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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하나가 되어 죽을힘을 다해 싸웠습니다
김종대 지음 / 가디언 / 2022년 4월
평점 :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 지 2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문제가 많아 보인다. 공직을 수행하는 자리를 공적인 시스템이 아닌 사적인 관계 여하에 따라 채용한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젊은이들에게는 박탈감, 나와 같은 세대에게는 허탈감을 안겨 주고 있다. 이런 즈음 진정한 공무원이었던 이순신에 관한 책을 읽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었다. 나는 이순신은 참다운 공무원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 「이순신, 하나가 되어 죽을힘을 다해 싸웠습니다」에 소개하는 이순신은 참다운 공무원이다. 사적 욕심과 욕망보다 생애 내내 공적 책임과 사명에 헌신했다. 공직을 수행하는 공무원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주목해보고자 한다.
사적 욕심보다 공적 사명을 중시한 공무원
이순신은 늦은 나이에 공무에 들어섰다. 조선 중기 4대 사화는 붕당과 정쟁을 낳았고 그것은 조선 후기까지 이어졌다. 공직을 수행하는 관료들은 편을 나눠 다투는 것에 혈안이었고, 백성들을 쥐어짜 제 배를 채우기에 바빴다. 당연히 공적인 시스템은 엉망이었고, “분경(음성적 뇌물 상납)을 하지 않은 일개 군관” (p.58)인 이순신이 종4품 무관 벼슬로 임명되는 것이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다고 한다. 늦은 나이에 벼슬로 임명된 이순신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벼슬길에 오르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이 음성적 뇌물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평소 이순신과 가까웠던 류성룡은 같은 집안 출신인 율곡을 만나보라 조언하지만, 이순신은 “그가 인사 책임자인 전상의 자리에 있는 동안은 옳지 못한 일”(p.62)이라며 거절한다.
이런 이순신은 모습은 초임지였던 함경도 산골 ‘갑산’에서나 순국하시기 전 통제사의 자리에서나 한결같았다. 책의 저자는 초인이라는 표현으로 공직을 대하는 이순신을 설명한다.
잠깐이지만 4년 정도 공직생활을 한 바 있는 나로서도 이런 이순신의 모습에 ‘초인’이라는 표현을 할 수밖에 없다. 초급장교였던 내 눈에 비친 선배 장교들의 모습은 공직을 수행하는 ‘참다운 공무원’의 모습과는 달랐다. 책에서 그려낸 전시상황과는 직접 비교하기 힘들지만, 지금은 휴전 상태다. 종전이 아니므로 언제든지 다시 임진년의 위험이 닥칠 수 있다. 하지만 전쟁은커녕 좀 더 편한 자리, 좀 더 진급에 수월한 보직에 가기 위해 혈안인 그들의 모습은 제복을 입고 있었지만 ‘참다운 공무원’은 아니었다.
공적인 임무에 책임과 최선을 다한 공무원
이순신의 공직생활은 한 번도 평탄하지 않았다. 갈래가 나뉘어 아귀다툼을 벌이던 조정은 조선의 멸망을 온몸으로 막아낸 이순신을 유배 보내고 백의종군시켰다. “중신들의 권유를 뿌리치고 4월 30일 새벽, 한양을 떠나 명나라를 향해 도망” (p.120)간 임금을 대신해 다 쓰러져가는 조선의 수군을 일으켜 왜군을 격퇴한 이순신을 알아주는 이가 별로 없었다. 외롭고 고된 자리에서도 이순신은 결코 탓을 하지 않았다. “자신을 죽이려고 한 선조와 조정 대신들에 대한 원망은 없었다. 그의 머릿속은 오직 국토를 지키고 백성을 구해야 한다는 충의의 일념뿐” (p.319)이었다고 한다.
4년 가까이 이어진 명나라와 왜국 간의 강화협상 기간에도 이순신은 쉬지 않고 길목이자 거점인 견내량을 지켰다. 하지만 임금은 원균과 조정의 일부 세력의 음해와 음모만을 받아들였다. 도망가기 바빴던 군주가 이겨낼 힘도 이해할 지식도 없으면서 이순신의 거점방어 전략을 비난했다. 이순신의 공직 전반이 그러했다. 아무리 초인적인 공무원이었지만, 그도 사람이다. 그의 고됨과 외로움, 답답함은 ‘난중일기’ 곳곳에 “답답하다, 민망하다.”라는 서술어로 표현된다.
하지만 ‘참다운 공무원’인 이순신은 포기하거나 좌절하고 있지 않았다. 임금도 조정이 알아주고 지원해주지 않더라도 본인의 임무에 책임과 최선을 다한다. “아직도 12척의 배가 있으니 죽을힘을 다해 막아 싸우면 할 수 있습니다.” (p.324)라는 장계를 올리고, 다시 흩어진 수군을 정비하여 전장에 나갔다. 임진년 태풍같이 쳐들어온 왜군을 보고 지레 겁을 먹고 달아난 장수와 고을의 현감이 수두룩했다. 임금조차 나라와 백성을 버리고 도망갔으니, 그들을 탓할 수 없다. 이순신은 달랐다. 단 한 번도 도망가거나 숨지 않았다. 머뭇거리는 부하 장수들을 독려하기 위해 대장선에 올라 최전방으로 돌진했다. 전투에서는 항상 선봉에 있었다. 전투가 끝나고 나서도 그의 공직은 멈추지 않았다. 앞서 언급한바 명나라와 왜국 간의 지루한 강화협상 중에도 전열을 흐트러지지 않게 늘 준비했고, 왜군이 서해로 진출하지 못하도록 거점을 지키고 있었다.
