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다 칸타빌레 - '가다' 없는 청년의 '간지' 폭발 노가다 판 이야기
송주홍 지음 / 시대의창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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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사, 나 따라다녀~”

 

 오전 내내 수십 미터 상공에서 곤돌라를 타고 용접을 하고 산소 질을 하고 내려오니, 어김없이 목수 사장님이 한마디 한다. 주차타워 설치작업이 워낙 위험하고 자재 자체가 크다 보니 현장에서 일하는 다른 노가다 아저씨들에게는 호기심 거리였다. 참도 안 먹고 오전 내내 공중에서 고생이 많다며, 레쓰비 캔커피를 건네주기도 했다. 돌아가신 아버지 연배쯤 되는 목수 사장님은 특히, 내게 관심이 많았다.

젊은 나이에 기술 배우면 좋아, 좋지. 잘 생각했어.”

근데, 이거 너무 위험해. 목수일 배워~ 우리가 뭐 곤돌라를 타기를 하나~ 빔을 타기를 하나~ 못질하면 끝이야.~”

김기사 지금 배워서 10년만 지나 봐, 제일 젊은 오야지 되는 거야~ 잘 생각해봐~”

아직도 퇴근 안 해? 으이구, 소장새끼가 악덕이구만. 고생해~”

 

 처음엔 관심이 부담스럽고 귀찮았다. 매일 말을 걸고 관심을 가져주니, 하루걸러 목수 사장님이 안 보이면 궁금해 졌다. 새카맣게 그을린 얼굴, 작은 키에 다부진 체격, 장정 수십 명을 한마디 호통으로 긴장시키는 카리스마. 여튼, 내게는 참 잘 해주셨다.

 목수 사장님과 겹쳐 일한 기간이 대략 보름 정도. 모든 공정이 끝나고 인사를 하시고는 본인의 BMW7시리즈 트렁크를 멋지게 열었다. 작업복을 갈아입고선 다시 우리 작업장으로 오셨다.

진짜, 목수일 배워볼 생각 없어?”

우물거리는 내게 무심한 듯, 명함을 주고 BMW7 시리즈는 떠났다.

 주차타워 설치일을 생각보다 빨리 그만두지 않았다면, 나는 목수 사장님께 전화했을 것이다. 210개월 전국의 노가다판을 돌아다니며 만난 노가다꾼들 중 가장 젠틀하고, 멋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노가다꾼들은 기본적으로 화가 많다. 별거 아닌 일에도 불같이 화를 내곤 한다. 무언가 모르거나 못하면, 한마디로 어버버하고 있으면 쌍욕부터 날아온다.” (p.49)

 

 쌍욕, 참 많이 먹었다. 책상에 앉아 있는 일만 하다가, 정년 넘어서도 일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했다. 답은 기술밖에 없었다. 대학 때 3개월 정도 지하철 공사판 철근 보조공으로 일해 본 게 기술직(?) 경험은 전부였다. 잘 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도전해 보고 싶었다. 당시 가장 월급을 많이 주는 곳이 기계식주차장(주차타워) 설치직이었다. 월급을 많이 주는 곳이 많이 힘든 곳이라는 걸 일을 시작하고 이틀 만에 알았다. 6개월까지는 온몸이 아팠다. 30년 동안 안 써본 근육들이 놀라, 적응하는데 걸린 기간이다. 30년 동안 들어본 적 없던 고밀도의 쌍욕도 6개월 정도 먹으니 적응되었다.

 노가다꾼들은 화가 많을 수밖에 없다. 현장은 전쟁터니까. ~무 시끄럽다. 2, 30년 되신 노가다꾼들은 대게 가는귀가 먹었다. ‘너무 소리 지르는 거 아니야?’싶을 정도로 소리쳐야 겨우 듣는다.

