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북극 출장 중
이유경 지음 / 에코리브르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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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나 A플러스 받았어!

심각한 표정으로 노트북 화면을 쳐다보던 아내가 뛸 듯 기뻐한다. 방송통신대학교 학기 과정 과제 결과였다. 코로나로 인해 학기 전 과정이 과제로 대체되었다. 2달 정도 아내는 끙끙거리며 과제를 해냈다.

 

계획에도 없던 임신을 했다. 젠장!” (p.157)

돈을 빌릴 곳도 없었다. 이제 과학자로서 생은 마감하고 엄마로 변신해야 하나, 하며 내 처지를 불평했다.” (p.157)

 

아내도 경단녀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과정 중, 당연하게 경력은 포기했다. 기를 쓰고 이어가려고 해도 할 수 없는 구조다.

엄마는 북극 출장 중의 저자는 과학자다. 여성 과학자. 과학자라는 단어도 생소한 사회에서 여성이 하나 더 붙으니 더 낯설다. 국내 유수의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여성 과학자도 계획에도 없는 임신을 하면 경력단절을 걱정해야 하는 사회다. 지극히 비정상적이다. 하물며, 내 아내와 같은 일반 직장인은 더하다. 가장 보호하고 지원해야 할 계층에게 가장 잔인하고 냉정하게 잘라낸다.

집에서 애나 키우시죠.” 라며.

여성과학자조차도 경력단절을 걱정해야 하는 세상이라니.

 

큰애에게 이런 것을 배우냐고 물어보았더니 배운 적이 없다고 했다. 도대체 배운 적도 없는 실험 보고서를 어떻게 쓰라는 것인지 답답했다. 이러면 결국 아이들은 수행 평가를 위해 학원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p.199)

 

어쩌면 우리 사회는 기초 학문에 아예 관심을 둘 수 없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입시 위주로 돌아간다. 아이가 7살 인데, 또래 학부모를 만나면 학원 이야기부터 한다. 7살 아이들이 평균적으로 2곳 정도 학원에 다니는 것 같다. 아직 7살인데도 중학교 걱정을 한다. 조금 더 좋은 학군의 동네로 이사를 가야 한다며.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다. 학부모들의 의식이 문제냐 정부의 교육 정책이 문제냐. 단기간에는 절대 해결되지 않을 듯하다.

우리는 좀 다른 교육을 하자. 시대의 흐름에 떠밀려 다니지 말자. 라고 결혼 전부터 아내와 합의를 했던 터라, 주위의 야단법석쯤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다. 우리만의 교육을 위해 아내와 나, 둘 중 한 명은 집에서 아이 교육에만 매진하고 싶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결단이 쉽지 않다. 딜레마다.

 

심지어 그중에는 산소 없이도 살아가는 혐기성 미생물도 있었다. 춥고 얼어붙은 데다 햇빛도, 산소도 부족한 곳. 바로 화성이다. 지구의 동토에 미생물이 있다면 화성의 동토에도 혐기성 미생물이 살 수 있지 않을까? 북극에서 외계 생명체를 향한 강한 호기심에 불이 붙었다.” (p.151)

 

7살인 딸아이는 과학에 문외한인 엄마 아빠와는 달리 과학에 관심이 많다. 길을 가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발과 손이 먼저 간다. 공부를 잘할지는 모르겠지만 호기심은 엄청나다. 묻고 또 묻는다. 꿈이 우주비행사다. 명왕성이 왜 태양계 행성에서 사라졌는지 직접 가보고 싶다고 한다. 남들은 대단하다 하지만 딸아이의 저런 호기심을 얼마큼 지켜주고 발전시킬 수 있을까 고민이다.

과학자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인 건 분명한 것 같다. 북극에서 외계 생명체를 향한 강한 호기심이 생겼다니. 나 같은 과학 문외한은 꼭 북극까지 가서 힘들게 연구해야 하나?’싶다.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도 그렇다.

 

책의 저자는 학창시절 끊임없는 질문에 친절하고 일관되게 답을 해준 선생님이 있었다고 한다. 만약 그런 건 대학입시에 중요하지 않아!”라고 했다면 극지를 연구하는 중요한 여성과학자 한 명은 이 땅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대여섯 살 정도가 지나면 엄마 왜? 아빠 이건 뭐야? 라는 질문은 조금씩 줄어든다고 하는데, 딸아이는 그 정도가 더 심해지고 있다. 온종일 대답해야 할 때도 있다. 귀찮기도 하고 잘 모르는 걸 묻는 경우도 많았는데, 명왕성의 자취를 연구한 최초의 한국 여성 과학자의 길을 막을 수도 있으니 최선을 다해 대답하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아직은 우스개에 불과하지만.

지난 주말 아이를 데리고 경주에 다녀왔다. 첨성대, 천마총, 경주박물관을 들렀다. 2년 만이었다. 이전에는 그저 뛰어다니기 바빴는데 이번에는 아니었다. 미리 공부해 놓지 않으니 대답을 절반도 못 해줬다.

공부만 잘해서는 좋은 과학자가 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사례는 책에서도 충분하다. 더군다나 성평등 지수에 있어서는 다른 선진국들보다 한참 아래에 있는 한국의 현실은 암울하다. 그저 젠더 갈등으로 치부하는 성의 없는 미디어의 무책임함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이것저것 생각하면 머리만 아프다. 좋은 학교 나와 안정적인 직장이나 공무원이 되는 게 최선인 구조가 언제 바뀔 수 있을지 가늠조차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유경 박사가 걸었던 길 보다는 평탄하다는 것이다. 그녀가 그 이전 선배들이 닦아 놓은 길을 뒤따라 걸었던 것처럼, 또 다른 여성 과학자들이 선배들의 뒤를 따라갈 것이다. 느리고 험하고 가파르다 하더라도, 조금씩 평탄해지고 낮아지고 넓어질 것을 기대한다. 과학 문외한인 부모 사이에서도 우주를 연구하는 여성 과학자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후과학자들은 빠르면 2050년 여름에 북극해에서 얼음을 볼 수 없을 거라고 한다. 늦어도 2100년에는 얼음 없는 북극해를 볼 거로 예측한다. 여름철 얼음이 완전히 사라지고 엄청난 양의 수증기가 북극 대기로 흘러 들어가면 과연 우리나라 날씨는 어떻게 변할까.” (p.258)

 

책 일부분인데, 딸아이에게 그대로 읽어줬다. 무척 신기해하며 되물었다.

아빠! 그럼 북극 얼음부터 연구해 봐야겠어.”

그래, 그러렴.

 

지금, 이 순간에도 연구실 한켠과 현장에서 지난한 실험과 난해한 논문, 끝이 없는 샘플링 등에 매달려 있을 모든 여성 과학자들과 과학도들에게 아낌없는 찬사와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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