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디자인 산책 디자인 산책 시리즈 2
김지원 지음 / 나무수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책 제목이 「런던 디자인 산책」이라 디자인 쪽 전문용어가 많이 나올까봐 걱정을 했지만 전혀 어렵지 않고 재미있게 책을 읽었다.

저자가 런던에 체류하던 때 찍었던 사진과 경험했던 일들을 바탕으로 쓴 이 책은 런던과 디자인쪽 보다 산책 쪽에 더 무게가 실린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그래서 산책하듯이 읽기에 참 좋은 책이다.

 

물론, 나를 비롯한 많은 한국 사람들에게 ‘유럽’은 동경의 대상이고 그 중에서도 런던은 많은 이들이 꼭 가고 싶어 하는 곳 중 하나이다.

 

평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축구경기를 애청하는 나로서는 정말 멋있고 간지나는 프리미어리그의 축구 경기장을 꼭 가보고 싶다.

 

 

 

아내는 셜록 홈즈의 광팬이라 런던의 베이커가에 위치한 셜록홈즈 박물관을 꼭 가보고 싶어 한다.

재작년 여행 시에는 체코와 독일의 일부 도시만 다녀왔던 터라 더욱 영국과 런던에 대한 갈증이 크다.

이 책은 우리 부부의 그러한 갈증을 다소나마 해소해주기에 충분했다.

 

“기계 문명으로 흉내 낼 수 없는, 오랫동안 축적된 시간의 흔적이다.” (p.67)

“눈만 뜨면 새로운 것이 등장하고 옛것은 한순간에 소멸되는 우리 사회와 달리 런던은 오래된 사물과 옛 사람들의 철학에 대한 경의를 표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실험에도 열려 있다.” (p.342)

 

 

산업문명의 발상지이기도 한 영국의 런던이지만 여전히 옛 것에 대한 경의를 잃지 않고 그것을 온전히 보존하고 발전시켜 문화의 역량을 키워낸 그들의 노력을 책의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국 또한 산업화의 격랑을 겪었다. 하지만 런던처럼 옛 것에 대한 경의를 표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허물고 부숴 신작로를 닦고 보기 흉한 초가집과 기와집을 헐어 반듯한 양옥집을 바둑판처럼 만들었다.

 

수많은 외침을 겪으며 문화재에 대한 파괴가 심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이후 그것을 조금이라도 더 잘 보존하고 살려내기 위한 노력은 미미했다. 잘 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잘 살아 보세~’라는 노래를 부르며 몸통만 키울 뿐이었다.

뒤늦게 옛 것에 대한 가치와 소중함을 되찾으려 노력한들 이미 놓쳐버린 시간과 기회는 되돌릴 수 없다.

 

지난 주 몽골의 지인들과 함께 경주 여행을 다녀왔다. 어릴 때 갔던 불국사를 정말 오랜만에 갔는데 다보탑의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여러 번 보수를 거친 탓인지 자연미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최근에 있었던 보수가 도대체 어땠기에 저 정도인지 깜짝 놀랐다.

 

 

 

 

 

“박물관은 간다고? 그냥 길거리로 내보내. 그 자체가 런던의 디자인 역사야. 봐, 지금 밟고 서 있는 이 건물! 건립시기가 언제인지 아니? 런던이 한 해에 문화유산을 복원하고 보존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예산을 쓰고 있는지 아냐고. 거리만 걸으면 몇 백 년 된 집들과 건축물들은 흔히 볼 수 있어. 런던의 디자인을 이러쿵저러쿵 설명하는 게 다 무슨 소용이야?”

(p.129)

 

 

그에 비해 런던은 길거리에 나뒹구는 것들이 모두 문화유산이라 큰소리치는 런던시민이 있을 정도다. 용도 폐기된 화력발전소를 박물관으로 꾸미고 수백 년 된 우체통을 소중히 유지하며 특정집단만이 향유하는 사치스런 디자인이 아닌 대중이 공감하고 공유하는 효용성의 측면에 집중한 여러 시설물과 디자이너들의 제품과 상품들이 즐비하다.

참 부러웠다.

한국에서도 사용 중인 지하철 노선도의 도식의 최초가 런던이라는 사실 또한 새롭게 알게 되었다

 

 

 

 

“세세한 거리나 지형을 표현한 기존의 지도가 지하철이라는 공간에 적합하지 않다고 느낀 해리 벡은 직선과 사선의 기하학적인 형태로 단순하게 표현한 노선도를 만들었다.” (p.155)

 

100년이나 지난 런던지하철 표준체계가 전 세계의 표준이 되었고 지금도 여행자들은 낯선 외국의 도시를 방문하여 이 체계의 지하철 노선도를 보며 자신들의 여행지를 쉽고 편리하게 찾아다닐 수 있다.

 

 

“지속 가능한 디자인...” (p.43)

 

“자본주의 경제 원리에 따른 과잉생산과 디자인의 지나친 물질화로 제품 수명이 단축되는 현상은 장난감 산업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p.49)

 

지속 가능한 디자인, 자본주의 경제에서도 영속할 수 있는 대중적인 디자인에 대한 고민이 런던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아직도 수많은 곳의 산과 들이 파헤쳐져 도로가 만들어지고 멀쩡한 강에 보를 만들어 생태계를 파괴하는 한국의 현실이 답답하다.

디자인이라는 것이 대중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대중과 밀착한 현실의 효용을 중시하는 런던의 디자이너들처럼 한국에도 그런 추세가 도입되었으면 좋겠다.

‘와~’하며 책의 사진들을 보고 나면 배가 아팠다. 한국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현실의 내용들이 즐비하기 때문이었다.

 

책을 쓴 김지원씨의 필력이 런던의 디자인을 더욱 도드라지게 했다고 생각한다. 디자인을 전공하신 분이지만 인문학적인 소양도 굉장한 수준으로 가지고 계신 듯하다. 쉬운 단어와 문장이지만 생각을 요했다. 세대를 아우르기에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김지원씨의 다른 책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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