 노가다 현장 용어가 거의 일본 용어다. 정확히 말해, 일본어가 이상하게 변형된 것들이 많다. 책에서 재미있게 묘사되고 설명된다. 처음에 가면 당연히 모른다. , 저기 바라시 해~! 뭐래는 건지 알 수 없다. 욕을 먹으며 용어를 배운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노가다 칸타빌레연재를 딴지일보에서 접했다. 한 번씩 올라올 때마다 재미있게 읽었다. 40년 넘게 살면서 노가다 현장 경험을 해본 건 3년 정도가 전부지만, 참 많은 일을 겪었다. 그래서, 작가의 글에 공감하고 쓴웃음을 짓기도 했다.

    

 

망치로 자기 손 때려보았는가.”

~무 아픈데 누굴 탓할 수도, 원망할 수도 없는 순도 100퍼센트 내 잘못이라, 화풀이할 곳이 없다는 사실 탓에 더 아픈 기분에 사로잡혀야 하는 고통이랄까.” (p.137)

 

 때려봤다. 많이.

 빔에 매달려 볼트를 체결하고 용접을 하고 산소질을 하다 보면 자세가 안 나온다. 안정된 자세가 아닌 채로 망치질을 하니 내 손 때리기 일쑤였다. 진짜 탓할 수도, 원망할 수도 없는 기분 잘 안다. 더군다나 나는 고공 작업을 하는 중이니, 아프다고 내려올 수도 없었다. 일단, 하던 작업을 마무리하고 장갑을 벗어 상처를 확인해야 했다.

 사장이 용접한다고 잡으라고 해서 잡았더니 내 손 위로 용접 불똥이 우수수 떨어졌다. 양쪽 손등에 아직 화상 자국이 선명하다. 거길 잡고 있으면 어떻게 하냐고 욕먹었다. 다치고 욕먹고. 1년쯤 지나 기공이 되고 나서 조공과 같이 용접을 할 때면, 꼭 내 상처를 보여줬다이렇게 되기 싫으면 내가 말하는 위치를 잡으라고. 나도 말해주고 잡으라고 했으면 안 다쳤을 텐데, 썩을 사장 놈.

    

 

땀 뻘뻘 흘리며 종일 몸을 쓰다 보면 어느 순간 무념무상에 든다. 그런 날, 땀으로 흠뻑 젖은 몸을 씻고 침대에 누우면 뭐랄까. 침대에서 5센티미터쯤 둥둥 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가볍고 산뜻하고 유쾌해지는 기분이랄까.” (p.165)

 

 이런 적도 있다. 두 개 현장이 겹쳐져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공기를 맞추기 위해 야간작업까지 해야 했다. 자재가 크고 다루는 공구도 무거워 쉬면서 하지 않으면 효율이 떨어진다. 하지만, 효율 따위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하루종일 일하고 나니, 저녁밥도 일에 안 들어갔다. 일부러 술만 먹고 씻었다. 화려하게(?) 장식된 모텔방 천장을 보고 누워 있는데, 유체이탈이 되는 것 같았다. 몸이 붕 뜨면서 머리가 개운해지고 완전한 잠의 세계로 빠져들기 직전의 기분. 물론, 다음 날 아침 일어나는 건 너무 힘들었지만.

    

 

선입견 품고 바라봐서도 안 될 일이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고상하게 볼 필요도 없다. 그냥,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 아저씨들의 평범한 밥벌이 현장이다.” (p.305)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나의 노가다 경험이 그대로 투영되었던 영향이 크다. 일했던 현장, 목수 사장님, 매일 만진 철제 빔과 공구들, 노가다 현장의 소음과 먼지, 가득한 쌍욕들과 노가다 용어들.

 선입견은 많이 사라진 듯하다. 노가다가 돈이 된다는 건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다만, 힘든 일이라 많은 사람이 할 수 없을 뿐이다. 주변에 노가다를 하며 나보다 3배 넘는 월급을 버는 사람도 있다. 아무도 선입견으로 그 사람을 보지 않는다. 그저 나와 다른 밥벌이 현장에서 살아가는 보통 아저씨일 뿐이다.

 가끔 생각난다. 내게 명함을 쥐어주던 목수 사장님.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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