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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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은 아름다운가? 결코 그렇지 않다. 인간의 삶은 영속성을 구가할 만큼 가치가 있는가? 그것도 잘 모르겠다. 역사로서의 인간의 삶은 가변하지만 소멸하지 않는다. 끈질기게 맥을 잇고 고꾸라지면서도 바통을 넘긴다.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 정말이지 산뜻하고 깨끗하고 밝고 명랑한 불신이 인간의 삶에는 충만한 것으로 느껴집니다.” (p.27)

 

“너는 너 자신의 끔찍함, 기괴함, 악랄함, 능청맞음, 요괴성을 알아라!” (p.93)

 

명확하고 필수불가결한 담보가 보장되지 않는 한 구차한 존재 증명에 다름 아니다.

‘실격’을 당하고도 여전히 필드(경기장) 위에서 플레이를 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에게 ‘실격’을 줄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신마저도 그럴 수 없다. 그것은 신의 영역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을 드디어 읽었다. 너무 읽고 싶었던 책이라 진작에 사두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책은 기대 이상이다. 다자이 오사무의 요설체 또한 처음 접했지만 스피디하고 구성을 더욱 옹골지게 한다. 문장이 시원시원하고 멋이 있다. 한국의 작가 중에서는 김훈의 글과 문장이 가장 멋있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읽어본 일본 작가 중에서는 다자이 오사무가 최고다.

 

 

작품 전체가 자조적 고백이고 차갑고 습하며 어둡지만 웃음이 나고 소설 속 주인공 요조를 만나는 모든 여인들이 그에게 빠져들었던 것처럼 다자이의 글에 빠져든다.

 

완전한 인격이 완전히 실격되는 과정을 그만의 방식으로 풀어낸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서 오는 극지대의 크레바스처럼 끝을 알 수 없는 절망이 인격을 완전히 사로잡는다. 그래서 아무리 빠져나오려 해도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완전한 무력을 맛본다. 세계대전의 패배 후 겪었던 일본지성의 속살이다. 부당한 방법으로 대지주가 된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나 남들이 누리지 못한 삶을 산 것에 대한 자책과 마르크스주의의 대표 선수였지만 사상전향을 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작품에 가득하다.

 

현실의 괴로움과 나 자신에 대한 절망을 못내 감추고자 소설 속 요조는 ‘익살’이라는 무기를 쓴다. 상대방보다 먼저 내가 무장해제를 하는 것이다. 다가오기 전 먼저 엎드려 뒤꽁무니를 살살 흔드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는 나에게 웃음을 던진다. 그것이 비웃음인지 쓴웃음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늘 이러한 ‘익살’로 위기를 탈출하고 갈등상황을 만들지 않지만 학교의 어리바리한 친구 ‘다케우치’와 자살방조죄로 심문하던 ‘검사’ 이 두명에게 들키고 만다.

 

“일부러 그런 거지!!”

내가 다 발가벗겨지는 것 같았다. 누구나 숨기고 싶고 감추고 싶은 속내가 있다. 속살이 있다. 그래서 먼저 내가 담을 쌓는다. 꽁꽁 동여맨다. 나만의 세계에 빠진다. 그것을 지켜내려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기별도 없이 들켰을 때 오는 그 황당함과 부끄러움과 수치스러움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인간은 누구나 ‘실격’당하기를 원치 않는다.

 

“저는 소위 장난꾸러기로 보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존경받는 걸 피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p.25)

 

요조의 주위를 뱅뱅 돌며 끝까지 요조와 함께 한 호리키는 친구라기보다는 차라리 ‘내 양심’이다. 때로는 준엄하게 때로는 약 올리며 간섭한다. 때로는 통제하려 한다. 아무리 ‘실격된 인간’이지만 최소한의 가치를 지키게끔 하는 도구다. 그래서 불편하고 짜증나지만 인간은 호리키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요 색마” (p.107)

“색마! 있나?” (p.91)

부지불식간에 찾아와 뒤통수를 후려친다.

 

“인간 실격. 이제 저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p.131)

 

 

 

참을 수 없는 존재의 황망함. 견딜 수 없는 사유의 무례. 느릿느릿 두꺼비처럼 밑바닥에 달라붙은 실격된 자아.

사실 소설 속 주인공인 요조도 그렇고 다자이 오사무도 왜 그렇게 자살을 하려 했는지 완전히 이해되지 않았다. 책의 해설을 읽어보고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봐도 잘 모르겠다. 한국전쟁을 겪고 절대적 궁핍에서 벗어난 세대의 심리를 판단하고 재단할 수 없듯이 세계대전 패배의 충격을 겪은 일본의 세대또한 그러하다. 다자이가 겪었을 무게와 절망을 짐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차라리 나에게 ‘실격’을 선고하는 것으로 영위되던 비루한 삶에 마침표를 선명하게 찍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함께 수록된 짧은 작품 직소(直訴) 또한 놀라웠다.

가룟유다의 관점에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을 바라보는 것이 신선했다. 다자이 자신이 정신병동에 입원해 있으며 신약성서를 깊이 읽었다고 하는데 기독교에 대한 다자이의 인식을 분명히 살필 수 있다.

예수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팔아버리는 가룟유다와 실격된 인간을 회복하는 유일한 해결책으로 자살을 택한 선택의 단면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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