파악하려면 엄청난 힘과 에너지가 필요할 텐데, 이 책을 보면 한 눈에 알 수 있다.

또한 이것을 현재 한국에서 [죽음의 계곡]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청춘을 향한 적용점으로 제시하고 있는 점도 흥미롭다.

 

 

자본주의 경제체제라는 것이 정치체제와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에 시대의 흐름에 따른 분석이 곧 정치체제 변화와 동일선상에 있다.

 

마치 자본주의가 생명력이 있는 존재처럼 표현하고 기술하고 있다. 서커스단의 코끼리처럼 야만적이다가 마당을 나온 암탉처럼 타협적이다가 지킬과 하이드의 극과 극으로 해체되었다가 모든 것을 짓이기는 악마의 맷돌로 은폐되었다.

기승전결은 물론이고 빼어난 멜로디의 명곡 한 곡을 듣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포드주의’로 대변되는 자본의 야만에서 루즈벨트의 시장개입과 암탉들을 보호하기 위한 울타리를 쳐준 자본의 타협을 경험하고 레이건 시대 하이에크의 자유주의 자본주의 체제로 인해 일방적으로 울타리를 허물어버리고 완전한 경쟁체제로 돌입해 보호·보장 따위가 완전히 해체되는 것을 경험한다. 그리고는 마지막에 이르러 정치권력과 매스미디어와 야합하여 완전히 말려 죽이는 ‘승자독식사회’를 만들어 버렸다.

 

영화 맘마미아(Mamma Mia)에 삽입된 아바(ABBA)의 [The Winner Takes It All]은 너무나 아름다운 멜로디의 곡이지만 제목만 놓고 보면 무시무시한 곡이다.

사랑도 돈도 권력도 결국 1%가 다 갖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자본주의의 황금기를 경험하고 미국인들이라면 누구나 정원이 딸린 2층 전원주택을 짓고 2대 정도의 자동차를 보유하며 주말에는 스포츠와 피크닉을 즐기며 사회보장제도의 확립으로 실업급여, 연금제도 등이 튼튼하게 울타리가 되어 주었었지만 모두 다 [죽음의 계곡] 저 심연으로 빠져 버렸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계곡 저 아래에서는 메아리도 돌아오지 않는다.

 

 

“정치권력은 야만을 통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울타리조차 다 허물어버렸습니다. 결국 모든 보상이 승자에게 집중됩니다.” (p.193)

“‘요람에서 무덤까지 정부와 기업이 책임진다’는 표어는 ‘어떻게 살든 그건 당신들 책임이다’로 바뀝니다.” (p.124)

“1980년대 이후 노동자들은 극심한 임금하락과 고용불안에 직면합니다. 사회의 복지프로그램은 해체되고, 노조가 보호해주던 평생직장은 이제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돌변합니다.” (p.165)

 

1980년대 이후 30년 간 지속되어 온 자본주의의 실상이다. 더 나아진 것이 없다. 오히려 1%에게 더욱 모든 것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경기침체는 언제 호전될지 알 수 없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파산 직전에 와 있다는 뉴스를 심심찮게 보고 있다. 중국으로 자본주의 체제가 재편된다고 해도 더 나아지리라는 보장도 없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권력은 이미 시장에 넘어갔다.”라는 표현이 더욱 현실화 되고 구체화 되고 있다.

정치권력마저도 견제할 수 없는 시장권력은 독불장군이다. 눈치 볼 존재가 없고 태클 걸 귀찮은 존재가 없는데 폭주하는 시장의 기관차를 막을 수 없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폭주 기관차로 올라타라고 한다. 저 귀퉁이에 찌그러져 허리 한번 못 펴고 석탄을 삽으로 퍼 날라도 어쨌든 기관차에 올라탔다는 것으로 자위하라고 겁박한다.

 

 

저자도 우리가 어쩌다 이 죽음의 계곡에서 허우적거리게 되었는지 추적하고 벗어나기 위해 제대로 갇힌 이유를 알아보자고 했지만 마땅한 대안은 내놓지 못했다.

하긴 무슨 마땅한 대안을 내놓을 수 있겠나.

워낙 실생활에서 구체화 되어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라 오히려 구체적인 대안보다는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합리적일 거라 생각한 것 같다.

 

“열린 플랫폼, 공생의 생태계에서는 창조적인 가치가 공공의 가치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p.236)

 

자본주의체제에서 돌연변이로 툭 튀어 나왔던 애플의 아이폰과 구글, 페이스북의 창조적인 가치를 옹호하며 잘 발전시키고 연구하면 대안이 될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아이디어로 세상을 바꿨기 때문이다.

첨예한 경쟁과 끝이 보이지 않는 물고 물리는 사다리에서 내려오기를 독려한다.

 

 

 

 

 

 

“귀신고래처럼 폼이 좀 안 나더라도 더덕더덕 나의 상처 남의 상처를 다 끌어모아 훈장처럼 붙이고, 또 내가 보살펴야 할 약한 존재들을 업고 다니며 키워주는 그런 따뜻한 생태계로 말입니다.” (p.222)

 

그리고 귀신고래의 생태처럼 공생과 공존의 가치를 피력한다.

이렇게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대안 제시가 짜증스럽지 않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도무지 어떤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대안을 마련할 수 있단 말인가. 지금 이 시점에서. 없다. 대안이. 정치권력과 언론권력은 물론 사법권력 조차 시장에 넘어간 마당에 누구에게 힘을 빌리고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나. 어림도 없는 소리다.

스스로 해야 한다. 우리끼리라도. 내가 너의 귀신고래가 되고 니가 나의 귀신고래가 되어야 한다. 서로 어깨를 걸고 이인삼각 경기하듯이 함께 박자를 맞춰 걸어야 한다.

‘그런 허황되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 할 시간에 토익·토플 공부 더 하겠다~!’ 하는 사람은 같이 안 하면 된다.

 

그러나 함께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연대해야 한다. 공생하고 공존해야 한다.

공감이 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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