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거짓말쟁이들 - 누가 왜 어떻게 거짓말을 하는가
이언 레슬리 지음, 김옥진 옮김 / 북로드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이 책 「타고난 거짓말쟁이들」은 거짓말쟁이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거짓말쟁이보다 ‘타고난’이라는 단어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인간에게서 삶의 거짓말을 빼앗으면 당신은 그에게서 행복을 빼앗는 것이다.” (p.331)

 

19세기 노르웨이 극작가인 헨리크 입센의 작품 [들오리]에 있는 대사인데,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는 이유를 가장 솔직하고 정직하며 깔끔하게 표현한 문장이라 생각한다.

이 책은 거짓말쟁이로 표현되는 인간행동의 유형이 실은 철저하게 작위적이고 특정 의도를 가지고 일어나는 행동 유형이 아님을 설명한다.

거짓말쟁이가 될 수밖에 없는 연유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이론과 실험을 통해 소개한다.

책에 등장하는 작화증, 미세표정, 인지부조화, 플라시보 효과 등이 가장 인상 깊었는데 이 중에서도 작화증에 대한 내용이 재미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으로 기억하는데 주말에 친구 집이 비어 동네 비디오가게에서 비디오테이프를 빌려와 보게 되었다. 처음 듣는 영화 제목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는데, 완전히 빠져들어 넋을 놓고 영화를 볼 수밖에 없었다.

책에서도 소개되는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The Usual Suspects)] 였다. ‘버벌’을 연기한 케빈 스페이시의 빼어난 연기가 일품이었고, 이후 반전 영화들이 속속 개봉되기 전까지 최고의 반전을 가진 영화였다.

 

 

 

 

‘버벌’이 떠들어대는 대로 용의자를 지목한 형사가 그를 풀어주고, 넋 놓고 커피를 마시다 실수로 떨어뜨린다. 컵이 바닥에 부딪혀 깨지면서 박살나고 영화 화면에 컵의 바닥에 새겨진 제조사 이름이 클로즈업 되는데, 바로 ‘코바야시’... ‘버벌’이 그렇게 떠들어 대던 사건의 전말을 조종한 변호사 이름이었다. 형사는 모두가 ‘버벌’이 꾸민 거젓말이라는 것을 취조실 벽에 붙은 수많은 종이를 보고 깨닫는다. ‘버벌’이 자백한 내용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과 지명들이 벽에 붙은 종이에 있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작화증(말짓기증, confabulation)의 압권이라 말할 수 있겠다.

사실, 인간은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작화증을 가지고 있다. 하루에도 꽤 많은 횟수의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상황을 모면하거나 개선하기 위해, 위기를 탈출하거나 매력을 발산하기 위해, 맘에 안 드는 소개팅 상대를 떼어내거나 맘에 드는 소개팅 상대를 현혹하기 위해 하루에도 수많은 ‘작화’들이 공중을 향해 떠다닌다.

 

 

“작위의 거짓말, 부작위의 거짓말, 감탄을 불러일으키려고 하는 거짓말, 신체적 혹은 감정적 상처로부터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하는 거짓말, 순전히 재미로 하는 거짓말” (p.28)

 

책에서도 밝히듯 종류를 굳이 구분하자면 수십 가지의 거짓말의 종류가 있을 것이다. 아니 그 이상일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거짓말이라 하면 부정적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고 부도덕한 것으로 인식되어 왔기 때문에 거짓말은 불편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말기 암 환자의 보호자를 대면한 주치의 입장에서, 아무리 공부를 해도 도통 성적이 오르지 않아 우울증에 빠진 고3 수험생을 대면한 담임교사의 입장에서, 하프타임 라커룸에서 많은 점수 차로 지고 있어 잔뜩 풀 죽은 선수들을 대면한 감독의 입장에서 인지부조화가 오고 미세표정이 계속 흔들리며 현실과는 동떨어진 소망적 보기를 하는 것이 부도덕하다고 할 수 있겠나?

아니다. 거짓말 또한 인간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조직의 관계, 조직과 조직의 관계를 삐걱거림 없이 조화롭게 돌아가도록 하는 윤활유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공적영역에 있는 자나 집단이 공공을 상대로 하는 거짓말은 처벌받아야 할 대상이다. 또한 사적영역에서도 악의적이고 목적이 선하지 않은 거짓말도 용납해서는 안 될 대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거짓말들도 알아채기가 쉽지 않다. 공적영역은 매스미디어의 힘으로 조작, 왜곡 해버리면 쉽게 알아차릴 수 없다.

사적영역도 끝내 철판을 깔고 잡아떼면 독심술이 있거나 미국드라마 [라이 투 미(Lie to me)] 칼 라이트만 박사처럼 거짓말을 하는 사람의 미세표정을 읽어내는 능력이 있지 않는 이상 쉽게 알아차릴 수 없음은 물론이다.

 

그냥 거짓말을 하는 인간이나 그 거짓말에 속는 인간이나 그 거짓말을 못 믿는 인간이나 그 거짓말을 캐내려는 인간이나 그렇게 [타고났다]는 것이다.

 

[라이 투 미(Lie to me)]에서 칼 라이트만 박사는 ‘사람은 대화도중 10분에 3회 이상 거짓말을 한다’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쉴 틈 없이 거짓말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고 봐야 한다.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있는 것 같지만 ‘내가 어느 틈에 끼어들지~! 내가 저 놈보다 더 웃겨야 하는데, 내가 더 멋있어야 하는데, 내가 더 힘들어야 하는데 등’ 쉴 틈이 없다.

그렇다면 그냥 ‘인간은 원래 그렇게 [타고났다]’고 인정하고 기타 다른 차원의 판단은 보류하는 것이 속편할 일이다.

 

 

 

군 생활을 이야기하는 것 중의 대부분은 거짓말이라고 한다. 듣다보니 ‘아씨~! 나도 고생했는데, 나도 추억거리가 많은데’ 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살을 덧붙이고 최대한 격정적인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런 얘기 듣는다고 딱히 피해입고 내 감정 상하는 게 아니라면 ‘타고난 거짓말쟁이들’이 하는 ‘타고난 거짓말’들은 들어주고 속아줄 만하다.

 

왜~?? 나도 똑같은 ‘타고난 거짓말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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