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날들
성석제 지음 / 강 / 2004년 12월
평점 :
품절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대학 3학년 때 부터이다. 고(故) 리영희 교수님의 「반세기의 신화」는 새로운 세상을 열어 주었다.

이전까지 세계문학류와 기독교서적만을 위주로 읽던 독서생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후로 줄곧 사회과학 서적만 찾아 읽었다.

 

세상이 얼마나 부조리한 것인지, 한국의 현대사가 얼마나 창피할 정도로 엉망진창인지 알게 되었다.

그런데 한 가지 부작용이 있었다.

그런 사회과학 서적을 읽기 전에는 학과와 기독동아리에서 밝고 유머 있는 사람으로 통했는데 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한 후로는 점점 웃음을 잃어갔다.

그도 그럴 것이 웃을 일이 없었다.

학과 활동과 동아리 활동에서 큰 의미를 찾지 못했다. 이렇게까지 개판인 사회를 살면서 그저 취직걱정 하고 기독 동아리에 가서는 열심히 기도하고 하는 일 따위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부정적이고 냉소적인 인간으로 바뀌어갔다.

대학1학년 때 풍물패를 하며 잠시나마 운동권에 몸담기도 했으나 학기 초 열렸던 대동제에 단대 깃발을 들고 참석한 후로 ‘이런 80년대 운동 방식을 그대로 하다간 아무것도 안되겠다.’ 싶었다. 그 큰 노천강당에서 열린 대동제에 참석한 학생수가 200명도 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길로 운동권(?)에서 몸을 뺐다.

그리고 그 때 선배들이 들려주던 얘기와 책 내용이 구태의연했다.

차라리 혼자서 찾아 읽는 편이 나았다.

 

 

그런 나를 걱정해 주던 친구 하나가 성석제의 책을 선물해 줬다. 그 책은「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였다.

너무 재미있었다.

사회과학 서적을 파고들고 나서부터는 문학류의 서적은 손도 대지 않았었다.

그런데 재미있었다.

딱딱하고 무거운 예의 사회과학 책들과는 달랐다.

 

시대의 고민을 혼자서 짊어진 척하며 두껍고 어려운 책들에 코를 박아온 날들에서 해방된 느낌이었다. 한번 손을 댄 뒤로는 누가 뭐라 그럴 것도 아닌데 ‘맑스니 촘스키니 리영희니 읽다가 소설 읽고 있으면... 누가 보면... 뭐라 할까....’ 혼자 생쑈를 한 것이었다. 누가 상을 준 것도 아닌데 혼자 잘난 맛이었다.

여튼 성석제의 책은 단비 같았다.

 

이후로 「성석제의 이야기 박물지」, 「유쾌한 발견 즐겁게 춤을 추다가」읽었다. 성석제 특유의 익살과 위트, 시골에 사는 사촌 형이나 막내 삼촌이 들려주는 이야기 같았다.

 

 

이번에 읽은 「아름다운 날들」또한 그랬다. 주인공 원두가 겪는 성장통을 그린 성장소설이라 봐도 무방할 듯하다. 한 눈에 그려지는 시골 동네와 집들, 너른 들녘을 뛰어다니는 시골 아이들의 모습이 정겹다. 실제로 내가 어린 시절 겪었고 보았던 시골 할아버지 댁에서의 경험들이 그대로 중첩되었다.

 

이전 책들처럼 히죽히죽 거릴 정도의 웃음은 없었지만 남동생이 의경 생활을 해 면회하러 가본 성석제의 고향 상주의 고즈넉한 모습 그대로였다. 당시에도 상주는 시였는데 시내 전체에 신호등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 인상 깊었었다. 동생 말로는 참 조용하고 범죄가 자주 일어나지 않는 고장이라 했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기타리는 내 시골 할아버지 댁에 큰 전축을 틀어 놓고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에 맞춰 춤을 가르쳐 주던 막내 삼촌 같고,

동네 바보 진용이는 할아버지 동네 산 밑 감나무 집에 살았던 지금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형 같다.

그도 진용이처럼 나와 친구들보다 두세 살 위였으나 약간 모자란 탓에 늘 우리의 놀림감이 되기도 했지만 물놀이 가고 미꾸라지 잡으러 가고 가을이면 뒷산에 올라 밤 주워 먹고 겨울이며 썰매 타던 추억을 함께 한 형이었다.

융통성 없는 당숙 어른은 할아버지 동네 이장님이었던 큰 아버지 같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정겨웠다.

지금은 모습이 많이 바뀐 할아버지 댁과 그 동네 사람들이 생각났다. 그들이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소설 속 진용이가 축산업으로 큰 부자가 되어 고향땅에서 떵떵 거리며 살고 있는 것처럼 내 어린 시절 추억 속 그들도 그들의 곳에서 잘 살고 있었으면 좋겠다.

 

소설 속 내용들이 작가 성석제의 어린 시절을 재구성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내 과거의 행복하고 아름다웠던 날들을 추억하게 해주어 고마웠다.

 

 

“원두는 고민과 고민의 새끼와 손자와 증손자를 데리고 결국은 기타리를 찾아갔습니다.” (p.62)

 

오후 내내 물놀이를 하고 난 뒤 시골집에 뛰어 들어가면 금세 부엌에서 고슬고슬 맛난 비빔밤을 해주시고, 뒷산으로 저 멀리 개울로 데리고 다니시며 나무이름, 풀이름, 고기 이름 가르쳐 주시고 마이클 잭슨의 춤을 기가 막히게 잘 추시던

 

 

지금은 고인이 되신 나의 ‘기타리’, 내 막내삼촌이 서럽도록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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