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 - “이게 사는 건가” 싶을 때 힘이 되는 생각들
엄기호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 가며 뒤통수를 후려 쳐줄 ‘선배’와 ‘스승’이 없다는 것이 서글프다. 적어도 대학시절때까지는 그런 ‘선배’와 ‘스승’이 있었다. 책에서도 있었고 과에서도 동아리에서도 심지어 교회에서도 있었다.

그런데 삼십 줄을 넘어선 지금 그런 ‘선배’와 ‘스승’이 없다. 마냥 내가 읽고 보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쓰고, 또 이것을 무한반복하며 꾸역꾸역 살아내고 있을 뿐이다.

 

문익환 목사, 리영희 교수, 노무현 대통령

이 세 분은 내가 인생의 멘토요, 스승으로 삼았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고인이 되셨다.

문익환 목사님이야 내가 철들기 전에 돌아가셨지만 리영희 교수님과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은 두 분의 부재에서 오는 슬픔보다 그 부재 이후 내가 겪을 혼란함과 외로움에서 오는 슬픔이 더욱 컸다.

 

더 이상 ‘내 인생에서 더 이상 선생은 없겠구나’ 라는 생각으로 밤을 새우던 그 새벽녘이 얼마나 서글프고 절망스러웠는지 모른다.

 

아니면 내가 이제는 ‘애새끼’에서 ‘꼰대’로의 진입이 기정사실화 되었다는 반증인 줄도 모르겠다.

 

“꼰대는 애새끼들이 계속 애새끼로 남아 있어야 꼰대로서 자신의 존재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애새끼들도 마찬가지다. 꼰대가 계속 꼰대로 남아 있어야 자신이 성장하지 않아도 될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가르치는 데 관심이 없고 배우는 데 냉소적인 사회에 경험 따위가 들어설 여지는 없다. 경험은 죽었다.” (p.106)

 

더 이상 배우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아니 솔직히 말해서 그런 것은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안 되는 뜬 구름 잡는 이야기이고 오늘 하루 밥벌이에 기를 쓰고 어쩌든지 밥벌이에 꼭 붙어있으려는 현실적 구차함이 더 큰 이유일 것이다.

 

“더 이상 보호해야 할 사회 따위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알던, 적어도 나를 보호해주리라고 여겼던 사회는 오히려 나를 배제하고 추방하겠다고 위협한다. 법은 사회의 규범이나 기준이 아니라 가진 자들이 그들의 이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자원이 되어버렸다.” (p.19)

 

책을 읽고 투표를 하고 욕지거리를 내뱉어도 결국은 단 하나도 바꿀 수 없는 견고한 여리고성 같은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더욱 힘들다.

그래서 인생의 ‘선배’와 ‘스승’조차 없고, 누구하나 손 내밀어주는 사람 없는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사회나 국가조차도 내 편이 아니라면 나는 도대체 누구와 편을 먹어야 하나.

 

이 책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는 제목만으로 코끝이 찌릿하다. 대학시절 내 어깨를 토닥이며 격려해 준 그 형의 말처럼. 혼돈의 20대를 열정으로 채워준 문 목사님, 리 교수님, 노 대통령의 말과 글처럼 가슴에 와 닿는다. 정말이다.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다’라는 하나의 문장이 그대로 가슴에 새겨진다.

“어떻게 해라”, “이렇게 해라”, “너의 무엇무엇이 잘못되었으니 고쳐라” 따위와는 차원이 다르다.

 

‘니가 잘못 산 게 아니야’

영화 『굿 윌 헌팅』에서 무시무시한 죄책감으로 자신을 괴롭히던 윌 헌팅(맷 데이먼)에게 상담가이자 스승인 숀 맥과이어(로빈 윌리엄스)가 얘기한다.

 

It's not your fault

It's not your fault

 

열 번을 반복하며 제자의 곪아버린 상처를 만진다. 그리고 그 상처를 함께 치유한다.

 

맞다. 우리가 잘못 한 게 아니다. 잘못 산 것은 더더욱 아니다.

 

“공감은 삶을 견뎌나가는 가장 큰 힘이다. 사회가 개인의 삶을 보호해주지 못하고 더 이상 사람들이 사회로부터 아무것도 기대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허무함을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힘은 ‘너도 나도 같이 상처받았다’라는 공감이다.” (p.125)

 

더 이상 ‘선배’와 ‘스승’이 없을 것이라는 비관을 거둬버려야겠다. 내가 누군가의 ‘선배·스승’은 아니라도 ‘친구’는 되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말미에 소개하는 ‘두더지가 되자’라는 격려와 독려에 힘을 보태고 싶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동료와 아지트다. 언제든 내 삶을 응원해주는 동료와 함께 모여 신나게 욕이건 공부건 세상 이야기건 할 수 있는 아지트만 있다면 우리는 이게 사는 건가 하는 질문을 품게 만드는 시대를 견디며 언젠가 도래할 ‘사막이 두더지 세상이 될 날’을 기다릴 수 있다.” (p.274)

 

최소한 내게는 아지트에 모여 신나게 욕하고 떠들며 웃어젖힐 수 있는 친구가 두 명이나 있다. 이미 그것으로 충분하다. 내가 모르고 있었거나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뿐이다.

철옹성 같았던 아랍문화권의 나라들의 혁명과 세계의 대장노릇을 하던 월스트리트에 대한 시위들도 결국 ‘두서너 마리의 두더지’에서 시작되었다고 책은 소개한다.

 

맞다. 그놈들로 충분하다. 이미.

그리고 나 또한 누군가의 절실한 ‘선배’와 ‘스승’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기도만 하고 있지 않고 준비하고 연습하고 훈련하며 때를 기다린다.

 

언젠가 그 혹은 그녀에게 해 줄

It's not your fault가

내 인생을 고스란히 담아낸 한 마디가 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아지트를 공고히 하고 동료를 늘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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