군주나 조정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그는 자신의 공적인 위치에서 맡은 바 책임을 다했다. 최선을 다했다.
나의 짧은 공직생활에서 책임과 최선을 다했는지 돌아본다. 소대를 지휘하는 지휘관으로 사단의 작전처에 근무하는 장교였지만 장기복무를 희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눈치 볼 것 없고,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렇지 못했다. 수많은 상사와 상황들이 핑계로 남았다. 만약, 그 사람이 없었다면, 그 상황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군 생활을 할 수 있었을까? 지금의 내 나이면 한 대대를 책임지는 대대장을 하고 있을 텐데, 나는 공적인 임무에 책임과 최선을 다하고 있을 것인가. ‘그렇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다. 또 다른 핑계와 상황을 찾지는 않을까 싶다.
나라와 국민을 사랑한 공무원
이순신은 나라와 국민을 사랑한 공무원이었다. 바다 위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육지로 도망치는 왜군을 따라가 섬멸하지 않았다. “막다른 궁지에 빠진 적들을 너무 몰아세우다가는 도리어 산골에 피난해 있는 우리 백성들에게 해를 입힐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p.173) 라고 했다. 적의 머리를 하나라도 더 베어 전공을 부풀리려 했던 원균 같은 이와는 차원이 다른 공무원이다. 승첩보고서에 대한 조정의 장계에 부하의 표창이 누락되어 있자 “따로 공문을 보내어 기어이 입부 이순신을 표창하도록 상신했다.” (p.187) 라고 한다. 저자도 밝히듯 목숨을 건 일이었다. 조정에 자신을 음해하려고 혈안이 되어있는 자들이 수두룩하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부하를 위해 공문을 보낸다. 이것은 그가 부하, 백성, 가족을 포함한 사람을 향한 사랑이 지극했음의 방증이다.
난중일기 곳곳에 홀로 계신 노모를 향한 애끓는 마음이 가득하다. 추위에 지쳐 잠든 초병에게 자신의 옷을 덮어준 일화도 있다. 조정의 음해와 음모, 임금의 무능과 편향된 처세에도 굴하지 않았다. 원망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았다.
임금과 조정은 몰랐지만, 백성들은 잘 알고 있었다. 자신들을 지켜준 이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았다. 그래서 백의종군 되어 유배지로 향하는 이순신을 향해 술을 올리고 예를 갖추었다.
“이순신을 만난 피난민들이 이순신과 헤어지려 할 때, 그들 가운데에는 자신들의 처자에게 ‘우리 사또가 다시 왔다. 이제는 안 죽을 것이다. 천천히 찾아오너라. 나는 먼저 사또를 따라간다.’는 말을 남기고 분연히 따라나서는 장정이 한둘이 아니었다.” (p.323)고 한다. 자신들을 지켜준 이를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의 자세다. 이순신이 돌아왔다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삶을 내던질 수 있었던 것이다.
몰려든 수많은 피난민이 살아갈 수 있도록 섬을 내어주고 함께 전투에 참여했다 전사한 부하들의 제사는 절대 지나치지 않고 올렸다. 나라와 국민을 사랑하는 참다운 공무원의 모습이다.
이순신은 참다운 공무원이었다. 사적 욕심과 출세의 욕망보다 공적 사명을 중시했고, 순국하기 전까지 숱한 음해와 음모로 공격받았지만 맡은 공적 임무에는 늘 책임과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쓰러져가는 나라와 백성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모든 공무원이 이순신과 같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민원인을 대하는 공무원이 무조건 친절해야 한다는 것도 잘못된 기준이다. 다만, 적어도 ‘나랏일’을 한다는 ‘공무원’이라면, 특히 고위 공무원이라면 어느 정도의 사명감과 국가와 국민을 향한 책임감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적절한 곳에 인재가 등용되고 필요한 정책이 실행되며 억울한 일을 겪는 국민이 줄어들 것이다.
며칠 전 개봉한 <한산>이라는 영화가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이순신을 좋아할 것이다. 그의 생애와 그가 남긴 역사를 칭송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그치지 않기를 희망한다. 비판하고 비난하며 조롱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쉽고 간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잠시 쓴웃음 짓고 나면 발전은 없다. 지금 나의 위치가 어디인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주변보다 나에게 먼저 초점을 맞춰야 한다. 잠시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생각해 본다. 40대 중반인 내가 지금 준비하고 있는 자격증, 일하고 있는 직장에서의 임무와 역할. 가정에서의 모습. 분명히, 더 힘써야 한다. 최선은 아니기 때문이다. 훗날 딸아이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힘써야 한다.
그것이 참다운 공무원이자 진정한 영웅이었던 이순신 장군의 후손인 우리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