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비상구 - 기후위기 시대의 에너지 대전환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44
제정임 엮음 / 오월의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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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사, 저 아줌마들 월급 얼만 줄 알아? 너보다 많이 받을걸?”

 

강 부장님은 한수원 본사에서 승강기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사람이다. 1회 승강기 정기점검 시 대구에서 경주로 지원을 갔었다. 점심을 먹고 건물로 들어가려는데 청소업무를 하시는 분들 열댓 명이 모여 왁자지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강 부장에게 전해 들은 그분들의 월급은 나보다 훨씬 많았다. 오후 4시 칼퇴근이라는 것까지. 지역주민이 1순위이고, 혹시나 그만두는 사람이 있으면 들어오기 위해서 줄을 서 있는 사람이 엄청나다고 했다.

공기업이라 돈이 많은가 보다.’ 싶었다.

    

원자력 산업의 이해 당사자가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마치 일반 주민의 의견인 듯 언론에 글을 싣는 건 대중 여론을 호도하겠다는 것. 언론을 통해 조금씩 실상이 드러나고 있지만, 이러한 일들은 지금껏 계속 반복돼왔다.” (p.249)

 

이 책을 읽고 왜 그렇게 한수원 본사 건물 청소노동자나 청원경찰들의 월급이 많은지, 강 부장님의 월급이 왜 나보다 2배나 많은지 알게 되었다. “진보언론이라 불리는 <경향신문>, <한겨레> 역시 각각 3,600만원, 2,300만원의 협찬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p.237)

철두철미한 계획하에 뿌려진 돈은 원자력은 안전하고 효율적이며 지역 발전과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되는 최고의 수단이라는 인식을 심었다. 그들의 철두철미한 계획에 우리는 무차별적으로 노출되고 세뇌되어 온 것이다.

처음 한수원 본사로 승강기 점검 지원을 가라고 했을 때,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원전? 위험한 거 아냐? 생각되었다. 하지만 실제로 가 본 한수원 본사는 전혀 위험한 곳이 아니었다. 경주에서도 토함산 방향으로 한참을 들어가야 나오는 본사 건물은 멀리서 보면 우주선처럼 생겼다. 크고 현대적이며 깔끔하다. 내부는 두말할 것 없다. 한수원 본사라는 간판을 모르고 간다면 흡사 대형 박물관이나 과학관 같은 모습이다. 우리에게 착시를 일으킨다.

강 부장님께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 얘기가 새삼 부끄럽다.

청원경찰이든, 청소든 자리 나면 꼭 얘기해 주세요. 당장 경주로 주소지 옮기게요. 하하

 

정부가 월성원전과 주변의 단층이 어떻게 분포돼 있고 어떤 위험성이 있으며, 위험성 대비 원전의 안전성은 어떤지 설명해야 하는데, 단층 분포에 대한 조사 자체가 없다.” (p.64)

정부·연구원·규제기관·학계가 똘똘 뭉쳐 있다. 이런 마피아도 없을 거다.” (p.219)

부품을 100퍼센트 주문 생산하고, 수요도 한수원으로 제한돼 있는 핵 산업은 담합하기 굉장히 좋은 구조” (p.226)

 

무시로 겪는 착시는 노골적인 담합과 그들만의 비밀주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어떻게 견제를 하고 감시를 해야 하는지, 정말 원전을 대체할 수단은 없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게 만들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도 제대로 된 수습이 되지 않는 위중한 상황임에도 똘똘 뭉쳐진 그들의 카르텔은 원전의 속살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차츰 잊는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7번째로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고, 1인당 플라스틱 사용량은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런 화석연료 남용과 에너지 과소비는 세계 최악 수준의 미세먼지로 돌아와 국민에게 고통을 안긴다.” (p.12)

한국의 국토 면적 대비 석탄발전용량은 이미 OECD회원국 중 가장 크다.” (p.166)

    

중국 탓만 할 게 아니다. 이번에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확신하게 된 것이다. 차량운행이 현저히 줄자 대기 자체가 달라지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 세계4대 깡패국가에서 벗어나려면 바짝 긴장하고 더 늦기 전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책에는 석탄과 원전을 대체하는 유럽의 사례를 소개한다.

 

프라이부르크가 이렇게 태양광을 활용한 생태도시 건설에 앞장설 수 있었던 것은 독일 내 다른 도시들에 비해 일조량이 풍부하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중략) 놀라운 것은 이것이 한국의 일조량보다는 적다는 것이다. 태양광이 절대량보다 어떻게활용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p.335)

 

70년대 오일쇼크를 겪은 이후 유럽은 발 빠르게 대처했다. 석탄과 원자력이 아닌 것에 주목했고 성과를 이루어 냈다. 반가운 것은 한국의 일조량보다 적은 도시에서 대단한 성공을 거뒀다는 것이다. 우리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한국이 기후 깡패국가가 맞았구나! 자각하게 되었지만, 한국만큼 코로나에 잘 대응하고 있는 국가가 없는 것을 전 세계가 알게 되었다. 더 늦기 전에 시작해야 한다.

 

제주도의 풍력 제도는 풍력 자원의 공공적 관리 기반을 구축하고 개발 이익의 공유를 제도화한 소중한 경험” (p.403)

일반 시민이 자유롭게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를 사고팔 수 있는 시스템과 이익 공유 체계를 갖추면 태양광, 풍력 등이 훨씬 빨리 확산될 것이다.” (p.509)

 

절친한 친구가 서귀포 대정읍에 살고 있다. 그 덕에 지난 2년 동안 6차례 제주도에 갔었다. 친구 집 동네에 바람이 정말 많이 분다. 내륙에서 그 바람을 맞았다면 분명 태풍이 온 줄 알았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제주도를 여행할 때 풍력발전기를 많이 봤던 것 같다.

이미 제주도에는 풍력 자원의 비율이 상당하다는 소개가 반가웠다. 그리고 에너지 전환과 재생에너지산업의 발전에 가장 중요한 부분은 개발 이익의 공유와 전기를 사고팔 수 있는 시스템의 구축이다. 나도 저 생각을 한 번도 하지 못했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전기를 사고판다고?’, ‘전기는 한전에서만 관리하는 거 아니었어?’ 우리 동네에서 태양광과 풍력으로 생산한 전기를 직접 사용하고, 남은 전기를 팔 수 있다는 것. 에너지 전환을 위한 가장 중요한 생각의 전환이다.

 

공신력 있는 정부 기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태양광의 유해성에 대한 허위 정보가 퍼지는 것은 친 원전 세력이 의도적으로 유포하기 때문이라고 주장” (p.430)

 

하지만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한전과 한수원은 아주 오래되고 아주 큰 조직이다. 노련하고 야비하게 계속해서 착시를 심을 것이다. 멋지게 포장하고 간사하게 설득할 것이다. 그래서 나같은 사람이 한수원에서 월급 많이 받는 노동자들을 보며 부러워하게 만들 것이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적어도 후세대에는 지금보다 조금 더 안전한 세상, 깨끗한 환경을 물려주어야 한다. 이 책 마지막 비상구와 같은 책이 많이 읽혀야 할 텐데, 괜한 걱정이 앞선다.

제주도에 내려가 사는 친구를 보며 우리 가족도 제주도 이주를 계획 중이다. 그것을 위해 올 초 이직도 했다. 이직한 직장에 필요한 자격증을 취득해서 제주도로 향할 계획인데, 자격증이 하나 더 필요할 것 같다.

신재생에너지 관련 자격증.

한수원 외주 건물 관리직을 하며 돈을 버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고 보람된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강 부장님께 다시 전화해야겠다. 자리 알아보지 않으셔도 된다고.

 

좋은 책을 읽게 되어 감사하다. 학생 기자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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